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 '인재 해외유출'..서울대 곽승엽 교수 설문조사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전문연구요원제도(이하 전문연 제도)가 ‘이공계 기피 현상 완화’와 ‘인재 해외유출 방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전문연 제도는 이공계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병역 대체 복무제도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곽승엽 교수가 최근 학교에 제출한 ‘전문연구요원 제도 운영 및 선발의 현황과 성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포스텍 대학원생 15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문연 제도가 박사과정 진학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 묻는 항목에서는 62%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전문연 제도가 폐지되면 해외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겠다는 비율 역시 49%로 높았다.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최근 국방부의 전문연 제도 폐지 방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 국방부는 병력자원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병력 특례 요원을 감축하겠다는 방안을 2016년 내놨기 때문이다. 이공계의 반발로 보류하긴 했지만 언제 다시 칼을 뽑아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번 연구 역시 국방부의 전문연 폐지 방침에 따라 제도 필요성을 분석하는 목적으로 실시됐다. 

지난해에는 서울대 공대 대학원 석사과정 모집에서 처음 미달이 생기면서 이공계 위기가 심각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입학 예정인 대학원 후기 모집에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석/박사 통합과정 37명 모집에 11명이 지원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서울대 공대 대학원 미달 사태로 수면에 드러난 이공계 위기는 전문연 제도 페지와 맞닿아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교육부는 이공계 인재부족을 이유로 이공계 정원을 확대하는 프라임사업을 추진중인 데다가, 미래부가 이공계특성화대학 운영에 이어 SW중심대학 선정에 나서는 등 이공계인재 육성에 나선 기조와 정면 배치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업계 한 전문가는 " 대입의 블랙홀로 올라선 의대열풍을 감안하면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한 사회적 기반과 분위기 조성이 급박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서 이미 해오던 혜택까지 줄인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연폐지는 정부가 나서서 의대열풍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폐지할 경우 이공계 기피 현상과 인재 해외유출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방부는 병력자원 부족의 문제로 전문연 폐지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전문연 석/박사 연구인력 ‘경력단절 방지효과’>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병역 자원 일부를 병무청장이 선정한 지정업체에서 3년간 연구인력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병역대체복무제도를 뜻한다. 석/박사 등 고급인력에 학문, 과학기술의 지속적 연구기회를 부여해 국가산업의 육성/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실시됐다. 

논란은 2016년 국방부가 전문연 제도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부터 시작됐다. 국방부는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병역특례요원 제도를 단계적으로 감축해 2023년까지 완전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 중에서도 박사과정 3년간 연구개발을 실시하는 박사 전문연은 2019년부터 폐지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현역자원 부족이 예상되는 이상 병역 특례제도인 대체복무제도를 폐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사 전문연은 지정업체로 선정된 자연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학 중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일반대 대학원의 경우 대학원 학점 50%와 TEPS(텝스)점수 50%를 합산해 전문연 편입(선발) 여부가 결정되지만 KAIST GIST DGIST UNIST의 4개 과기원은 신입생 수만큼 전문연 인원이 배정되기 때문에 전문연구요원으로 자동 편입되는 구조다.

전문연 제도의 직접적 수혜대상인 4개 과기원은 즉각 반발했다. 박사 전문연은 단절 없이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특히 컸기 때문이다. 폐지에 반발하는 대학과 총학생회에서는  “전문연구요원 박사과정은 경력 단절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였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제도를 통해 과학기술 연구개발 발전을 선도할 수 있었다”면서 “여전히 우수 인재가 필요한 상황에서 군 입대가 20~30대 우수 연구인력의 경력 단절을 초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가 과학계/산업계 전문가들과 의견청취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국방의 관점에서만 정책을 추진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KAIST GIST DGIST UNIST 포스텍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한양대 등 국내 9개대학은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반대 의견서를 공동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대학은 “지난 40여 년 동안 박사급 고급 연구 인력 양성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해 온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면서 “전문연구요원제도는 고급 두뇌의 해외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공계 인재의 연구 경력 단절을 해소하고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유인책으로 작용해왔다”고 말했다. 폐지 계획에 대해서 “병역자원 감소를 이유로 국가 미래를 책임져야 할 핵심 이공계 인력의 연구 경력을 단절시켜 국가 경쟁력 약화를 유발하게 하는 결정이며 국반 인력자원을 양적 측면에서만 본 근시안적인 접근”이라면서 “현대의 국방력은 과거와 달리 병역자원의 수보다는 탄탄한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한 첨단 국방기술과 무기체계로서 확보될 수 있으므로 과학기술 역량을 갖춘 우수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 국방력 확보에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교육부와 미래부도 우려의 입장을 표명했다. 교육부는 “이공계 위축 우려가 있는 병역특례제도 폐지방안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공계 관련 부처인 미래부도 전문연구제도 존치 입장을 나타냈다.

<전문연 제도.. 이공계 기피현상 완화>
이번 연구결과는 전문연 제도 폐지가 이공계 기피 현상을 심화하고 인재의 해외유출 현상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를 뒷받침하는 자료다. 곽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 전문연 제도가 박사과정 진학 결정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경우가 39%,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경우가 41%였다. 이공계 기피 현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 묻는 항목에서는 62%가 ‘효과가 높다’거나 ‘매우 높다’고 답변했다. 

전문연 제도가 이공계 유인효과가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됐다. 2012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고급과학기술인력양성을 위한 전문연구요원제도의 효율적 운영방안 연구’(엄미정)에 따르면 대학/기업체에서 복무하고 있는 전문연구요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공계 유인 효과’ ‘연구직 요인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60% 이상이 높은 효과가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대학에 복무하는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그 효과가 더 크다고 봤다.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없었다면 30% 이상이 석사 자체를 진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대부분 석박사 진학 시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고려한 것이다. 

현재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는 의학계열 선호 현상과 맞물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16년 입시에서 서울대 합격자 3135명 가운데 발생한 346명의 입학포기인원 중 37%가 공대 합격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2012년 합격 포기자 수가 122명이었던 공대는 2013년 135명, 2014년 136명, 2015년 136명으로 꾸준히 발생했다. 국내 최고 선호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임에도 공대 포기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는 의대선호현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국내 최고대학이라는 점 때문에 서울대 공대/자연계열 학과에 지원하면서 타 대학 의대에 동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설립근거 자체에서부터 이공계 인재 양성을 내걸고 운영중인 과고/영재학교에서조차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윤관석(더불어민주)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아 제공한 ‘2014~2016 과학고/영재학교 대학입학 현황’에 의하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과고 전체 졸업자 4000명 가운데 89명(2.2%), 영재학교 졸업자 1500명 가운데 130명(8.7%)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교육부가 2017년 과고/영재학교 의대진학 방지대책으로 추천서 작성 거부, 장학금/지원금 회수 방안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이미 일부 영재학교/과고에서 도입해 실시하고 있었지만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학금/지원금을 모두 반환하겠다고 하는 경우 의대 진학을 막을 도리가 없고, 추천서 작성 거부도 추천서를 필수로 요구하는 전형의 모집인원이 적다는 점에서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반고 대비 막대한 재정지원이 이뤄지는 고교에서 설립취지에 반하는 진학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전문연 폐지는 기피 현상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최상위 이공계 인재들은 과고/영재학교를 거쳐 이공계특성화대학이나 서울대 등으로 진학하는 것이 통상의 예다. 특히 박사과정을 염두에 두는 경우 전문연 제도의 존재가 진학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현재 과고/영재학교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내심 이공계와 의대 사이에서 저울질 하던 학생들은 대다수 의대로 마음을 돌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전문연 폐지할 경우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 우려>
이공계 인재의 해외유출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곽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없을 때 해외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49%에 달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곽 교수는 전문연 제도를 폐지할 경우 해외 유학생 수가 늘어 인재 유출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전문연 제도가 없을 때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다른 진로를 택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86%에 달한다”며 “이 제도가 국내 이공계 대학원 진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고급과학기술인력양성을 위한 전문연구요원제도의 효율적 운영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역시 전문연 배정 제외를 가정한 질문에서 전문연구요원들은 병역 문제 해결 이후 유학을 가거나 취업을 했을 것으로 응답했다. 기업 전문연구요원을 선택하겠다는 의견이 44%, 병역복무 후 해외유학을 가겠다는 의견이 41%였던 반면 국내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의견은 16%에 그쳤다. 전문연 제도가 국내 대학에 체류해 학습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왔다는 분석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우수 인력들이 해외에 눈을 돌리지 않고 국내 진학을 결심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전문연 제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대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병역대체복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문연 제도가 사라지면 대학원 진학을 앞둔 인재 중 상당수가 해외대학으로 진학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연 제도는 해외로 조기 유학을 갔던 유학생이 우리나라로 귀환하는 동기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에서 학부를 졸업한 학생이 다시 한국으로 복귀하는 통로라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2012년 8월 당시 서울대에 소속된 전문연구요원 중 해외대학 출신은 9명 정도로 2009년 편입 1명, 2010년 3명, 2011년 5명으로 계속해서 증가세였다. 

이공계 기피, 이공계 인재 해외유출 현상은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많다. 전문연 폐지에 반대하는 9개대학 역시 “국가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위해 우수 이공계 인재가 절실한 상황에서 전문연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발 시 TEPS 점수 비중 커>
전문연 선발 시 영어 점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도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 TEPS 점수로 상대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적절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57%로 다수였다. 이공계에서는 영어 성적이 아닌, 연구역량을 기준으로 전문연을 선발하는 제도 개발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곽 교수가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병무청 주도 하에 연구분야 관련 전공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에 대해 곽 교수는 “전문연 선발에서 필요한 전공분야를 선택해 시험을 보게 되면 텝스 공부에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고 연구역량 평가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등 국제 연구역량 평가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문연 요원 선발에는 텝스 성적을 50% 반영하고 있다. 나머지 50%는 석사 성적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학점 차가 크지 않아 사실상 텝스 성적을 통해 당락이 갈리는 구조다. 전문연 대상자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곽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 전문연 편입 준비자가 하고 있는 활동은 텝스 시험 준비가 78.3%로 가장 높았다. 정보 수집 38%, 한국사 시험 준비 21.7% 순이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2014년 전기 선발만 하더라도 텝스 650~700점이면 선발될 수 있었지만 2015년 들어서는 750~800점, 2016년은 850점 선으로 추정될만큼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전문연 제도는>
전문연 제도는 4월 중순과 9월 중순으로 연 2회 나눠 선발한다. 이공계 570명과 의학계 30명을 합해 총 600명 선발하며 이공계는 전기 399명(수도권 279명, 비수도권 120명), 후기 171명(수도권 120명, 비수도권 51명)을 선발한다. 과락기준은 텝스 점수 500점 이상, 한국사 자격증 3급 이상이며 영어(텝스) 환산점수 300점, 대학원 석사 환산점수 300점을 더해 총 600점 기준으로 선발한다. 

2010년은 영어 국사로 구성된 선발(필기)시험의 과목별 득점 성적과 출신대학/대학원 석사학위과정 성적의 환산점수를 합산해 고득점자 순으로 선발했다. 2011년부터는 영어/국사를 모두 공인인증시험으로 대체하고 선발횟수를 연 1회로 축소했다. 영어는 텝스, 국사는 한국사검정시험 성적을 활용한다. 2013년부터는 연1회로 축소한 선발 횟수를 연2회로 확대했다. 이전까지 선발 배점에 포함되던 학부 성적은 제외되고 대학원 석사 과정 성적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전문연 폐지 논란은 1990년 이후 꾸준히 제기돼왔다. 가장 최근의 논란은 2016년 국방부가 ‘산업 분야 대체복무 배정 인원 추진 계획안’을 각 정부 부처에 발송하면서부터다. 이공계 대체복무 선발 인원을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해 2023년에는 대체복무자 선발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과학기술계를 비롯한 전국 이공계 대학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후 국방부는 “페지 계획은 지속적 검토 자료”이고 “관련 부처 및 기관 의견을 수렴중인 것은 맞으나 방침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물러섰다. 이후 국방부는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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