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의평원' 심층면접 기준 삭제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뒤늦게 알려진 인하대 의예과 남학생들의 집단 성희롱 징계로 의대입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011학년 고려대 의대생 동기 성추행 사건, 2014학년 성추행 고대생 성대의대 입학 사건으로 입학전형 개편 요구가 높아진 성적중심 의대입시는 더 이상 변화압력을 외면하기 힘들 전망이다. 정량평가가 아닌 학생 개인의 특성과 잠재력을 고려한 정성평가인 학종이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대입 중심전형으로 자리 잡았지만 의대입시에선 여전히 인성검증이 전무한 정시 비중이 지배적이다. 교육계는 그간 지적해왔던 성적중심 선발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유사한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의대생뿐 아니라 2011년 강남 산부인과 의사의 내연녀 시신 유기사건, 2015년 조선대 의전원생 여자친구 감금 폭행사건 등 연이은 사건은 의대입시는 물론, 의사 자격검증 논란까지 이어졌다. 지난달엔 한 의원 원장이 향정신성 의약품인 프로포폴을 투여한 뒤 환자가 숨지자 자살로 위장,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소식이 알려져 파장이 일기도 했다. 소수 개인의 일탈로 보기엔 그치지 않는 문제들이 전문가들의 분석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의대는 환자와 직접적인 접촉을 하며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예비의사를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타 전공들보다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자연계열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의대는 학종중심 대입지형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올해 학종 비중을 26.3%로 늘리며 2016학년 16.9% 대비 크게 확대됐지만 단일전형에선 여전히 정시 비중이 37.1%로 높다. 인성검증이 이뤄질 수 없는 또다른 전형인 논술 비중 10%를 합하면 학종시대인 2018학년에도 절반에 가까운 인원을 별다른 인성검증 절차 없이 선발하는 셈이다. 여타 대학 전형과 비교해 수시에서 수능최저를 넓게 적용하는 탓에 미선발로 인한 수시이월규모까지 고려하면, 실제 정시선발 인원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성적중심 입시구조를 지적하며 서울대 다중미니면접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대 의대 다중미니면접은 한시간여동안 다섯 개의 면접실을 돌며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거나 제시문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3학년부터 5년차에 접어든 서울대 다중미니면접은 의학계열에 필수적인 인성과 적성 등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탁월한 통로로 자리잡았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평이다. 

뒤늦게 알려진 인하대 의예과 남학생들의 성희롱 징계로 의대입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011학년 고려대 의대생 동기 성추행 사건, 2014학년 성추행 고대생 성대 재입학 사건으로 입학전형 개편 요구가 높아진 성적중심 의대입시는 더 이상 변화압력을 외면하기 힘들 전망이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인하대 의대생 집단 성희롱.. 같은과 여학생 성적대화 소재삼아 '징계처분'>
8일 인하대와 인천지법에 따르면 인하대 의예과 남학생 21명은 지난해 학교 인근 식당과 축제 주점에서 같은 과 여학생을 소재로 삼아 수 차례 음담패설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측은 지난달 학생 상벌위원회를 열어 가해학생 5명에게 무기정학, 6명에게 유기정학 90일의 징계를 내렸다. 나머지 2명은 근신, 8명은 사회봉사 처분이 내려졌다. 이들은 올해 2월 의예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도 신입생 후배에게 16학번 여학생 중 성관계를 하고 싶은 사람을 골라보라는 등 상습적인 성희롱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올해 3월 학생회 조사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으나 징계가 내려지기까지 피해 여학생들이 가해 남학생들과 4개월간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불편한 상황까지 이어졌다. 

징계 처분이 내려진 가해학생 중 10명이 학교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징계처분 효력정지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처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심화됐다. 가해 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거나 평가한 게 아니라 농담조로 한 것”이라며 성희롱 사실을 부인했다. 가해 남학생들의 소송 소식이 알려지자 의대 건물에는 피해 여학생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대자보가 붙었다. 성희롱 발언 내용과 함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수 있도록 학생들과 사회의 관심을 지지하는 내용이 대자보에 담겼다. 대자보를 통해 “가처분 신청이 인정되면 가해자들과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피해 학생들은 수치심과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왔음은 물론이고 가해자들이 돌아오면 혹시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심정을 호소했다. 인하대 관계자는 “의예과의 성희롱 내용을 접수한 뒤 조사 후 징계처분을 내렸다”면서 “피해학생 인권보호를 위해 2학기부터 수업을 분리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의대입시의 개편 압력이 거세질 전망이다. 의대입시는 지난해 고려대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가 성균관대 의대에 재학 중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미 한 차례 논란을 샀다. 지난 4월, 의대 본과 4학년생 3명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해 3명 모두에게 실형이 선고된 2011년 고대 의대 성추행 사건의 가해가 중 1명이 성균관대 의대에 정시를 통해 입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가해자 중 한 명은 징역형을 살면서 수능을 준비해 지방 소재 의대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죗값을 치른 터라 법적 제재는 불가하지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제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무성했다. 성대 의대와 의전원 학생들은 제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성명서를 발표, 목소리를 높였다. 성명서에는 ‘의대 입시에서 성적 이외의 가치들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교육계는 올 것이 왔다며 논란을 계기로 의대 입시의 대대적인 개편을 주장했다.

성적중심의 의대입시가 계속된다면 유사한 사건이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교육계의 경고가 사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교육계가 의대입시 개편방향의 무게중심을 인성평가에 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의대가 시행 중인 다중미니면접을 수시에 전면 도입하고 정시에서 인성면접을 도입해 예비의사 선발에 보다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대 성추행 사건 가해자가 성대 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시를 통해 입학했기 때문이다. 면접이 포함된 정시라면 면접에서 과거 이력을 물어 점검할 기회가 있는 데 더해 지원자가 해당사실을 숨긴 경우 입학취소 처분도 가능한 것과 대조된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동일한 사건이 우리 대학에서 일어났다 하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학종 내지는 서울대가 실시하고 있는 면접이 포함된 정시가 아닌 이상 사실상 제재 조치가 전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18의대입시, 학종확대에도 불구 ‘여전히 부족’>
의대입시는 최근 3년간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2016학년 수시 55.6%에서 2017학년 57.8%, 2018학년 62.9%로 해마다 비중이 늘고 있지만 올해 상위17개대학의 수시 비중이 처음으로 70%를 돌파한 것을 감안하면 여전한 부족하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학종에 초점을 맞추면 한계가 더 드러난다. 문제가 된 인하대 학생들이 입학한 해인 2016학년 의대 학종은 16.9%에 불과했다. 2017학년 17.2%로 소폭 증가하다가 올해 26.3%(모집 667명/정원 2533명)로 확대돼 처음으로 교과비중을 눌렀다. 다만 학종 역시 상위17개대학의 학종 비율 38.8%와는 거리가 있다. 학종에서 수능최저를 폐지하는 대입흐름과 달리 의대 학종은 수능최저 적용 비중도 여전히 높다. 667명 가운데 42.2%인 448명 모집이 수능최저를 적용한다. 기본적인 학업수학능력 확인을 위해 수능최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수능최저 등을 이유로 발생하는 수시이월인원이 정시선발로 이어진다면 실제 정시 선발규모는 37.1%보다 높아질 예정이다.

의대가 상위17개대학의 학종규모를 좇는 모양새이지만 일각에선 오히려 의대입시의 학종비중을 상위17개대학 평균보다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하긴 하나 95%이상의 합격률을 보이고 있어 의대입학이 곧 의사 자격증 획득으로 이어지며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 특성상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탓이다. 특히 의사들의 성범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환자와의 신체접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단일전형으로 비교하면 논술과 정시를 합한 성적중심 입시구조는 더욱 뚜렷하다. 논술성적과 학생부교과성적, 수능최저 등을 합산해 선발하는 논술 역시 인성 검증수단이 전무한 ‘깜깜이’ 전형이다. 2016학년은 정시44.4%와 논술 9.7%를 합해 절반 이상이 성적중심이었으며 학종은 16.9%로 정시의 3분의 1수준에 머물렀다. 2017학년도 정시42.2%와 논술11.3%로 절반이상의 규모를 유지하다가 올해는 정시37.1% 논술10.0%로 성적중심 규모를 절반 이하로 축소했다. 2018학년 학종 26.3%는 정시와의 간극을 좁히고 있지만 학종중심의 입시구조라고 보긴 어렵다. 

<심층인성면접 필요성 대두.. 거꾸로 가는 의평원>
그간 예비의사 양성소인 의대 입시에서 인성평가를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선언적인 수준에 머무르거나 영향력이 낮았던 것이 현실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지난해 8월 발표한 ‘2019학년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통해 의학계열 인/적성평가 도입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발표 당시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된 의대의 성적중심 선발구조를 해결하는 초석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으나 막상 열어보니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대교협이 발표한 2019 대입전형 기본사항은 대입전형 간소화 정책에 따라 대학별로 사용하는 전형방법 수를 수시4개, 정시2개 등 최대 6개 이내로 제한하고 있지만 사범계열과 의학계열의 인/적성평가는 전형방법 수 산정에서 고려되는 전형요소에서 제외했다. 인적성평가 도입에 대한 제도상의 걸림돌을 없애면서 인성평가 도입 확대를 시사한 셈이다. 다만 인적성평가 도입을 장려하는 소극적인 대책일 뿐인 데 더해 인적성평가에 대한 공통 매뉴얼이 없고 평가방식도 대학이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인적성평가 실시를 전적으로 대학과 교수들의 노력에 맡기면서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보다 앞서 의무화된 의학계열 인증평가에서도 ‘학생 선발 시 인성평가 여부’가 도입되면서 의대 입시 변화가능성이 점쳐진 바 있다. 최근 서남대 의대 모집정지 사태로 주목된 의료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는 교육부장관의 인정을 받은 인정기관이 대학의 교육과정 운영 전반을 평가해 평가인증결과에 따라 교육부의 행/재정적 지원여부, 불이익 행정처분 등을 내리는 제도다. 고등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됐다. 의대는 6년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평가를 받게 된다. 거부하거나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됐던 평가/인증제도는 지난해 말 고등교육법시행령 개정으로 실효성을 크게 확보, 평가/인증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거부할 경우 모집정지/폐지 처분이 가능해졌다. 

주목할 점은 의평원은 지난 2주기 평가 당시 사용했던 평가인증기준을 통해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면접을 실시’하는 경우를 우수기준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심층면접을 ‘전체 면접시간이 1인당 1시간 이상인 면접’으로 규정해 현행 의대 입시에서 심층면접 우수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요소는 서울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중미니면접이 유일했다. 문제는 의평원이 의대 인성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연이어 터지는 예비의사, 의사들은 비윤리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올해 5월 개정을 통해 공개한 평가인증기준안에서 심층면접 관련기준을 삭제해 논란이 예고된다. 의대교수들로 구성된 의평원의 구조적 한계도 함께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다중미니면접.. ‘대안으로 떠올라’>
교육계 전문가들은 서울대 의대가 실시 중인 다중미니면접이 예비의사 자격논란 문제의 최선의 대안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 시간 동안 실시하는 다중미니면접만으로 지원자의 인성을 완전히 파악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고 여전히 윤리의식이 떨어지는 신입생을 선발할 여지도 있으나 안정장치로 작용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의대가 전국 최상위 선호도로 정평이 난 의대임에도 성적 중심의 입시를 포기하고 다각도의 인성검증을 위해 심층면접을 도입, 인성평가 가능성을 입증했다. 서울대 의대는 정시에서도 면접을 도입, 최상위권 의대가 선도적으로 의대 입시 개편을 이끄는 모습이다.   

대학들은 그간 인성검증의 효과를 지닌 다중미니면접의 효용성을 인지하면서도 도입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의 높은 의대진학 열기와 교수들의 미온적 태도로 성적중심 선발을 단행해온 것이 현실이다. 의대 교수들은 수능만으로 학생을 뽑아도 충분한데 왜 다른 전형을 통해 의대생을 선발해야 하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대학가 관계자는 “교수들의 인식이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아야 한다는 데 매몰돼 새로운 전형요소를 도입하는데 반대가 극심하다”며 “짧게는 3~40분, 길게는 1시간 이상 실시하는 면접을 치르기 위해선 의대 교수들의 헌신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하다. 성대 학생들의 성명서에서 나타나듯 학생들조차 성적 이외의 것들이 고려돼야 한다는 판에 다중미니면접을 적극 도입하기 위해선 의대 교수들의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다중미니면접(Multiple Mini Interview, MMI)은 이전부터 미국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던 의대의 면접형태로 여러 개의 방을 두고 수험생이 1개 방마다 8~10분 가량 면접을 치르는 마라톤 형태의 면접이다. 다중미니면접을 실시하는 대표적인 대학이 서울대 의대다. 서울대 의대는 2013학년 다면인적성 심층면접이라는 명칭으로 다중미니면접을 도입, 현재까지 다중미니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최초도입 당시 교수들이 각각의 면접실을 방문하는 형태로 진행됐으나 이후 학생들이 면접실을 도는 현재의 형태로 변경됐다. 최상위권의 관심을 쏠린 만큼 작은 틈만 생겨도 걷잡을 수 없는 사교육의 팽배로 이어지는 탓에 매년 형태를 바꾸고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학생의 생각과 선택을 평가함으로써 단순 지식 위주의 의사가 아닌 인성을 갖춘 의사를 선발한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어, 인성면접의 대표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서울대를 제외하고 국내 의대 중 다중미니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학교는 한림대와 인제대뿐이나 두 학교의 다중미니면접 시험시간은 30분으로 서울대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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