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민심 노린’ 특정 지역 이전.. ‘수요자 피해만 커질 것’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한 잡음이 확산되면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를 둘러싼 교육당국의 정치적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통해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 방안을 밝힌 직후, 제주교육청은 가장 먼저 도내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했다. 실제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형’을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의 의제로 10일 공식 채택하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상황이다. 교육계에선 예정대로 절차가 진행된다면 5월 중순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밝힌 2025년보다 이른 시점에 외고의 폐지가 이뤄지는 셈이다. 그렇지만 제주외고의 구성원들과 지역사회에선 정치적 목적으로 이석문 제주교육감이 일반고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신제주권 지역의 고교 신설이 불발되자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제주외고를 이전하려 한다는 관측이다.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폐지를 놓고 교육당국이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여러 방면에서 나온다. 학교 관계자들은 물론 교수단체들까지 나서 경고하고 있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제도를 시행령 등 행정입법으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 교육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정권 색깔에 따라 수시로 교육정책이 뒤집힌다면 제도의 안정성이 흔들려 교육현장 대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며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설립 근거가 시행령이었기 때문에 시행령으로 없애는 것도 정당하다는 식의 주장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들린다. 그간 시행령뿐이었다면 법률을 통해 직접 규정하는 것이 수요자를 위한 길이다. 고등학교 입학 과정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괄폐지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수렴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교육감이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일반고 전환을 활용하려는 시도까지 벌이고 있다. 교육보다 정치적 이해를 앞세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지속한다면 수요자들의 피해만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한 잡음이 확산되면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를 둘러싼 교육당국의 정치적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한 잡음이 확산되면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를 둘러싼 교육당국의 정치적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공론화 착수’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선거 위한 정치적 목적”>
정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를 결정한 이후 가장 먼저 외고폐지를 추진 중인 제주교육청이 거센 현장반발에 직면했다. 제주교육청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는 10일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모형’을 의결하며, 본격적인 공론화 절차에 착수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 평준화 일반고로 운영하는 방안과 현재 소재지에서 읍면지역 비평준화 일반고로 전환하는 안이 함께 제시됐다. 공론화위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설문조사와 도민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여론조사와 토론회 결과를 반영해 공론화위는 정책권고안을 4월말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이후 5월 중 이석문 제주교육감이 권고안 수용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공론화 절차가 예정대로 마무리될 경우 제주외고는 정부가 계획한 2025년보다 앞서 일반고로 전환될 전망이다.

지역 교육계에선 이 교육감이 ‘신제주권’의 고교생 수요 해결을 위해 제주외고 이전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근래 신제주권으로 불리는 제주시 연동/노형동 지구 등의 인구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제주교육청은 고교 신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일반고 전환이 예정된 제주외고를 신제주권으로 옮기는 방안을 대안으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 제주교육청은 2015년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했으나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 등의 반발로 무산된 적도 있다. 당시 제주교육청을 고교체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제주외고를 평준화지역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구체적 안을 검토했었다. 평준화 일반고가 됐었다면 제주외고는 지역 이전을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 교육감이 독단적으로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다는 인식이 지역사회에선 널리 퍼진 상태다.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일반고 전환보다는 제주외고의 이전이 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제주외고 폐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학부모 등 내부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되면서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비대위 측은 정부가 정한 2025년보다 이른 시점에 제주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제주교육청의 방침이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비대위 한 관계자는 “제주교육청은 객관적인 분석과 교육계의 의견 수렴절차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전국의 특목고가 헌법소원까지 제기했고, 앞으로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알 수 없는데 이 교육감은 헌법소원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을 제멋대로 앞당겨 시행하려 하려 한다. 오로지 자신의 선거를 위한 정치적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공립국제고 4곳 ‘일괄폐지 반대’.. ‘교육부 논리 적극 반박’>
특목고 가운데 제주외고와 마찬가지로 공립으로 분류되는 국제고 4곳에서도 지난달 현 정부의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양국제고 부산국제고 서울국제고 세종국제고의 4개교 총동문회는 이례적으로 지난달 6일 일괄폐지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총동문회가 나선 배경은 공립 국제고들은 원칙적으로 정부정책에 대해 학교 차원의 입장을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동탄국제고와 인천국제고는 동문회가 없고, 유일한 사립 국제고인 청심국제고는 개별적으로 교육부에 일반고 전환 반대 의견서를 전달했다.

당시 국제고 총동문회는 교육부가 일괄폐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를 반박했다. 정치적 주장을 펼치기 위해 교육당국이 ‘무리수’를 동원했다는 비판을 제기한 셈이다. 교육부는 과고 졸업생의 이공계열 진학비율은 96.8%인 것과 국제고의 어학계열 진학비율은 19.2%인 점을 비교해 일괄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총동문회는 국제고의 인문사회영역을 포함한 동일계열 진학률은 과고에 비슷한 수준임에도 교육부가 자료를 곡해했다는 반론을 내놨다. 총동문회 한 관계자는 “2019년 국제고 졸업생 중 96.4%가 인문/사회/국제계열에 진학했다. 일반고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과고의 이공계 진학비율인 96.8%와 유사한 수치”라며 “이런 사실은 교육부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고 폐지가 장기적으로 교육특구 부활로 이어져 공교육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특히 국제고가 사라질 경우 선택할 대안이 많은 고소득계층이 대안으로 외국인학교나 국내학력인정 국제학교를 선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총동문회 관계자는 “국제고가 폐지되면 강남8학군이 부활하고, 학비가 87.4배에 달하는 국내학력인정 국제학교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될 수 있다”며 “이공계 쏠림 현상에 따른 인문사회, 국제계열 특성화 교육 파행도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법적대응 예고’ 사립고교.. ‘정치 앞세워 교육다양성 훼손’>
2025년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 방침의 직격탄을 맞은 사립 특목고와 자사고들의 법적대응도 본격화된 상황이다. 전국 16개 사립외고출신 변호사들로 구성된 전국외고연합변호인단은 ‘외고폐지 반대 의견서’를 지난달 교육부에 제출했다. 변호인단의 김윤상 변호사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 방침을 포함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된 이후의 대응 방침에 대해서도 밝혔다. 3월까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외고 설립근거를 담은 법률을 발의할 수 있도록 입법청원을 제기하고, 헌법소원도 준비할 예정이다. 자사고들도 교육부에 개별적으로 반대의견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고 관계자들은 외고와 별도로 헌법소원도 진행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변호인단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 방안 자체의 위한 가능성을 지적하며 법적다툼을 예고했다.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헌법의 내용을 위반할 소지가 있고,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변호인단은 의견서를 통해 “외고폐지는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다양성 자율성 등을 훼손하는 위헌행위다. 학습능력의 차이가 있음에도 획일적 교육을 강제하므로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처사”라며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 정해야 함에도 시행령 폐지로 강행하고 있으므로 역시 위헌이다. 국가가 국제화 교육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 교육기본법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를 결정한 과정의 정당성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변호인단은 입장문에서 “외고폐지는 창의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한다는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국가적 감독을 이유로 고교 과정을 획일화하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 교육관”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패싱하고, 시행령 폐지라는 방법으로 외고 폐지를 강행한 것은 정책 추진 배경의 순수성조차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학교는 물론 교육계나 학계의 의견수렴도 없이 한순간에 일괄폐지 방침이 확정된 배경에 정치적 이유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부분으로 풀이된다.

변호인단은 외고폐지가 공교육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요자의 우려를 덜만한 뚜렷한 일반고 강화방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수월성교육을 담당해온 공교육기관이 사라지는 격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8학군’으로 대표되는 교육특구의 부활을 막을 수 없어 양극화 확대와 사교육 과열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동안 고소득계층의 유학수요까지 어느 정도 흡수해왔던 외고의 폐지가 조기유학을 늘리는 ‘풍선효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변호인단 한 관계자는 “외고를 폐지하면 ‘강남8학군’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강남 집값까지 급등하고, 우수학생들 중심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공교육 전체의 관점에선 학력의 하향평준화가 우려된다. 결과적으로 조기유학도 증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학계까지 가세’ 현장반발 확산.. “자사고 외고 국제고 희생양”>
고교현장과 학계에서도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 자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고교 관계자들은 교육적 가치를 근거로 반박하고 있는 것이 정치적 의도를 내비치는 교육당국과 대립되는 지점이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의 ‘유탄’을 맞은 전국모집 자율학교의 반발도 거세다. 지난해 9월 ‘조국 사태’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했던 전국 377개대학 6100여 명의 교수들로 구성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에서도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가 위헌적 발생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목고와 자사고 내부에선 그동안 학교들이 내왔던 교육성과의 원동력을 정부가 잘못 짚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20년이상 공교육 현장에서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운영되면서 단순히 학생선발권에만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한 자사고 교장은 “마치 자사고들을 ‘악의 축’처럼 묘사하는 것이 부당하다. 초기에 국가가 제안한 대로 요건을 갖추고 재단과 동문의 지원으로 기숙사까지 세웠다. 그동안 학교운영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정권이 앞장서서 매도하며 일반고 전환을 밀어붙인 것”이라며 “서울의 광역자사고가 추첨방식으로 선발되지만 학생들의 자부심이 크다. 다른 일반고 학생들과 달리 스스로 학교를 선택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단순히 대입실적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부심이 그동안 자사고 체제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마치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적폐’로 몰아붙였다. 자사고를 운영하면서 학교들이 가졌던 나름의 자존심들이 모두 뭉개진 셈”이라고 말했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괄폐지와 함께 모집범위가 축소된 전국모집 자율학교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교육부가 고교서열화를 이유로 전국단위 선발을 실시하는 일반고 49개교의 모집범위까지 광역단위로 축소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 학생모집이 어려워 일반고들이 전국모집으로 전환된 취지를 무시한 채 시대를 역행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농어촌 지역 한 자율학교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와 인구의 공동화가 겹친 영향으로 지역 내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교들이 속출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반고의 전국모집이 허용된 것”이라며 “농어촌 지역이나 지방 소도시의 경우 광역모집을 실시할 경우 지역내 중학생수보다 신입생 정원이 많아질 수 있다. 사실상 학교 문을 닫으라는 얘기”라고 전했다.

교수단체인 정교모 역시 지난달 6일 ‘문재인정부의 외고 자사고 국제고 폐지 반대정책 토론회’를 통해 학계 차원의 반대 목소리를 더했다. 정교모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고교서열화 해소 한 마디에 국민적 의견수렴 없이 군사작전과 같이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정부의 결정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교육제도 법정주의를 벗어났고,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박탈했다”라며 “우리 사회 공정성 문제의 본질은 문재인 정권이 반복하고 있는 독선 탈법 반칙 위선이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 계속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면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어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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