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개편 첫 실험’ 중2, 고입까지 안갯속.. ‘고입재수 교육특구쏠림 우려’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김상곤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가 내년 고교 입시부터 외고 국제고 자사고와 일반고의 입학전형을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격렬한 반대여론 끝에 국가교육회의 의제로 미뤄졌던 외고 자사고 폐지 정책을 기존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셈이다. 수능 개편의 첫 실험대상이 될 현 중2 학생들이 고입에서도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김 부총리는 23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교육부기자 간담회에서 올 하반기 추진할 주요정책으로 ‘외고 자사고 일반고 고입 동시실시’를 꼽았다.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외고 자사고 폐지수순을 밟겠다는 입장이다. 김 부총리는 “우선 일반고 교육력을 높이겠다”며 “일반고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일반고와 특목고 등 모든 고교입시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상곤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가 내년 고교 입시부터 외고 국제고 자사고와 일반고의 입학전형을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격렬한 반대여론 끝에 국가교육회의 의제로 미뤄졌던 외고 자사고 폐지 정책을 기존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셈이다./사진=베리타스알파DB

이어 “외고와 과학고를 비교해보면, 외고는 외국어 전공자를 양성하는 게 목적인데도 현재 진로대로 외국어나 인문/사회 분야에 진출하는 비율이 35% 수준밖에 되지 않는 반면, 과학고는 과학분야 진출 비율이 90%가 넘는다”면서 “과학고는 설립목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지만 외고는 그게 아니라 대학입학이 더 큰 목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사고에 대해선 “전체 고교 가운데 4%에 불과하지만 이 적은 비율 때문에 교육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일반고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며 “교육의 양극화가 소득의 양극화를 규정하는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균질한 교육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올 하반기 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고교유형에 따른 선발시기를 규정한 내용을 삭제할 계획이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회를 거치지 않고 개정이 가능하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외고 국제고 자사고 등 전기고로 분류돼 8~11월 입시를 진행하는 특목 자사고 입시는 후기 일반고와 동시에 진행하게 된다.

일반고 교육력 강화를 위해 고교학점제도 추진에도 시동을 건다. 하반기 내 고교학점제 추진 로드맵을 마련하고 연구학교 지정 운영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향후 연구학교를 통해 필요한 인프라를 파악하고 제도 개선과제를 발굴하는 등 우수모델 확산을 추진한다. 김 부총리는 “현재 고교내신 평가제, 과목선택권 문제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며 “내달 이를 보완하고 구체화한 내용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지적사항 대응방안 없이 ‘밀어붙이기 식’ 추진>
김 부총리의 발언은 일부 학교의 우수학생 선점을 해소하고 학생선택을 반영한 다양한 수업이 가능하도록 학점제를 도입해 일반고의 위기를 해결하겠단 의도다. 그럴듯한 설명과 달리 그간 교육계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점에 대한 방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고입 동시 실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인 고입재수 대책은 물론,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내신 절대평가 등에 대해선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8월 교육부는 학생들이 다양한 고교 선택권을 주기 위해 전기에 입시를 진행한 뒤 전기 입시에 탈락하더라도 여타 학생들과 동일하게 일반고 입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 절차를 ‘우선선발권’으로 규정하고 폐지하겠단 계획을 공개했다. 당초 이 같은 절차가 도입된 것은 고입재수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외고 자사고 지망생이 불합격한 다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일반고에 배치되거나 고입부터 재수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기자간담회에서도 관련내용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입시를 동시에 진행한다고 해서 교육부가 기대하는 우수학생 쏠림현상이 해소돼 일반고 교육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서울만 놓고 보더라도 외고/국제고/자사고가 폐지되면 ‘강남 8학군’이 부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모든 고교가 일반고로 일원화되면 교육수준이 높은 교육특구로 수요자들이 몰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인 탓이다. 과거 위장전입 문제가 심각했던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지역마다 자리해 광역모집을 실시, 지역우수인재를 흡수하는 효과를 담당해온 지역 외고나 자사고가 사라질 경우 일반고 서열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애초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국가교육회의에서 해결하기로 했던 문제가 당장 내년부터 추진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출범 초기 일반고 전환 방침을 공개했지만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면서 장기 의제로 넘겨졌다. 그간 특목 자사고 입시를 준비해온 학생들이 입을 피해와 일반고 전환으로 인한 효과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대학처럼 고교에서도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고교학점제는 교원수급문제와 시설확보 등 다양한 문제가 엉켜있다. 무엇보다 현행대로 내신 상대평가 하에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경우 실효성 자체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상대평가체제에서 수강인원이 적은 수업을 선택할 경우 우수한 성적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수능 절대평가도 1년 유예된 상황에서 내신 절대평가가 실현될 가능성은 저조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절대평가는 대입 변별력 축소로 전형요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수능/내신 절대평가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대학 측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선 대학별고사 등 또 다른 전형요소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최근 학업성취도 논란이 불거진 혁신학교를 확산시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공교육 혁신을 위해 혁신학교에 대한 정책을 연구하고 현장 방문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 지역별로 일반학교에 확산할 수 있는 사례를 발굴할 방침이다.

계획과 달리 13일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혁신학교의 심각한 학력 미달현상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곽상도(자유한국)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아 분석한 ‘혁신학교 학업성취수준’ 자료에 따르면 기초학력미달에 해당하는 혁신학교 고교생은 11.9%에 달했다. 전국 고교평균이 4.5%에 그친 데 비하면 학력 저하현상이 뚜렷했다. 2015학년 혁신학교의 기초학력미달비율이 7.9%, 전국 평균이 4.2%였던 데 비해 격차가 심화돼 우려를 자아냈다.

22일엔 광주 대광여고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졸속 추진에 반대한다며 강한 입장 표명을 내놓기도 했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대광여고는 지난달 18일 광주교육청에 혁신학교 지정을 신청했고 현재 교육청은 이를 심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총동문회 회원들과 학부모들은 “학교 운영위원회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지도 않고 지난달 26일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해 통과시켰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9월에는 충북 제천고에서 2년 동안 추진하던 혁신학교 지정계획이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혁신학교의 수업방식이 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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