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진학, 사교육 광풍부터 해결해야’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현재 전국 8개가 있는 영재학교가 총선을 앞둔 정치적 실익에 따라 13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광주의 ‘지스트 부설 AI영재학교’, 충북의 ‘KAIST 부설 AI BIO 영재학교’ 2개교가 2027년 개교를 목표로 설립 단계를 밟고 있고, 여기에 충남 ‘KAIST 부설 칩앤모빌리티 영재학교’, 울산 ‘UNIST 부설 영재학교, 대구경북 ‘DGIST 부설 영재학교’까지 3개교의 설립에도 올해 과기부의 예산이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한국영재와 같은 과기부 산하의 영재학교로 검토되고 있다.
‘우후죽순’ 영재학교 움직임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이미 양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영재교육 기관을 더 늘리겠다는 건 교육적인 의도라기보단 지역별 총선용 선심정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영재학교 8개가 매년 800명가량의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고, 전국 지역별로 자리잡은 20개 과고에서도 이공계우수인재 1600명 이상을 매년 모집하고 있다. ‘영재’의 의미가 퇴색될 정도로 이미 많은 수의 학교들이 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신설을 요구하는 지역에도 모두 영재학교나 과고가 존재한다. 광주에는 이미 또다른 영재학교인 광주과고가 있고, 충북에는 충북과고, 충남에는 충남과고가 있다. 울산에도 역시 수학 과학 인재 양성을 담당하는 울산과고가 있으며, 대구에는 영재학교인 대구과고와 과고인 대구일과고, 경북에는 경북과고가 있다. 물론 영재학교와 과고의 설립근거가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고 있어 세부 운영 방식은 차이가 날 수 있으나, 두 학교의 설립목표가 과학인재양성으로 모아져 있는 만큼 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유의미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기존의 영재학교와 과고부터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재정비하는 게 먼저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영재학교의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당초 설립취지와는 어긋난 의대진학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강득구(더불어민주)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재학교 졸업생 중 의약계열로 진학한 학생은 2021학년 7.5%, 2022학년 8.8%, 2023학년 10.3%로 증가하는 추세다. 영재학교에서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재수를 통한다는 점에서 의약계열로 빠져나간 졸업생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영재학교를 만들면 이공계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일차원적인 생각”이라면서 “의대진학이나 사교육 광풍 등의 현안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영재교육의 양만 늘린다면 오히려 부작용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4대 과기원 부설 영재학교 신설되나.. UNIST DGIST도 설립 박차>
정부의 이공계 인재 양성 계획에 따라 각 지역에서 영재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먼저 신호탄을 울린 건 광주와 충북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역공약 국정과제였던 AI영재고 설립과 관련해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정부가 결국 두 지역의 손을 모두 들어줬다.
광주는 지스트 부설 AI영재학교 신설을 준비 중이다. 광주는 지스트, 인공지능사관학교 등에서 AI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지만 초중등 과정이 없어 이른바 인재 양성 사다리가 단절된 상황이라고 주장해왔다. 광주시 관계자는 “상당수 지역에서 과고, 영재고가 별도로 운영 중인데 광주에서는 과고가 영재학교 기능도 함께 하고 있다”며 “AI 분야에서는 특히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영재고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광주의 AI영재학교는 이달 9일 영재학교 설립을 규정한 광주과학기술원법 일주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025년에 착공, 2027년 개교를 목표로 잡았다. 학교부지는 지스트와 맞붙어 있는 첨단3지구가 검토되고 있다. 교육과정은 총3년 원칙으로 무학년, 졸업학점제로 운영되며 AI융합교과가 편성된다. 매년 50명의 학생을 전국단위로 모집할 계획이다.
충북은 KAIST 부설로 AI BIO영재학교를 설립하고 있다. 충북의 경우 AI활용 산업인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등을 중점 육성하고 있으나 AI 인력이 부족하다고 줄곧 호소해왔다. AI 영재교육의 중간단계(고교) 단절로 인해 ‘국가 경쟁력’을 선도하는 인재 육성에 한계에 달했다는 주장이다. 충북 AI BIO영재학교는 올해 과기부 예산안에 설계비 등 31억2500만원이 반영되면서 2027년 개교를 목표로 세웠다. 충북은 과기부 KAIST 충북교육청 청주시 등과 협력하며 2024년엔 교육과정 개발, 2025~2026년 공사착공, 교직원 학생 선발 등 운영 방안 마련 등을 차례차례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두 지역의 영재학교 유치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자 충남 울산 대구경북에서도 영재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AIST와 지스트가 부설 영재학교를 신설하는 것과 동등하게 UNIST와 DGIST에도 부설 영재학교를 신설해달라는 요구다. 지역인재 유출과 대학 경쟁력 저하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충남에서는 KAIST 부설로 칩앤모빌리티(Chip&Mobility) 영재학교를 추진하고 나섰다. 과기부는 올해 충남 대구경북 울산 영재학교 설립 타당성 검토 용역사업에 각 5억원을 배정했다.
5개 영재학교가 모두 개교하게 된다면 영재학교는 전국 13개교로 늘어난다. 현재 영재학교의 선발인원이 1개교당 100명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배출되는 영재학교 졸업생은 현재 800명 수준에서 1300명 정도로 증가하는 셈이다. 여기에 영재학교와 성격이 비슷한 전국 20개 과고가 한 해 배출하는 졸업생이 1600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공계우수인재를 길러내는 고교에서만 3000명의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KAIST 포스텍 지스트 DGIST UNIST 한국에너지공대까지 6개 이공계특성화대의 모집인원(2025학년 기준) 2190명 내외보다 훨씬 웃도는 규모다.
<영재교육의 정치화?.. ‘총선용 보여주기 식’ 정책 비판>
다만 교육계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영재학교 8개교만으로도 많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더군다나 국내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든 영재교육을 확대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영재교육진흥법에 의해 근거해 설립된 영재학교는 현재 전국 8개 체제다. 부산(한국영재) 서울(서울과고) 경기(경기과고) 대구(대구과고) 대전(대전과고) 광주(광주과고) 세종(세종영재) 인천(인천영재) 등 광역단위로 하나씩 자리한다. 영재학교의 광역단위 설립이 자리잡게 된 것은 2003년 한국영재가 국내최초 과학영재학교로 출범한 뒤 지역별 균형을 이유로 지역과고들이 ‘나눠 먹기 식 전환’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8개 영재학교 학생 수는 2300여 명이다. 상위 극소수 우수 인재를 의미하는 ‘영재’의 의미가 퇴색될 정도로 많은 수의 학교들이 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현재 영재학교가 전국 20개로 포진된 과고와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일각에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영재교육법에 의거, 특정 분야에서의 특수한 능력의 심화를 중시한다. 반면 과고는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재능을 중시한다. 영재학교는 자율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 교육과정 운영이 자유로워 무학년제 졸업학점제, 대학 학점선이수제(AP) 등을 시행하면서 수학/과학 특정 분야의 연구와 실험 중심의 교육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과고는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전문교과와 기본교과의 이수단위가 정해져 있으며 수학/과학 속진 심화교육을 실시하는 차이다. 설립근거가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고 있어 세부 운영 방식은 차이가 날 수 있으나 두 학교 설립목표가 과학인재양성으로 모아져 있고, 전반적인 수학/과학 수업의 내용이나 수준, 교재는 차이가 없다. 굳이 영재학교와 과고가 지역당 한 개씩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결국 영재학교 설립에 과한 열기를 띠는 것은 지역 내 명문고를 유치하겠다는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특히 ‘국가지원’을 대폭 끌어오기 위한 정치적 의도도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현재 각 지역이 추진하고 있는 영재고는 모두 국립 영재학교로 현재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이하 한국영재)와 운영방식이 동일하다. 한국영재는 해당 시도교육청 소속인 여타 7개 과학영재학교와는 달리 유일한 과기부 소속이다. 과기부 관할의 한국영재는 연간 150억원가량의 넉넉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7개 영재학교가 20억원에서 50억원 사이의 예산을 지원받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의대진학, 사교육 광풍’ 영재학교 현안 가득.. 부작용 확대 우려>
무엇보다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 영재학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건 현재 영재학교와 과고가 의대진학, 사교육 조장 등의 부작용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우수인재 양성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무리하게 몸집만 늘려선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영재학교의 최대 현안은 의대진학 문제다.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 영재학교별 의약계열 진학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2021학년부터 2023학년까지 영재학교에서 의약계열로 진학한 학생 수는 218명이나 된다. 전국 영재학교 8개교 가운데 한국영재를 제외한 7개교에서 모두 의약계열 진학자가 나왔다. 학교알리미와 학교 홈페이지에 공시된 8개교의 3년간 졸업생 수 2466명을 기준으로, 10.5%에 이르는 인원이 이공계열이 아닌 의약계열을 택한 것이다. 심지어는 의약계열로 진학하는 학생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2021학년 62명에서 2022학년 73명, 2023학년 83명으로 증가했다. 졸업생 수 대비 비율로 따져보면 7.5%→8.8%→10.3%의 상승세다.
특히 대구지역의 영재학교인 대구과고는 2023학년 졸업생 279명의 11.5%에 해당하는 32명이 이공계열이 아닌 의약계열에 진학했다. 2021학년 7명(7.5%), 2022학년 10명(10.8%), 2023학년 15명(16.1%)으로의 증가세다. 의약계열에 지원한 인원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2023년 2월 졸업생 93명의 절반에 이르는 43명(46.2%)이 의약계열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영재학교 중 최대 비중이다. 반면 2023학년 DGIST에 진학(등록)한 사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구경북에 영재학교를 신설해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주장이 무력화되는 대목이다.
교육 수요자들마저 영재학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보이고 있다. ‘보여주기 식 운영’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한 학부모는 “영재학교를 또 만드는 것보단 이미 있는 영재학교부터 제대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AI, 바이오융합 역량이 필요하다면 관련 과목을 심화 수업으로 반영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육계 전문가는 “무작정 인재양성기관 숫자만 늘린다고 우수 인재가 배출되는 것이 아닌데 ‘과고만 있고 영재학교가 없기 때문에’ ‘영재학교만 있고 과고가 없기 때문에’ 영재학교를 설립한다는 행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과학영재 교육부분에 있어서 과기부와 교육부의 지원대책이 이원화돼 있다는 점도 수요자들에게 혼란을 불어 일으킨다. 영재학교의 양적 확대를 밀어붙이기 전에 영재학교와 과고의 대대적인 개편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