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자사/특목고 논술 폐지 미리 결론.. ‘대못 박기’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민감한 교육현안마다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던 국가교육회의는 어디로 갔을까. 23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 100일을 맞아 연 기자 간담회를 통해 교육회의 과제로 넘겨온 자사고/특목고 일반고 전환문제를 비롯해 학생부종합전형 개선안, 고교학점제, 교육부 권한 이양 등의 정책방향을 사실상 확정해 밝히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자사고/일반고 폐지 논란 등의 민감한 교육이슈가 터질 때마다 김 부총리는 “국가교육회의에서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사태를 무마하고 넘어왔기 때문이다. 불리할 때마다 꺼내 들었던 국가교육회의는 차일피일 출범이 미뤄진 상태에서 교육현안에 대한 정책방향을 이미 결정해 놓은 듯한 김 부총리의 행태에 일각에서는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명무실해지는 국가교육회의를 놓고 교육계는 시끄럽다. 대선 당시 논의되던 정권초월 교육위원회는 아니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교육현안에 대한 장기적 논의를 약속했지만 그 동안의 과정을 지켜보면 그 동안 꺼내온 교육회의가 애초 ‘시간 벌기 내지는 여론무마용이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23일 김 부총리가 아예 교육회의의 존재를 무시한, 일방적 통고로 현안에 대한 가닥을 공개했다는 점이 의구심의 배경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대선 당시 교육계에서 요청했던 건 국가교육회의가 아니라 정권초월 국가교육위원회다. 정권마다 전 정권 지우기로 피로감이 극에 달한 교육수요자 입장을 위한다면 헌법/법률에 기반을 두고 정치논리와 관계 없이 일관된 교육정책을 펼칠 수 있는 교육위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교육위에 대한 열망을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회의로 물타기하더니 지금까지 교육회의의 진전과정을 보면 애초부터 교육회의를 만들 생각이 있었는지부터 의심이 들게 한다. 23일 김부총리의 발언들은 ‘결정은 교육부가 할 테니 교육회의는 찬성만 하라’는 얘기가 된다. 비전문가를 의장으로 선임하던 당시부터 나오던 ‘거수기’ 비판에 이어 그 동안 교육회의 출범으로 현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할 것처럼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비난도 가능해진다”고 비판했다.

교육현안들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라던 국가교육회의가 출범 전부터 ‘유명무실’한 모습이다. 교육회의에서 논의하겠다던 주요 교육현안 상당수의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음이 드러난 때문이다./사진=베리타스알파DB

<이미 결정된 교육현안들? 교육부 기자 간담회>
교육부는 23일 김 부총리의 취임 100일 기념 기자 간담회를 통해 향후 교육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문제부터 시작해 대입전형 개선방향부터 유치원 취학비율, 무상교육 등 교육 전반에 대한 로드맵이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은 당장 추진될 예정이다. 내년부터 선발 시기를 일원화함으로써 그간의 전기고/후기고 체제를 허물고 일반고로의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부 단독으로 개정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법령 상 규정돼있는 선발시기 차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대입전형 개선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던 대입전형 단순화 방안이 다시금 거론됐다. 논술/특기자를 축소하거나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과 학종을 일부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학종 개선안으로는 자기소개서 추천서 폐지 방안과 학생부 항목 축소 등이 물망에 올랐다.

대학구조개혁평가도 변화를 피하진 못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정원 감축 자율권을 크게 확대한다. 1주기 평가에선 상위 16%의 대학만이 정원을 자유롭게 감축할 수 있고 나머지 대학은 일정비율 이상의 정원감축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새 정부가 주체가 된 역량진단은 적게는 50%, 많게는 80%의 대학에 정원 감축 자율권을 주고 나머지 대학만 정원감축을 시행하는 변화가 예정돼있다.

기자 간담회를 통해 공개된 내용들을 보면, 정부재정지원사업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그간 다양하게 마련됐던 대학 대상 사업들은 일반재정지원사업과 특수목적지원사업으로 재편된다. 국립대 육성사업과 정부보조를 받으면서 일정부분 자율권을 포기하는 ‘공영형 사립대’ 육성 목적의 사립대 대상 ‘자율협약형 대학지원사업’이 일반재정지원사업으로 자리잡고 그밖에 LINC BK 등의 사업은 특수목적지원사업으로 분류된다. 고교학점제 정착 추진, 혁신학교 확대, 2022년까지 무상교육 실현 등의 사안도 함께 추진될 예정이다.

<‘유명무실’ 국가교육회의.. ‘거수기’ 역할 전락하나>
문제는 이 같은 결정이 정권출범 이후 교육부가 해온 공언을 뒤집는다는 데 있다. 그 동안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불을 붙였던 자사고/특목고 일반고 전환 논란, 논술/특기자전형을 축소하고 대입전형을 간소화하겠다는 대입전형 개선안 등 사회적 논란이 큰 의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부는 향후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해 결정할 것이란 입장을 보여왔다. 불리할 때마다 꺼내든 ‘전가의 보도’ 역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교육부의 발표는 사실상 주요 교육현안들의 방향이 이미 결정돼 있음을 보여준다. 자사고/특목고와 일반고의 입시시기 일원화는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위한 수단으로 여러 차례 물망에 올랐던 방법이다. 자사고/특목고와 일반고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이던 ‘선발권’을 뺏겠다는 것인 만큼 향후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선발시기 일원화에 이어 선발방법까지 추첨제 등으로 통일하게 되면 사실상 특목/자사고는 일반고와 차이가 없어진다. 교육과정의 자율권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고는 하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과 더불어 국/영/수 주요 교과 편성 비율을 일반고와 비슷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규제도 예정돼 있어 사실상 일반고와 동일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추첨선발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지역 광역단위 자사고의 경우 선발시기까지 통합되면 사실상 일반고나 마찬가지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결정은 김 부총리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김 부총리는 인사 청문회 자리에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공약과 정책에서 폐지를 제시한 것을 존중한다”며 특목/자사고 폐지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데 이어 취임식에서도 “교육사다리를 복원해 공평한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며 특권교육의 폐해와 고교체제 개혁 등을 언급, 특목/자사고 폐지에 강한 찬성입장을 보였다. 결국 교육회의의 장기적 논의를 거쳐야 할 중대 현안을 출범하기도 전에 교육부가 미리 대못 박기를 하는 셈이다.

다른 문제들도 논의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논술/특기자 축소 폐지 문제의 경우 지금처럼 일방통행 식으로 결정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현 대입구조, 폐지 근거 등을 봤을 때 존속방안에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때문이다. 현재 대입전형은 학종 교과(학생부교과전형) 논술 특기자의 4개 수시전형과 정시까지 총 5개전형으로 구성돼있다. 이 중 논술과 특기자를 없애겠다는 것이 새 정부의 공약인데 특기자의 경우 그 정도가 덜하지만, 논술은 수험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으로 인해 폐지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된다. 사교육 유발 요인이 강하단 논술 축소/폐지 주장의 근거도 공교육정상화법 발효 이후 대학들이 선행학습영향평가 보고서 발간 등의 배경으로 인해 논술고사 난도를 낮추고 모의논술/논술가이드북 등 참고자료를 충분히 제공한다는 점에서 힘을 잃은 터다.

이처럼 교육부가 발표한 사항들은 재논의가 필요한 부분들이 많다. 교육부 역시 그 역할을 국가교육회의가 맡을 것으로 얘기해왔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최초 대통령 공약사항을 그대로 이행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서며, 국가교육회의에서 주요 현안을 결정하겠다는 당초 발언을 사실상 뒤집었다. 국가교육회의 역시 교육부의 결정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거수기’ 역할로 전락할 위기다.

이처럼 국가교육회의가 ‘거수기’ 역할에 그칠 것이란 우려는 처음 거론 당시부터 나왔던 지적이다. 특히, 조희연 서울교육감 인수위에 참여했던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을 지난달 25일 의장으로 위촉하면서부터 ‘코드인사’라는 비판이 불거졌고, 정부의 결정을 고스란히 따르는 교육회의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7월말 출범 예정이었지만 10월말이 지나서도 출범이 지연되면서 위상약화의 조짐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국가교육회의.. 어디까지 왔나>
정작 정부가 주요 교육 현안들을 논의하는 장으로 활용하겠다던 국가교육회의는 여전히 실체도 없이 오리무중이다. 정확한 출범 시기조차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번 기자 간담회에서도 교육부가 자체 운영할 예정인 대입정책포럼(가칭)에 대한 얘기는 언급됐지만, 국가교육회의에 대한 발표는 없었다.

최초 국가교육회의 출범이 가시화된 시점은 3개월 전인 7월이다. 당시 교육부 관계자는 대통령 인수위원회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자문위와 교육부 창조행정담당과에서 국가교육회의 구성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제반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면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교육계에서는 빠르면 7월말 늦더라도 8월초에는 국가교육회의가 정상 출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때만 하더라도 의장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가교육회의 출범은 계속 늦어졌다. 8월에도 별다른 진행상황이 없던 국가교육회의는 대통령이 의장을 맡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9월 중순경이 돼서야 발족을 위한 준비단 활동이 시작됐다는 얘기만 전해졌다. 9월에도 ‘국가교육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뿐 진행상황은 더디기만 했다.

대통령이 9월말 신 전 이대 총장을 의장으로 위촉하면서 본격적인 설립절차 가속화가 기대됐지만, 현재 교육회의는 구성원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사회수석, 교육감협의회장 대교협회장 등 당연직 위원 9명을 더해 총 21명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교육회의는 12명의 민간위원을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장 외 민간위원은 선임되지 않고 있다. 의장 선임 이후 진행된 사안은 이달 10일 대통령이 의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것이 전부다. 내달 교육회의가 본격 출범, 정부서울청사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지금까지 말이 바뀐 전례를 보면 이조차도 확실치 않다.

그 기간 동안 국가교육회의는 현재의 ‘거수기’ 논란을 넘어 설립 자체가 문제란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이은재(자유한국) 의원은 교육부 국감이 치러진 지난달 12일 “국가교육회의의 설치근거가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 소속’을 이유로 교육부를 제치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교육부를 단순 행정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은 교육부를 단순 행정처리 기관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소속 행정기관 설치 시에도 정부조직법에 규정을 둬야 하고 권한 남용/악용을 막기 위한 효율적인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한 것도 교육회의 설치 부당성의 근거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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