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교향곡 3번 (Brahms : Symphony No.3, Op.90)

“어느 작곡가를 좋아하세요?” 바로 답하기가 무척 난감하다. 좋아하는 곡이나 작곡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주 변했고 계절에 따라서도 바뀌었다. 낮에 듣기 좋은 곡도 있고 밤늦게 들어야 제 맛이 나는 곡들도 있다. 기분이 좋을 때와 우울할 때 듣는 음악도 다르다. 그렇지만 누군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바로 답할 것 같다. 아주 좋아한다고.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불문학도였지만 불어원서는 늘 지니고 다녔다. 한 달 동안 기껏 열 페이지도 못 읽고 포기한 책이 대부분이지만 비교적 쉽게 읽혔던 프랑수와즈 사강(Françoise Sagan)의 소설 한권은 끝까지 읽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 멋진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지만 음악 관련 이야기는 많지 않다. 39세의 여성이 비슷한 연배의 애인과 14세 연하 청년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연애 소설이다. 젊은 청년 시몽은 중년여성 폴에게 음악회 티켓을 편지와 함께 보내면서 묻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강이 소설을 발표한 지 2년만인 1961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 프랑스, 미국 합작의 흑백영화로 이브 몽땅, 잉그리드 버그만, 앤소니 퍼킨스 등 호화 배역진이다. 프랑스에서만 소설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고, 미국에서는 ‘Goodbye Again’, 한국에서는 ‘이수(離愁)’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상영됐다. 영화 속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편지로 묻지 않는다. 14세 연상의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흠뻑 빠져있던 앤소니 파킨스가 파리 시내에 널려 있는 브람스 교향곡 연주회 포스터를 보고 즉흥적으로 물어 본다. 연주회장에서도 음악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전반부 1번 교향곡이 연주되는 동안 젊은 청년의 관심은 온통 사랑하는 여인에게 쏠려 있다. 후반부 3번 교향곡 연주 중에는 말다툼을 하고 음악회장을 나온다. 감미로운 사랑의 선율이지만 우수를 잔뜩 머금은 3악장이 화면에 가득 찬다.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들은 이후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겐 넘지 못할 벽으로 여겨졌다. 멘델스존과 슈만이 각각 5개, 4개의 훌륭한 교향곡을 남겼지만 베토벤 교향곡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서는 한계가 느껴진다. 베토벤 숭배자이기도 했던 바그너는 “교향곡은 베토벤에서 끝났다”라는 말과 함께 오페라 위주로 작곡을 했으며, ‘교향시(Symphonic Poem)’ 창시자인 리스트 또한 교향곡이라는 틀 속에서는 베토벤의 그것에 필적할 작품을 만들어 낼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브람스에게도 역시 베토벤 교향곡들은 넘기 어려운 커다란 벽이었다.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곡 등 각 분야에서 많은 명곡들을 만들어 냈지만 교향곡만큼은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22세 때 교향곡 1번을 구상했지만 완성한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876년, 그의 나이 43세 때이다. “우리는 드디어 10번 교향곡을 얻었다” 초연 당시 당대 최고의 지휘자가 한 말이다.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 뒤를 잇는 진정한 교향곡이 탄생했다는 의미다. 자신을 얻은 브람스는 이후 3곡의 교향곡을 더 작곡했다. 베토벤에게서 느껴지는 격정이나 환희의 물결은 덜할지 몰라도 좀처럼 드러내 놓지 않는 열정과 사랑의 감정들이 북독일의 우수와 서정성과 함께 깊은 사색의 시간들을 만들어준다. 감미롭거나 화려한 선율 대신 쓸쓸하면서도 깊이 있는 분위기의 브람스 음악들은 몇 번을 들어도 쉽게 친숙해지지 않지만 교향곡 3번의 3악장만큼은 예외다. TV와 라디오에서 워낙 많이 흘러나온다.

브람스(Johaness Brahms, 1833~1897)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른다. 확실한 사실은 14세 연상의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을 평생 가까이 했다는 점이다. 20세의 젊은 브람스를 발굴해 음악계 전면에 내세운 사람이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었고, 슈만이 죽은 후에는 무려 40년 간 클라라를 존경하는 스승의 부인으로, 친구로, 보호자로 그리고 마음 속 연인으로 항상 곁에 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다음 해에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브람스 음악의 원천이 클라라였을지도 모른다. 사강의 소설 속 젊은 남자와 중년 여인은 브람스와 클라라를 닮은 듯하다. 그렇지만 사랑의 방식은 전혀 다르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구애의 대상이 아니라 영원한 뮤즈였던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브람스라 수집한 음반들이 많다. 내 귀엔 모두 명연주들이기에 음반 선택할 때면 항상 망설여진다. 하지만 3번 교향곡만큼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954)의 베를린 필 실황연주를 최고로 꼽고 싶다. 1949년의 모노 녹음인데다 감기가 독하게 걸린 한 관중의 기침소리가 지속적으로 동반하지만 음악 감상에 크게 방해가 되진 않는다. 강하게 휘몰아치는 관현악의 총주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하고, 우수와 서정성이 풍부한 3악장의 알레그레토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낭만적인 선율들을 쏟아낸다. 푸르트벵글러만큼 극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브람스는 우리 시대에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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