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문이과 통합’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10일 발표된 2028대입 개편안에서 국어 수학 탐구의 선택 과목을 모두 없애기로 해 일명 ‘문이과 통합 수능’이라 불리지만, ‘심화수학’이 도입될 경우 ‘무늬만 문이과 통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편안에서 확정되진 않았지만 신설을 검토 중인 심화수학을 도입할 경우, 현재 의대는 물론 상위 대학 자연계열에서 미적분 또는 기하를 필수 응시하도록 한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합형 수능 체제로 인해 인문계열 학생도 의대 행에 가세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지만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심화수학이 도입되지 않더라도 대학이 교과 이수 기준을 통해 사실상 ‘칸막이’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상위 대학 전 입학 관계자는 “의대에선 핵심 과목을 요구해야 한다. 이 과목을 공부하지 않으면 의대에서 수학하기 어렵다고 지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역시 “대학에서 특정 과목을 필수 지정하거나 내신에서 과탐 미적분Ⅱ 등 심화 영역을 특정해 실질적 문이과 통합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봤다.

서울대의 경우 이미 정시에서 권장 교과 이수 과목을 제시하고 있다. 의대의 경우 생명과학Ⅰ을 핵심 권장 과목으로, 생명과학Ⅱ 미적분 확률과통계 기하를 권장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권장 과목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적Ⅱ+기하 응시 않고도 자연계열 지원 가능해지나.. ‘가능성 낮아’>
이번 개편안에서 첫 손에 꼽히는 변화는 통합형/융합형 수능 과목 체제다. 2022수능에서 국어 수학이 공통+선택형으로 바뀐 지 6년 만에 다시 선택 과목이 없는 공통 과목 체제로 돌아가는 셈이다. 사탐 과탐 역시 선택 과목 없이 통합사회 통합과학에 동일하게 응시하도록 한다. 선택 과목 폐지로 인해 수능에서 문이과가 완전 통합되는 형태다.

2028대입 개편안에 따르면 수학 공통 출제 범위는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통계다. 심화수학이 신설되지 않는다면 미적분Ⅱ 기하에 응시하지 않고도 자연계열, 더 나아가 의약계열까지 지원이 가능해진다. 공통 과목 중심의 수능이 실시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론 인문계열 학생의 의약계열 지원이 가능해진다. 현재 의대 쏠림 현상이 자연계열 최상위권을 끌어당기는 상황에서 별다른 과목 지정 없이 치러지게 될 경우 인문계열 최상위권까지 빨아들일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대학들이 수능 필수 응시 과목 또는 교과 이수 과목 등을 지정해 계열 칸막이를 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실제로 현행 수능 체제 역시 ‘문이과 통합’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국어는 언어와매체 화법과작문, 수학은 확률과통계 미적분 기하, 탐구는 사회 과학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이과 구분이 여전하다. 대학에 따라서는 자연계열 모집 단위에서 수학 탐구에 선택 과목을 지정해 사실상 계열 간 칸막이는 사라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2028대입의 경우 현재 도입을 검토 중인 심화수학이 자연계열 필수 지정 과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심화수학은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미적분Ⅱ+기하를 절대 평가 방식으로 평가하는 과목이다. 교육부는 심화수학 도입 여부를 국가교육위원회 논의 사항으로 넘겨 둔 상태다. 

교육부는 심화수학이 도입되더라도, 대학이 학생부의 수학과 통합과학 성적만으로 이공계열 적합성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심화수학을 필수로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교육계에선 상위 대학이나 의약계열의 경우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절대 평가라고 해도 부담은 있다. 마치 현재 서울대가 인문계열에서 제2외국어/한문을 필수로 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과 이수 기준을 두는 방법도 거론된다. 서울대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대는 정시에서 ‘전공 연계 교과 이수 과목’을 제시하고 있다. 지원 자격과는 무관하지만 모집 단위가 권장하는 과목의 이수 여부를 정시 교과 평가에 반영한다. 서울대는 2023대입에서부터 정시에 교과 평가를 반영한다. 지균에서 40%, 일반에서 2단계 20%로 반영한다.

서울대 의대의 경우 생Ⅰ을 핵심 권장 과목으로, 생Ⅱ 미적 확통 기하를 권장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핵심 권장 과목은 학과에서 공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수를 권장하는 과목이며, 권장 과목은 학과에서 공부하기 위해 이수를 권장하는 과목이다. 각 전공 분야의 학문적 특성을 고려해 제시하고 있는 만큼 이 과목을 이수하지 않고 지원하기는 어렵다. 유웨이 이 소장은 “각 대학이 선택 과목 이수 현황이나 수학 과학에서 가중치 또는 가산점을 부여함으로써 적절하게 통제하려고 할 것”이라며 “심화수학이 채택된다면 이를 필수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또 무늬만 ‘문이과 통합’ 될까>
이번 대입 개편이 통합형 과목 체제를 도입하며 ‘문이과 통합’이라 일컬어지지만 사실상 기존과 마찬가지로 ‘무늬만’ 문이과 통합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모집 단위에 따라 필요로 하는 이수 과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모집 단위별 학문 특성에 맞지 않은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경우 학업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2022수능부터는 선택 과목 집단별로 성적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영역에 응시한 수험생 전체를 대상으로 성적을 산출했으나 사실상 문이과 분리는 여전히 남아있게 되면서 선택 과목별 유불리 문제까지 불거졌다. 새로운 점수 조정 방식에 따르면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는 발생하지 않아야 했지만, 선택 과목에 따른 문이과 분리로 인해 자연계열 학생들은 미적 또는 기하, 인문계열 학생들은 확통에 응시하는 것으로 양분됐기 때문이다. 

자연계열 모집 단위에 응시하기 위해 자연계열 상위권이 주로 미적을 선택하고 이들의 공통 과목 점수가 높게 나오면서 미적 조정 원 점수가 올라가고, 결국 미적 선택자들의 표준 점수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반대로 확통을 선택한 학생들의 공통 과목 점수는 낮게 나오기 때문에 확통 점수가 미적 학생의 점수와 동일하더라도 조정 원 점수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2028대입 개편안에선 선택 과목이 사라진 만큼 과목별 점수 차로 인한 유불리 문제는 구조적으로 사라지게 됐다. 다만, 수능 수학 공통 과목이 일명 ‘문과 단원’으로 통일되면서 수학 상위권 대부분은 이과에서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종로 임 대표는 “인문계열 학과의 모집이 어려워지고, 합격선 또한 하락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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