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역할 커녕 교육부 추인용기구 전락'..'국가교육위 회의론만 증폭'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교육계의 기대감을 부풀려놓고 출범 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국가교육회의가 흐지부지 ‘1기’를 마무리한다. 국가교육회의 신인령 의장의 임기가 10일 만료된 데다 나머지 위촉직 위원 10명의 임기도 연말 만료된다. 국가교육회의 출범 1년은  교육의 중장기적 비전수립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현재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기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국가교육회의가 활동한 기간은  1년 남짓. 중장기 교육정책을 정하겠다는 포부나 대선이후 교육계 안팎의 기대를 감안하면 용두사미라는 평가가 나올수밖에 없다. 교육회의는 1년은 교육부의 추인용기구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초 인원구성이나 역할부터 장기적 비전과 거리가 멀었던 데다 교육회의가 다룰 것으로 기대됐던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고교학점제, 초중등교육 교육청 권한 이양 등의 중요현안들은 이미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상을 회복하나 싶었던 대입개편에서조차 ‘속 빈 강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입개편특위-공론화위로 연쇄하청을 넘기며 산하기구의 결정 뒤에 숨어버렸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국가교육위원회로 나갈 징검다리 역할이었던 국가교육회의가 1년간 한 것이라고는 대입개편 하청밖에 없다. 교육부 권한을 축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교육부 주도로 추진된 중장기 교육정책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국가교육위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12월 출범한 국가교육회의 의장의 임기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나머지 위원들의 임기도 끝나간다. 출범 당시 쏟아진 기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신설할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기대감도 떨어지는 실정이다. /사진=국가교육회의 제공

<중장기 교육정책 이끈다더니.. ‘속 빈 강정’>
국가교육회의는 현 정부 중장기 교육정책 방향을 제안하고 복합적인 교육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등 교육개혁을 이끌기 위해 만든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독립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가 설립될 때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예정으로, 앞으로의 활약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국가교육회의가 출범되기도 전에 굵직한 교육현안이 교육부 차원에서 추진되면서 역할과 위상에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권한을 대폭 축소하겠다던 교육부는 오히려 몸집을 키우는 모습이었다. 

대표적인 현안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고입 동시실시다. 2017년11월 열린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에서 고입 동시실시를 골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12월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고입 동시실시가 확정됐다. 현장의 거센 반발로 일반고 전환에선 한 걸음 물러섰지만 고입 동시실시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폐지수순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당시 김상곤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는 고교체제 개편 문제를 교육회의로 넘기겠다고 발언했지만 사실상 결론을 내린 셈이다. 교육부는 선발시기 조정은 고교유형의 폐지나 존립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며 교육회의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고교학점제, 초중등교육 권한이양 문제 역시 교육부 주도로 밀어붙이면서 교육회의 존재자체가 미미해졌다. 이미 교육회의1년을 지켜본 교육계에서는 비대해진 교육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정권에 따라 휘둘리는 교육정책을 막기 위해 ‘정권초월’ 교육위 신설이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팽배한 상태다.

<‘교육전문가’ 부재.. 대입개편 ‘하청에 또 하청’>
‘유명무실’ 국가교육회의의 문제는 인선에서부터 예견됐다는 평가다. 민간위원 11명이 공개되자 교육계 현장에서는 ‘탁상머리’ 교육정책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현직교사 한 명 없이 대학교수들이 주축”이라며 “교육정책 당사자인 교사와 학부모를 배제하고 현장의 고민이 담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편향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육계 보수인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지적했다. 

인선에 대한 우려는 2022대입개편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교육부에서 교육회의로 넘어간 2022대입개편안이 대입개편특위, 공론화위로 연쇄하청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산하기구의 결정 뒤에 숨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공론화위로 넘어간 대입개편안은 또다시 시민참여단의 손으로 넘어갔다. 국민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명목으로, 공론화위는 여론 취합에 그쳤을 뿐이다. 공론화는 책임자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책임회피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장기적 교육가치를 고려하기 보다는 정치적 부담을 약화시키기 위한 선택 아니었냐는 비판도 나오기에 이르렀다. 

결국 공론화결과, 특정 의제의 손을 들어주지 못한 데다 정시확대/절평확대라는 모순된 결론을 도출하면서 ‘실패한 공론화’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이미 1년여의 시간동안 팽팽한 여론을 확인한 상황에서 공론화결과는 이를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결국 재하청을 거듭한 대입개편안은 논란의 중심에 선 정시 비율을 특정하지 않고 ‘확대 권고’ 수준에서 교육부 판단으로 넘기면서 대입개편의 결론이 1년만에 원위치로 돌아왔다. 

<국가교육위 신설한다지만.. ‘제2의 국가교육회의’ 그칠 우려>
최근 국가교육회의가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팀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방안 연구’ 보고서가 나오면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에 시동을 건 모습이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인 상태다. 정권초월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계의 오랜 숙원인 데 반해, 정부가 고려중인 방안은 교육부를 폐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하는 ‘옥상옥’ 형태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교육부 폐지 없이 또 다른 기구를 만드는 것은 ‘제2의 국가교육회의’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국가교육회의와 교육부의 관계를 반추하면 문제는 뚜렷해진다. 대입개편 과정에서 국가교육회의는 ‘논의에 충분한 자료가 부족해 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 데서 드러난다. 정책 판단의 근거가 될 교육부 정보를 국가교육위와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면 국가교육위가 실효성 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더라도 결국 교육부 정보에 의존하게 되면 현 정부의 입김을 벗어난 정책 결정이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애초 국가교육위 설립이 요구된 배경은 이해관계 정치논리와 관계없이 일관된 교육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구의 필요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교육부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국가교육위를 신설하는 방안은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국가교육위 설립 요구가 담긴 대표적 사례는 2013년 서울대 김경범 교수, 인천하늘고 주석훈 교감(현 미림여고 교장), 영동일고 진동섭 교사(현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 등이 발표한 ‘입학사정관제 안정화를 위한 대입 3년 사전예고제 연구’ 보고서다. 당시 보고서는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준정부기구인 대입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뀐 교육정책의 대표적 예는 수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첫 도입된 94학년에 2회에 걸쳐 치르던 수능은 바로 이듬해 1회 시행으로 바뀌고 ▲97학년엔 200점 만점이 400점 만점으로 ▲99학년에 사탐 과탐의 선택과목제 적용과 표준점수제 도입 ▲2001학년 제2외국어 2교시 선택과목 추가 ▲2004학년 문항별 배점을 정수로 변경 ▲2005학년 시험영역과 과목을 고르는 선택형 도입, 원점수가 아닌 표준점수와 등급 통보, 사탐과 과탐 중 하나만 선택 ▲2008학년 성적표에 등급만 표기 ▲2009학년 성적표에 등급과 표준점수 다시 표기 ▲2011학년 EBS교재 70%연계출제 ▲2012학년 영역별만점자 1% 목표출제 ▲2014학년 A/B선택형 수능 실시와 만점자 1% 목표포기에 이른다. 최근 대입개편 논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향점은 대입안정성 확보에 있다. 학부모 수험생 등 교육수요자들이 대입을 미리 예측할 수 없어 사교육에 의존, 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오락가락하는 대입정책을 안정화하지 않고서는 사교육 양산과 공교육 무력화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작년 치러진 대선에서 대다수 후보들은 교육부를 폐지하고 교육위를 설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교육위를 설치하되 집권 초기에는 교육위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국가교육회의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가교육위원회를 향한 열망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는 교육정책’으로 누적된 교육수요자의 피로를 해소하고 긴 안목에서 교육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셈이다. 

<교육부 폐지 없이 ‘정치적 중립성’ 가능할까>
국가교육위가 제2의 국가교육회의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5월에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성엽(민주평화) 위원장을 비롯한 야당과 무소속 의원11명이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해 대체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교육부 중심 정책결정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났다는 판단이 배경이다. 유 위원장은 “지금의 교육부는 정부로부터 자주적이지도 않고 전문성도 보이지 않으며 정치적 중립성도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초 ‘정시확대’ 주문을 둘러싼 논란이 불씨를 지폈다. 민감한 정책을 합당한 절차나 논의과정 없이 통보하듯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비난이 쏠렸다. 당시 교육부는 “최근 수시확대로 정시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교육계 안팎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여론무마용이라는 시각이 대세를 이뤘다. 학종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이 여론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한 조치라는 것이다. 

사전예고제 시기를 더욱 앞당겨 대입 예측가능성을 높이겠다던 교육부가 바로 다음 해 시행하는 2020학년 전형계획에 손을 댔다는 점도 비판지점이다. 2022 대입개편안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2020학년 전형계획 공개를 한 달 앞두고 전형비율을 조정하려 한 행태는 어떤 명분으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교육계 의견이다. 대교협의 사전 승인을 받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실제 전형계획 작성완료 시점은 통상 알려진 4월말보다 앞당겨진다. 이미 각 대학이 2020학년 전형계획 얼개를 짜 놓은 상황에서 전형계획 작성 마감 당일 급박하게 대입정책 기조를 ‘수시확대’에서 ‘정시확대’로 뒤집은 셈이다. 

결정타는 2022 대입제도 개편안이다. 큰 틀에서 5개 모형으로 제시된 개편안은 수시-정시 통합선발과 수능 평가방법 등 주요 쟁점을 제외한 부수적인 사항까지 고려하면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가 수백 가지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정권이 국가교육회의에 있다지만 방향성조차 없이 나열식으로 제시한 개편안은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학종-수능 간 적정비율을 제시하라는 쟁점의 경우 전형별 비율을 국가가 강제한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 대학의 자율권 침해라며 비판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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