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믿을 학생부 만드나’.. ‘진학지도 상담은 언제하나'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올해부터 강화된 학생부기재요령이 코로나19사태와 겹치면서 고교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고교 학생부의 ‘교과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서 기초교과/탐구교과 기록 범위를 특정 학생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 작성하도록 해 교사들의 기록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사태가 더해졌다. 올해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해 등교개학이 늦춰지고 원격수업이 진행됐다. 교사들은 온라인수업 자료를 만드느라 업무가 과중해진 상태에서 숨가쁘게 기말고사까지 달려온 상황이다. 

세특에서 기초교과/탐구교과를 모든 학생에 대해 작성해야 하면서 교사들은 많게는 300명에 달하는 학생의 세특을 작성해야 하게 됐다. 수업시간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은 학생들의 세특까지도 일일이 작성해야 하다보니 ‘못믿을 학생부’가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고교 교사는 “시간부족은 둘째 치더라도, 안 써도 될 얘기를 억지로 학생부에 써야 해 ‘소설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서류 블라인드 시행을 위한 학생부 블라인드 작업 업무까지 더해졌다. 각 고교에 자동 블라인드 처리가 되지 않는 항목을 수작업으로 지우도록 했기 때문이다. 학교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모두 정정해야 한다. 늦어진 입시일정에 맞춰 정상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모든 학생의 학생부까지 수정해야 해 업무가 몰릴대로 몰렸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올해 코로나 사태에다, 모든 학생 세특 기재, 서류 블라인드 수작업 등이 겹치면서 고교 현장에서는 업무과중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올해 코로나 사태에다, 모든 학생 세특 기재, 서류 블라인드 수작업 등이 겹치면서 고교 현장에서는 업무과중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숨돌릴 틈 없이 300명 세특작성”>
개정된 학생부 작성/관리지침에 의하면 ‘기초교과(군)’과 ‘탐구교과(군)’ 등은 모든 학생으로 확대 적용하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대입공정성 강화방안’에 따른 조치다. 바뀐 기재지침에다가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등교개학이 미뤄지고 원격수업으로 대체하면서, 현장 교사들은 갑자기 온라인수업을 준비해야 하게 됐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대대적인 원격수업 앞에 각 고교 교사들은 재택근무도 반납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던 상황이다.

학사일정도 숨가쁘게 이어졌다. 올해 학사일정은 기존 4월말~5월초 즈음 실시하는 중간고사가 고교에 따라 6월초중순으로 옮겨졌고, 당초 7월초 치르는 기말고사는 7월말~8월초로 이동했다. 학생부 기재 마감일인 9월16일이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다 아직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은 고교도 있다. 

고교 현장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기말고사를 마무리해가는 이 시점에서 교사들은 이제 학생부 세특 작성을 두고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 서울지역 교사는 “올해 코로나가 터지고 온라인 수업 만들고 바쁘다가 이제 기말고사 끝나고 나서 학생 한 명 한 명 다 써야 하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다. 어떤 교사는 300명 가까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학생 세특 작성 ‘못믿을 학생부’ 만드나.. 고개드는 ‘현실론’>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모든 학생에게 세특을 기재하기로 한 지침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모든 학생들의 세특을 동일하게 기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는다. 교사가 교과 세특을 공란으로 남겨둔 원인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고교 관계자는 “학생부의 교과별 세특은 과목의 학교수업을 담당했던 교사가 학생의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에 대해 기재하는 부분이다. 학종의 정성평가에 반영되는 요소인 만큼 중요성은 인정되지만 교사들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작성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가장 대표적이다. 교사의 수업 자체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 세특에 기재할 내용 자체가 없을 수 있다. 일괄적으로 비교한 자료만을 근거로 일반고 교사들이 일부러 학생부 세특을 기재하지 않은 것처럼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고교 교사는 “교과 세특이 중요한 학종의 평가요소인 만큼 교사 입장에선 웬만하면 상세하게 기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다만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의 세특을 작성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생은 세특에 다양한 내용을 기재할 수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의 경우 마땅한 내용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라며 “학생의 미래와 결부된 만큼 충실하게 채워 넣으려 하지만, 실제 학생이 수업에 참여한 사례가 부족해 내용적인 차별화가 어렵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학생마다 차이 없이 비슷한 내용으로 교과 세특을 기재할 경우엔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학종의 평가방향과 맞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 외에도 다른 서류업무에 대한 부담 등 교사마다 모든 학생들의 교과 세특을 기재하기 힘든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본다. 단순히 미기재했다는 사실만 강조할 경우 오히려 문제해결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라고 전했다.

‘학생의 활동이 불성실했다면 공란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해당 내용을 사실대로 쓰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학부모가 나이스를 통해 교사의 기재내용을 모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고교 교사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 것은 어떻게 써야 하나. 그렇다고 부정적인 표현을 쓸 수도 없다. 학부모가 나이스 통해서 보고 있는 내용이니 솔직하게 쓸 수 없다. 있는 대로 쓸 경우 뒤집어 질 것 아니냐”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불성실한 학생들의 학생부 역시 어떤 내용이라도 기재해야 하는 상황에서 ‘못 믿을 학생부’가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고교 교사는 “수업시간에 참여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써줘야 하나. ‘자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음’이라고 쓸 수도 없고 문제가 심각하다. 세특은 그야말로 ‘특기사항’을 쓰는 것이다. 특기사항이 있을 만한 학생이 있고, 없는 학생이 있다. 담임교사의 경우 여기에다 행동발달사항까지 써야 해 업무가 더욱 과중하다”고 말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 오히려 학생부 하향평준화와 기재부실로 연결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 소장은 “기록 범위를 특정 교과목과 특정 학생에게만 국한하지 않도록 하여 교사들의 기록 부담이 더 커졌다”며 “예체능 교사를 제외한 모든 교사들이 전체 학생의 세특을 기록하게 되면 소위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이 많아질 가능성도 높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줄어든 수업시수로 수업활동내용이 적어져 이에 대한 기록의 근거 마련이 결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학생부의 부실 기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서류블라인드’ 학생부 수작업까지>
과중한 업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도입되는 서류 블라인드 시행을 위한 학생부 블라인드 작업 역시 각 고교에 수작업이 지시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7일 공문을 통해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출신 고교의 후광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고교 정보 블라인드 처리를 추진하고 있으며, 고교 정보 블라인드 처리를 위한 학생부 정정을 추진하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교육부의 공문에 의하면 대입 전형자료 생성/전송 시 일괄 자동 블라인드 처리되는 항목은 인적/학적사항(학생 성명, 주민번호, 학교명) 수상(수여기관), 봉사(주관기관/장소)다. 각 고교는 자동 블라인드 처리가 되지 않는 항목을 정정해야 한다. 

현재 고3 재학생을 대상으로는 1,2학년 서술형 항목 등 기재내용을 9월11일까지 정정해야 한다. 고2 재학생의 경우 1학년 서술형 항목을 확인해 12월11일까지 정정한다. 검토해야 할 항목은 △수상경력의 수상명 △창의적체험활동의 특기사항(프로그램명, 동아리명, 봉사활동 등) △교과학습발달상황의 과목별/개인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이다.

학교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학교명(재단명) 별칭 등은 ‘교내’ 또는 ‘OO’으로 정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상명이 ‘백두산외고 토론대회’인 경우 ‘교내/OO고 토론대회’로 정정하는 식이다. 재학 학교명뿐만 아니라 학교명의 일부를 활용한 별칭 및 타 학교명도 정정해야 한다. 

예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상경력(수상명)의 경우 ‘백두산외고토론한마당’은 ‘교내 토론한마당’으로, ‘백두산 공로상(백두산 진행요원)’은 ‘OO공로상(OO 진행요원)’등으로 정정한다.

교과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경우 ‘백두산외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생략)’의 경우 ‘교내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생략)’의 식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상황의 경우 ‘백두산 스포츠한마당에서 단체 줄넘기, 이어달리기’는 ‘교내 스포츠한마당에서 단체 줄넘기, 이어달리기’로 수정한다. ‘백두산외고 총학생회 간부학생 수련회’는 ‘교내 총학생회 간부학생 수련회’로 바꾼다. 

학교명을 활용한 명칭 역시 마찬가지다. ‘백두골 축제에서 학생들의 공연을 보고’는 ‘교내 축제에서 학생들의 공연을 보고’ 식으로 고쳐야 한다. 학교 약칭인 ‘BDS 수학축제’는 ‘교내 수학축제’로 바꾼다. 

동아리명도 바꿔야 한다. ‘백두산 태권에어로빅’은 ‘OO태권에어로빅’으로, ‘백두산배드민턴반’은 ‘교내배드민턴반’으로 바꾸는 식이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백두산외고 환경정화활동’은 ‘OO고 환경정화활동’으로 바꿀 수 있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고 특히 기타를 잘 다루어 백두산 그룹사운드반의 일원으로’는 ‘음악에 대한 관심과 조예가 깊고 특히 기타를 잘 다루어 교내 그룹사운드반의 일원으로’로 바꾸어야 한다.

바꿀 시 유의할 사항은 학교정보를 익명화하는 'OO'표시를 영어 알파벳 ‘O' 또는 숫자’0'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정보를 익명화할 시 특수문자는 사용해선 안 된다.

절차는 2020학년 담임교사가 정정 요청 공문을 객관적 증빙자료로 활용해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정정하는 식이다. 전출입 학생의 경우 현 소속교 담임교사가 블라인드 처리 요청 공문을 근거로 정정하며, 학업중단자는 학적 회복 시 담임교사가 기 기재된 학생부 내용을 정정한다. 2020학년 현재 졸업생, 휴학, 자퇴, 퇴학 학생의 경우 정정 대상에서 제외한다. 

<‘진학지도 상담은 언제 하나’>
고3 담임은 학생부 업무뿐만 아니라 수시원서접수를 앞둔 진학지도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입시일정이 대거 밀리면서 고3의 입시부담이 더욱 커진 상태다. 정상적인 일정이라면 3월2일 예정이었던 등교개학이 두 달 이상 미뤄졌기 때문이다. 대면수업이 늦어지다보니 담임교사와의 입시상담도 늦춰졌다. 여느 때보다 늦게 시작된 입시상담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 서둘러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대입 수시원서접수는 9월23일부터 28일까지다. 수시지원전략을 세우기 위한 상담과 자소서 지도도 필요한 시기다. 한 고교 관계자는 “늦어진 입시일정에 맞춰 정상적으로 처리하는 것만도 버거운 상황에, 모든 학생의 학생부를 수정하라는 것은 과중한 업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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