‘커지는 의대 블랙홀’ 영재학교부터 석박사까지 의대행.. ‘이공계 인재양성 빨간불’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영재학교/과고, 이공계특성화대 학부 신입생의 ‘의대 겨냥’ 중도이탈 문제가 꾸준히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KAIST 석박사과정에서도 의치대 진학을 사유로 한 자퇴생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사회적 의대열풍으로 이공계 인재양성 계획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황정아(더불어민주) 의원이 KAIST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이달 4일까지 의치대 진학을 사유로 자퇴한 KAIST 학생은 182명이었고 이 중 석박사과정도 4명 포함됐다. 자퇴를 신청할 때 사유를 의치대 진학으로 알린 학생만 포함한 집계이기 때문에 실제 의치대 진학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교적 커리어가 명확한 대학원생까지 이공계에 등을 돌리고 의대 입시에 다시 도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고교부터 학사 석박사까지 국내 이공계 교육의 전 주기에 걸쳐 의대이탈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올해 대규모 의대증원이 확정되면서 ‘의약치한수’로 이탈하는 이공계 인재들이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교육계에서는 무분별한 의대진학을 막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방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정아 의원은 “의대 증원으로 이공계 인재 유출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통해 튼튼한 이공계 성장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공계 분야 잔류를 독려하기 위해 국가가 내놓은 해결책인 국가 이공계장학금 역시 실효성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장학재단은 우수 인재의 이공계진출을 위해 매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 교재비 등을 지원하는 국가우수장학금과 대통령과학장학금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정성국(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공계열 산업에서 종사하지 않아 이를 환수한 인원이 최근 5년간 73명, 그중 24.7%에 해당하는 18명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육전문가는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진학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공계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의대를 향한 무한N수 도전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재학교와 과고의 의대진학 문제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공특의 대표격인 KAIST에선 학사뿐 아니라 석박사과정도 의치대 진학을 사유로 자퇴하고 있어 충격을 안겼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영재학교와 과고의 의대진학 문제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공특의 대표격인 KAIST에선 학사뿐 아니라 석박사과정도 의치대 진학을 사유로 자퇴하고 있어 충격을 안겼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KAIST 3년새 ‘의대 진학’ 자퇴 182명.. 석박사 학위도 포기>
의대 블랙홀이 점차 커지고 있다. 황정아(더불어민주) 의원이 KAIST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10월4일까지 의치학 대학 진학을 사유로 자퇴한 KAIST 학생은 182명이었다. 의치대 진학 사유로 자퇴하는 시점은 11월 수능 이후가 포함된 2학기에 집중돼, 올해는 의대 증원과 맞물려 더 많은 자퇴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사과정 중 자퇴한 학생은 178명이었으며 석사과정 2명, 석박통합과정 1명, 박사과정 1명 등 석사 이상 과정에서도 의치대 진학 때문에 자퇴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집계는 자퇴를 신청할 때 사유를 의치대 진학으로 알린 학생만 포함된 것인 만큼 실제 의치대 진학 비율은 더 높게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의치대 진학을 위해 자퇴한 학부 학생은 2021년 54명에서 2022년 58명, 2023년 62명으로 점차 늘었다. 이 중 학부 학생들이 자퇴 전까지 KAIST에서 이수한 학기를 살펴보면, 1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자퇴한 학생이 1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입학 이후 곧바로 의대진학을 준비하는 반수생이다. 이들 중에는 졸업 직후 곧바로 의대로 진학하는 길이 막혀 있는 영재학교 과고 학생들이 우선 이공특으로 진학, 이후 반수를 통해 의학계열에 도전하는 사례가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공특을 ‘의대로 가는 징검다리’로 활용하고 있는 경우다. 3학년 이상에서도 의치대 진학을 위해 떠난 학생이 26명이었다. 

<‘영재학교/과고’서도 의대 진학.. 올해만 206명>
이공계 인재의 의대 이탈 문제는 대학 과정뿐 아니라 고교과정에서부터 심각한 상황이다. 이정헌(더불어민주) 의원이 교육부와 10개 국립대를 통해 전수조사한 ‘의대 신입생 영재학교/과고 출신 현황’에 따르면, 올 한 해에만 206명이 의대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학교와 과고는 이공계 인재 양성을 목표로 막대한 국고가 지원되는 학교 유형으로 의약계열 진학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어기고 의대에 진학하는 인원이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다. 차의과대를 제외한 전국 의대 전체 신입생 3144명의 6.6%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영재학교 출신이 114명, 과고 출신이 92명이다. 영재학교의 한 해 모집인원이 862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재학교 졸업생의 약 13.2%가 설립 취지와 무관한 의대에 진학한 것이다.

영재학교 과고 출신의 의대 진학은 대부분 재수나 반수를 통한 정시 수능전형 혹은 수시 논술전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수학과 과학의 비중이 높은 통합형 수능에서는 영재학교와 과고 출신이 최상위권 점수를 획득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학과 과학 역량을 바탕으로 한 논술전형 역시 유리해서 입시업계에선 “사실상 영재학교 과고 학생들은 마음만 먹으면 의대 진학이 가능한 구조”라고 보고 있다. 

영재학교 과고 출신의 의대 진학문제는 이공특까지 피해가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더하다. 학교 측의 의대 진학 제재를 피하기 위해 우선 이공특으로 진학, 이후 곧바로 재수나 반수에 돌입해 의대로 재진학하는 ‘꼼수’까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정헌 의원이 KAIST GIST DGIST UNIST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대 과기원에 입학한 신입생 중 현재까지 휴학한 인원은 185명이나 된다. 전체 신입생의 12.1%에 해당하는 인원으로, 상당수가 의대 진학을 겨냥하고 반수나 재수에 접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이공특이 의대를 향한 징검다리로 활용되는 분위기다. 신입생의 중도이탈이 확대되면 교육 커리큘럼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뿐 아니라 대학 측의 예산 삭감도 불가피하다. 이공특에 정말 뜻이 있는 다른 학생을 선발하지 못한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의대 2000명 증원’ 의대 블랙홀 더 커지나.. 정부 차원 제재조치 ‘시급’>
문제는 당장 올해 의대의 2000명 증원이 확정되면서 이공계 인재의 의대 이탈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수학과 과학에 유리한 통합수능 체제는 물론, 40%까지 확대된 정시 비율도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영재학교 과고 출신과 이공특 재학생이라면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의대 진학이 가능한 구조기 때문이다. 

물론 이공계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의대를 향한 무한N수 도전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고교 재학생뿐 아니라 대학 재학생과 대학원생 직장인까지 손쉽게 대입에 뛰어들 수 있는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최상위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다년간 수능 준비에만 전념하는 것은 분명한 사회적 손실일 뿐 아니라, 첨단 인재 양성을 위해 막대하게 투자되는 국가 지원금 역시 낭비되는 것이다. 특히 영재학교 과고 재학생의 의대 진학 문제는 학교 대책에 미뤄두고 더 이상 방치할 상태가 아니다. 대입제도 개편과 함께 의대 측의 제재조치까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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