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필고사 중심 대입 개선 부터'

[베리타스알파=이우희 기자] 초·중·고등학교에서 '지필평가' 없이 '수행평가'만으로도 학생 성적을 산출할 수 있게하는 방안에 대해 중등 교원의 61%가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교사들은 공정한 기준 마련이 어려워 학생/학부모의 문제제기 가능성을 우려했다. 지필고사 방식의 수능체제는 그대로 두고 학교평가만 바꾸는 데 따른 실효성도 의심했다. 예체능 과목까지도 반드시 지필평가를 시행하도록 한 기존 교육부 훈령을 개정해 창의적인 교실을 만들고자 했던 교육부의 개혁이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힌 셈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9∼16일 전국 초·중·고 교사와 교감, 교장 등 교원 96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등교사의 61%가 평가방식 개선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고 최근 밝혔다.

<상대/지필평가 수능 그대론데 내신만 수행평가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행평가 등으로만 성적을 매기는 것에 대해 초등교원은 찬성(55.3%)이 반대(40.8%)보다 높은 반면 중등 교원은 반대가 과반을 넘겼다. 중학 교원은 반대 54.8%로 찬성42.4%보다 12.4%p 높았고 대학입시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고교 교원은 반대가 66.3%로 찬성32.3%의 두 배를 넘었다. 고입과 대입이라는 경쟁 입시체제의 영향권에 있는 교사는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산출하는 데 대해 기대보단 우려감이 높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예상되는 부정적인 변화에 대해 중/고교 교원들은 “공정한 기준 마련의 어려움 속에서 학생·학부모 문제제기 우려(중학교 46.3%, 고교 44.7%)”를 1순위로 꼽았다. 이어 ▲수능(상대평가방식·지필고사 형태)은 변하지 않고 학교평가 형태만 바뀜에 따른 이중적 학습부담(중학교 24.3%, 고교 30.3%) ▲교사 평가 부담에 따른 형식화된 수행평가 전락(중학교 14.7%, 고교 10.6%) ▲학생의 학력수준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기초학력 저하 우려(중학교 5.6%, 고교 6.3%) ▲사교육 증가 및 학부모 부담 가중(중학교 5.1%, 고교 1.4%) 순으로 응답했다.

▲ 지필고사 없이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매기는 것에 대해 대학입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고교 교원 66.3%가 반대해 찬성 32.3%를 압도했다. 교사들은 창의적인 수업이 가능하도록 평가방식을 개선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입제도 개선이 선결조건이라는 의견이 많았다./사진=베리타스알파DB
반면 초등 교원들이 첫손에 꼽은 부정적인 변화는 “수능(상대평가방식·지필고사 형태)은 변하지 않고 학교평가 형태만 바뀜에 따른 이중적 학습부담’(38.7%)”이었다. 이어 ▲공정한 기준 마련의 어려움 속에서 학생·학부모 문제제기 우려(31.9%) ▲학생의 학력수준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기초학력 저하 우려(13.3%) ▲교사 평가 부담에 따른 형식화된 수행평가 전락(6.5%) ▲사교육 증가 및 학부모 부담 가중(4.7%) 순으로 응답했다.

기대되는 긍정적 변화는 교육당국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초·중·고 교원 모두 “다양한 형태의 질적 평가로 학생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숨겨진 재능 계발 지원(초등 33.9%, 중학교 33.3%, 고교 30.3%)”을 1순위로 꼽았다. 2순위는 초등과 중등 교원이 나뉘었는데 초등은 “서열화된 평가 지양으로 학생의 학습부담 완화’(28.6%)”를 중등은 ”교사의 평가권 확대를 통한 평가의 책무성 및 전문성 강화(중학교 17.5%, 고교 14.9%)”로 나타났다. 이어 초·중등 교원 공히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 신장(초등 10.5%, 중학교 13.0%, 고교 12.0%)” 될 것이라는 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긍정적인 변화가 없다”고 답한 교원도 초등 17.8%, 중학교 24.3%, 고등학교 31.7%에 달했다.

교원들은 평가방식을 변경하기 전에 우선 지원해야할 과제로 ‘상대평가 형식의 수능제도 변경’, ‘객관적인 기준 마련’, ‘교원 수업전념 환경 조성’을 요구했다. 최우선 과제로 초·중학교 교원은 ‘수능 변경(초등 30.1%, 중학 27.7%)’을, 고교 교원은 ‘객관적 기준 마련(30.8%)’을 요청했다. 그 밖에도 장학지원과 학부모 인식변화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있었다.

<대입방식 바뀌지 않으면 평가갈등/교권추락 우려>
공교육 최일선의 교원들은 자유서술식 설문 답변에서 다양한 현장의견을 피력했다. 한 교원은 “평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문제는 전체 교육제도의 개혁과 함께 진행되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면서 “대입제도의 개선 없이 수행평가의 이상적인 실현이 가능할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교원은 “객관적 기준 없이 현장의 교사들에게 떠맡기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며 “학생들의 객관적 수준을 알 수 없는데다 입시제도는 그대로이므로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는 “내신 성적에 불리한 남학생을 둔 학부모의 고통이 더해져 갈 것”이라는 우려도 표했다.

대입제도의 선제적 개선을 요구한 의견은 또 있었다. 한 교원은 “취지는 매우 훌륭하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수행평가로 내신을 대신하게 되면 대입선발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학부모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수행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가 늘어 결국 교권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입선발고사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필평가 자체의 효율성과 객관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색다른 의견도 나왔다. 한 교원은 “지필평가만으로 학생을 서열화시키는 것이 문제이지 지식을 재는 도구로서 지필평가 자체가 문제일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행평가만으로 평가를 대신해도 몇 년 지나면 이번에는 지나친 수행평가중심으로 인한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이라며 “지필평가의 순기능을 무시하고 수행평가방식에만 올인 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홍보와 신뢰 구축을 전제로 환영한다는 한 교원은 “평가방식의 전환은 경쟁적인 학교 문화를 협력적으로 바꾸어 학생들의 삶의 질을 높일 것이므로 대단히 환영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과 개인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학부모들이 교사들의 평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새 평가방식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찬성의견을 나타냈다.

설문 결과에 대해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교육부 발표 후 실시한 첫 인식조사 결과, 현장 교원들은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며 "서둘러 밀어붙이지 말고 공정한 평가기준 마련과 입시제도 개선, 교원 근무환경 조성부터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온라인 설문에는 초등 555명, 중학 177명, 고교 208명, 기타 20명의 교원이 참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이다.

<수행평가 확대 의무 아닌 자율성 확대>
앞서 교육부 발표한 내신 평가방식 개선은 일선 학교에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미술과 체육, 음악 등 예체능 교과의 경우 지필평가 없이도 성적을 산출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길만 터 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현행 지침에선 “평가는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분해 실시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이 내용을 교육부가 개정 지침에 “평가는 수업활동과 연계해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분해 실시할 수 있다”로 바꾸고 “교과의 특성상 수행평가만으로 평가가 필요한 과목은 학교학업관리규정으로 정해 실시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단 것.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낼 수 있는 길을 열어두겠다는 의미다.

또한 예체능 과목이라도 반드시 지필평가를 보도록 하는 현행 규정은 삭제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현행 지침에선 “중·고교에서 음악·체육·미술 관련 과목은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산출할 수 없다”도록 돼 있는데 개정 지침에선 이를 삭제하겠다는 것으로 학교 재량에 따라 수행평가만 실시하는 과목이 늘어날 가능성을 기대한 조치.

교육부는 지난 3일 시·도교육청에 개정안을 안내하며 "교과의 성격과 특성에 적합한 평가 방법을 활용하되,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 및 수행평가의 비중을 확대해 수업과 연계한 과정 평가를 강화할 수 있게 해달라"면서도 “교과나 단원에 따라 수행평가만으로도 평가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준 것으로 학교에 따라 기존 방식대로 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했다.

개정 훈령이 시행되는 절차를 감안하면 당초 빠르면 1학기말 성적 처리 때부터 적용될 것으로 예상됐다. 입법 예고를 거쳐야 하고 시·도교육청의 관련 지침부터 각 학교의 규정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교원들의 반대 의견이 강하고 특히 대학입시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고교 교원들의 반발이 심해 정책 시행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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