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잘못되어도 답만 맞히면 된다는 결과중심주의”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2022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이 국내 학회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관련 학회와 전문가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받겠다는 취지다. 소송인단은 “2014학년 수능 당시 생명과학 문항 오류에 대해 이의제기가 있었을 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관련 학회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검토를 요청하여 학회의 의견을 청취하고 정답을 결정하고 이를 공개했다”며 “그러나 올해 2022학년 수능에서는 어떤 학회에 어떻게 문제 검토를 요청했는지, 또 어떤 답변을 어떻게 받았는지 밝히지 않고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결정을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질의서를 보낸 학회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생화학분자생물학회 한국분자-세포 생물학회 한국유전학회 대한의학유전학회 한국발생생물학회 한국생태학회 한국생물교육학회 한국과학교육학회 한국생물공학회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한국세포생물학회 등이다.

소송인단은 “평가원은 정답 결정의 근거로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라고 했다”며 “문제가 잘못되어도 답만 맞히면 된다는 결과 중심주의의 이번 평가원의 결정은 풀이과정도 중요하다고 배워왔던 학생들에게 절망감을 주고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인 청년들에게 죄를 짓는 안타까운 사태”라고 지적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오류를 인정해달라는 게시글에 1600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청원자는 “문제에 제시된 조건에 해당하는 집단은 특정 털 색, 특정 털 길이를 가진 동물의 수가 음수로 나온다”며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평가원은 개체 수를 구하지 않아도 답을 특정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음수가 나오는 집단을 정답으로 인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2수능 과탐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오류를 두고 소송을 준비중인 수험생들이 관련 학회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2022수능 과탐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오류를 두고 소송을 준비중인 수험생들이 관련 학회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제시문에서 모순 발생.. 문제 성립 안 돼’>
생명과학Ⅱ 20번 문제를 두고 교육 전문가들은 제시문에 나온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문제에서 개체 수가 음수로 나오는 오류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주어진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종로학원 김연섭 과학팀장은 “제시문 내용에서 집단 Ⅰ이 멘델 집단이라고 가정하면, 마지막 조건 ‘Ⅰ과 Ⅱ 각각에서 B의 빈도는 B의 빈도보다 크다’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은 기각된다. 따라서 집단 Ⅱ가 멘델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집단 Ⅰ의 개체 수를 구해보면 유전자형이 B*B*인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모순이 된다. 결국 문제의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제기한 수험생은 “2015수능의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유형에서는 사람 수는 음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 수가 음수인 집단은 답에서 제외되고 양수인 경우만 정답이 된다는 논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도 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교육과정에서 배울 때 위와 같이 개체수가 음수인 경우는 풀이에서 제외하라고 배웠기 때문에 올해도 그대로 적용했고 그 결과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며 “출제의원 의도대로 그 논리가 맞다면 2015수능과 올해 2022수능은 모순이 되며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틀린 답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과학적으로도 개체수가 음수로 존재하는 집단은 성립하지 않고 교육적으로도 학생들이 배운 범위내에서는 음수에 해당되는 집단은 정답에서 제외하여 왔기 때문에 이 20번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되므로 명백한 오류”라고 말했다.

<2014수능 세계지리 사태 재현되나>
과거 수능에서도 수험생의 소송제기로 인해 정답처리된 선례가 있어 이번 소송전의 결과도 귀추가 주목된다. 2014수능에서는 세계지리 8번 문항이 출제오류로 판결나면서 전원 정답처리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세계지리 성적이 재산정되면서 출제오류로 인한 피해학생 629명이 다음해 대학에 추가 합격했다.

동일한 조건 오류 문항이 EBS 교재에서도 있었고, 이에 EBS가 올해 9월15일 오류를 인정해 문제를 수정한 사실이 다시 주목받으며 논란의 불씨가 커지는 양상이다. 종로학원 이종원 생명과학 강사는 “2022학년 생명과학Ⅱ 20번 문제는 조건 불완전으로 문제성립이 불가능한 문제”라며 “올해 EBS 수능완성 107페이지 8번 문제에서도 발생해 EBS에서는 오류를 인정하고 문제를 수정해 정오표를 수험생들에게 고지했다”고 설명했다. “EBS 교재를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수험생 입장에서 이 부분의 오류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사안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명과학Ⅱ는 7868명이 접수해 과탐Ⅱ 과목 중에서 접수자가 가장 많은 과목이다. 2022수능 과탐Ⅱ 과목별 접수자는 생명과학Ⅱ 7868명, 지구과학Ⅱ 4318명, 화학Ⅱ 3982명, 물리학Ⅱ 3711명 순이다. 생명과학Ⅱ를 응시한 학생은 화학Ⅰ과 복수선택한 경우가 가장 많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종로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공개된 수능 자료로 추정 시 2017학년 43.3%, 2016학년 46.4%, 2015학년 46.9%로 화학Ⅰ과 생명과학Ⅱ의 선택조합이 가장 많았다. 2018학년 이후는 수능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 임성호 대표는 “화학Ⅰ와 생명과학Ⅱ 조합의 학생들은 최상위권 학생 구간에서는 학생들이 더 밀집되어 점수 경쟁이 치열한 상황의 발생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생명과학Ⅱ 선택 학생들의 경우 과탐Ⅰ+과탐Ⅱ 조합으로 반드시 응시해야 하는 대학인 서울대 KAIST UNIST 등에 지원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필수 응시가 아니더라도 한양대, 단국대 의예/치의예/약학, 지스트, DGIST 등에서는 가산점을 부여한다. 과탐 중에서도 생명과학Ⅱ를 특정해 가산점을 주는 곳으로는 가톨릭관동대 의예가 있다. 논란이 된 20번 문제는 EBS 집계 기준 정답률이 24.6%로 나타난 상태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