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정시확대 충돌’.. ‘사업 자체 전면개편 불가피’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올해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이하 기여대학사업)에서는 고교학점제 운영을 지원하는 대학에 사업비가 지원된다. 2025년 전면 적용이 예정된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서다. 올해 새 정부가 출범되면서 고교학점제 연기 혹은 폐기까지 언급되는 상황에서 정권 말 혼란을 키우는 ‘대못 박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새 정부 출범 이후 고교교육기여대학사업 자체도 전면 대개편의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정시 확대와의 연계도 그대로 이어간다. 2023~2024학년 전형비율 조정계획을 평가해 수도권 대학은 수능위주전형이 30% 이상인 경우만 지원이 가능하다. 고교학점제와 정시 확대가 상충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모순된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는 자가당착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고교학점제는 정시 확대와 엇박자를 이뤄 교육 현장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정책이다. 지난해부터 정시가 대폭 확대된 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정시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어 정시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시에 실리는 비중이 커질수록 수능을 치르는 과목의 중요도가 높아져,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다양한 과목 선택’의 취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한 사업 내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고교학점제’와 ‘정시 확대’가 정면 충돌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교육현장에 혼란스러운 신호를 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학은 기여대학사업의 평가지표가 수시확대에서 정시 확대로 뒤바뀌는 데 따라 전형비중을 조정해온 데 이어, 올해는 모순된 사인을 어떻게 해석해 적용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와 정시 확대 모두 새 정부에서 어떻게 가닥 지어질지 내다보기 어렵다 보니, 대학 입장에서는 기여대학사업 지표에 맞춰 전형을 계획했다가 다시금 대폭 손질해야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업계 한 전문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고교교육기여대학사업은 전면 개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고교교육기여사업의 본질적 의미는 사라졌다. 사교육 영향을 키우고 오히려 공교육을 압박하는 정시 확대를 지원 대상으로 하면서 고교교육 기여가 아니라 사교육 기여로 바뀐 셈이다. 게다가 공약으로 정시 확대 상황에서 고교학점제 운영을 지원하는 평가지표를 예고했다. 입시운영에서 정반대 역할을 하는 정시 확대와 고교학점제를 병행시킨다는 얘기다. 결국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은 전면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고교학점제 연계.. ‘대못 박기’ 이어가나>
고교학점제와 연관된 평가지표를 살펴보면 유형Ⅰ 고교교육 연계성 파트에서 20점이 배정됐다. ▲고교/시도교육청 협력 프로그램 운영 계획에 10점 ▲고교교육 반영 전형연구/평가체계 개선 계획에 10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교/시도교육청/대학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상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경우 5점 △선택교과 개설 지원 등 고교학점제 운영을 지원하는 대학에 5점이 주어진다. △평가체계에 고교 선택과목/성취도평가 반영 계획을 세운 경우 5점 △대입전형 연구 추진계획/연구결과 활용 계획에도 5점이 배정됐다.
하지만 새 정부에서 고교학점제 도입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쳐지는 상황에서 무리한 ‘대못 박기’라는 우려가 나온다. 고교학점제는 정시 확대와는 상충하는 데다, 교원 확보 등 제반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도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육계에서 연이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정시에 실리는 비중이 커질수록 수능을 치르는 과목의 중요도가 높아져,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다양한 과목 선택’의 취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입제도와의 엇박자도 문제다. 교육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2028수능을 개선한다는 계획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가닥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혼란만 야기하는 분위기다. 한 교육전문가는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고교 교육과정은 대입정책의 종속변수로 받아들여진다. 먼저 대입정책을 잘 다듬은 후 대입정책과 연계성이 짙은 고교 교육과정이나 고교 정책을 수립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과거 대입과 무관한 이상적인 고교 정책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무력화됐는지 경험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25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의 입장을 고수했던 교육부는 사실 ‘조국 사태’를 통과하면서 전면 연기나 보완의 수순으로 넘어갔어야 했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정시 확대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와 정반대 입장에 있는 정시 확대가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지면서 대입체제가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정시 확대로 대입을 준비하는 수요자들에게 정반대 방향에 있는 고교학점제 강행을 던지는 상황은 너무 무책임하다. 본말이 전도된 정책진행이 어이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고교학점제는 학계와 교원단체들도 반발한 사안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2022개정교육과정의 개정방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대한수학회는 “지난해 9월 진행된 ‘역량함양 교과 교육과정 재구조화 연구 공청회’에 따르면 고교수학의 중심과목인 ‘기하’ ‘미적분학II’ 과목을 ‘수학과 인공지능’ ‘수학과 경제’ 등의 주변과목과 함께 진로선택 과목으로 분류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추진되고 있으며, 위계가 뚜렷한 수학교과의 특성을 무시한 채 고교학점제라는 틀에 끼워 수학과목 간 연계성을 없애라는 등 학습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학점제 도입은 어려운 과목을 기피하고 쉬운 과목으로 쏠림 현상을 더욱 조장하고 악화시킬 우려가 크므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교총은 물론 친정부 성향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까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도입을 강행하고 있다는 우려와 비판을 내놨다. 전교조는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해선 기반 조성이 선행돼야 하며, 수시 위주의 대입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대평가 폐지, 성취평가제 시행을 비롯해 여러 과목 지도가 가능하도록 교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준비 안 된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위법/불공정한 자사고/외고 일괄 폐지는 철회돼야 한다”며 “대입제도가 정치에 휘둘려 조변석개하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시 확대 기조 그대로.. 고교학점제와도 상충>
정시 확대 유도책도 그대로 이어간다. 신청요건에서부터 2023~2024학년 전형비율 조정계획을 평가할 방침이다. 수도권 대학은 수능위주전형을 30% 이상으로 조정해야 하며, 그 중에서도 서울 소재 16개대(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서울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숭실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는 40% 이상으로 조정해야 한다. 지방 대학의 경우 수능위주전형 또는 학생부교과전형을 30% 이상 운영해야 한다.
정시 확대가 평가지표에 연계된 것은 2020년 평가에서부터다. 이전까지는 학종을 중심으로 수시 확대를 장려해 온 대표적인 사업이었던 데서 2019년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 이후 돌연 정시 확대를 강제하는 정책으로 180도 돌변했다. 교육계에서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좋은교사운동본부는 “정시가 어떤 부분에서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지 밝히지 못하면 기여대학사업 예산을 활용해선 안 된다”며 “고교교육 정상화는 교육과정 목적에 맞게 다양한 수업이 진행되고 수업을 통해 일어난 배움과 성장이 평가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시 확대와 국고 지원을 연계한 점을 두고 ‘고교교육 기여’가 아닌, ‘사교육 기여’ 사업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수능위주의 정시 전형 자체가 사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 더해, 정시 확대 이후 N수생/검정고시 증가와 사교육/교육특구 강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가 발표한 ‘2022 서울대 신입생 최종 선발 결과’에서도 전체 등록자 중 재수를 포함한 N수생 비중은 21.9%로 전년 18.4%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재수는 고교 졸업 이후 재도전하는 것인 만큼 고교 교육력보다는 사교육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수능최저 완화 등도 반영>
수능최저 완화 노력도 평가에 반영된다. 수능최저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전형별 기준 충족률 등을 고려해 단계적 폐지나 기준 완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평가영역은 ▲대입 공정성/책무성(35점) ▲수험생 부담 완화(15점) ▲학생선발 기능강화/전문성 제고(20명) ▲고교교육 연계성(20점)으로 크게 나뉜다.
대입 공정성/책무성 영역에서는 △평가자 1인당 평가건수 등 평가운영 내실화 계획을 15점 △사회통합전형의 합리적 운영을 20점으로 반영한다. △대입 전형/평가의 공정성 확보 기반 구축 여부를 15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수험생 부담 완화 영역에서는 △대입전형 단순화/합리성 제고를 15점 △전형 관련 정보 제공 강화를 5점 반영하며 △대학별고사/특기자전형 운영/개선계획을 10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수능최저 완화 등도 수험생 부담 완화 영역에서 반영한다.
학생선발 기능강화/전문성 제고 영역에서는 △입학사정관 확보/신분안정화 계획을 10점 △입학관계자 전문성 강화 노력을 10점으로 반영한다. 모집규모 대비 채용사정관 확보 등을 반영한다.
고교교육 연계성 영역에서는 △고교/시도교육청 협력 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10점, 고교교육 반영 전형연구/평가체계 개선 계획을 10점 반영하며 △대학별고사 고교 교육과정 범위 내 출제 여부를 15점 범위에서 감점 반영한다.
<90개교 575억원 지원.. 사업구조 3년 단위로 개편>
올해 90교 내외를 선정할 계획으로, 2022년 예산 기준 575억원을 지원한다. 지난해 75개교를 선정해 553억원을 지원한 것과 비교해 선정대학이 15개교 늘어났다. 모든 대학을 지원대상으로 하는 유형Ⅰ은 70개교 내외에 525억원을, 2018년부터 최근 4년간 사업비 지원 이력이 없는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유형Ⅱ는 20개교 내외에 5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최근 4년간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대학(유형Ⅱ)의 지원규모를 기존 8개교에서 올해 20개교로 확대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대학은 입학사정관 인건비 대응투자 계획과 2023~2024학년 대입전형 운영비율 조정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은 수능위주전형을 30% 이상(서울 소재 16개대는 40% 이상), 지방 대학은 수능위주전형 또는 학생부교과전형을 30% 이상 운영해야 한다.
국고지원금에 대한 인건비 대응투자 계획도 신청 요건에 반영된다. 유형Ⅰ 대학은 국고지원금의 15%를 신청요건으로 하되, 초과 확보 시 가점을 부여한다. 유형Ⅱ 대학은 국고지원금의 10% 이상을 요건으로 하며 추가확보에 따른 가점은 없다.
올해부터는 사업구조를 기존 1+1의 2년 단위에서 2+1의 3년 단위로 개편한다. 기존 2년 단위 사업이 대학에 과도한 평가 부담을 주고, 고교 연계활동 등 중장기적인 계획수립이 필요한 프로그램의 안정적 운영에 한계가 있다는 대학의 의견을 반영한 변화다. 올해 선정된 대학은 중간 탈락 없이 2년 지원하며 단계평가 결과에 따라 추가 1년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사업시행 1년 후 연차평가를 시행해 사업 신청요건을 준수하지 않거나 사업수행 실적이 심각하게 저조한 경우에는 탈락 가능하다.
평가는 지원유형에 따라 분과를 구분해 실시하며, 유형별 평가 주안점에 따라 평가지표를 다르게 설정했다. 유형Ⅰ은 기본적인 대입전형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내실화/고도화 계획을 평가한다. 유형Ⅱ는 대입전형의 공정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기초적인 기반 구축 계획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은 25일까지 사전접수해야 하며, 사전접수 대학은 내달 28일까지 사업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2022년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선정된 경우, 대학기관평가인증 불인증 대학, 2022년~2024년 지원사업 참여제한 대학은 신청이 불가하다.
<이리저리 뒤바뀌는 사업 방향성.. 올해도 혼란 예고>
기여대학사업은 2014년부터 추진하는 사업으로 전형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대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고교교육과정과 대입전형 간 연계성을 제고해 수험생의 대입 준비 부담을 완화하는 목적으로 시행중인 사업이다.
하지만 도입 초기 학종 중심의 수시 확대를 장려하던 데서,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2020년부터는 돌연 정시 확대와 연계하면서 사업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어 논란을 일으켰다. 수요자를 비롯한 교육현장은 혼란을 겪었고, 서울대를 비롯해 학종을 주도하던 대학들은 정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