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사례 도봉고 '서울 일반고 가운데 학생수 최소'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교육부가 새 정부 대표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교원 수급문제, 시설 확보 등 산적한 장벽으로 현장을 중심으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7일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추진을 위한 담당 부서를 별도 조직하고 사무실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은 전면 과목 선택제를 운영하고 있는 도봉고에서 국정기획자문위와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2019학년부터 고교학점제의 전면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교육계에선 당장 실현가능성도 떨어질뿐더러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고교 현장의 혼란만 불러일으킬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앞다퉈 관련 TF와 연구팀을 만들면서 당장 내년이라도 고교학점제가 도입될 분위기지만 현장에선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우선과제인 교원수급을 포함해 예산 대단위 학교 혼란 등 산적한 숙제 해결이 먼저라는 신중론이 대세다. 교육부와 국정기획자문위는 추진계획의 일환으로 도봉고를 방문,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의 실현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교육계 한 전문가는 “도봉고는 서울 시내 고교 중에서 학생수 340명 정도의 최소규모 학교다. 규모에 비해 교원은 50명 정도로 교원 1인당 학생수가 6.7명에 불과, 전면 과목 선택제 도입이 가능하지만 서울 시내 일반고 186곳 중 182곳은 교원 1인당 학생수가 10명이 넘는다”며 “교원 수급이나 시설 확보 예산 마련등 여건을 따져보지도 않고 수능 내신 절대평가제 도입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당장 고교학점제의 도입을 서두르겠다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상당히 신중한 접근을 위해 장기과제로 넘기는게 합당하다”고 평가했다. 

교육부가 새 정부 대표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교원 수급문제, 시설 확보 등 현실적 장벽으로 인해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전면 과목 선택제’ 도봉고.. 전교생 340명 소규모 학교>
새 정부 국정기획자문위는 지난 2일 고교학점제와 유사한 전면 교과목 선택제를 운영하고 있는 도봉고 방문으로 현장상황을 파악했다. 우수 학교 사례를 통해 고교학점제의 현장 적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도봉고는 2010년부터 과목 선택제를 도입해 학생 희망에 따른 다양한 과목 선택이 가능하다. 전체 180단위 중 필수이수단위를 제외한 80단위(45%)를 자유선택형으로 운영, 학생 만족도가 높다는 평이다. 1학년에서 공통과정을 이수한 뒤 2,3학년부터 전면개방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인문사회과정(문과), 자연이공과정(이과) 예체능과정 등으로 구분해 과목선택권을 제한했다. 

2~3학년 학생들은 아침조회가 끝나면 각자 시간표에 따라 교과교실로 흩어져 수업을 받는다. 시간표는 학기 초 진로상담 후 직접 수강신청을 통해 스스로 만든 시간표다. 다만 도봉고 선용규 교무부장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과목 선택권을 주면서 학습만족도가 높고 학교 부적응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면서도 “과목 수가 늘면서 교사 한 명당 과목 수가 많아지고 정기고사 운영이 복잡해지는 등 부담이 커진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대표적 단점으로 학생 수가 적은 과목의 경우 내신 등급을 받는 데 불리하다는 점을 꼽기도 했다. 수업 하나당 평균 학생 수는 15명 안팎이다. 도봉고 송현섭 교감은 “우리 학교는 학생수가 적지만 학생수가 많은 곳은 과목선택제에 따른 교실과 교사 부족을 겪을 것”이라며 “정부가 한번에 고교학점제를 밀어붙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평했다. 

실제 도봉고는 학년당 학생수 100명 안팎의 전교생 340명 정도의 소규모 학교다. 반면 교사수는 50명 가량으로 교원 1인당 학생수가 6.7명에 불과하다. 학생수로 따지면 사실상 일반고에 가까운 자율형공립고를 제외하고 일반고로 분류된 서울시내 186개 고교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다. 교원 1인당 학생수도 서울시내 최소 규모다. 186개교 중 교원 1인당 학생수가 10명을 넘는 곳은 182곳, 15명 이상인 학교는 61곳에 달한다. 도봉고 송 교감이 지적하고 있듯이 도봉고가 전면 과목선택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 구조상 다수 교원이 확보된 때문이다. 서울 시내 고교의 교원 1인당 학생수 평균이 도봉고의 2배를 넘는 14.22명인 상황에서 당장의 고교학점제 도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도봉고 한 교사는 “도봉고는 규모가 작은데도 불구 전면 과목 선택제 도입 이후 교사 1인당 맡는 과목수와 수업연구, 시험출제 등 업무 과중이 2배로 늘었다. 교사들의 헌신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 ‘교원수급’.. 면밀한 수요예측 필요>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는 교원 확충이지만 예산 확보 방안이 없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도봉고 수준으로 교원을 확충한다하더라도 유지를 위한 예산도 필요하다. 교사 임금이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기조에 따라 많은 수의 교사를 정규직으로 충원할 경우 재정확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사 직업 특성 상 긴 정년이 보장돼 비인기 과목 교원들은 유휴인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교육부는 국정기획위 업무보고에서 올해 증원분인 3000명을 포함 향후 5년간 1만5000여 명의 증원을 추진한다고 보고했다.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교원 1인당 연봉을 3500만원으로 계산하면 올해 3000명 추가 채용에 대한 예산은 연간 1050억원이 필요할 전망이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으로 교육부에 약 1조9500억원 가량을 편성했다. 예산은 학교시설 개선과 교원 인건비를 중심으로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1조9500억원 중 1조8000억원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책정했으나 고교학점제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따라 재정규모가 크게 달라진다는 문제다.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선 교사 수급뿐 아니라 교실 환경 개선도 필요해 소요액이 상당할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교원 수요에 대한 면밀한 예측도 요구된다. 일각에선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한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의 잘못된 수요예측에서 겪은 후유증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가 실용영어회화능력 강화를 목적으로 추진했지만 명확한 수요예측 없이 도입에만 초점을 맞춰 지금까지도 파행을 겪고 있다. 실제 영어회화 강사는 2012년 6100명에서 2016년 3700명 정도로 4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선택과목 수가 확대될 경우 계약직 교사 확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좋은교사운동 김진우 대표는 “고교학점제 등이 도입되면 현실적으로 계약직 교사를 대거 늘릴 수밖에 없다”며 “과거처럼 정권이 바뀌면서 기존 정책이 대폭 축소될 경우 계약직 교사들이 대규모 해고 사태를 맞을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지역차별, 평가방식 등 선결과제.. 신중한 접근 필요>
교원 1인당 학생수 문제로 고교학점제는 소규모 학교에서나 가능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농촌 학교는 오히려 지방 이탈현상을 우려했다. 농촌 학교의 경우 학생 수는 적지만 절대적인 교원 수와 인프라가 턱 없이 부족해 대도시에서 먼저 고교학점제를 시행할 경우 농촌 지역 학생들의 이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교원 수와 시설 부족 등으로 인한 선택과목 개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인근 학교끼리 수업을 나눠 개설하는 ‘연합형 교육과정’을 방안으로 내놓았지만 이 역시 농촌 지역에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농어촌 학교의 경우 학교 간 거리가 멀고 지역 내 학교 수도 적어 현실적으로 학교 간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선 교사들은 학교 간 이동 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우려하기도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최소 100개 이상의 강의가 개설돼야 한다”며 “농촌 지역의 경우 군 단위에 고교가 1~2개교가 전부인 상황에서 학교 간 이동수업으로 부족한 교사 수를 보완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수 과목을 운영하기 위한 시설 확충도 요구되지만 그만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선결과제 중에선 내신 절대평가 도입 문제도 있다. 현행 내신 상대평가제를 유지하면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경우 학생들은 수강인원 수에 따른 내신 유불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소인수 과목은 좋은 성적을 받기가 어려워 진로/흥미와 연관된 과목이더라도 기피할 가능성이 큰 때문이다. 반면 대학에선 내신 절대평가를 도입할 경우 학생부위주 전형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변별력이 떨어져 선발을 위한 다른 평가수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고에선 내신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특목자사고에 비해 그나마 강점이 있던 내신에서도 불리, 학교 현장에서 내신 부풀리기가 횡행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앞다퉈 TF 발족>
교육부는 관련 TF를 마련하고 별도 전담 부서를 구성하는 등 고교학점제 도입에 속도를 높이고 있으나 이같은 현장의 우려를 고려하고 있는진 미지수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정책국 산하에 ‘고교학점제 추진팀’을 구성하는 등 도입 준비에 착수했다고 6일 밝혔다. 추진팀은 교사 출신 전문직 등 6명으로 구성했다. 지난달 23일은 서울교육청이 고교학점제 관련 TF를 발족한 바 있고 경기교육청이 고교 학점제 실현 방안 마련을 위한 기획팀과 연구팀을 구성하는 등 지역교육청도 고교학점제 도입에 대응하고 있다. 앞다퉈 관련 팀을 조성하고 있으나 예산 확보 방안이나 구체적인 로드맵은 없는 상황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고교에서도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 수강하고 필요학점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집을 통해 고교학점제의 유형별/단계별 확대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1단계 학교 내 개인맞춤형 선택 교육과정 운영, 2단계 학교간 연합 교육과정, 3단계 지역사회 연계형, 4단계 온라인 기반 교육과정으로 확대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고교학점제는 문 정부의 대표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 도입, 수능 내신 절대평가, 특목자사고 폐지 중에서도 특히 1호 공약으로 꼽힌다. 특목자사고 폐지와 수능내신 절대평가 도입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장의 반발 여론도 적은 편이다. 지난 대선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도 고교학점제와 유사한 ‘고교 무학년제’를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대선 전인 지난 12월 ‘지능 정보사회에 대응한 중장기 교육정책’으로 고교학점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더해 내년 고1부터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진로를 위한 융합형 인재육성과 과목 선택권 확대에 초점 맞추고 있다.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1학년까지 공통과목을 이수한 후 2,3학년에서 진로와 적성에 관련한 선택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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