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Ⅱ 20번 ‘정답결정 효력정지’.. 6515명 생Ⅱ 성적 ‘공란’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일부 학생들의 수능 성적표를 공란인 채 배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6515명이 응시한 2022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의 오류여부를 두고 생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결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소송에서 법원이 수험생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함에 따라 생Ⅱ의 정답결정이 미뤄지게 됐다. 집행정지는 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있을 것으로 우려되는 경우 처분 효력을 잠시 정지하는 결정을 말한다. 재판부는 “정답결정처분의 효력이 유지될 경우 신청인들은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생Ⅱ 과목의 등급이 결정된 성적표를 받게 되고, 이를 기준으로 2022학년 대입 수시/정시전형에서의 합격여부가 결정된다”며 “이로 인한 손해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이 사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당초 10일로 예정됐던 수능 성적표 배포에서 일단 배부를 하되 생Ⅱ를 응시한 6515명의 성적표에서 생Ⅱ 점수는 공란인 채 배부키로 결정했다. 효력정지는 본안 소송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다.

생Ⅱ 선택 학생들의 특성상 의대를 비롯, 자연계열 최상위권의 대입 정시 일정의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서울대, 의예과 등에서 지정/가산점 부여 과목임에 따라 상위권 연/고대, 전국 의약학계열 등 상위권에 폭넓게 영향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 상황은 2014수능 세계지리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2014수능에서는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정답이 확정되면서 다음해 대입에서 피해학생이 추가합격하는 등 뒤늦게 조치가 이뤄졌지만 이번 수능의 경우 10일 본안소송의 첫 변론기일이 진행되며 최대한 본안소송을 빨리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 역시 “효력정지 기간을 본안 판결 선고 시로 정하고 본안 사건을 신속히 심리해 지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힌 상황이다.

생Ⅱ 출제오류 논란으로 인해 생Ⅱ 응시자 6515명의 성적표는 생Ⅱ 점수가 공란인 채 배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진=전북교육청 제공
생Ⅱ 출제오류 논란으로 인해 생Ⅱ 응시자 6515명의 성적표는 생Ⅱ 점수가 공란인 채 배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진=전북교육청 제공

<전원 정답 처리될 경우.. 생Ⅱ 표점 최고점 하락>
수시 합격자 발표가 16일까지이며, 정시 원서접수가 30일부터 시작하는 점을 고려하면 평가원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평가원에서 정답처리를 바꾸지 않고 최초 발표한 그대로 갈 경우, 소송이 계속 진행됨에 따라 이후 일정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

특히 생Ⅱ 선택 학생들의 특성상 의대를 비롯, 자연계열 최상위권의 대입 정시일정의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과탐Ⅰ+과탐Ⅱ 조합으로 반드시 응시해야 하는 대학인 서울대 KAIST UNIST 등에 지원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필수 응시가 아니더라도 한양대, 단국대 의예/치의예/약학, 지스트, DGIST 등은 가산점을 부여한다. 과탐 중에서도 생Ⅱ를 특정해 가산점을 주는 곳으로는 가톨릭관동대 의예가 있다.

정시 원서접수 전 완료되는 수시 선발일정 역시 차질을 빚기는 마찬가지다. 수능최저가 있는 대학의 경우 수능 성적이 최종 확정되지 않으면 합격자를 발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탐에서는 생Ⅱ 선택 학생이 화학Ⅰ을 함께 지원한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화Ⅰ+생Ⅱ 조합의 최상위권 학생 구간에서는 학생들이 더 밀집돼 점수 경쟁이 더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종로학원이 공개된 자료로 추정했을 시 2017수능 43.3%, 2016수능 46.4%, 2015수능 46.9%로 화Ⅰ+생Ⅱ 선택조합이 가장 많았다.

생Ⅱ는 논란이 된 20번 문제가 전원 정답처리될 경우 평균점수가 올라가면서 표준점수가 9일 발표된 표점 최고점 69점보다 1~2점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성호 대표는 “2점 배점인 20번 문제를 모두 정답으로 처리하면 기존 오답 처리됐던 75.4%의 학생들이 정답 처리되면서 평균 1.5점의 상승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성적표 공란 배부 ‘사상 처음’>
10일로 예정된 성적표 배부에서 생Ⅱ를 응시한 학생의 해당 성적은 공란 처리된 채 배부된다. 수능 성적 발표가 일부 영역에서라도 미뤄진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성적이 발표되기 전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2014수능 세계지리 출제오류 논란 당시에는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성적표가 먼저 배부됐고 1년 가까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당해 대입은 이미 완료돼, 다음해가 되어서야 추가합격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출제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던 평가원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안조차도 따로 마련해두고 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였다는 점이 비판을 더욱 키운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기 이전에 진행된 채점결과 브리핑에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생Ⅱ 성적처리는 어떻게 되는지, 타 과목 성적표 배부와 대입 일정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강태중 평가원장은 “예단하지 않고 있고, 시뮬레이션을 하지도 않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번 출제오류 논란으로 인해 평가원의 공신력도 타격을 받게 됐다. 문제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까지는 인정했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출제오류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은 탓에, 향후 평가원 문제를 믿고 풀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출제오류가 아니라고 고집해 얻을 이득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평가원은 이미 출제오류가 아니라고 해명했던 상황에서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출제오류가 맞다고 번복해 인정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것이 교육계의 관측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많은 전문가들이 출제오류가 맞다는 의견을 내놓는 상황에서 소송을 끝까지 간다고 해도 평가원이 이길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빨리 출제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수험생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만일 출제오류 판정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교육계가 해당 결과를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제시문에서 모순 발생.. 문제 성립 안 돼’>
서울대 의대 교수가 생Ⅱ 20번 문제가 출제오류가 맞다는 입장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김종일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 겸 의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문항이 100% 오류가 맞다고 지적했다. “문항에 틀린 글자만 있어도 문제가 되는데 평가원이 잘못 낸 문항이 맞다”는 것이다. “현상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상한 수치를 주고 출제해서는 안 된다”며 “학생들은 문제가 오류인 것을 모르고 계속 계산하다가 자신이 틀렸겠거니 생각하지 않았겠나. 문제를 반복해서 다시 풀어보다 시험 시간을 다 써버린 학생은 손해를 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Ⅱ 20번 문제를 두고 교육 전문가들은 제시문에 나온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문제에서 개체 수가 음수로 나오는 오류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주어진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종로학원 김연섭 과학팀장은 “제시문 내용에서 집단 Ⅰ이 멘델 집단이라고 가정하면, 마지막 조건 ‘Ⅰ과 Ⅱ 각각에서 B의 빈도는 B의 빈도보다 크다’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은 기각된다. 따라서 집단 Ⅱ가 멘델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집단 Ⅰ의 개체 수를 구해보면 유전자형이 B*B*인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모순이 된다. 결국 문제의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제기한 수험생은 “2015수능의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유형에서는 사람 수는 음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 수가 음수인 집단은 답에서 제외되고 양수인 경우만 정답이 된다는 논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도 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교육과정에서 배울 때 위와 같이 개체수가 음수인 경우는 풀이에서 제외하라고 배웠기 때문에 올해도 그대로 적용했고 그 결과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며 “출제의원 의도대로 그 논리가 맞다면 2015수능과 올해 2022수능은 모순되며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틀린 답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과학적으로도 개체 수가 음수로 존재하는 집단은 성립하지 않고 교육적으로도 학생들이 배운 범위 내에서는 음수에 해당되는 집단은 정답에서 제외하여 왔기 때문에 이 20번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되므로 명백한 오류”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밝히며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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