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器晩成(대기만성)’,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예로부터 성현들이 교육을 얘기할 때 강조하는 말이다.

‘교육은 평등성과 수월성의 원리 사이에서 움직인다’ (갤러거(Gallagher), 1979). 교육자치제 실시 이후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교육정책이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오락가락한다.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혼란스러워하고, 경쟁우위와 상급학교 입시 때문에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며, 국가백년지대계(國家百年之大計)라는 교육(敎育)의 본질을 쉽게 망각한다.

박완규 한국에너지공대 학생처장(에너지공학부 교수)
박완규 한국에너지공대 학생처장(에너지공학부 교수)

현재 우리에게는 저출산/양극화/고령화 등의 범국가적 난제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정책의 도입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정책은 단기간 내에 번쩍하는 아이디어 정도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선거결과 또는 진영논리에 따라 단기간 내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강조하건대 ‘교육(敎育)은 국가백년지대계(國家百年之大計)’라고 할 만큼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그 결실을 볼 수 있다. 옛 성현들이 그렇게 강조한 ‘大器晩成(대기만성)의 기다리는 교육(敎育)’이 실현되어야만 결실을 볼 수 있다.

선거에서 이긴 쪽의 교육정책은 마구 밀어붙이고, 진 쪽의 교육정책은 마구 없애버리는 요즘의 행태로는 우리의 범국가적 난제 해결을 교육에 기대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이 과도하게 이념화되고 진영화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호견제를 하며 좀더 건설적이고 올바른 방향의 교육정책으로 다듬어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반대쪽의 주장은 들으려 하지 않고, 비난만 해서야‘대기만성(大器晩成)의 기다리는 교육(敎育)’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미래지향적이며 범국가적인 교육을 기대하겠는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기암절벽의 명승지를 기행하면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오고 세월의 무게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기암절벽에‘아무개 언제 왔다 가다.’라고 자기 이름 석 자를 돌에 새겨 붉은 페인트까지 입혀 놓은 것을 보면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째 자기만 알고 수많은 남들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모르는가?

‘大器晩成(대기만성)’,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는 깊은 교육적 통찰 없이 정치논리, 진영논리 등에 사로잡힌 교육정책들의 남발을 통해서는 절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내 편, 네 편 가리지 말고, 충분히 기다려주며, 반대쪽의 얘기도 존중하고 귀담아들으면서, 함께 ‘大器晩成(대기만성)의 기다리는 교육(敎育)’을 완성해나가는 모습이 절실하다.

세상에는 많은 그릇들이 있다. 예쁜 그릇! 큰 그릇! 강한 그릇! 등등. 어느 부모에게나 자기 자식은 이 세상 최고의 존재이다. 어느 부모나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한다. 어느 부모나 자식을 최고의 그릇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데 어떤 것이 최고의 그릇일까?

이런 부모들이 계신다. ‘무릇 그릇은 일단 예뻐야 한다. 그래야 남들 눈에 얼른 띄고, 남들이 최고로 알아준다.’그런데 아무리 예쁜 그릇이라도 재질이 약하면 실수로 놓치는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모든 게 끝나는 것 아닌가?

이런 부모들도 계신다. ‘무릇 그릇은 일단 커야 한다. 옛 성현들이 자주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릇이 커야 많이 담을 수 있다.’아무리 예뻐도 그릇이 너무 작아서 충분히 담지 못하고, 아예 그릇 취급도 못 받으면 되겠는가? 큰 그릇으로 만들려면 그만큼 더 오래 걸린다. 조급한 부모는 자기 자식을 절대 큰 그릇으로 만들 수 없다.

이런 부모들도 계신다. ‘무릇 그릇은 일단 강해야 한다. 그릇이 아무리 예쁘고 커도 쉽게 깨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강한 그릇은 놓쳐도 찌그러지기는 할지언정 깨지지는 않는다. 강한 그릇은 오래 버티고, 결국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 험한 세상을 잘 버티면서 살려면 당연히 강하고 질겨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재 우리는 소중한 아이들을 어떤 그릇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 어떤 그릇으로 만들겠다고 심사숙고는 하는 것일까? 그냥 세상 변하는 대로 그때 그때 맞춰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교육을 해야 할까?

‘부모찬스’, ‘스펙’, ‘평가지표’, ‘효율성’, ‘혁신’ 등 교육과 관련해서 요즘에 자주 듣는 말들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그릇으로 만들려는 교육을 하는 것일까? 무작정 예쁜 그릇을 빨리 만들어서 우선 남의 눈에 먼저 띄게 하는 것에 치중하는 교육은 아닐까? 겉만 번드르하고, 한 번 놓치면 산산조각이 나는 그릇을 만드는 교육은 아닐까? 많이 담아 줘도 그릇이 너무 작아 금세 넘쳐버리는 그릇을 만드는 교육은 아닐까?

‘大器晩成(대기만성)의 기다리는 교육(敎育)’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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