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열의 교육 돋보기]

#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처음 보는 학생이 인사를 합니다. 아는 학생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그냥 목례로 받아줍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또 다른 학생이 인사를 다시 건네오자 ‘이건 뭐지’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무표정하게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시간을 기다리거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며 같이 동승했던 사람들에게 무심하게 대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어쨌든 하루를 기분 좋게 열었던, 좋은 기억입니다.

# 임시로 사용하는 사무실 앞에 청소기소리가 요란합니다. 기사를 보다가 화장실을 가다 마주친 청소원 아주머니가 청소기를 끄고 다가옵니다. 내가 낯선 사람이라서 그런가 잠시 긴장했지만 아주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됩니다. 청소기 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는지를 물어보고 지금 시간에 청소를 하게 돼 죄송하다는 얘기였습니다. 평소 서울의 일상에서 마주쳤던 청소원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피곤한 일상에 짓눌린 표정이었고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내가 먼저 ‘수고하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넨 적은 있지만 환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걸어온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요지가 청소기 소리에 방해 받지 않았느냐는 걱정이라니… 아마 직원이 아니고 용역업체에서 파견됐을 것이 분명한데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 ‘등록 마감일인 오늘 새벽까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결국 기분만 나쁘게 해드릴 것 같아 망설였지만 진심으로 감사와 사죄의 뜻을 전하고자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 면접에 임할 때 마음은 진심이었고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문제였습니다 …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수시 미래브레인특기자전형에 합격한 학생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동시합격이 돼 등록을 포기하면서 입학처로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군외대학인 이공계특성화대학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대와 함께 지원하는 경우가 많고 동시합격하는 경우 상당수는 지명도가 높은 서울대를 택하는 게 당연하지만 등록포기하면서 입학처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우수한 학생이어서 서울대와 동시에 합격했겠지만 등록포기한 대학에 감사와 함께 사죄의 뜻을 전하는 학생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비록 입학을 거절했더라도 입학처 직원을 두고두고 기분 좋게 한 사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학생부종합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믿어집니다.

이공계특성화대학인 DGIST에서 최근 20일 동안 겪은 일들입니다. 수도권에서 진행하던 자기주도학습캠프를 대구로 옮기면서 망설임이 있었지만 애초 선택의 이유는 신생학교의 시설이었을 겁니다. 사무실을 별도로 운영할 수 있어서 취재팀을 함께 데리고 갈 수 있었던 점도 이유였지만 실제 겪어본 DGIST의 학교시설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습니다. 융합의 컨셉으로 강의동과 본관을 실내로 연결하는 컨실리언스홀을 비롯해 센서로 작동하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기분 좋은 음악소리, 강의실에서 난방보다 훨씬 유용했던 공기정화시설,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따로 두어 동료와 시간을 을 아끼도록 설계된 기숙사…

하지만 하드웨어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소프트웨어입니다. DGIST는 개교 이후 처음 선발한 학생이 올해 3학년이 되는, 아직 졸업생도 배출하지 않은 신생학교입니다. 개교 3년 만에 재학생과 직원은 물론 지원학생까지 인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 학교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통상 과학고 영재학교 출신들이 많은 서울대의 공대 자연대는 물론 이공계특성화대학은 ‘수학귀신'들인 만큼 소통능력이 좀 떨어지고 남을 배려하기보다 자신을 좀더 생각하는 이기적 분위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기졸업자가 많아 나이 어린 학생도 섞여있는 가운데 이기적일 수 있는 학교 분위기를 3년 만에 바꾼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억지로 외부인들을 만나면 인사하라고 주입했다면 나올 수 없는 편안한 웃음 때문이었겠지요. 학생부종합이 만든 분위기 위에 교수와 직원들이 서로 끊임없이 집단무의식을 갈고 닦게 한, 무언가 동인이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캠프 동안 이뤄진 정시 결과 역시 수요자들이 이미 학교의 잠재력을 알아본 결과라는 점에서 당연해 보입니다. 모집인원(10명)이 적기는 하지만 지원자가 지난해 72명에서 올해 749명으로 10배 이상 늘었기 때문입니다. 경쟁률 역시 2015학년 7.20대 1에서 2016학년 74.90대 1로 폭등했지요. 한파경보가 몰아친 올해 겨울 비슬산 자락 아래의 기억이 아직도 따뜻한 건 그 노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면을 빌어 학교 관계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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