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는 잠시 있는 것.. 교육을 봐야”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이승섭(56) KAIST 입학처장(기계공학과 교수)은 입시에 앞선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2010년 KAIST 학생처장 시절 설계해놓은 신입생 추수지도 프로그램은 현재 KAIST만의 특화 교육프로그램으로 명성이다. KAIST의 다양한 새내기 교육제도들은 영재학교 과고 출신의 틈바구니에서 일반고 출신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은 물론 과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둔감한 소통과 협동의 역량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선발한 학생을 잘 교육시키는 것은 물론 선발에 앞서 잘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있다. ‘대학은 왜 가야 할까’ ‘우리나라 교육은 식민지 교육?’ ‘새해에는 교육이 달라질까’ 등 그간 이 처장이 베리타스알파에 기고한 칼럼들을 읽어보면, 입시관이 곧장 드러난다. ‘잘하는 학생보다 잘할 학생을 선발하자’는 이 처장의 시각은 KAIST가 2018학년 수시 일반전형에 영어면접을 도입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사교육유발요소라는 극렬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영어면접을 도입한 배경은 다름 아닌 과고 교육정상화에 있다. 고입 단계에서부터 영어영역이 배제된 입시 시스템은 이공계 새싹들이 영어학습을 도외시하는 빌미로 작용한다. 이 처장은 “KAIST의 영어면접평가 도입은 현재 수학 과학 중심의 과고 교육체계가 창의적 과학인재 육성을 위해 영어를 포함한 좀더 다양한 학습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출제수준에 대해선 “쉬운 출제”라 단언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이 처장은 UC버클리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1년 가량 삼성종합기술원, 6년 반 가량 포스텍을 거쳐 KAIST에 온 지 올해 13년째다. 입학처엔 2012년 4월 발을 들였다. KAIST의 새내기 교육제도로 대표되는 ‘즐대생 신대생’ 프로그램을 만들고, KAIST 학생들이 군 면제되는 상황에서도 군 자녀 캠프를 여는 등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이 처장은 최근엔 해외 유학생 유치에 한창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러시아 등 각국에서 최고 학생들을 KAIST로 들여 최고의 교육을 제공한 후 돌려보내는 ‘애국’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도 무려 3주간 아프리카로 각국 최고의 고교에서 최고의 학생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 KAIST의 강점이라면
“KAIST는 어느 날 새롭게 만들어진 학교다. 새롭게 만든다는 데 구성원들이 겁을 덜 낸다, 좋게 말하면 ‘이노베이션(혁신)’이 KAIST의 DNA에 초창기부터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소재지가 지방이라는 측면 역시 도전의 가능성을 열어준 측면이 있다.”

- 2018 영어면접 도입도 ‘혁신’ 맥락으로 읽힌다
“내부적으로도 좋은 입시는 교육이 살아나게 하는 입시라 여긴다. 영어면접을 도입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입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특히 과고생들이 영어를 두려워한다. KAIST는 전 교과목의 80% 가량을 영어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KAIST 학생들에겐 입학 후 영어강의 수강뿐 아니라 국제학회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활동하는 등 글로벌 과학인재로서 성장하기 위해 수학 과학과 같은 기초학문뿐 아니라 영어를 포함한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필요한 기본을 갖춘 지원자를 선발하고자 한다는 데 취지가 있다.

현실적으로 과고생들의 경우 타 고교유형 학생보다 영어강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고의 교육과정이 수학 과학에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는 탓이다. 과고 입시에서도 영어과목은 배제된다. 대입에서도 수학 과학이 강조될 뿐 영어는 배제돼 있다. 이공계 수험생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대입을 치를 때까지 영어교육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비단 과고뿐 아니라 이공계 진학을 목표하는 고교 또는 지원자들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 현실이다. KAIST의 영어면접평가 도입은 현재 수학 과학 중심의 과고 교육체계가 창의적 과학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영어를 포함한 좀더 다양한 학습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 이승섭 KAIST 입학처장
- 영어면접 도입에 사회적 반발이 예상되는데
“사회적으로 사교육영향 때문에 영어면접을 매우 경계한다는 것 잘 알고 있다. 물론 나쁜 입시는 곤란하다. 나쁜 입시란 단적으로 말하면 어려운 문제를 많이 내는 입시다. 대학 입장에선 형평성 변별력 둘 다 고민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게 어려운 문제를 내서 0점부터 100점까지 쭉 줄세우는 것이다. 입시에서 어려운 문제를 많이 내면, 그게 룰이 되어서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를 많이 푸는 것으로 학습을 한다. 그러려면 학원 가야 하고 우열반 나눠야 한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반발이다.

다만 KAIST의 철학은 절대 어려운 문제를 내지 말자는 것이다. 이번 영어면접뿐 아니라 지금껏 구술면접 역시 쉬운 출제가 일관 기조다. KAIST 면접 기출문제를 보면, 난도가 떨어지지만 변별력은 충분히 있다. 게다가 사람은 만나보면 안다. 같은 문제를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이 보인다. 학교성적이나 추천서 자소서와 함께 종합평가한다는 측면에서 실제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출제 안 하더라도 변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입시가 교육을 망가뜨려선 안 된다. 입시보다 교육이 중요하다. 입시는 교육의 한 부분일 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교육은 없고 입시밖에 없는 현실이다. 초등 3학년부터 대입을 걱정한다. 교육이 망가진다.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구구단 선행하고 덧셈을 하면 쉬운 건 당연하다. 영어면접도 선행해야 하는 게 맞겠다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과고생은 물론 모든 고교생들이 공부를 덜 했으면 좋겠다. 영어면접은 사교육 필요 없이 고교교육만으로 대응 가능하도록 쉽게 출제할 예정이다.”

- 현장에서 바라는 점은?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한다 하는데, 공부하기 위해 대학 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언제가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일까’라 물으면 보통 ‘고3’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올바르지 않은 답변이다.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는 대학 2학년이다. 그때 삶을 이어갈 전공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고교교육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입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특히KAIST 입장에서 가장 걱정하는 건 대학이 ‘트로피’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 들어왔다고 모든 걸 이룬 게 아니다. 잘하는 학생보다 잘할 학생을 뽑으려 한다. 고3 때 누가 잘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학에 들어와서 누가 잘할지 주목한다. 중고등학교가 대학 가서 잘할 수 있도록 교육했으면 한다. 심화문제 잘 푸는 것보다 개념을 잘 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고교교육이 입시에 종속된 교육이 아니라 고교교육이 살아있는 교육이었으면, 대학교육도 살아있는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입시라는 건 잠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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