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불쌍하다. 인생에서 가장 활기차고 행복해야 할 10대 후반을 고교 교실에서,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오로지 책과 씨름하며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은 1년 365일을 거의 하루종일 공부만 하면서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생각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주일미사 또는 예배에 고등학생이 불참하는 것이 요즘 교회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필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주일미사는 꼬박꼬박 참석했다. 필자가 독실한 신자임을 고백하는 게 아니고, 요즘 고등학생들이 필자의 세대에 비해 공부 이외에 ‘버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는 의미다.

고등학생이 공부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필자가 대학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가서 알게 되었다. 미국의 고등학생은 필자가 지내온 시절과 비교해보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실제로 그들이 행복했는지 어쨌는지 직접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운동하고, 주말에 부모님과 피크닉가서 비행접시를 날릴 수 있는 시간만큼은 신나고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태형 건국대 입학처장(사회환경공학부 교수)
이태형 건국대 입학처장(사회환경공학부 교수)

필자가 일본에서 박사후연구원생활을 할 때도 비슷한 걸 느꼈다.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연구원과 두 나라의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대해 나눴던 얘기는 선입견을 깨기 충분했다. 방송매체를 통해 동경대에 합격하기 위해 4수, 5수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수영, 테니스 등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을 목격했고 일본인 친구도 그 사실을 확인해 줬다. 예전에 우리는 3당4락, 즉, 3시간 자면 (S대에)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는데, 테니스 쳐가며 언제 공부해서 동경대를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정도의 여유는 있었던가 보다.

다시 미국의 경우로 돌아가서, 우리 고등학생들에 비해 행복하게는 지내지만 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국 고등학생들의 학력수준은 어떨까? 여러 가지 학업역량 지표를 통해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성과는 검증된 반면, 미국 초중등교육은 선진 국가치고는 형편없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물론, 이 문제는 미국 고등학생들의 행복한 일과와 직접적으로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절대 공부시간이 우리나라 학생들에 비해 적은 점은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위정자들도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중등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미국대학의 수준은 어떠한 가? 다양한 기관에서 조사하는 세계대학순위를 보면 거의 예외없이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으로 평가받는 대학의 상당수가 미국의 대학이다. 그렇다면, 평범하다 싶은 미국 중등교육과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고등교육의 격차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국의 고등학생은 하루종일 공부만 하지 않아도 하버드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사정을 살펴보면, 학업역량 지표를 통해서 검증된 우리나라 중등교육은 매우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많은 국내 대학들이 세계 대학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한 명석한 학생들이 진학한 국내 유수대학들이 세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비교하면, 우리나라와 미국의 중등-고등교육 수준은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필자가 중등교육-고등교육을 언급하고 있지만, 관점을 단순화시켜 학생의 학업역량과 학문에 대한 관심에만 맞춰보자. 교사 또는 교수의 수준과 열의, 학교기관의 재정상태, 학교의 교육체계나 행정선진화 등 각급학교의 수준을 평가하는 다른 요소들은 배제하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미국의 일류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고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살펴보자. 일반 고등학생들과 달리 그들은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며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하면 과외는 필수이다. 최상위권 내신성적을 유지하고, SAT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미국의 많은 대학은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성적과 일종의 수학계획서 성격의 에세이, 그리고 고등학교의 내신성적과 교과과정 외 클럽 활동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신입생을 선발한다. SAT를 위주로 선발하면 수능위주전형일 테고 에세이와 클럽 활동을 주로 반영하면 학생부종합전형이겠지만, 미국대학은 전형요소별 반영비율을 밝히지 않고 철저히 대학의 고유영역으로 남겨둔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과 부모들은 원하는 대학의 입시정책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것은 추정일 뿐이다. 물론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등 최고수준 대학에 입학하려면 거의 모든 요소가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 학생은 비록 미국의 고등학생이어도 우수한 내신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를 매우 많이 해야 하고, 그 와중에 클럽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 우수한 성과를 확보해야 한다. 좋은 에세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컨설팅을 받기도 한다. 결국,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럼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선, 미국은 고등학생의 극소수만이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대학, 즉 중위권대학이나 지역의 단과대학(college)에 진학하기 위한 정도의 노력을 하거나 아예 대학진학 대신 취업준비를 한다. 미국 고교에서는 학생 성적의 상대등급을 평가하지 않아 학생은 노력에 비례하는 성적을 받게 되고,  남보다 잘하기 위한 추가적 노력이 필요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 대학을 준비하든 간에 대입을 준비하는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은 유사한 수준의 준비를 한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독서실이나 집에서 공부하다 잠이 든다. 좋은 내신등급을 받기 위해 다른 친구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수능도 다른 학생들보다 잘 봐야 하니, 모두가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환경에서는 정말로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의 자세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차이점은, 고교 졸업 후 진로의 다양성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우선 일류대학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로부터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학까지 목표를 ‘낮춘다.’ 수시로 갈 것인지 정시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대입을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하고 대학진학이 어려우면 재수를 하든지 취업을 생각한다. 반면 미국 고등학생은 자신의 수준에 맞춰 일류대학, 중위권대학, 지역단과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할 의향을 갖고 고교 생활을 한다. 일류대학을 목표로 준비했다가 실패해 중위권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본인의 수준과 희망에 맞는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기 때문에 ‘실패’하거나 ‘좌절’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고 대부분 당당하고 만족한다.

미국의 중등교육제도와 고등교육제도가 반드시 우수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의 고등학생들이 미국의 고등학생들보다 덜 행복해 보이는 것이 마음 아플 뿐이다. 미국 고등학생들이 적당한 수준의 지역대학에 진학하거나 아예 고교 졸업 후 취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일류대학을 졸업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고, 더 높은 연봉을 받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길을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욕심이 없어서 일까?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일류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만족하며 지지할까?

이런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가치관, 부모의 과도한 열의, 대학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정책 등 다양한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발생한다. 사회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 바로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대학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싶은 문제는 대학 내에서 대학생에 대한 학업역량 평가이다.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큰 각오를 동반해야 하는 일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들인 노력의 몇 배로 공부해야 졸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노력을 게을리하면 4년 후에 졸업하기 어렵거나, 아예 중도탈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긴 하지만, 중위권대학이라고 공짜로 졸업장을 주지는 않는다. 고등학생이 대학진학을 고민할 때는 훨씬 더 신중해진다. 어떤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지와 그 대학에서 살아남아 졸업장까지 받을 수 있는지를 동시에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진학은 당연한 목표이고 본인의 성적에 맞는 학교를 찾아 어떻게든 입학하려고 하지만, 그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난하게 졸업까지 도달한다. 

결국 우리도 고교 과정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대학교육은 선택한 자들을 위한 과정이므로 미국처럼 혹독하게 교육시키고 엄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는 도전적인 수준으로 교육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 수준에 못 미치는 학생은 온정주의로 졸업장을 건네주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미국 고등학생들의 행복은 일면 미국 대학교육의 강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육을 강화하면 직접적으로는 대학생의 역량, 나아가서는 대학의 연구역량이 제고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고등학생의 대학진학에 대한 막연한 로망에 변화를 줄 것이다.

‘100세 철학자’로 잘 알려진 102세의 김형석 교수(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께서 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자녀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아이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하셨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때, 아이의 성적이나 재능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고 하셨다.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따뜻한 방목으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부모는 위험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 아이들을 자유롭게 두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우리 아이들의 성적과 재능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으로 아이들을 평가해, 아이들로 하여금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굳어져 왔다. 이것은 단지 교육제도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이며 어른들의 인식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요즘 어린이들의 첫 번째 장래희망이 유튜버라고 하는데, 필자는 ‘이 친구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만 하며 지내지는 않겠구나’ 하며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 자식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고 넉넉한 연봉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모든 부모가 바랄 것이다. 넉넉한 소득에 행복하게 사는 유일한 방법이 대학졸업 만은 아니어야 하며, 실제로 그렇지도 않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에게 대학진학만이 인생성공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을 주지 말아야 하며, 우리 아이들이 실제로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사회환경을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적어도 각급 기관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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