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 20% 의무선발도 시행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자사고 외고 국제고(이하 특목자사고) 존치를 골자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2025학년 일반고 일괄 전환이 공식적으로 폐지, 특목자사고를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유지된 것이다. 고교 다양성이 유지된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와 함께 전국자사고에 지역인재와 사회통합 각 20% 선발을 의무로 지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잇따른 아쉬움이 제기되고 있다. 과도한 사회적 책무를 떠넘기면서 오히려 수월성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개정안은 올해 말에 치르는 2025고입부터 적용한다.
2025학년부터 전국자사고는 지역인재를 20% 이상 의무적으로 선발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지역별 학령인구의 비중과 무관하게 10개교가 모두 동등하게 20%를 해당 지역 중학교 출신으로만 충원해야 해 선발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기준 현대청운고가 위치한 울산 학생 수는 전체 2.5%, 민사고가 위치한 강원은 2.8%인 반면 외대부고가 위치한 경기 학생 수는 29.1%에 이르는 등 지역 간 학생 수의 격차가 큰 상황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현재 지방 의대에서 도입한 지역인재전형 역시 지역별 의무선발 비율에 차이를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40%를 적용하지만 학생 수가 적은 강원과 제주는 예외적으로 20%를 적용하는 식이다.
이에 더해 전국자사고는 사회통합전형을 통해 의무적으로 20%를 선발해야 한다. 옛 자립형사립고 출신인 민사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상산고 현대청운고 하나고(지정 및 설립 순) 등 원조 자사고의 경우 사통 의무 선발 대상에서 예외한다는 부칙이 존재했지만, 이번 개정에서 예외 부칙을 삭제했다. 지역인재와 사통 대상자가 중복되지 않는다면 전국자사 10개교의 경우 모집인원의 최대 40%를 정부가 선발을 강제한 인원으로 선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자사고 관계자는 “선발 방식도, 선발 범위도 규제가 너무 심하다. 학교 운영상의 자율권이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특목자사고의 사통 20% 의무를 오히려 축소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년간 사통 20% 의무 선발을 전국의 자사고와 특목고에 적용했음에도 대부분이 매년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사통 학생들이 먼저 수월성 교육을 외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의 사통이 고질적인 미달 사태를 겪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는 것 자체가 ‘수요 없는 공급’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사통 모집정원에서 지원자를 뺀 인원의 50%를 일반전형으로 충원할 수 있도록 소폭 완화되긴 했지만, 고교 관계자들 사이에선 사통 미충원 인원 전원을 일반전형으로 이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 ‘존치’.. “획일적 평준화 정책 바로잡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16일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되면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 자공고가 기존과 동일하게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난 정부는 전문인재 양성을 위한 외고 국제고와 다양한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사고 자공고를 2025년부터 폐지하기로 해,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제약학고 공교육 내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특히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와 적성을 살리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서도 다양한 고교 유형을 획일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모순이며, 여러 해 동안 특성화된 학교를 운영하며 축적된 경험과 교훈이 사장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라 2025학년부터 특목자사고의 사통 모집정원 중 일부가 일반전형으로 이월될 수 있다. 사통 20% 선발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모집정원에서 지원자를 뺀 인원 중 50%를 일반전형으로 충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례로 사통 모집정원 40명 중 지원자가 20명에 그쳤다면, 나머지 20명 중 절반인 10명은 일반전형으로 선발할 수 있다.
대부분의 특목자사고는 일반전형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지만, 옛 자립형사립고로 사통 선발의무가 없던 민사고 상산고 현대청운고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는 오히려 일반전형의 모집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 이들 또한 20%를 의무선발하도록 시행령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16일 열린 브리핑에서 “사통전형 입학생들의 입학금이나 수업료는 전체적으로 지원이 된다. 수익자부담금에 대해서는 평균액을 실비 그대로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자사고 10개교는 2025학년부터 지역인재도 20%를 선발해야 한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학생 선발제도를 보완했다”는 교육부의 설명이다. 지역인재는 사통과 달리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일반전형으로 이월할 수 없다. 선발대상은 해당 고등학교가 소재한 지역의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거주기간 등에 대한 내용은 시행령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역인재 선발에 관해서는 성과평가 등을 통해 지도감독하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김연석 책임교육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부분 학교에서 채울 수 있는데 지역인재 선발비중을 정해놓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선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난 3년 통계를 보면 10개 전국자사고는 이미 지역인재 선발을 53% 정도 하고 있다. 그런데 160명의 정원을 예로 들어 32명 정도의 지역인재가 없다고 하면 어불성설이 아닐까 생각을 갖는다. 지도점검을 통해 지역 취지에 맞게 운영되게끔 하겠다”고 말했다.
전형방식상으로는 크게 변화가 없다. 사교육 과열을 예방하기 위해 특목자사고의 자기주도학습전형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면접문항 등 전형요소도 투명하게 공개한다.
자공고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시도교육청이 지역과 학교의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학교 교육을 혁신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은 “올해부터 자율형공립고 2.0을 추진하겠다. 학교가 지자체 대학 기업 등과의 협력을 통해 농산어촌 원도심 등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시도별 교육 혁신모델이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근본 없는 20% 비율.. ‘고질적 미달 사태로 입시 왜곡’>
교육계에서는 고질적인 미달 사태를 유발한 ‘사통 20% 룰’을 축소하기는커녕 확대한 것을 두고 ‘현실에 역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10년 도입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전면 폐기 혹은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원조 자사고까지 범위를 넓혔다는 점은 상식을 벗어난 행보라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사통 운영의 당위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근거 없는 ‘20%’의 비율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자사고 관계자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와 일반 학생의 수를 근거로 비율을 제시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현실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20%의 비율은 사회적 배려가 아니라 사회적 특혜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일반 학생에게는 불공정”이라고 호소했다.
사통 20% 도입 이후 자사고와 특목고의 정원 미달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다. 특히 서울 광역자사고의 경우에는 8년 연속 16개교가 모두 사통전형에서 미달이 발생하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다. 2024학년 사통 경쟁률은 0.38대1(1296명/495명)로 0.36대1(1296명/473명)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미달을 기록했다. 2017학년 0.33대1(1709명/566명), 2018학년 0.25대1(1702명/427명), 2019학년 0.28대1(1611명/449명), 2020학년 0.28대1(1555명/439명), 2021학년 0.29대1(1520명/436명), 2022학년 0.31대1(1359명/427명), 2023학년 0.36대1(1296명/473명)에 이어 올해 역시 전 학교가 미달을 피하지 못했다. 정원의 20%로 규정한 사통 모집인원을 16개교나 되는 서울 광역자사고가 모두 흡수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올해 원조 자사고들까지 사통을 확대하면 사통 미달 사태는 전국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소득 기준 등 세부 자격을 충족해야 하는 특성상 지원자의 풀이 정해져 있는데 모집 규모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기존의 사통이 고질적인 미달 사태를 겪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는 것 자체가 ‘수요 없는 공급’일 뿐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매년, 그것도 대다수의 학교가 선발 비율을 채우지 못했다는 점은 학교의 노력 부족을 탓할 게 아니라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 크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스쿨의 지역인재전형은 당초 20% 선발을 의무화했으나 이를 충원하지 못하는 곳이 대거 발생해 2년 만에 의무 선발 비율을 15%로 낮춘 바 있다. ‘뽑고 싶어도 뽑을 인재가 없다’는 학교 측의 고충을 받아들인 것이다. 자사고와 특목고 역시 ‘안 뽑는 게 아니라 못 뽑는’ 상황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무 선발 비율은 10년 넘게 20%의 비율이 유지되고 있어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약자 배려에 반대되는 정책 행보를 한 셈이다.
<‘실패한 정책’ 늘어나는 중도 이탈.. “누굴 위한 정책인가”>
자사고와 특목고에 사통 20% 의무 선발이 적용된 지 10년이 넘은 현재 전문가들은 결국 실패한 정책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사통 의무 선발로 자사고와 사립 외고는 정원을 충원하지 못해 극심한 재정 악화를 겪게 됐고 교육 투자의 감소로 인한 피해는 재학생에게 돌아가고 있는데, 막상 사회 취약계층은 자사고와 특목고로의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학생이 가진 역량이 아니라 소득 기준이나 거주지 등 조건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는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목소리도 크다. 수월성 교육을 지향하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특성상 학교 환경에 부적응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통 학생들의 공교육 이탈과 검정고시행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자사고 관계자는 “학교 교육 과정에 잘 따라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을 억지로 뽑아서 입학시키는 게 과연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지 의문”이라면서 “사회 취약계층 학생들이 수월성 교육을 바라지도 않고, 모든 학생이 수월성 교육에 적합한 것도 아닌데 무엇을 위해서 이들의 무조건적인 선발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결국 정치 이념에 따라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명분만 남았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사회적 책임을 학교로 무리하게 떠넘기면서 교육 당국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위안을 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서울 광역자사 관계자는 “사통 지원자와 입학생을 위해 별도 설명회나 상담 채널을 열어 두고 재단에서 온갖 장학금을 지급해도 지원자가 정원만큼 모이지 않는다. 안 뽑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 못 뽑는 것”이라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정책을 억지로 이행하라고 해 놓고 이걸 사회적 책무의 지표로 바라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정작 사회 취약계층 학생들은 오고 싶어 하지 않는데 학교에 선발을 강요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보여 주기 식 사회 배려 정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