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유발 논리 이해부족탓’..'정시 축소 상황 대비해야'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유력 대선주자들이 대부분 폐지로 입을 맞췄지만 대입에서 '패자부활전'역할을 해온 논술전형을 폐지해선 안된다는 반대 의견들이 교육계에서 부상하고 있다. 특히 2021 수능을 절대평가로 해야한다는 대선주자들의 입장이 더해진 상황. 변별력이 하락한 정시가 줄어들 경우 학생부전형만 남게 되면서 유일한 '패자부활전'역할을 하게될 논술 폐지는 재고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게다가 폐지의 근거인 사교육유발이라는 논리 역시 급조된 대선 캠프의 일천한 현장감각과 이해부족탓이라는 평가가 부각되면서 논술 유지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논술전형이 '사교육 유발전형'이란 것은 아예 오해에 가깝기 때문이다. 논술이 사교육을 유발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급격히 바뀐 대입 풍토에서 사교육유발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공교육정상화법에 근거해 논술고사의 교육과정 이탈 여부를 판정하면서 부쩍 대학들의 논술고사 난이도가 낮아졌고,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결부돼 대학들이 모의논술, 논술가이드북 등을 내놓으면서 사교육 의존없는 논술 자기주도학습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까지 있는 때문이다. 사교육 요인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서울대 고려대가 논술전형을 실시하지 않는 등 최근 대입이 학종 중심으로 전형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무조건적인 ‘논술 폐지’보다는 자연스럽게 논술이 줄어들도록 놔둬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대입의 중심축인 학생부위주전형(학생부종합전형과 학생부교과전형)은 학생부를 평가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다양한 학생부 영역 중 중심은 수업과 그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교과 성적이다. 단순 정량평가로 이뤄지는 학생부교과전형은 물론 학생부종합전형도 학생부 교과 성적이 미진한 학기가 포함될 경우 지원하기 쉽지 않다. 정성평가라는 평가 특성상 이후 성적상승 등 학생의 자기주도적 노력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긴 하지만 학생부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 뒷받침돼야 한다는 부담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부 성적이 미진한 학생들의 대학진학 기회로 남아있는 논술전형의 폐지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크게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논술이 폐지된다면 정시가 유일하게 '패자부활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다만, 2021 수능의 절대평가 적용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유력 대선 캠프들이 2021 수능부터 절대평가를 적용하겠단 입장을 흘리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키운다. 수능 절대평가가 전면도입된다면 수능의 변별력이 크게 낮아지고 대학들이 대입 전형요소에서 수능을 외면, 정시 폐지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26일 열린 고교-대학 연계 포럼에서도 수능 절대평가는 변별력 하락과 정시 축소/폐지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정시마저 폐지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논술 폐지는 고교 과정 중 방황했거나 늦게 철든 학생들의 대학진학 기회를 원천 차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교육계에서 논술전형의 폐지가 대입의 ‘패자부활전’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유다. 한 교육 전문가는 “논술 폐지는 이렇게 졸속으로 결정할만한 일이 아니다. 2021 수능의 절대평가 전면 확대 여부도 결정나지 않은 상황이다. 수능절대평가가 전면 확대되면 대학들은 변별력이 낮은 수능 중심 정시의 비중을 대폭 줄이게 된다. 현 대입제도에서 정시와 논술은 소위 ‘늦게 철든’ 학생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전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학생부 성적에 대한 정량평가 형태의 학생부교과전형, 정성평가 형태의 학생부종합전형과 달리 학생부 성적 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논술 폐지와 정시축소가 동시에 이뤄지게 되면 학생부 성적이 미진한 학생들의 대학진학 기회를 크게 좁히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현 대입전형들은 각자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무턱대고 없애는 것이 문제를 키울수 있다. ”고 말했다. 

대입 수시 논술전형 폐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부분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논술전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교육계에서는 갑작스런 변화를 지양해야 한다는 점, 논술고사 관련 바뀐 대입 풍토 등을 이유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본격화 하는 논술 폐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정책공약집 발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4일 정책공약집 ‘국민이 이긴다’를 발표, 대학별 논술고사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공약집을 통해 “복잡한 대학입시제도는 학생/학부모를 매우 힘들게 하고 과도한 사교육비를 부담하게 한다”며, 논술고사 폐지 시기를 임기 내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논술고사가 활용되는 전형은 수시 논술전형이 유일하므로 논술고사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곧 수시 논술전형을 폐지하겠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아직 다른 후보들이 정책 공약집을 발표하지 않은 상황이긴 하나, 수시 논술전형 폐지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는 모양새다. 현행 대입전형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겠다고 밝힌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유력 대선후보들이 그간 전부 논술 폐지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후보별로 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향후 대입전형을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수능으로 간소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선 공약의 전반적인 틀이 담겨있는 10대 공약집을 기준으로 보면 심 후보는 논술전형 폐지 관련 내용을 수록한 반면, 문 후보는 수록하지 않은 차이가 존재하지만, 공약집 수록 여부와 관계없이 두 후보가 그간 대입전형을 크게 간소화하면서 논술전형 뿐만 아니라 특기자전형까지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에는 변함이 없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여타 후보와 동일하게 수시 논술전형 폐지를 공언한 상태다. 유 후보는 10대 공약집을 통해 “대학입시를 학교생활기록부, 면접 수능으로 단순화”하겠다며, “대학별 논술은 폐지”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결국, 현재 대선에 나선 유력 후보들 가운데 홍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논술전형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계에서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논술전형이 폐지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도 논술전형 폐지 가능성은 매우 높다. 범정부 차원의 교육정책 결정기구가 없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공약, 그 중에서도 재정문제가 발목을 잡을 일이 없는 교육공약은 그대로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논술, 폐지만이 답일까.. 교육계의 우려섞인 시선>
교육계에서는 논술고사 폐지를 두고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조건적인 폐지가 정답은 아니란 것이 명백한 때문이다. 논술전형에 사교육 유발요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논술전형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과 학생 선택권을 고려했을 때 폐지보다는 개선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현재 대입전형은 실질 내용까지 고려하면 7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시의 경우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학생부교과전형(교과전형) ▲논술전형 ▲예체능실기전형 ▲특기자전형의 5개 유형, 정시의 경우 ▲수능위주전형(수능) ▲실기위주전형의 2개 유형이다. 논술전형은 전체 7개 전형유형 중 하나로 수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각 전형들이 가진 특징은 뚜렷하다. 정시에서의 실기위주전형이 사실상 수시의 예체능실기전형과 수능반영 여부를 제외하면 별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통상의 인문/자연계열 수험생들이 지원 가능한 학종 교과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 수능의 5개전형은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학종은 학생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성평가 방식의 전형이며, 교과전형은 학생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학종과 유사한 성격으로 학종과 함께 학생부위주전형으로 분류되지만, 교과성적을 정량평가 형태로 줄 세워 선발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학종과 구분된다. 논술전형은 대부분 논술고사 성적과 학생부 성적을 합산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형태며, 특기자전형은 특정 분야에 뛰어난 강점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이다. 특기자전형은 정성평가 형태가 많다는 점에서 학종과 비슷해 보이지만, 학종이 사교육 유발을 막기 위해 교내활동만 반영하고 교외 활동은 평가에서 배제하는 것과 달리 교외활동까지 평가한다는 점에서 학종과 명확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수능은 통상의 수험생들이 말하는 정시다. 수시 4개전형은 기본적인 틀 위에서 수능최저 적용 여부, 면접 실시 여부 등을 통해 대학별 차이를 주고 있다. 

현행 수시에서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는 전형은 학종이다. 충실한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학업역량을 기른 인재를 선발한다는 점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교과전형도 학교생활의 성실성을 측정할 수 있는 교과성적을 기반으로 평가를 진행하긴 하나, 학교별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전혀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학종에 비해 확대폭이 크지 않다. 두 전형이 지닌 공통점은 결국 내실있는 학생부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지원하기 어려운 전형이란 점이다. 

논술전형은 두 전형과 달리 학생부의 영향력이 극히 미미하다. 외관만 놓고 보면 학생부 반영비율이 많게는 40%에 이르기도 하지만, 실제 영향력과는 거리가 먼 수치다. 교과성적 등급, 또는 출결일수 봉사시간 간 점수 격차를 크지 않게 설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에 논술고사를 잘 보면 얼마든지 합격할 수 있는 구조로 봐야 한다. 

학생부의 영향력이 적다는 점으로 인해 논술은 대입에서 학생들의 선택폭을 크게 넓혀주는 전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학종과 교과전형이 학교생활에 있어 성실성을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학생부 성적이 미진한 학생들이 뒤늦게 대입을 준비하는 경우 학종/교과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기란 쉽지 않다. 이 공백을 논술전형이 메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늦게 철든’ 학생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들이 공개하는 입시결과를 볼 때 논술전형 합격자들의 내신성적이 상대적으로 학생부위주전형 대비 낮게 형성되는 것도 이같은 논술전형의 특징을 증명하고 있다. 

교육계에서 논술전형 폐지 결정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논술전형이 대입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 때문이다. 한 고교 관계자는 “논술전형을 폐지한다면 학생부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 정시 외에는 방법이 없게 된다. 학종 재수도 가능하긴 하지만, 자소서를 제출하고 면접이 실시되는 학종에서 자소서를 다시금 잘 준비하고 면접대비 정도를 높이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정시 외에는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양한 대입 루트를 놔두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길이다. 만약 논술전형을 없앤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 충격이 크지 않도록 차츰 논술전형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술전형이 갑작스레 사라지면 그간 논술을 실시해온 대학들이 선발의 어려움을 크게 느낄 것이란 의견도 존재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논술전형의 공백 메우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우리 대학의 경우 수시 논술전형 선발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 만약 논술전형이 갑작스레 사라진다면 어떻게 선발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하다. 일각에서는 논술이 폐지되면 학생부종합전형을 늘리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바라보기도 하지만, 대학의 속내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단기간 내 모집규모를 크게 늘릴 수 있는 전형이 아니다. 입학사정관의 수, 평가체계 등을 준비하는 기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늘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은 본래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형이 되기 쉽다"며, "결국 논술을 갑작스레 없앤다면 해당 모집인원을 정시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문 후보가 정시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슬그머니 주장을 철회한 상태인데, 궁극적으로는 대학들의 사정을 염두에 두고 정시확대를 위해 논술폐지를 포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만약, 논술이 이대로 모습을 감춰 정시가 확대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당장 2021학년 수능으 절대평가화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절대평가 도입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수능 과목 체계부터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후 정시가 대입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전면적인 절대평가가 도입된다면 수능의 변별력이 크게 낮아지게 되고, 대학들이 정시를 외면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논술마저 없어지는 경우 대학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논술은 사교육유발전형일까.. 바뀐 논술 풍토 고려 없어>
대선 후보들이 입을 모아 사교육 유발 요소가 크다는 점을 들어 논술 폐지를 주장하는 것에도 교육계는 경계의 시선을 드러냈다. 최근 들어 급격히 바뀐 논술 풍토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한 경계다. 논술전형이 사교육 유발의 주범으로 여겨지던 시절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대선후보들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논술 폐지를 외치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논술전형이 사교육 유발 요인이 크다고 여겨진 것은 논술고사의 난이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입논술-공교육 연계 강화에서 교과부와 대교협이 밝힌 논술 축소 이유도 논술고사 범위가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 있어 난이도가 높다는 점이었다. 당시 드러난 실제 사례를 보면 2011학년 A대학은 정수론 중 오일러의 함수를 출제범위에 포함시켰으며, B대학과 C대학은 각각 이산수학의 유향그래프와 생성함수 개념을 담은 자연계열 논술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2012학년에도 이같은 경향은 이어져 D대학이 몬테칼로 적분, E대학이 공간에서의 곡선, F대학이 테일러급수 등을 출제범위에 포함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논술난이도가 수능보다 훨씬 높다보니 공교육 내 준비만으로는 수리논술을 대비할 수 없다는 인식이 심어지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이 자연스레 사교육과 논술을 연결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육부가 재정지원사업 등을 통해 논술전형을 축소해야 하는 전형으로 규정한 것도 ‘학교에서 준비가 곤란한 대학별고사 전형’이란 이유에서였다. 결국 논술전형이 사교육을 유발하는 전형이라고 판단한 데 기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논술고사의 난이도는 최근 들어 급격히 낮아져 사교육 유발전형으로 바라볼 수있는지조차 모호해진 상태다. 2014년 9월 발효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의 존재 때문이다. 공교육정상화법은 제8조를 통해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해 평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맞춰 제11조에서는 교육과정정상화심의위원회(이하 정상화심의위)를 두고 대학 등의 선행학습 영향평가 관한 사항을 심사/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제14조는 대학이 교육과정의 범위/수준을 벗어난 출제/평가를 실시한 경우 정상화심의위에서 심의 후 기간을 정해 대학에 시정/변경을 명령할 수 있으며, 정당한 사유없이 지정된 기간 동안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사안이 중대한 경우 모집정지 조치까지 내릴 수 있다. 모집정지를 내릴 수 있는 범위는 최대 입학정원의 10%다. 

본래 법 발효 시기만 놓고 보면 2015학년부터 정상화심의위가 열려야 했으나, 실제로는 2016학년 처음으로 심의위가 열렸다. 대학별 고사의 교육과정 이탈 여부를 판정하는 근거자료인 선행학습영향평가 보고서가 처음 게재된 시기는 2015학년이었으나, 첫 보고서 게재인 탓에 대학별로 자료탑재 양식, 내용 등이 상이했던 때문이다. 정상화심의위가 열리기전 대학별 고사가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났는지 여부를 사전 심사하는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산하 선행교육예방연구실은 이후 대학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열고 보고서에 담길 통일 항목들을 정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그 결과 2016학년부터 대학별 보고서의 내용이 충실해지고 형식도 통일되는 모습을 갖추면서 정상화심의위가 계획대로 열릴 수 있었다. 

정상화심의위가 교육과정 이탈 여부를 따진 대상은 대학별 고사 중 논술고사, 그 중에서도 자연계열에 국한된다. 인문계열은 교육과정 이탈 여부를 칼로 벤 듯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적성고사와 교과형 면접 등은 본래대로라면 심의 대상이 돼야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제외됐다. 적성고사의 경우 문제 수가 많다는 점, 교과형 면접은 단순히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피드백이 이뤄지는 면접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지난해 9월 공개된 대학별 고사 선행학습 영향평가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서 자연계열 논술을 실시한 대학들 중 가톨릭대 건국대 경북대 경희대 부산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서울) 연세대(원주) 울산대 한국항공대 한양대(에리카)까지 12개대학이 교육과정 이탈 판정을 받아 시정명령을 통보받았다. 위반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경북대로 33%의 문제가 교육과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세대(원주)가 31%, 부산대와 한양대(에리카)가 각각 30%로 뒤를 이었다. 4개대학을 제외한 8개대학의 구체적인 위반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평균 위반비율이 7.7%며, 수학에서 10.8%, 과학에서 9.2%의 위반이 있었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이다. 

교육과정 위반 통보를 받은 대학들 중에서 연세대를 향한 비판이 가장 매서웠다. 고교교육정상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이면서 모의논술 미실시로 수험생 배려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 데 이어 교육과정까지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 때문이다. 연세대 이외에도 경북대 가톨릭대 건국대 경희대 부산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총 8개대학이 고교교육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에 선정됐으면서도 교육과정을 벗어난 논술고사를 실시한 대학이었지만, 연세대는 대입 전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서울 상위대학이면서 논술전형 관련 정보제공에도 소홀했던 것까지 겹쳐져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교육과정 위반에 따른 제재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대학들은 지난해 논술고사의 난도를 크게 낮췄다. 올해 실시될 정상화심의위 결과를 봐야 하긴 하나, 교육계도 전반적으로 대학들의 논술고사 난도가 낮아졌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강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던 연세대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고교 교사는 “그간 논술고사가 유독 어려웠던 연세대 자연계열마저 문제 난도가 상당히 낮아졌다. 우리 학교의 경우 예년에는 연세대 논술 응시학생들 중 상당수가 주어진 문제를 풀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난해 치러진 2017 논술에서는 대부분 문제를 풀고 나왔다. 연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타 대학들의 논술고사도 전반적으로 기출문제 대비 쉽게 느꼈다는 증언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입논술-공교육 연계 강화 등에서 논술고사의 사교육 유발 요인으로 지목했던 논술고사의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더 이상 논술을 무작정 사교육 유발전형으로 보기 힘들어진 셈이다. 

논술에 덧씌워진 사교육 유발전형이란 오명여부를 차치하고, 논술전형의 사교육 유발요인이 존재한다 치더라도 무조건적인 폐지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사교육이 존재하는 이상 모든 대입전형에는 사교육 유발요인이 정도만 다를 뿐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사교육 유발요인이 적다고 여겨지는 학생부교과전형도 내신 사교육의 주된 원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사교육 유발 요인이 존재한다고 해서 무작정 대입전형을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교내활동으로 평가요소를 국한한 학종마저도 사교육 유발전형으로 없애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히 몸집 줄여가는 논술.. 10년 새 격세지감 수준, 급작스런 변화 지양해야>
갑작스런 대입제도 변화가 또 다른 사교육을 낳을수 있다는 점에 비춰 논술전형을 꾸준히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많았다. 이미 논술전형이 지속적으로 축소 추세인 점을 고려, 현 대입전형 변화 추세를 이어나가는 것이 무작정 폐지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견이다. 

대선 후보들이 입을 모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술전형은 그간 꾸준히 몸집을 줄여왔다. 올해 치러질 2018학년 대입으로부터 10년 전인 2008학년과 비교해보면 논술전형의 축소 추세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2008학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 201개 4년제대학의 대입전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논술전형 선발인원은 5만1807명이었다. 전체 대입 모집인원인 37만1755명과 비교하면 13.9% 비중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지난해 전국 197개 대학의 대입전형을 기준으로 집계한 2018학년 대입 논술전형 선발인원은 1만3120명으로 전체 대입 모집인원 35만2325명 대비 3.7% 비중인 것과 차이가 크다. 대입 전체 선발인원이 1만9430명 줄어드는 가운데 논술전형 선발인원은 3만8687명이나 줄면서 전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2%p나 축소됐다. 

10년 새 논술이 이처럼 축소된 데는 대입제도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2008학년만 하더라도 논술고사는 수시와 정시를 가리지 않고 실시되곤 했다. 당시 논술전형을 실시하는 대학은 모두 45개교로 수시에서는 26개교, 정시에서는 41개교가 논술을 실시했다. 2018학년 논술 선발 실시대학 수가 31개교인 것과 비교하면 논술을 실시하는 대학 수부터 크게 차이났던 셈이다.

물론, 2008학년은 대입에서 다소 특수했던 해다. 유일하게 등급제 수능이 실시돼 성적표에 백분위/표준점수 등이 기재되지 않고 오로지 등급만 표기되면서 선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들의 움직임이 대거 발생, 정시에서의 논술고사 실시대학이 크게 늘어났었던 때문이다. 등급제 수능이 대입현장에 혼란만 안겨다준 채 폐지되자 바로 다음해인 2009학년 논술 실시 대학은 크게 줄어들었다. 정시 논술 실시대학은 14개교로 대폭 감소했으며, 수시 모집에서의 논술 실시대학도 25개교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등은 2009학년 정시 논술고사를 폐지했으며, 고려대와 연세대도 2010학년 각각 정시 논술고사를 없앴다. 이후 서울대가 18년간 시행해 온 정시 논술고사를 2014학년을 끝으로 폐지하면서 대입에서 정시 논술고사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다만, 이 같은 대입제도의 변화 이후로도 논술 선발인원은 꾸준히 축소되고 있다. 2015학년 1만6905명이었던 논술 선발인원은 2016학년 1만5062명, 2017학년 1만4496명에 이어 2018학년에는 1만3120명까지 줄었다. 정시 논술고사 폐지라는 이슈 이후로도 논술고사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은 전 정부의 대입정책,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정부의 대입정책과도 관련이 깊다. 2012년 8월21일 교육과학기술부와 대교협이 발표한 ‘대입논술-공교육 연계 강화’에 따르면, 교과부와 대교협은 2011년부터 대입에서의 논술비중 축소를 위해 ‘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 등에서 논술 지표를 포함시켜왔다. 전체 모집인원 대비 논술전형의 모집인원 등을 비교해 재정지원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논술고사 실시대학은 2012학년 36개교에서 2013학년 27개교로 대폭 축소됐다. 

논술전형 축소라는 정부의 대입정책은 기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교외활동이란 사교육 유발요인을 제거, 교내활동만 반영하도록 한 학종이 영역을 넓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2014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실시했으며, 올해 네 번째 실시를 앞두고 있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구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이 논술축소의 선봉에 섰던 사업이다. 교육부가 명시적으로 논술 축소를 공표한 적은 없지만, 첫 시행 당시 대학별 고사, 특기자전형 운영 정도에 따라 전형실시 대학에 -10점(마이너스 10점)을 주고, ▲대학별 고사가 반영된 전형이 학교교육 정상화를 저해할 정도로 비중이 높지는 않는가 ▲대학별 고사가 사교육을 유발하거나 교육과정을 벗어나 학교교육 정상화를 저해하지는 않는가 등을 따져 감점을 없애는 방식으로 논술/특기자전형의 축소를 꾀한 것을 보면 논술축소라는 의도는 명확하다. 교육부는 정상화사업의 두 번째 시행인 2015년에는 기본계획을 통해 2014년의 사업 성과라며, 논술선발규모가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꾸준한 정부 정책으로 논술 선발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급작스런 논술폐지를 단행하기보다는 논술이 서서히 축소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대입전형 설계란 것이 교육계의 중론이다. 급격한 대입변화는 사교육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한 때문이다. 갑작스런 변화는 수요자들에게 적응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못하고, 결국 불안감에 휩싸인 수요자들은 사교육을 찾게 된다는 것은 그간의 대입을 통해 숱하게 증명돼왔다. 

물론 변수는 있다. 2019학년 논술 선발인원을 지켜봐야 한다. 상위 대학들이 전형계획을 통해 논술을 유지하거나 축소하는 계획을 내놓은 상황이지만, 논술고사 난도 관련 바뀐 대입풍토로 인해 논술을 신설하는 대학이 나올 수도 있다. 논술 신설 대학이 나온다면 논술 전체 선발인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대선후보들이 논술폐지와 마찬가지로 공약으로 내건 교육위원회를 통해 논술폐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교육 전문가는 “현재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은 교육위원회 설치를 공언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는 교육정책에 피로감이 강한 현실을 고려, 백년지대계로 여겨지는 교육정책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초정권적인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소한 10년 단위의 교육정책이라도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한 후 함부로 변경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 교육위원회의 실체다. 교육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얘기하면서 대선후보들이 논술 폐지,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정책결정기구로 자리잡게 될 교육위원회를 통해 논술 폐지 여부를 결정토록 하는 것이 논란없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사전 예고제.. 올해 폐지 결정해도 2021학년 적용>
교육계의 신중한 대처를 당부하는 목소리와 별개로 이대로라면 논술전형 폐지란 결론에 다다를 것은 볼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학생/학부모 등 수요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부터 논술을 통해 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되는지가 관심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현실화돼 논술전형이 폐지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현재 대입에서는 ▲교육당국이 중3 11월말(3년3개월 전)까지 대입전형 정책의 큰 틀을 공개하는 대입정책을 발표한 후 ▲대교협이 고1 8월말(2년6개월 전)까지 대입정책을 바탕으로 전형계획의 작성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발표하면 대학이 ▲고2 4월말(1년10개월 전)까지 전형계획 ▲고3 4월말(10개월 전)까지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3년 예고제’가 실시되고 있다.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을 부여, 정책변화가 수험생들에게 가져다줄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이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다. 

대입 사전예고제의 시행을 고려하면, 누가 대권을 잡든 논술 폐지는 이르더라도 2021학년에나 적용가능하다. 한 대학 관계자는 “사전예고제 적용을 고려하면, 올해 당장 대선 이후 논술폐지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2021학년에나 논술이 폐지될 수 있다. 이미 대입 레이스에 뛰어든 현 고1들이 논술폐지의 적용대상이 돼서는 곤란한 때문이다. 현재 고교 재학중인 학생이라면 당장의 변화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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