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 이전/이후 중 선택가능

[베리타스알파=박대호 기자] 서울교육청(이하 교육청)과 서울지역 22개 광역 자사고 중 20개교가 모집요강 발표시점을 목전에 앞두고 자기소개서(자소서) 제출시점을 학생의 선택에 맡기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서울교육청은 10일 2017학년 서울지역 광역자사고 입시에서 자기소개서 제출 시점을 1단계 추첨을 통한 면접대상자 확정 이전과 이후 중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경쟁률에 따라 전형방법이 달라질 수 있긴 하나, 통상 서울지역 광역자사고 전형방법이 ▲원서접수 ▲1단계 추첨(면접대상자 확정) ▲면접 순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서접수 시점부터 1단계 추첨 이후 일정기간까지를 자소서 제출시점으로 설정한 셈이다. 합의내용에 따라 올해 서울 광역자사고 20개교에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면접대상자 확정절차인 1단계 추첨 이전과 이후 중 본인의 선택에 따라 자소서를 제출하면 된다. 나머지 2개 자사고인 경문고와 장훈고는 자사고 선발권을 포기, 완전추첨으로 학생선발을 하기 때문에 이번 합의 주체에서 제외됐다.

현장에서는 이번 합의를 두고 서울교육청과 광역자사고의 힘겨루기 끝에 서울청이 완승을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청이 주장했던 원서접수 시점까지의 자소서 미제출이 끝내 관철된 모습인 때문이다. 합의내용대로라면 3월말 서울청이 자사고들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던 면접대상자 확정 후 자소서 제출이 가능해진 상황. 결국, 최초 현장에서 지적했던 허수 지원자 양산으로 인한 자사고의 선발권 퇴색문제 등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서울교육청이 자사고들과의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자소서 제출시점을 변경한 것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시행규칙에 의해 학교장에게 부여된 선발권(입학전형 실시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으며, 그간 서울교육청의 수장인 조희연 교육감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자사고 폐지’를 위한 불도저식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광역자사고교장협의회(협의회)가 한 발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끝내 서울교육청의 의사가 관철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이미 파행으로 치달아있는 광역자사고 입시가 회생하기 힘든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다만, 그간 선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음에도 광역자사고가 전반적으로 일반고 대비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교육력과 진학지도능력 등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자사고 때리기’가 교육청의 완승으로 끝난 모양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도 존재했다.

일각에서는 교육청의 의견 관철이 향후 선의의 피해자 양산과 사교육시장 확대 등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란 의견도 내놨다. 한 업계 전문가는 “자소서 작성에 드는 학생/학부모의 입시부담과 중학교 교사들의 업무부담을 덜어준다는 서울교육청의 주장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실질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학생부 기록조차 보지 못하고 추첨 일변도 내지는 추첨과 면접을 혼합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현 서울지역 자사고 입시체제에서 자소서 제출시점을 면접대상자 확정 이후로 잡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자사고 지원 시 최소한의 내신제한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소서마저 없으면, 허수 지원자가 대폭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자사고 입시를 성실히 준비해 온 수험생들이 찔러보기 식 지원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교육청은 자소서 제출 시점을 늦추는 것이 사교육 부담 경감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하지만, 시민단체의 잘못된 논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전형기간이 단축돼 자소서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게 되면, 현장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소서를 도울 수 있는 기간은 더욱 짧아지게 된다. 학교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자소서 첨삭 등에 관한 수요는 사교육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오히려 자소서 관련 사교육시장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소서를 내지 않아도 지원 가능하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식으로 찔러봤다가 1단계 추첨에서 통과하는 학생들의 경우 자소서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은 상태다. 사교육을 통해 자소서를 준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소서 관련 사교육시장만 키워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 서울교육청과 광역자사고들이 모집요강 발표시점을 목전에 앞두고 자기소개서(자소서) 제출시점을 학생의 선택에 맡기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명목 상 합의내용은 양측이 한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실질은 그간 '자사고 흔들기'를 지속해 온 서울교육청의 완승이라는 평가다. 사진은 대표적인 '자사고 흔들기' 사례인 서울지역 자사고 폐지 관련 2014년 8월6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있었던 학부모 항의집회 현장모습./사진=베리타스알파DB

이번 합의에 따라 8월10일 발표 예정이던 서울지역 광역 자사고 모집요강은 고교별 요강수정에 필요한 절차로 인해 다소 차이만 있을 뿐 정상적으로 발표된다. 각 자사고는 승인된 요강을 빠른 시일 내 홈페이지에 게시할 예정이다. 자소서 제출시점 관련 현장의 혼란도 일정부분 수습되는 모양새다. 한 자사고 교장은 “기존에 자소서를 준비해오던 학생들은 원서접수 시 자소서를 제출하고, 자소서 준비를 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추첨 상황에 따라 자소서를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예년과 달라진 자소서 제출시점을 두고 벌어질 갑론을박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면접대상자를 추첨으로 확정할 수밖에 없는 자사고 입시구조 상 원서접수 시 자소서를 제출했는지 여부는 당락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지만, 자녀의 입시문제가 결부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의 심리 때문에 원서접수 시 자소서를 내는 것이 유리할 것이란 잘못된 믿음이 퍼질 가능성도 높다. 서울교육청은 추후 홍보를 통해 자소서 제출 여부가 당락에 어떠한 영향도 없다는 점을 수험생/학부모들에게 주지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서울교육청-광역자사고 자소서 제출시점 합의.. 학생 자율에 맡긴다>
서울청은 10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자사고 입학전형 1단계 추첨 전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2017 자사고 지원 학생은 추첨 전 자소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원서접수기간이나 추첨 이후에 학생의 선택에 따라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수 있다”며, “자사고 지원 학생이 모두 자소서를 작성/제출하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추첨 전 자사고 지원 학생이 자소서를 제출하더라도 1차 전형 자료로 활용하지 않도록 한 교육부 지침이 지켜지게 됐다”고 말했다. 기존 서울지역 광역자사고 입시는 1차 전형이 추첨으로 진행돼 자소서를 제출하더라도 1차 전형자료로는 활용 불가능해 교육부 지침이 지켜질 수밖에 없던 상황.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운 자화자찬에 불과한 교육부 지침 운운하는 부분을 제외하면,결국, 서울청의 발표는 수험생의 선택에 따라 원서접수 시 자소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요지다. 교육청의 발표내용대로라면, 올해 자사고 입시에 지원하는 수험생은 원서접수 시점부터 1단계 추첨 이후 일정기간까지 자소서를 제출하면 된다.

이번 발표는 올해 3월말 서울청이 ‘고입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입시/업무 부담 경감 등을 이유로 면접 대상자에 한해 자소서를 받으라고 발표, 광역 자사고들과 세워졌던 대립각이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은 데 따른 것이다. 광역 자사고들은 3월 교육청의 발표 직후부터 자사고 입시구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처사라며 원서접수 시점부터 자소서를 받아야 한다고 거세게 반발했으나, 교육청은 주장을 꺾지 않고 자사고들의 요강 승인신청을 네 차례나 반려한 끝에 결국 최초 의도를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하면, 입시 시작 3개월 전까지는 요강이 승인/공고돼야 한다. 교육청이 서울지역 광역자사고 원서접수 기간을 11월10일부터 11일까지로 설정함에 따라 8월10일까지는 양 측의 의견 간극이 좁혀져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교육청이 자소서 제출시점을 늦추지 않은 요강은 승인하지 않겠다고 버티자 자사고들도 교육청 승인 없이 요강을 확정짓겠다며 강경한 대응태도를 보였으나, 종국에는 양 측이 한발씩 물러선 형세가 됐다. 다만, 종전 입시에서 자소서 제출이 원서 접수와 동시에 이뤄졌었고, 교장협의회가 종전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한발씩 물러선 것은 겉모습에 불과할 뿐 실질은 서울청의 최초 계획안이 실현된 것으로 봐야 한다.

<자소서 제출시점 두고 교육청과 광역자사고는 왜 대립했나>
최초 교육청과 광역자사고의 대립이 표면 위로 떠오른 것은 3월31일 협의회의회가 하루 전 발표된 2017 고입전형 기본계획에 대해 거부입장을 밝힌 시점이다. 교육청이 3월30일 발표한 기본계획을 통해 11월10일부터 11일까지를 원서접수 기간, 11월18일부터 22일을 서류접수 기간으로 각각 설정하고, “자사고에 지원한 학생들은 원서접수 후 추첨을 실시해 선정된 면접대상자만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도록 변경했다”고 공지하자 협의회는 31일 “자사고의 선발권은 학교장에게 있으므로 교육청의 일방적인 전형계획 발표는 부당하다. 서울 자사고들은 교육청의 방침을 전면 거부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종전 광역자사고 입시는 원서접수와 동시에 서류접수를 받았기 때문에 전형계획을 통해 서류제출 일정이 따로 공지되지 않았었다. 2015년3월 교육청이 발표한 2016 고입전형 기본계획에서도 원서접수 일정만이 공지됐다. 전국단위 모집을 실시, 전형방법 설정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하나고의 경우에만 서류제출 일정이 공지됐을 뿐이다. 교육청이 원서접수와 서류접수 일정을 11월10~11일과 11월18~22일로 달리 설정한 것은 11일과 18일 사이에 1단계 추첨을 통해 면접 대상자를 확정한 이후 현행 서울권 광역자사고 입시에서 유일하게 참고 가능한 서류인 자소서를 제출받으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교육청이 내세운 자소서 제출시점 변경 이유는 ▲수요자 중심의 행정 구축 ▲일선학교 업무부담 경감 이었다. 추첨을 통해 면접 대상자를 가리는 서울권 자사고 입시에서 면접 여부가 결정되기도 전에 자소서를 쓰는 수고를 학부모/수험생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식의 발로였다. 자소서 첨삭 등을 도와야 하는 중학교 교사들에게 지워지는 업무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까지 더해져 교육청은 자소서를 추첨 이후 받을 것을 자사고들에게 요구했다. 이후 고입 자소서 관련 컨설팅이 횡행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까지 더해지며 ▲사교육 부담 경감 까지 자소서 제출시점 변경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협의회는 교육청의 발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자사고 측과 합의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라는 절차상 문제제기에 대해 학교장의 선발권 침해, 자사고의 선발권 박탈 우려와 교육청이 그간 행해온 자사고 흔들기 정책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광역자사고의 선발권자(입학전형 실시권자)는 학교장이다. 시행령 제77조는 1항을 통해 “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은 당해 학교의 장이 실시한다. 입학전형방법 등 입학전형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교육감의 승인을 얻어 당해 학교의 장이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감의 승인을 얻어 정한다고 돼있긴 하나 이는 부차적인 규정으로 결국 입학전형 내용을 정하는 주체는 각 학교장으로 봐야 한다. 또한, 시행령 제82조 7항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입학전형방법은 교육부령으로 따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시행규칙 제72조는 “서울특별시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은 다음 각 호의 방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 실시한다”고 했다. 제72조가 말하는 ‘다음 각 호의 방법’은 ▲지원하는 사람 중에서 추천하는 방법(완전추첨) ▲추첨과 학교장추천서, 중학교 학생부 기록, 실험/실습, 실기시험, 면접 등을 결합하는 방법(추첨/면접 병행)이다. 결국, 서울권 광역자사고 입시는 완전추첨과 추첨/면접 병행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제약만 존재할 뿐 학교장이 전형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협의회가 선발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는 근거는 충분한 셈이었다.

비록 시행령 제78조가 “교육감은 고입전형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다음 학년도 입학전형 실시절차/방법/변경사항 등 입학전형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 입학전형 기본계획을 수립/공고해야 한다”면서, “입학전형실시권자(학교장)가 입학전형을 실시하려는 경우 입학전형기본계획의 범위에서 입학전형일시 원서접수 전형방법 등 입학전형의 실시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 양 측의 권리주장이 충돌할 여지는 있으나, 자사고 선발권의 주체가 학교장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시행령 78조의 규정은 고입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기본사항을 규정할 권한을 교육청에 위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선발권이라는 고입의 본질까지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협의회가 강력 반발한 것도 교육청의 자소서 제출시점 변경이 자사고 선발권을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들려는 시도로 평가돼서다.

통상 원서접수 시 요구하는 사항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허수 지원자는 늘게 마련이다. 대입에서도 학생부에 부가해 자소서/추천서 등을 요구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허수 지원자가 극도로 적지만, 특별한 제출서류를 요구하지 않고 논술고사만 치르면 되는 논술전형의 경우 허수 지원자가 많다. 대학별로 공개하기 꺼려하는 경우가 있어 전체 현황은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일부 대학의 경우 허수 지원자가 3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수능최저를 충족하지 못해 논술고사를 치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수능을 예상보다 잘 봐 논술고사를 일부러 회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해당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논술전형에 아니면 말고 식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광역 자사고도 원서접수 시 자소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게 되면 허수 지원자가 상당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행 서울권 광역자사고 입시구조 때문에 허수 지원자의 발생은 광역자사고의 선발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허수 지원자의 발생은 곧 입학생의 수준 저하를 의미한다. 비록 자사고가 입시에만 매몰돼있는 고교가 아니긴 하나, 기본적으로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을 제외한 고교진학은 대학진학을 향한 중간다리 역할이므로 우수한 학생 선발이 중시될 수밖에 없다. 교육감의 공약이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에 기반해 우수학생선발을 막는 것은 자사고 체제를 뒤흔들겠다는 행동이나 진배 없다. 추첨이라는 파행에 가까운 전형방법을 통해 학생선발을 실시하는 상황에서 다수의 허수 지원자까지 더해진다면 자사고 체제마저 뒤흔들릴 것이라는 것이 현장의 평가다. 협의회도 “원서접수를 전형의 시작으로 간주하라는 것은 상당한 허수 지원자를 가려내지 않은 채 추첨을 진행하라는 것”이라며, “자사고는 인터넷으로 원서접수를 받고 접수자들의 서류가 도착해야 지원자로 간주하고 전형을 진행해 왔다. 실제 입학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으로 원서접수만 해 놓고 실제 서류는 제출하지 않는 학생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자소서를 추첨 이후 받게 되면 원서만 썼다가 추첨을 통과한 뒤 변심하고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학생들을 막을 수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자소서 제출시점의 변경이라는 변화지점이 없더라도 현재 광역자사고 입시는 파행 그 자체다. 지난해 치러진 2016학년 입시를 기준으로 보면, 3개고교는 선발권 포기, 19개고교는 선발권 행사로 갈렸다. 지난해 서울권 22개 광역자사고 중 경문 숭문 장훈 등 3개교는 자사고 운영평가에서 기준점수 미달을 받았다가 청문절차/개선계획서제출 등을 통해 지정취소를 2년 유예받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면접선발권을 일체 포기하고 완전추첨전형을 통해 학생을 선발했다. 나머지 19개교는 추첨 후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며 선발권을 행사했지만, 파행입시에 가깝긴 마찬가지였다. 본래 교육부가 발표한 ‘2016학년 자기주도학습전형 매뉴얼’은 서울권 광역자사고 입시에 대해 ▲지원률이 100% 이하인 경우(1대 1도 되지 않는 경우) 면접 생략(미달로 인한 전원 합격) ▲지원률이 100~150%인 경우(경쟁률이 1:1~1.5대 1인 경우) 면접실시 여부를 학교가 결정하고 추첨 선발 가능 ▲지원률이 150% 이상인 경우 (경쟁률이 1.5대 1 이상인 경우) 추첨으로 1.5배수를 선발한 후 면접 실시로 구분했으나, 지난해 19개 자사고 입시내용은 차이가 있었다. 일부 고교는 1.3대 1, 일부 고교는 1.2대 1이라는 면접 기준을 설정하고, 해당 경쟁률을 넘는 경우 면접을 실시, 넘지 못하는 경우 추첨선발 실시로 학생을 선발했다. 학교가 면접실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최초 광역자사고 도입 시 적용됐던 ‘내신 상위50%이내만 지원가능’이란 제약도 광역자사고 수요 조절 실패로 인한 경쟁률 미달사태 반복과 ‘일반고 황폐화’라는 억지여론에 밀려 진작에 철회된 상태다.

내신제한도 없고, 학생부 성적도 전형에서 활용 불가능하며, 면접실시 여부조차 학교가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소서만이 서울권 광역자사고 입시에서 활용가능한 유일한 평가요소로 남아있다. 협의회 등이 자소서에 대한 교육청에 개입 관련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아무런 평가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자소서마저 교육청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선발권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명목 상 권리로 전락하게 된다. 협의회는 “교육청이 면접대상자만 자소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은 자사고의 선발권을 약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자소서는 자사고 입학전형의 필수 전형 요소다. 해당 자사고의 건학이념도 모르는 채 자소서를 통한 진로탐색 없이 지원 가능한 구조가 되면, 결과적으로 자사고에 꼭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추첨에서 탈락할 확률만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입시에서 우선돼야 할 것은 부담경감인가? 정작 사교육 살리기 가능성 높아>
서울교육청이 수험생/학부모의 부담경감 등을 이유로 자소서 제출시점을 변경한 데 대해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교육청이 내세운 근거들은 일견 합당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광역자사고가 손에 쥔 마지막 카드나 마찬가지인 자소서의 제출시기를 늦출 이유로 들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수험생/학부모 등 교육수요자들의 부담은 ▲자소서 작성에 대한 부담과 ▲사교육에 대한 부담으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자소서 작성에 대한 부담은 자소서 작성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기껏 자소서를 작성했음에도 추첨으로 인해 탈락할 수 있는 현 자사고 입시구조 상 불필요한 노력을 들일 개연성이 크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결국 추첨이라는 다분히 운에 맡긴 공정성과 거리가 먼 전형방법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자소서 작성에 대한 부담이 나오게 된 셈이다. 기껏 심혈을 기울여 자소서를 작성했으나 평가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현행 추첨제도라는 이야기다. 협의회도 “자소서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열심히 자소서를 준비하고 자사고에 지원했으나 추첨에서 떨어진 학생/학부모 내지는 자소서 작성을 도왔던 담임교사일 것”이라며 “결국 왜 보지도 않을 자소서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고생하게 만드느냐는 이들의 불만은 자소서가 아닌 ‘추첨’ 제도를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청이 주장하는 사교육에 대한 부담경감도 근거로 들기에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청이 자소서 제출 시점을 면접대상자 확정 이후로 늦추려는 것을 두고 오히려 ‘사교육’을 돕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원서접수 시 자소서를 요구하면 최소한 자소서를 미리 작성하는 노력을 들이는 지원자 풀이 형성, 중학교 담임교사 등의 도움을 받아 자소서를 준비하는 경우가 주를 이루지만, 추첨 이후에서야 자소서를 요구하면 자소서를 준비하지조차 않은 허수 지원자들이 성행하게 되고 결국 자소서 준비가 미진한 허수 지원자들이 사교육을 찾게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권 광역자사고가) 모든 지원자에게 자소서를 강요하는 것은 일반고 우수학생 빼가기 같은 비교육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도 사교육을 걱정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청이 설정한 일정대로라면, 원서접수가 끝나는 11일 이후부터 서류접수가 시작되는 18일  이전까지는 추첨이 이뤄져야 한다. 가장 빠른 12일 추첨을 실시하고 서류접수가 마감되는 22일까지 자소서를 쓴다고 하더라도 자소서 준비에 들일 수 있는 기간은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자소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비록 보지도 않을 자소서를 돕는 일은 없어지게 되겠으나 업무부담을 호소하는 중학교 현장에서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자사고 지원학생들을 전부 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사교육을 통한 자소서 준비가 활개를 치게 될 것이라는 지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한 업계 전문가는 “자소서 제출시점을 바꾼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고입 자소서 컨설팅 업체 등이 쾌재를 부른다는 학원가의 반응이 들려오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입의 중심에 자리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고입 자소서는 곧 미래의 고객확보라는 점까지 더해져 올해 고입 자소서관련 사교육 시장은 활황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서울교육청이 내세운 중학교 교사들의 업무부담 경감조차도 자소서 제출시점 변경 근거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울교육청은 지난달 중학교 교사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단계 면접대상자에게만 자소서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96%에 달했다며 중3 교실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입시의 본질을 망각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지적의 골자였다.

한 업계 전문가는 “서울교육청의 논리대로라면 아예 입시를 치르지 말아야 한다. 업무부담 없는 입시안이라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대입에서의 학종은 물론이거니와 논술조차도 교사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돕는 것이 교사의 본래 업무영역인데 그것을 두고 업무부담을 운운하는 것부터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자사고 자소서 제출시점을 변경한다고 해서 업무부담이 크게 감소하는 것도 아니다. 특목고들의 입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교사 업무부담의 가중은 신규교사 임용, 행정업무 간소화 등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지, 자소서 제출시점을 가지고 풀어나갈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 자사고 교장은 “어떤 입시가 수험생/학부모를 위한 ‘착한 입시’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선행돼야 한다. 물론 현장의 업무부담에 대해 30년 이상 현장에서 근속한 교장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입시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떤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할지, 어떻게 해야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지 등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다. 업무부담 경감을 위해 입시를 건드리겠다는 것은 소탐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교육청의 ‘자사고 흔들기’ 행보의 연장선>
이번 사태를 두고 교육청과 자사고 간 갈등이 처음이 아니란 점을 들어 수요자들만 혼란을 겪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경계해야 할 시각으로 평가된다. 물론 교육청과 자사고가 그간 재지정 운영평가 등에서 충돌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교육 수요자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육청과 자사고를 동격으로 놓는 피장파장의 오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운영평가, 자소서 제출 등 충돌의 근본 원인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며 순항 중인 자사고를 교육청이 흔들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 서울교육청의 수장인 조 교육감의 취임 이후 자사고와 교육청은 사사건건 부딪쳐 왔다. 교육감 선거 당시 경쟁했던 여타 후보들이 자사고 쟁점 관련해 ‘자사고의 설립 본질에 기반해 판단하겠다’ ‘실태 파악 후 대응방안을 결정하겠다’ 등 합리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조 교육감이 “자사고는 특권학교”라며,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데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 교육감은 취임 이후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이 자사고라며 “고교 서열화를 완화하고 일반고 전성시대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결론을 정해놓고 이어지는 정책이 합당하게 이뤄질 리는 만무했다.

본래 자사고는 특목고, 특히 외고의 전성시대 시절 만들어진 학교유형이다. 외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기유학은 호황을 맞았다. 사교육시장이 날로 팽창해져 간 것은 물론이다. 배우자와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은 기러기 아빠들이 날로 늘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정도였다. 외고의 인기 고공행진과 맞물려 일반고는 점차 황폐화됐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외고/과고로 진학하는 상황에서 특성화고조차 내신 커트라인이 존재했기 때문에 일반고는 외고/과고 불합격생, 특목고 불합격생, 중상~중하위권 학생 등으로 구성됐다. 대학진학에 대한 열망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하위권 학생들의 경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실제 다수를 차지하는 중상위권 학생들은 면학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시대적 배경을 등에 업고 이명박 정부는 중상위권 학생들의 면학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사고를 설립했다. 이러한 자사고의 설립목적은 ‘특권’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정책반복으로 인해 이미 희미해져 있는 상태다.

한 업계 전문가는 “서울교육청의 자사고 흔들기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려해야 할 부분이다.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이 자사고라는 실체 없는 ‘특권학교’ 주장 때문에 자사고를 흔들어가며, 매번 수요자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줘 놓고는 수요자 중심 행정을 구축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현재 서울교육청의 정책 문제는 결론을 정해놓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혁신학교처럼 교육감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사업은 사업신청 요건까지 완화시켜가며 기를 쓰고 확대에 나서는 반면, 자사고는 기회만 생기면 흔들려고 혈안이 돼 있는 모양새다. 교육감의 정치 성향에 따라 교육체계가 흔들리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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