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엇박자/현장부담만 심화.. “정시 축소, 학종 확대 없인 파행 불가피”

[베리타스알파=신현지 기자]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 고교학점제가 시행 4개월 만에 고교 현장은 물론 현행 대입체제와 충돌하며 파행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상대평가 내신체제와 정시 확대를 비롯한 수능 중심 대입은 그대로 유지하며 과목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지적된다. 교육계에서는 대입과 괴리를 드러낸 고교학점제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대입 역시 정성평가를 중심으로 틀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철저히 입시 중심으로 흘러가는 교육시장을 고교학점제가 이길 순 없다고 비판한다. 최근 자연계열 학생들이 진로와 관계없이 성적 향상만을 바라보고 ‘사탐런’을 택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현행 ‘점수 한 줄 세우기’ 입시에서는 취지 자체가 무용지물이라는 것. 높아지는 고교 자퇴율과 N수 증가율로 볼 수 있듯, 커진 정시 문호를 노리는 수험생도 많아지고 있다. 까다롭게 매 과목 수행평가를 챙겨가며 고교 수업에 집중하는 것보단 되레 확대된 정시를 향할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교육현장에서도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과도한 과목 개설과 교과별 출결관리, 추가 보충지도 등으로 교사들의 업무량이 폭증하고 있으며, 학생/학부모는 정보 부족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대로 2028대입까지 끌고 간다면 제도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만 누적될 것이라는 비판여론이 크다. 교육계는 근본적인 대입 방향성의 전환 없이는 고교학점제의 ‘정상 안착’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교육당국이 전면적인 대입 재설계를 통해 ‘정시 축소, 학종 확대’라는 실질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고교학점제가 사실상 대입체제와 충돌하며 파행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고교학점제가 사실상 대입체제와 충돌하며 파행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대입 엇박자.. 성적 중심 체제 속 진로 좇으라는 ‘어불성설’>
고교학점제는 도입 초부터 현행 대입체제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지적이 이어졌다. 문재인 정권의 정시 확대와 고교학점제 강행, 윤석열 정부의 방치로 더 이상 고교학점제는 손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육계에서는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론이 거론되며 이재명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대로 2028대입개편까지 파행을 끌고 갈 순 없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에 있지만 현행 대입은 철저히 점수 중심 체제다. 내신 등급제는 유지됐고 점수 위주 수능도 유지됐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진로는 버려둔 채 성적 잘 나오는 과목에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정성 강화방안으로 학생부 기재 항목이 축소되며 수시마저 내신 위주로 정량화했으며 정시는 여전히 ‘수능 점수 한 줄 세우기’다.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한들, 내신에 유리하거나 수능에 도움이 되는 과목을 따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현 대입시장만 봐도 2025학년 돌출한 ‘사탐런’ 현상이 올해는 보다 심화했다. 자연계열을 지망함에도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사탐을 택하는 가운데 고교학점제 역시 무용지물이라 분석된다.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점도 한계다. 실제 학교 현장은 상대평가 기반의 내신 체제와 수능 구조 속 철저히 입시 중심으로 흘러간 지 오래다. 게다가 현행 대입의 추세 역시 정시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재학생들은 고교 자퇴까지 감내하며 검정고시로 정시에 도전하고 있으며 N수생은 매년 역대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정시문호가 대거 열려있는 가운데, 진로만을 바라본 교과목 선택과 내신에 집중하는 고교생은 이상을 좇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대학이 최근 내놓고 있는 권장과목 역시 오직 학생의 관심사만을 반영한 과목 선택을 어렵게 한다. 물론 대부분의 과목은 학생의 진로와 연관이 있겠지만, 대학이 권장하는 과목이 다수일 경우, 학생의 선택폭이 좁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학 역시 선택과목 없는 통합형 수능과 내신 5등급제의 자구책으로 권장과목을 내놓고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대학의 과목 제시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은 피해갈 수 없다.

<고교 현장 업무 과중..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교과목별 출결 체크’>
고교 현장의 곡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업무 과중은 물론, 행정편의주의적인 제도 설계로 인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 다양한 과목 개설에 따른 업무 과중은 물론, 출결 이중 확인 등 행정 과중까지 더해졌다.

현장의 가장 큰 불만은 ‘전 과목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이하 최성보)’다. 학업 성취율이 40% 미만이거나, 과목 출석률이 2/3 미만일 경우, 최소 성취수준에 미도달한 것으로 간주되어 해당 과목은 미이수 처리된다. 이때 학업 성취율이 40% 미만이면 보충지도를 통해 학점을 취득할 수 있고, 학업성취율 40%는 충족했으나 과목출석률이 2/3 미만일 경우 추가학습을 통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고교에서는 방학 중 보충지도와 추가학습을 지원해 미이수를 방지한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 고교 교사는 “미이수 학생을 위한 방과 후 보충지도까지 해야 하는데, 예산도 없고 보충지도만을 담당할 교사도 없다. 책임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걸 학교에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최성보’에서 이어지는 출결 확인 방식도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한 고교 교사는 “기존에는 담임 또는 교과목 교사가 출결을 관리할 수 있었다면, 고교학점제 이후 엉뚱하게 교과별로 출결 권한이 넘어가며 담임교사와 교과 교사가 모두 출결을 체크해야 하는 이중 관리 시스템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사는 “고교가 보육기관도 아닌데 매 수업시간 출결을 체크하느라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대학은 QR코드 찍고 자동 관리되는데 우리는 나이스에 매일매일 클릭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일부 교사들은 “앱이라도 개발해서 출결을 자동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교육당국의 준비 부족으로 현장은 여전히 수기로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교사들은 다양한 과목을 개설해야 함에 따라 담당 과목이 많아진 상황. 수업 준비량이 늘고 수업의 질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학기제 수업 운영 역시 비판 대상이다. 교원 정원은 학년단위로 결정되지만, 고교학점제는 학기제로 운영되며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셈이다.

타개책으로 언급되는 ‘공동교육과정’도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평이 쏟아진다. 정작 주로 활용해야 하는 농어촌 고교에겐 어려움이 많기 때문. 상대적으로 인력이 충분한 수도권 고교의 경우 공동교육과정 없이도 수업 운영이 가능하다. 문제는 농어촌 지역 고교다. 농어촌 지역은 학교 간 거리가 멀어 공동교육과정 운영이 어렵기 때문. 오프라인 교육은 불가능한 셈이다.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의 경우 교육의 질 논란으로 이어진다.

교사마저 혼란스러운 와중,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도 심각하다. 처음 도입된 제도에 고교 현장은 물론 교육부와 교육청까지도 고교학점제 관련 문의로 혼란이 가중된 상황이다.

업무 과중, 행정 부담에 쌓인 교사에 더해 학생 역시 늘어난 과목에 따라 수행평가 부담이 극심한 상황. 학부모는 부족한 정보들 속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고교학점제가 혼란만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고교학점제 폐지론 급물살.. “대안은 정시축소 학종확대”>
전문가들은 고교학점제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애초 도입 초기부터 방향을 정확히 잡아야 했지만 모두 놓친 채 현장에 적용되며 더 이상 손볼 수 없는 단계라는 것. 문재인 정권이 도입부터 현장과는 거리가 먼 정책을 가져온 것도 문제이지만, 윤석열 정권의 방치까지 더해지며 현장 혼란만 가중됐다.

최근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개선안을 마련한다고 밝혔지만, 일부 손질가지고는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교육부 역시 “고교 내신평가와 관련한 사항은 이번 개선안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둔 상태다. 이미 교육부 자체가 ‘절대평가’ ‘성취평가제’ 등에 대해 선을 그어둔 가운데 개선안을 향한 교사들의 반응 역시 미온적이다.

교육계에선 그나마의 대안으로 ‘학종 확대’를 강조한다. 학생부를 기반으로 고교 생활 전반을 살피는 학종이 현 고교학점제를 반영할 수 있는 최적의 전형이라는 데 교육계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 고교학점제와 가장 상충되는 전형은 정시 수능전형이지만 공정성 강화방안에 따라 정시는 확대되고 수시 전형마저 정량화했다. 게다가 교육당국이 2028대입개편에서까지 ‘정시 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대학의 제도 수정은 어려운 상황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당국이 2028대입부턴 정성평가 중심으로 틀을 다시 잡아줘야 한다. 현재의 정시확대를 깨지 않는 이상 고교학점제의 정상안착은 어렵다. 정시는 단순하게 가져가되, 수시에서는 교과이수와 학생의 진로 성장 방향을 살필 수 있는 정성평가 확대로 대입을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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