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시점도 제각각.. 사교육 감소 효과 ‘글쎄’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올해도 전국 8개 영재학교의 기출문제 공개를 두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가 2020년 발표한 영재학교/과고 입학전형 개선방안에 따라 영재학교가 모두 3년째 의무적으로 기출문제를 공개하긴 했지만, 출제근거 평가기준 등의 해설 없이 단순 ‘문제지’만 공개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중학생 수준에서 단순 문제만 보고 시험에 대비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보니 결국 상당수가 사교육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학부모는 “문제에 대한 접근이 맞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가 없어 문제 분석을 제공해준다는 사교육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교육 의존도 경감’이라는 기출문제 공개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대학과 비교하면 영재학교의 불친절한 기출 공개방식은 더욱 부각된다. 대학의 경우 선행학습영향평가 보고서를 통해 대학별 고사의 기출문제와 해설, 가이드 라인, 출제의도 채점기준 모범답안 등 상세한 정보를 담아 수험생의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울과고의 영재성/사고력검사와 같이 선다형고사를 실시한 경찰대의 경우 출제한 115문항에 대해 문항별 적용 교육과정 성취기준 자료출처를 모두 공개했고, 선택지 5개에 대해서도 각각의 해설을 덧붙였다. 다양한 답변이 가능한 열린 문제를 제시한 한국에너지공대(켄텍) 경우에도 문항별 출제의도 출제의도 채점기준과 함께 문제별 예시답안까지 공개했다. 정답보단 창의력 있는 풀이과정을 강조하면서도 수험생에게 최소한의 문제풀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것이다.

영재학교의 기출은 공개시점 또한 개선의 여지가 많다. 공개일정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 학교별 발표일정이 들쭉날쭉한 데다 충분한 준비기간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먼저 기출문제를 공개한 곳은 세종영재(2월19일)로 마지막으로 공개한 서울과고(4월9일)와 한 달 반가량 차이가 난다. 수시 원접수를 6개월가량 앞둔 3월 말 모든 대학이 일괄적으로 선행학습영향평가보고서를 공개하는 것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영재학교의 기출문제 공개 시점은 애초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서부터 본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내년 입학요강 발표 전까지’ 고교 자율로 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영재학교와 과고의 기출문제는 다음해 모집요강 발표 전까지 공개하면 된다. 이외의 공개일정이나 공개방식 등은 특별히 정해진 건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행정편의주의적으로 기출문제를 공개하면서 실효성을 잃어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학교가 기출문제 공개를 통해 중학생이 스스로 시험에 대비할 수 있게끔 돕겠다기보단, 단순히 문제를 공개하라니 공개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교육전문가는 “한 번뿐인 고입 시험을 앞두고 문제 풀이 방법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은 건 수요자들 입장에선 당연하다. 정보가 부족하면 불안감이 증폭되고, 결국 정보가 많은 사교육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재학교의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기출문제 공개 방식이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도 우려했다.

올해도 전국 8개 영재학교의 기출문제 공개를 두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올해도 전국 8개 영재학교의 기출문제 공개를 두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불친절한’ 영재학교 기출문제 공개.. 오히려 사교육 활성화 우려>
영재학교는 교육부가 2020년 11월 발표한 ‘영재학교/과고 입학전형 개선방안’에 따라 2단계 기출문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3단계 전형으로 운영되는 영재학교 입시에서 사교육 유발이 많다고 지적돼 온 지필평가 기출문제를 공개하도록 정한 것이다. 사교육이나 선행학습 유발 정도를 점검해 입학전형을 개선하고, 입학 관련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확인,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재학교는 그간 입학전형에서 선행학습과정 문제가 출제되는 등 ‘고입 최대 사교육 유발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상위 교육과정 문제 출제, 선다형이나 단답형 위주의 지식평가, 과다한 문항 수 등으로 인해 사전 시험 준비가 필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복잡한 전형구조에도 불구하고 학교당국이 전형의 세부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증폭돼 왔다. 강득구(더불어민주)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함께 진행한 ‘고교 유형별 사교육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 150만원 이상의 고액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은 영재학교가 43.8%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출문제 공개로 기존 ‘깜깜이’ 입시에선 벗어났지만 실효성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한 교육관계자는 “영재학교 출범 20년 차를 맞이해 그간 비공개해 온 기출문제를 의무 공개하도록 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선행학습 출제 점검을 넘어 수험생의 사교육비 경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보고서를 보면 문제만 있어서 해당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다시 사교육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해진 답이 없고 풀이과정을 중시하는 ‘열린 문제’ 방식으로 출제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개의 예시 답안이나, 출제의도, 최소 문제풀이의 가이드라인 정도는 제시하는 노력까지 이어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실제 입시 커뮤니티에서는 영재학교 답안지를 찾는다는 학부모의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가 영재학교에 관심을 보여 기출문제를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해 풀어보려 하니 답안지가 없다”면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입시를 준비하기 참 험난하다”고 호소했다. 다른 학부모는 “스스로 풀어보면서 준비를 해보고 있는데 답을 구할 길이 없어 답답하다”면서 “결국 사교육에서 올려놓은 유료 문제풀이 인강을 결제했다”고 밝혔다. 결국 사교육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대비를 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대학 선행보고서와 비교.. 출제의도 예시답안 포함 ‘기출문제집’>
영재학교 기출문제 공개방식이 나아가야 할 목표점은 대학의 선행학습영향평가보고서다. 올해로 대학에 10년째 공개하고 있는 선행보고서는 수험생에게 ‘기출문제집’으로 유용하게 활용된다. 기출문제와 출제의도 예시답안 등을 안내하고 있어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특히 출제주체인 대학이 직접 내놓는 자료라는 점에서 출제자의 의도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대학별 출제경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대학의 기출을 복원해 각기 다른 분석을 내놓는 사교육 교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뢰도를 지닌다. 

 

연세대 선행학습영향평가 보고서 일부 
연세대 선행학습영향평가 보고서 일부 

일례로 올해 공개된 연세대 선행보고서에 포함된 2024 수학 논술 문항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문항별로 출제범위와 핵심개념/용어, 출제의도, 적용 교육과정, 성취기준, 자료출처, 해설이 포함됐다. 교과전형의 제시문 기반 면접고사 기출문제 역시 제시문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문제에 대한 평가 기준을 근거로 해설을 포함했다.

경찰대 선행학습영향평가보고서 일부 
경찰대 선행학습영향평가보고서 일부 

선다형고사를 출제한 경찰대의 선행보고서에는 국어 45문제, 수학 45문제, 영어 25문제 등 총 115문제에 대해 교육과정 근거, 출제 교과서나 도서, 정답 해설까지 상세히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수험생이 보고서만으로 충분히 전형을 파악할 수 있도록 257페이지의 분량에 걸쳐 ‘입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격이다.

한국에너지공대 선행학습영향평가 보고서 일부 
한국에너지공대 선행학습영향평가 보고서 일부 

한국에너지공대(켄텍)은 독특한 전형 방식인 창의성면접에 대해 면접절차와 문항별 출제의도 예시답안을 모두 선행보고서에 포함했다. ‘창의성 면접’은 문제풀이 식 구술고사가 아닌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바탕으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춰 주어진 과제에 대해 자신만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열린’ 면접이라는 점에서 영재학교의 문제 출제 방식과 맥이 같다. 일반 수험생들에게 다소 생소한 신유형 면접인 만큼 수험생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 있어 개교 이래로 3년 연속 기출문제를 공개하고 있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예시답변을 공개하면서 수험생에게 최소한의 문제풀이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대학이 선행보고서를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첫 보고서는 분량도 일정하지 않아 형식적 대응에 그쳤으나 지난해부터 보고서 공개 수준은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 영향평가가 시행된 이후 논술의 수준과 포맷도 공교육 정상화의 취지에 맞게 변화했다. 보고서 발표 기한도 정해져 있어 매년 3월31일까지 대학 홈페이지에 게재토록 시행령으로 강제하고 있다.

반면 시행 3년 차인 영재학교의 기출문제는 공개방식은 물론이고, 공개일자도 정해져 있지 않아 들쭉날쭉한 상황이다. 대학의 선행보고서처럼 공개방식이나 일정 등을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올해 각 영재학교의 2단계 기출문제 공개일정은 대구과고 2월28일, 경기과고 3월1일, 대전과고 3월17일, 인천영재 3월29일, 서울과고 4월10일, 한국영재 4월12일 등으로 제각각인 데다 학교별 편차도 크다. 시기적으로도 너무 늦다는 지적도 있다. 한 학부모는 “기출문제를 살펴보면서 영재학교 입시에 도전해볼 수 있을지, 어떤 영재학교를 지원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야 하는데 4월까지도 문제가 공개되지 않아 애가 탔다”고 밝혔다.

교육관계자들은 “모든 고교유형 중 영재학교가 가장 먼저 고입을 시행하는 불리함을 감안하더라도 준비기간이 전반적으로 너무 촉박하다. 예고제가 없는 고입은 1년 전, 최소 겨울방학에라도 전형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수요자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 일정 조율 등 전형요강 발표 시점을 앞당기기 어려운 경우 최소 기출문제라도 사전에 홈페이지에 공지해 수요자의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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