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 한뜸 한의원 원장

‘나 때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젊은이들은 ‘꼰대’라고 부른단다. 

지난 주말 ‘나 때는’을 아주 여러 번 말하신 80대 중반의 한의사 선배를 만났다. 일부러 찾아뵈었다. ‘나 때는’이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황치혁 한뜸 한의원 원장
/황치혁 한뜸 한의원 원장

“내가 임상을 시작했던 1960년대 말엔 한의사들이 보는 환자들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는 말로 시작해서 50년 전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약간 지루하기도 했지만 “반세기 만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 기회였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50년 전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았단다. 지금은 환갑인 분들을 농담으로 청년이라고 부를 정도이지만 그 때는 환갑잔치는 꼭 할 정도로 수명이 짧은 시절이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처럼 70세 즉 고희까지 사는 분들이 드물었다. 그래서 치매도 거의 없었다. 그 때는 ‘노망’이라고 했는데 80전후까지 사시는 분들이 적었기에 치매환자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관리하는 것도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단다.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인 농어촌, 소도시들에선 치매노인이 사라지기 전에 동네사람들이 집으로 모시고 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참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 자녀의 수가 평균적으로 4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많은 집은 자녀의 수가 8~9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단다. 아들선호도 뚜렷해 동네마다 아들을 낳으려고 딸만 5명이상 낳다가 막내로 아들을 낳은 집이 있었다. 지금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캠페인이 벌어지던 ‘베이비 붐’시기였다. 

출산율이 높고, 수명이 짧다보니 어린아이들은 많고 노인이 적어 ‘기능을 올려주는 한의학의 장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는 설명도 하셨다. “지금은 체력이 떨어지고, 오장육부의 기능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만큼 한의학이 국민건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50년 전에 보약을 드셨던 분이라면 현재의 한약 가격이 얼마나 싸진 것인지 잘 알 것”이라며 “현재의 한약 가격 수준이라면 대중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60년대에는 보약을 한 제 먹으려면 공무원 한 달 월급 가지고는 부족했을 정도로 비쌌단다. “공진단을 100환 먹으려면 시골의 초가집 정도는 팔아야 먹을 수 있었다”며 그 당시엔 한약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셨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약재를 재배하는 경우가 적었고, 대부분 채취한 것을 사용했단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나지 않는 약재들을 수입해오는 과정에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약방의 감초라는 감초도 우리나라에 없었고, 이제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계피도 중국 남방이나 베트남에서 구해오는 약재이니 쌀 수가 없었다.

병의 종류도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고 한다. 여름철의 경우 상한 음식으로 인한 배탈, 설사 환자가 많았다. 냉장고가 대중화된 시기가 1970년대 중반이었는데 60년대 말에는 냉장고가 있는 집을 찾기 드물 정도였단다. 냉장고 없이 음식을 보관하다 보니 음식이 잘 상했고, 그 결과 여름철에 복통, 설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단다. 한약을 복용할 때에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피하라고 하는 이유도 상한 고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특히 잔치 집에 가서 돼지고기를 먹고 집단으로 설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여름철엔 돼지고기를 조심하라고 강조했단다.

한의학 이론에 따르면 냉증인 사람에겐 돼지고기가 나쁠 수 있고, 상열되는 사람에게 닭고기가 맞지 않을 수 있어서 한약 복용 시에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피하라고 설명해왔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소고기는 숙성을 시켜서도 먹을 정도로 상온 보관 시간이 길지만,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그렇지 않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이런 고기들을 먹고 설사를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한 두 달치 월급 정도의 비싼 한약을 먹고 있는데 설사를 했다면 자칫 환자와 한의사가 얼굴을 붉힐 수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냉장고가 없는 집은 없다. 한 집에 김치냉장고까지 3대의 냉장고를 가지고 있는 집들도 있다. 여름철에도 음식이 상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상한 음식으로 인한 복통 설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거꾸로 찬 것을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한약의 처방구성도 많이 달랐다. 60년대엔 보약을 먹으면 얼굴이 뽀얗고, 살이 통통해져야 했다. 밖에서 노동일을 하지 않아서 얼굴이 허옇고, 잘 먹고 마음 편하게 지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이 ‘부의 상징’인 시절이었다. 그래서 보기약과 보혈약이 합쳐진 십전대보탕이나 노동을 많이 해서 생긴 몸살을 치료하기 위한 쌍화탕 등을 많이 처방했던 시절이었단다.

지금은 한약을 먹고 살이 찌면 환자들이 아주 싫어한다. 약을 지으러 와서 “살이 찌는 약이라면 복용하지 않겠다”고 확인하는 환자들도 많다. 거꾸로 한약하면 다이어트 약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다.

노선배님은 생활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밤 시간의 활동이라고 지적하셨다. 60년대에는 밤 9시가 되면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농촌에는 전기불이 들어오지도 않았고, 전기가 공급된 도시에도 전기 불 아래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TV가 널리 보급된 70년대 중반이 되어서도 10시가 넘어서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요즘엔 컴퓨터 게임과 유튜브 스마트폰 등으로 인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몸은 10시 이전에 자는 몸으로 만들어졌는데 실제론 12시 넘어서 자는 생활을 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문제”라며 “이렇게 늦게 자는 생활을 하면 신장의 정(精)이 고갈된다.”고 말했다. 한의학에선 정신노동을 과하게 해도 신장의 정이 소모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늦게 자고, 정신노동을 많이 하는 현대인들에겐 신장의 정을 보충해주는 육미지황탕과 같은 약을 잘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으로는 노인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잘 풀어야 한의학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누구나 이야기하는 치매뿐만 아니라, 영상매체에 노출이 많은 눈의 건강과 면역력 상승 등 한의학이 우위에 설 수 있는 분야가 많단다. 

 ‘나 때는’부터 미래의 의학까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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