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대신 물리’ 택한 영재학교 수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서준석(여도초-여도중-대구과고, 2016 수시 구술면접Ⅱ)

[베리타스알파=이우희 기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서준석(20)군은 영재학교 전교 1등이라는 성적에 다양한 심화 연구활동 결과물, 진로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까지 갖춘 맞춤형 학종 인재다. 고교 3년간 내신 평균성적은 4.3점 만점에 4.25점. ‘고온 초전도에서 양자화된 자속의 동역학’에 관한 자율연구(R&E), ‘안정적인 분자전자소자 제작과 양자적 터널링 현상’에 관한 현장연구 등 높은 수준의 연구활동도 돋보인다. 끝내 주변의 의대 진학 권유를 뿌리칠 만큼 진로에 대한 확신까지. 서군이 학종 중심 입시를 운영하는 서울대와 KAIST, 포스텍에 모두 합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결과였다.

<서울대 구술면접Ⅱ 편안한 분위기>
서준석군은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에 지원해 구술면접Ⅱ 전형을 치렀다. 구술면접Ⅱ는 서울대 우선선발의 후신으로 서울대가 서류가 특히 우수한 일반전형 지원자를 따로 분류해 자기소개서 기반 면접을 진행하는 특징을 갖는다. 2016학년 서울대 일반전형 정원 1658명 가운데 16명만 구술면접Ⅱ를 통해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만큼 구술면접Ⅱ 합격자 16명은 서울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에 가장 가까운 인재들로 받아들여진다.

면접 분위기는 편안했다. 서군은 “면접은 교수휴게실에서 진행됐다. 면접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너무 편안해서 ‘교수님들께서 여쭤보시는 질문만 대답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며,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무리하게 머리를 굴리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면접이었다. 면접이 끝나고도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보통 면접이 끝나면 밀려오는 후회와 불안감에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지만, 구술면접Ⅱ는 홀가분했다는 뜻이다.

교수들의 질문은 날카롭기보다는 관심을 표하고 의문을 채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자소서에 쓴 R&E와 현장연구와 관련해선 연구내용보다는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느꼈는지, 활동이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물었다. 자신의 장단점을 묻는 질문에는 장점은 남의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들어주려고 한다는 점을, 단점은 그것 때문에 사람마다 하는 말이 달라 중간에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는 점을 들었다. 장기적 목표에 관해선 교수가 돼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지도하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편안한 문답이지만 자소서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못한 지원자라면 당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진=신승희 기자 pablo@veritas-a.com

<의대 진학 고민도 했지만 결론은 물리>
분명한 진로 설정도 서군의 강점이다. 서군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한 이유는 물리 때문이다. 중복 합격한 포스텍도 물리학과에 지원했다. 독서는 물리에 대한 관심의 끈을 유지한 방법이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승산)’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다. 서군은 “대구과고 입학 때부터 물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다양한 책을 읽으며 물리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도 그런 책들 중 하나였지만 이론물리학자라는 분명한 꿈을 던져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귀납적 유추가 아닌 논리적 필연성으로 우주의 원리를 밝히려는 이론물리의 꿈은 우주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꾸려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목표가 생기자 한층 공부가 즐거워졌다. “이론물리학자라는 장래희망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지원을 결심하도록 했고, 이론물리의 꿈을 실현하는 데 일조하는 미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물리와 수학 공부를 더욱 즐겁게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과학영재들이라면 한 번쯤 부딪힐 수밖에 없는 고민, 의대진학이란 유혹 앞에서 서군도 자유롭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심 의대진학을 원하는 눈치셨다. 서군은 “고민도 했지만, 의대와 물리학과 둘 다 합격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어디를 가고 싶을까를 생각해보니, 결론은 물리였다”고 말했다.

과고와 달리 전공연계성이 높은 영재학교의 교육시스템도 진로선택에 도움을 줬다. 대구과고는 3년간 R&E와 현장연구, 졸업논문을 모두 거쳐야 한다. 서군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분자소자’ 관련 주제로 현장연구를 했다. 나흘간 물리천문학부 실험동(22동)에서 인턴십을 경험하면서 서울대가 어떤 곳인지 체감해 볼 수 있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한 대학원생들의 조언도 값졌다. 특히 현장연구를 도와준 조교는 서군에게 "양쪽 모두 좋은 선택지고 나중에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건넸다. 서군은 “무엇을 선택해도 나쁘지 않다면, 물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의대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물리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서의 힘 인문서적도 탐독>
서군은 전공관련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인문/고전도 가리지 않았다. 자소서엔 전공관련 서적, 교양서, 고전을 한 권씩 썼다.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까치)’을 적은 이유에 대해 서군은 “폭넓은 사고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인문/사회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그 중에서도 나의 이상적인 리더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 ‘군주론’이다”고 밝혔다. “리더에 대한 기존의 도덕적 관점과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관점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군주론을 ‘악덕의 책’이라 비판하면서도 군주론적 정치를 펴나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서군은 고전서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에 꼭 필요한 덕목인 리더십에 대한 소양과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

교양서로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쌤앤파커스)’을 정리했다. 서군은 “좋아하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시험처럼 눈앞에 닥친 현실만을 생각하다 진정 필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쫓기는 듯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평가하면서도 “하지만 ‘병가 내고 훌쩍 여행을 떠나요’라는 말은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는 만큼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힘들다고 현실을 내팽개치라는 조언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비판적 감상도 적었다.

<최고 대학과 연계 영재학교의 경쟁력>
국내 최고 대학 교수들로부터 논문에 관한 조언을 구하고 함께 연구활동도 할 수 있는 영재학교의 교육시스템은 학생부종합전형 중심 입시에서 가장 독보적인 경쟁력이라 할만하다. 서군은 KAIST 영재교육센터에서 고급수학을 수강했다. 교수와 지근거리에서 과제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아낼 때까지 수정하는 방식으로 해석학과 편미분방정식을 공부했다. 1학년때 진행하는 R&E도 KAIST를 오가며 수행했다. 서군은 “대구과고에서 KAIST를 오가며 초전도의 성질과 그 요인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론적 배경을 배우며 저온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BCS이론을 공부했다”고 전했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개념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웹서핑과 참고서적을 찾아가며 공부해 작성한 보고서는 지도교수로부터 “가장 잘 써진 보고서”라는 칭찬을 받게 했다.

서울대에서는 현장연구를 진행했다. 현장연구 경험은 서울대 진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군은 “여러 교수님들께 지도를 부탁 드리는 메일을 보낸 결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현장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팀 리더로서 교수님 조교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안정적인 분자전자소자 제작과 양자적 터널링 현상 연구’로 연구주제를 정해 수행했다. 현장연구를 통해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데는 기초과목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대와 KAIST, 포스텍 중 서울대를 택한 이유는 의외로 일찍 전공을 정하고 싶어서였다. 분명한 진로를 확정한 만큼 한시라도 빨리 전공 공부에 돌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군은 “우선, 물리를 전공해야겠다는 의지가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이나 선배들, 동기들과의 네트워크를 따져 보면 바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내실 다진 영재학교 3년>
영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지만 서군은 노력형 영재다. 입학부터 운이 좋았다는 게 서군의 설명이다. “중2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부터 영재학교 진학을 위해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대구과고 2차시험에서 수학은 어느 정도 푼 것 같은데 과학은 하나도 몰라 주관식 답지를 백지로 냈다. 다만 시험이 다 ‘모두 고르시오’ 문항이어서 운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대구과고 입시는 1단계 서류평가, 2단계 수학/과학 기반의 창의적 문제해결력평가, 3단계 과학 창의성 캠프로 이뤄진다. 문제해결력평가는 중학교 교육과정을 출제범위로 한 수학/과학의 지필고사다.

서군이 생각하는 영재학교의 장점은 ‘느리다’는 것이다. “영재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좋다고 느꼈던 점은 내실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교 과정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데다 서둘러 고급과정을 배우지 않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밖에선 ‘느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내실을 다져놓은 부분이 입시와 이후 고급과정을 공부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입학 후 중간고사 물리 성적에 충격을 받은 서군은 고2 2학기까지 새벽 2~3시 정도에 자면서 공부했다. 교과도 빠듯한데 전체 공부시간의 80%를 물리올림피아드, 물리인증제, KAIST 영재교육센터 고급수학 해석학/사사과정(편미분방정식) 등에 투자했다. 서군은 공부 요령에 관해 “다른 아이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며 “수학/과학은 학원의 도움 없이 학교 교재를 보고 연습문제 풀며 공부했다. 인문/사회는 교과서와 프린트를 외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선택과 집중만큼은 강조했다. 서군은 “후배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권하고 싶다. 학기나 학년이 시작하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것들을 우선순위로 정해두고,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닥치면서 모두 잘 하는 것이 어렵게 되면 중요한 몇 개를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이 좋은 전략이다”라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