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아우성 ‘교육 과정 파행 불가피’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교육부가 2028대입 개편안 발표를 통해 고교 전 과목을 상대 평가하겠다고 밝혀 고교 현장이 한마디로 ‘멘붕’에 빠졌다. 절대 평가를 상정해 수년간에 걸쳐 선택 과목을 개발했는데 갑자기 정반대의 평가 방식인 상대 평가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로 선택 과목의 경우 대부분 활동 기반의 수업으로 운영되다 보니 상대 평가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 결국 등수를 매기기 위해서는 교육 목표와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을 억지로 반영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교육부는 대입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고교 선택 과목에 상대 평가제를 적용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로 인해 고교 교육 과정은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교사들은 ‘상대 평가가 안 되는 과목을 상대 평가하라 하니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이후 도입된 진로 선택 과목의 운영 상황을 살펴보면 대부분 프로젝트형 토의/토론형 등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자리잡았다. 교육부가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으로 평가하라는 지침을 내린 이후 그에 맞게 개발해 왔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특히 ‘영미 문학 읽기’ ‘고전 읽기’ 같은 과목은 교과서도 없다. 교사가 재량껏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고 토론하도록 하는 수업인데 무엇을 기준으로 상대 평가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고교 교사들은 고교 학점제의 취지를 내세워 과정 중심 평가의 내실화를 강조해 온 교육부가 갑자기 절대 평가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문제삼은 것을 두고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애초에 교육부가 현실과 괴리가 있는 제도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 교육 과정과 대입 간의 엇박자가 극대화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다른 고교 교사는 “절대 평가로 교육 과정을 운영하겠다고 하니 그에 맞춰서 열심히 준비해 온 교사들만 바보가 된 꼴”이라며 “교육계에는 ‘제일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있다. 나중에 또 바뀌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고교 내신 전 과목 ‘상대 평가’.. “절대 평가 보완 필요해”>
이달 초 발표된 2028대입 개편안을 두고 고교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고교 학점제 도입과 함께 당초 예고됐던 고2~3 학년의 내신 절대 평가제가 상대 평가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기본적으로 A~E등급의 절대 평가를 실시하면서 5등급의 상대 평가 등급을 함께 기재하는 ‘상대 평가 병기(倂記)’ 방식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예고된 고교 학점제 내신 평가 방식대로 ‘고1 9등급 상대 평가’에 ‘고2,3 전면 5등급 절대 평가’가 적용될 경우 큰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학년별로 내신을 다르게 평가한다면 고1 내신 경쟁은 지나치게 과열되고, 고2,3 성적은 부풀려져서 변별력을 잃는 문제가 이중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교육부 판단이다. 

내신 절대 평가를 하면서 상대 평가 등급을 함께 기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교육부는 ‘신뢰’를 꼽았다. 대학이 고교 학점제 내신 성적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입에 필수적인 변별력을 확보하며 대학에 다양한 성적 및 통계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평가 자율성을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결국 대입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신의 절대 평가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진로 선택 과목도 ‘상대 평가’ 논란.. “억지 시험 문제 만들어내야 할 판”>
여기에는 내신 상대 평가를 고교 전 학년, 전 과목(예체능 제외)에 일괄 적용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절대 평가를 진행하던 진로 선택 과목 역시 상대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로 선택 과목은 2015 개정 교육 과정에 따라 A B C의 3단계 성취도 평가(절대 평가) 체제로 도입됐다.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과목을 이수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취지에서 비롯한다. 처음부터 절대 평가를 상정해 개설된 과목이지만 이마저도 대입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상대 평가 과목으로 뒤엎게 됐다.

현재 진로 선택 과목에는 ‘실용 국어’ ‘실용 영어’ ‘여행 지리’ ‘사회 문제 탐구’ ‘고전과 윤리’ 등이 포함된다. 이는 대부분 프로젝트형, 토의/토론형, 탐구형, 매체/도구활용학습형 등 활동 중심의 수업으로 운영되고 있어 획일화한 기준에 따라 학생을 줄 세우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교사들의 의견이다. 활동을 통해 교사가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은 논리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적절한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일 뿐 누가 더 좋은 생각을 표현했는지, 누가 더 문제를 잘 해결했는지를 평가할 순 없다는 것이다. 서울 A 고교의 교사는 “’영미 문학 읽기’ ‘고전 읽기’ 이런 과목들은 아예 교과서 자체가 없다. 교사가 함께 읽기 좋은 작품을 가져와서 가르치는 과목인데 어떤 기준으로 상대 평가를 할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학습 내용과 평가 방식의 엇박자 속에서 결국 교사들은 교육 과정의 파행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B 고교의 교사는 “활동 중심 교과까지 상대 평가를 해버린다고 하니 참 난감하다”며 “등수를 매겨야 한다면 학기 막판에 교육 목표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을 가르쳐서 시험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인공 지능 수학’ 과목에 행렬 등의 상관없는 과목을 시험용으로 억지로 집어넣는 식”이라고 밝혔다. 지방의 C 고교 교사 역시 “상대 평가를 하라고 하니 억지로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결국 정답 맞추기 식 학습이 진행될 테니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는 진로 선택 과목의 취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2022 개정 교육 과정에 따라 신설되는 융합 선택 과목 역시 상대 평가를 적용해야 해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개정 교육 과정에 따르면 고교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수업 선택을 위해 국어 수학 영어 교과의 이수 학점은 81점 이하로 규정했다. 대신 선택권을 확대하고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융합 선택 과목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이 있다. 융합 선택 과목은 학습자의 진로와 적성을 중심으로 비판적 질문, 실생활 문제 해결, 주요 문제 탐구 등을 위한 글쓰기, 주제 융합 수업 등 실제적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과목이다. 국어의 경우 ‘주제 탐구 독서’ ‘독서 토론과 글쓰기’ 등, 사회는 ‘세계 시민과 지리’ ‘도시의 미래 탐구’ ‘금융과 경제 생활’ ‘기후 변화와 지속 가능한 세계’ 등, 과학은 ‘과학의 역사와 문화’ 등이 신설된다. 

<‘성취 평가’ 강조할 땐 언제고.. ‘자가당착’ 빠진 교육부에 교사 혼란 가중>
교사들의 혼란을 극대화한 것은 지난 수년간 고교 학점제의 취지를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선택 과목의 ‘성취도 평가’를 강조한 게 다름 아닌 교육부라는 사실이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성취도 평가에 맞는 교과목을 연구 개발, 이제야 첫발을 내디뎠는데 갑자기 “절대 평가를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고교 학점제에 대비해 과정 중심의 성취 평가’를 기준으로 선택 과목을 운영하라고 강조하던 교육부가 이제 와서 상대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니 당황스럽다”며 “자가당착에 빠진 교육부로 인해 일선 교사들의 혼란이 크다”고 호소했다. 

상대 평가와 절대 평가의 기준을 구분하며 양립을 부정한 것 역시 교육부다. 교육부와 평가원이 올해 7월 발행한 ‘고교 학점제 도입 운영/안내서’만 보더라도 고교 학점제의 과정 중심 평가는 결과 중심 평가와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명시했다. 과정 중 심평가는 성취 기준에 기반을 둔 평가로 이는 상대적 서열에 따라 ‘누가 더 잘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했는가’를 평가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성취 평가는 학생들의 서열이 두드러지는 규준 참조 평가(상대 평가)가 아니라 평가의 준거가 되는 성취 기준과 학생의 성취 수준에 비춰 성취도를 판단하는 준거 참조 평가(절대 평가)”라는 점도 강조했다. 

고교 학점제의 긍정적 평가 사례로 꼽은 고교 역시 모두 성취 평가제를 내실화한 경우에 해당한다. 프로젝트 수업에서 교과별 기록장을 통한 수행 평가를 진행하거나, 교과별로 교과 특성을 반영한 토의/토론, 포트폴리오, 서술/논술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며 과정 중심 평가를 개발 및 적용해 온 사례가 대다수다. 한 고교 교사는 “올해 6월까지도 고교 학점제에 맞춰 모든 선택 과목이 절대 평가로 운영될 것이니 그에 맞게 준비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면서 “교육부가 만든 가이드북과 안내서 등을 참고해 열심히 준비해 왔는데 한순간에 평가 방식을 바꾼다고 한다. 허탈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내신 상대 평가’ 사실상 고교 학점제 포기 신호.. 교육 과정 파행 불가피>
상대 평가는 절대 평가의 한계를 보완하는 ‘안전 장치’ 기능을 할 뿐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지만, 현장에서는 대입에 상대 평가 성적이 반영되는 이상 결국 상대 평가가 갖는 영향력이 절대 평가보다 더 클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고교 학습은 대입을 겨냥해서 이뤄지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좋은교사운동은 성명서를 통해 “고교 내신 5등급제는 무늬만 5등급제이지 상대 평가 결과를 병기하는 방식이어서 경쟁 완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고교 학점제의 파행적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고교 학점제의 중요한 가치는 진로에 따른 학생들의 과목 선택과 책임인데, 지금처럼 상대 평가가 지속될 경우 진로에 따른 선택보다는 내신 점수를 따기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 진로 선택 과목은 절대 평가로 진행되는 만큼 본 취지대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과목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장 반응이다. 성적에 대한 부담 없이 학종에서 선택 과목을 통해 자기 주도성과 적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과목 선택권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상위 대학을 중심으로 진로 선택 과목의 반영이 확대되면서 진로 선택 과목의 긍정적 활용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상대 평가로 전환되면 결국 성적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리게 될 우려가 크다. 지방에 위치한 C 고교 교사는 “상대 평가의 영향력이 대입에서 적다고 하더라도 등급으로 성적이 남는다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라며 “안 그래도 학생 수가 적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 힘든데 학생들이 상대 평가에 유리한 소수 과목에 몰리게 되면 고교 학점제에 걸맞은 다양한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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