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혼란 이후 다시 입시 뒤집는 정치’.. ‘어떤 교육정책도 믿기 어렵다는 학습효과’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월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확대를 포함한 대입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서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교육부장관이 정시확대보다는 학종 문제점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발언한 지 하루 만에 이를 뒤집고 정시확대를 공식화한 셈이다. 청와대와 교육부 간 사전 교감이 없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교육당국과의 협의 없이 돌발적인 발언으로 교육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정책 신뢰성까지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빠르면 2022입시에서부터 정시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마련된 지 1년밖에 안 된 2022대입개편안을 또다시 뒤흔드는 셈이 됐다. 지난해 공론화과정을 거치며 격렬한 여론전에 쌓인 피로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3년내내 대입개편으로 시끄러웠던 데서 또다시 입시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시확대’를 언급했다는 점도 논란이다. 교육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시확대를 요구하는 여론에 편승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있을 총선을 의식한 발언 아니냐는 의구심도 흘러나온다. 대학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입시정책의 안정성과 투명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공론화결과를 1년도 지나 뒤집어엎는 데다 입시정책의 수장인 교육부장관의 방침까지 뒤집는 상황을 대통령이 직접 연출했다. 결국 향후 문재인정부의 어떤 입시정책도 뒤집힐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만들었다. 어렵게 내린 공론화의 결론까지 뒤집는데 앞으로 당국의 정책발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정시를 30%까지 확대하기로 한 방침조차 교육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상황에, 정시가 더 확대될 경우 공교육정상화와는 더욱 멀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교육전문가는 “정시확대는 단순히 선발비중의 문제가 아니다. 현 정부가 도입을 추진중인 고교학점제 도입을 고려해서라도 수능의 영향력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시확대를 언급하면서 교육계가 다시 수시/정시 비율 논쟁으로 휩싸이게 됐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적 발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대통령이 나서서 정시확대를 언급하면서 교육계가 다시 수시/정시 비율 논쟁으로 휩싸이게 됐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적 발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대통령 발언이 좌지우지하는 교육.. 수요자 혼란은 안중에도 없나>
대통령 발언이 교육계에 미치는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년의 공론화과정에서도 쉽게 결론 낼 수 없었던 수시/정시비중 문제를 두고 경솔하게 ‘정시확대’를 공식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의 발언 하나가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했다는 비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당국에 대한 신뢰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시정시 비율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던 교육부장관의 발언을 하루 만에 뒤집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육부가 내놓는 어떤 입장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정책을 믿고 따르기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는 그간 수시/정시 비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율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학종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소모적인 비율 논쟁을 일축시키면서 나름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려고 애쓴 모습이었다. 교육부의 말을 믿고 더 이상의 비율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수요자들은 발등을 찍힌 셈이나 다름없다. 한 교육전문가는 “적어도 교육부와의 협의라도 있었어야 하는 문제다. 대통령 발언은 앞으로 교육부 입장이 언제 뒤집힐지 모르니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한순간에 바뀌는 모습을 보고서 누가 교육부 말을 믿고 따르겠는가”라며 우려했다.

공론화결과를 뒤집었다는 점 역시 정책 신뢰성을 훼손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이 참여한다는 취지로 1년에 걸쳐 논의한 대입개편안까지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든 발언인 탓에 공론화결과마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정책의 지속성과 투명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공론화를 통해 결정한 사안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조차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정시확대 여론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여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인을 현장에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교육전문가는 “정시확대를 요구하는 여론이 힘을 얻자 이에 굴복한 것이다. 피켓 들고 시위하면 들어주게 되어 있다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시위하면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교육계를 흔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기자간담회 전날 “대입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놓으면서 교육부가 우왕좌왕하고, 현장은 엇갈린 해석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기자회견 일정을 앞두고, ‘개인이 아닌 제도의 문제’로 밀어붙이려는 전략적 발언이었다는 비판이 불거졌다.

이번 정시확대 발언 역시 정치적 목적을 위한 발언 아니냐는 의구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시확대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교육문제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문제는 국면전환용으로 던졌다가 아니면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입시정책은 수요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고, 소수의 피해라도 줄이기 위해 신뢰보호를 중시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입시가 휘둘린다면 어떤 수요자가 교육정책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라며 비판했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정권초월 기구의 필요성을 더욱 증명해 보인 셈이 됐다. 정치논리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정책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도입을 추진중인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미 정권초월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총의 한 관계자는 “국가교육위가 명실상부한 초정권적 초당적 기구가 되려면 대통령 소속이 아닌 독립기구여야 한다”며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초정권적 비행정기구로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률안처럼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위원회인 경우 중앙행정기구 성격으로, 실질적으로 국무총리 통제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년의 공론화는 시간낭비였던 셈>
지난해 1년 동안 진행한 공론화 과정을 무용지물로 만든 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2022대입개편은 공론화방식을 통해 교육부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특위 공론화위 순으로 하청을 거듭하면서 현장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론화위원회가 네 가지 의제를 두고 지지도를 조사했으나 절대다수가 지지한 안이 없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국가교육회의는 정시비율을 특정하지 않고 ‘확대권고’ 수준에서 교육부 판단으로 넘겼고, 교육부는 30%로 결정해 발표했다.

30%비율로 정한 것에 대해 교육부는 시민참여단응답자의 누적통계기준 68.5%가 30%이상을 선택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란 끝에 30%비율로 정한 것을 두고 뚜렷한 명분이나 정책적인 검토 없이 또 정시비중을 확대한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공론화방식이 교육문제를 결정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은 듣지 않고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공론화를 시행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그 결과와 관계없이 또 대입개편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기인가. 그간 공론화를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수능비중 축소와 학종 확대도 2022대입개편을 통해 뒤집힌 상황에서 입시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교육당국은 2022대입개편 전까지만 해도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과 연계해 학종확대를 장려해왔다. 예산지원까지 해가며 확대를 유도하던 전형을 돌연 축소한다는 방침은 지난 교육정책을 부정하는 셈이나 다름없다.

대통령 발언으로 대입개편이 졸속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수시/정시 비율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교육부도 돌연 입장을 바꿨다. 교육부는 입장문을 내놓고 “학종 비율 쏠림이 심각한 대학들, 특히 서울소재 주요대학에 대해서는 수능 비율 확대를 권고하는 방안을 당정청 같은 의견으로 협의해왔다”고 밝혔다. 대통령 발언에 적극 호응해 정시확대를 추진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정시 확대 방향성 자체 우려>
발언의 방향성도 문제다. 정시확대를 언급한 만큼 2022대입개편에서 결정한 30%보다 정시비율을 더 높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시확대 기조가 초래한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진보성향의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사걱세는 “정시비중을 상향했을 때 수혜를 입는 계층이 누구인지 직시해야 한다. 이미 고소득 계층일수록 정시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통계나 논문을 통해 증명됐다”고 지적했다.

고교학점제와의 엇박자도 우려된다. 교육부는 내년 마이스터고부터 고교학점제를 도입한 후 2022년 특성화고/일반고 등에 부분 도입해 2025년 전체 고교에서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고교학점제 성공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수업 선택권이 필수다. 하지만 수능 영향력이 클수록 수능과 관련 있는 과목이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수능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적성이나 진로에 맞는 과목이 아닌 대규모 수험생이 몰리는 과목을 선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걱세 역시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이 확대될 때,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확대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결국 고교학점제는 시행 전부터 난맥에 부딪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교육정상화와는 더욱 멀어지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시30%확대안이 나왔을 당시에도 교육계에서는 “문제풀이식 수업과 점수로 한 줄 세우는 정시확대가 어떤 부분에서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있는지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산하 대입제도개선연구단 역시 “2021대입이 교육과정과 일치하지 않는 수능시험으로 인해 학교현장이 황폐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2022대입까지 정시확대 기조로 바뀌게 된다면 고교수업은 교육과정과 수능준비 사이에서 갈등하는 구조로 변한다”며 “고교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돼 교육적 자율성이 훼손되는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시확대가 불러올 문제는 이미 다양한 입시결과를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교육특구 쏠림현상이 대표적이다. 서울대의 경우 정시등록자 중 교육특구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승세를 기록했다. 정시를 더 확대할 경우 교육특구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재수생을 대거 양산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최근3년간 고려대 연세대 입학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정시 입학생 중 N수생 비중이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매년 재학생보다 N수생이 더 많았다. 수도권 쏠림 현상도 심각해 지역균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히려 정시확대가 특정계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공교육의 입지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22대입개편 30%도 실질적으로는 50%육박 가능성.. 더 확대하면 정시가 수시 능가할 수도>
정시비중이 추가로 확대될 경우 수시보다 정시비율이 더 높아져, 현 입시지형과는 정반대로 바뀌는 대변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2대입개편을 통해 결정된 30%의 규모도 실질적으로는 50%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가 정원외 포함 인원을 모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시에서 뽑지 못해 정시로 이월되는 수시이월인원까지 합해지면 37%까지 상승한다. 대학이 교육부가 제시한 최소한의 기준보다 더 여유분을 둔 상태로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보다 비중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학 현장에서는 정시30% 비중도 과도하다고 보고 있는 상황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정시30%안이 아직 현장에 적용되기도 전인 시점이다. 정시30% 안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확인도 안 된 상황에서 이보다 더 정시를 확대한다는 발언은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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