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 “대학 평가준거와 고교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역량 내용 맞추는 노력”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자주적이고 창의적이면서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의 인간상을 추구한다.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과교육을 포함한 학교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은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 여섯 가지다. 이러한 역량을 고교 교육과정을 통해 기르게 되는데, 고교 교육과정은 교과 180단위, 창의적체험활동 24단위, 모두 204단위로 편성돼 있다. 교과영역이 88.24%, 창의적체험활동영역이 11.76%를 차지한다. 88%를 넘는 교과활동, 즉 수업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는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대학이 주목해서 살펴야 하는 것도 당연히 교과활동이어야 하고, 이 교과활동을 통해 길러진 여섯 가지 역량을 통해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학생이 교과활동을 어떤 자세로 임했고 어떤 내용으로 채워 어느 정도의 성취를 보였는지에 대한 기록이 대입전형에서 보다 중요하게 평가자료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고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학생 교사 모두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셈이 된다.

 

 

▲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그러면 교과활동(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교육과정 편제의 1단위는 50분을 기준으로 하여 17회를 이수하는 수업량이다. 과목의 기본 단위 수는 5단위이며, 과목별로 1단위 범위 내에서 증감 운영이 가능하고, 가능한 한 한 학기에 이수하도록 돼 있다. 교수학습계획서를 작성할 때도 이를 감안해 수업진도를 조절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 한기에 최소 5단위가 보장된 과목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기본 단위를 5단위로 한 것은 4단위를 교과 내용으로 설정하고 나머지 1단위(50분씩 17시간)를 적극적으로 학생참여수업으로 유도하려는 의도이다.

서울대는 교육과정 편성에서 사회 3과목+과학 4과목 또는 사회 4과목+ 과학 3과목 형태로 이수하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대부분 고교가 이 정도는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고교는 인문/사회계열에서 과학을 10~12단위로 편성한다. 소위 인문계 학생의 경우 과목당 3단위 내지 4단위 이하로 수업한다는 얘기다. 자연계열 학생들보다 관심이 소홀하고 어려워할 수 있는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시수는 적으니 따라가기 버겁고 흥미는 더 떨어지게 된다. 사회교과는 더 심각하다. 대체로 2~3단위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사회교과 선생님들은 교사 한 명이 심하면 4개 과목을 학기당 수업하기도 한다. 사실상 수업 준비하고 진도 나가기에 급급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생 참여형의 수업, 과정상의 누가기록 및 평가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다양한 시도를 통한 역량강화수업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내세우는 역량이 길러지기 위해서는 수업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현재 보여지는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은 애초부터 다양한 수업(토론, 발표, 팀프로젝트 수행 등)이 쉽지 않게 짜여 있다. 수행평가(과정평가)도 수업 이외의 시간에 할 수밖에 없다. 수행평가가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형태로 전락하고 학생 이외의 요인들이 작용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수업 중에 나타난 학생의 특성이나 특기할만한 기록은 학기말이나 학년말에 쓸 수밖에 없고, 꼼꼼하게 누가기록해 놓지 않는다면 학생들에게 기록할 거리를 적어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과정이 되려면, 수업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런 수업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 교과의 이수단위를 기본시수인 5를 가능하면 맞출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교과활동(수업) 이외의 논문, R&E, 인재상 등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학기당 평가도 대체로 지필평가와 수행평가가 각각 70:30 정도로 진행된다. 학교의 형편과 학급당 학생인원, 교사 1인당 수업해야 할 교과목 수와 담당해야 할 학생인원이 다양한 상황에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평가의 중심을 수행평가에 두었으면 한다. 수행평가가 최소한 50%를 넘어선다면 교사의 평가권이 훨씬 강화될 것이고, 평소 수업에 대한 참여와 발표, 토론, 과제수행, 팀프로젝트 활동 등에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훨씬 유리해진다. 수행평가 비중이 커지면 수업의 변화는 훨씬 빠르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교사 혼자 강의하는 수업의 형태만큼이라도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평가의 공정성을 뒷받침할만한 평가기준안 마련이 필요할 텐데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물론 행정업무경감 노력이 이뤄지고 있고 행정실무사를 따로 두는 시도들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실질적인 업무경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게 문제다. 지난 한 해 동안 학교에 접수된 공문을 보니 4063건이었다. 월 평균 339건인데다 행정실무사가 처리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공문게시에 올라온 것들과 내부 메신저로 오는 것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아진다. 수업과 상담,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행정업무경감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대입전형도 학생부전형이 대세가 됐다. 대학이 요구하는 전형내용이 제각기라는 게 문제다. 고교나 학생, 학부모입장에서 대응이 쉽지 않다. 게다가 학생부와 자소서, 추천서 등을 통해서도 대학이 요구하는 평가준거가 너무 다양하다. 교과활동을 통해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역량수업이 학생부를 통해 기록됐다면 입학사정관들은 그 내용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전형을 진행하는 게 맞지 않을까? 대입전형에서 다양하게 내세우는 평가준거들이 고교 교육과정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방향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이제 대학들의 평가준거들과 고교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역량의 내용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