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필수과목 P/F 평가 도입 ..영재학교 확대되나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영재학교의 효시 한국과학영재학교(이하 한국영재)가 출범 20주년을 맞아 교육과정의 질적향상을 모색하는 교육과정 개편을 단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선발한 2023학년 신입생부터 적용된 한국영재의 제6차 교육과정은  졸업학점 대폭 축소 등을 골자로 한다.  졸업학점이 174학점에서 155학점으로 19학점 줄어든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세부적으로는 자연/인문 필수교과 이수학점이 17학점, 졸업연구학점이 2학점 줄어든다. 1학년 필수과목에 대한 평가제도는 A+에서 F까지를 부여했던 평점제에서 PASS(이수)/FAIL(미이수)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의 학업부담이 전반적으로 경감됐다. 대신 학생들은 각자의 관심분야를 선택해 심층적인 학습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학생별 2개 교과를 선택해 심화필수과목 3과목씩을 이수하는 심화필수 이수제가 대표적이다. 

한국영재의 제6차 교육과정은 외국대학의 온라인 강의 등 외부 교육자원을 활용해 학생 스스로 교과과정을 설계해 이수하는 ‘자기설계형 교육과정’, 2시수 이상의 모든 과목을 연강으로 실시하는 ‘블록수업제’ 등 기존 한국 교육과정의 고질적인 틀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가 포함됐다. 한국영재의 개편 흐름은 타 영재학교까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데 의의가 있다. 현재 8개 영재학교가 공통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연구중심교육과정 역시 2003년부터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영재교육을 실시해온 ‘영재학교의 효시’ 한국영재에서 파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영재 개발의 수업모형이 타 영재학교에 보급되고, 이를 기본으로 영재학교별로 조금씩 각 학교에 적절하게 수정해가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한국영재는 유일한 과기부 소속 영재학교로 독자적인 과학영재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우수교원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한국영재를 제외한 7개 영재학교는 교육부 소속 영재학교다. 실제 현재 한국영재의 수학/과학 교과의 전임교원은 전원 박사학위 소지자다. 연구 경험이 풍부한만큼 학생들의 창의적 연구활동 지원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연구중심교육뿐 아니라 강력한 국제화교육과 특히 KAIST연계교육에 특화됐다는 특징도 있다. KAIST부설로 전주기 영재교육을 실현, 큰 문제 없다면 KAIST로의 진학 문이 열려있어 타 영재학교 대비 입시에서 자유로운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하다. 

영재학교는 타 고교가 초중등교육법을 적용받는 것과 달리 영재교육진흥법을 적용받는다. 교육부 지침이 아닌 학교장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 셈이다. 보통 고교가 ‘시수’제로 국수영 일정단위 식의 교육과정의 틀에 놓여있는 것과 달리 영재학교는 ‘학점’제로 학교별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정상 수능교육이 불가능한 특징도 있다. 정시중심의 의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겐 전혀 맞지 않는 교육방식으로, 순수 이공계열에 진학의 흐름에 맞춰져 있는 셈이다. 

한국과학영재학교(이하 한국영재)가 출범 20주년을 맞아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졸업학점이 174학점에서 155학점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사진=한국영재 제공
한국과학영재학교(이하 한국영재)가 출범 20주년을 맞아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졸업학점이 174학점에서 155학점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사진=한국영재 제공

<한국영재 제6차 교육과정 개편.. 교과교육 축소, 심화학습 확대>
- 졸업학점 174학점→155학점 ‘19학점 축소’.. 조기졸업과는 ‘무관’ 

한국영재가 2023학년부터 도입한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졸업을 위한 최소이수학점이 155학점으로 축소된다. 제5차 교육과정 174학점에 비해 19학점이 줄어드는 것이다. 5차 교육과정에선 한 학기당 29학점을 이수해야 했지만, 새 교육과정에서는 한 학기당 26학점 정도만 이수하면 된다. 

그 중에서도 필수교과 이수학점이 감소한다. 기존 제5차 교육과정에서는 필수교과가 61%(83학점) 선택교과가 39%(53학점)의 비율이었으나,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필수교과가 55.5%(66학점) 선택교과가 44.5%(53학점)로 필수교과 비율이 5.5% 축소된다. 계열별로는 자연교과 필수학점이 42학점에서 33학점으로 9학점이 감소했고, 인문교과 필수학점이 41학점에서 33학점으로 8학점 줄었다. 자연계열의 총 이수학점은 76학점에서 67학점으로, 인문계열의 총 이수학점은 60학점에서 52학점으로 줄었으나 비율로 따져보면 자연 56%, 인문 44%로 변함없다. 

교과 이수학점뿐 아니라 졸업을 위한 요건들이 전반적으로 완화되는 양상을 띈다. 졸업연구 2학점(8학점→6학점)과 영어강의 최소이수학점도 5학점(15학점→10학점)이 줄어들고, 자기계발/세계시민/협업 활동을 아우르는 리더십활동도 300시간에서 270시간으로 총30시간이 축소된다. 한국영재 천만석 교무연구부장은 “졸업학점을 감소시킨 것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것이다. 시간적 여유를 줌으로써 학생들의 창의적활동과 사고를 촉진하고, 각자의 관심분야에서 잠재력을 최고로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앞서 3월 과기부가 한국영재에 시범 도입하겠다고 밝힌 조기진학 트랙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교육과정 개편은 2021년 말부터 준비해 2022년 이미 완성됐던 내용이으로, 조기진학 시범 운영안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사안이 없다고 선 그었다. 

-1학년 필수과목 P/F 평가제 도입.. ‘학습을 위한 평가’에 중점
1학년 필수과목은 A+에서 F까지를 부여했던 평점제에서 PASS(이수)/FAIL(미이수) 방식으로 전환된다. 기존 교육과정에서는 예술체육 교과 과목, 일부 융합 과목, 창의연구 활동 분야에 한해 P/F 평가제가 운영되고 있었으나 이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1학년 필수과목 한해 중간고사 이후 3주 내에 수강을 철회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한다. 학생들이 자기 역량에 맞게 학습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열어두겠다는 취지다.

한국영재의 1학년 필수과목은 일반 고교과정의 수준으로, 고등학생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한국영재에 입학한 모든 학생이 필요한 수준 이상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완전학습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평점을 나눠 누가 더 우수한지를 가리는 방식은 단순 서열을 매기기 위한 ‘평가를 위한 평가’로 의미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 교육과정상의 목표와 준거에 비춰 평가하는 ‘학습을 위한 평가’가 돼야 하며, 모든 학습자가 학습의 과정에서 성공을 경험하도록 절대평가나 P/F 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한국영재 측은 “역량 중심 교과평가를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학생을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재 시행 첫 학기를 맞아 각 교과별로 P/F 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화교과 이수제 도입.. ‘학습 선택권’ 보장 
지식전달 중심의 필수교과 교육이 대폭 축소되면서 학생들은 각자의 관심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심화교육에 더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교육과정은 속진과 심화를 병행하되 심화학습에 더 중점을 둔다는 설명이다. 새로 도입된 심화교과 이수제에 따라 각 학생은 자연계열에서 2개 전공교과를 선택해야 한다. 이후 한 개의 교과당 심화필수과목 3과목씩, 총 6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단순한 지식의 습득보다는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통찰력을 기반으로 고차원적인 사교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토론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과학자로서 기본역량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도 수반한다. 학생이 본인의 흥미, 특성, 진로의 다양성을 고려해 주도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적인 전제로 한다. 학생들은 교과의 수업목표와 개발역량 등과 관련한 정보가 담긴 강의계획서를 수강신청 전 확인할 수 있고, 교사는 다양한 교육활동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한다. 

-자기설계형 교육과정 운영.. ‘외국대학 강의’ 등 온라인 교육자원 활용 학습 인정
이번 교육과정에서는 온라인 교육자원을 통한 학습도 인정한다. 자기설계형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에 개설되지 않은 과목 중 학생이 학부의 승인을 거쳐 외부 온/오프라인 교육자원 등을 활용해 교과를 직접 개설, 운영하는 방식이다. MOOC, Coursera, 외국대학의 동영상 강의, KMOOC, 국내외 대학의 온라인 강의 등을 활용하거나 학생 개인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지도를 받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영재 교원이 담당 교원으로 지정이 돼 학생의 학습을 지도하거나 도와주게 되며, 해당 교원이 P/F로 평가하게 된다. 

기본적인 강의 계획서 양식은 제공돼 있으며 학생 이 자신의 학습 계획을 강의계획서에 자세히 적어서 관련 학부에 제출해야 한다. 해당 학부에서는 강의계획서를 심의해 개설 여부를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학생이 제안한 강의 계획서를 수정. 평가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게 된다. 

자기설계형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은 교사가 설계하고 지도하는 것’이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행보다. 이같은 교육과정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디지털과 매우 밀접한 환경에서 자란 Z세대로, 이전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생성하고 처리한다는데 있다. 교육에도 온라인이 접목되고 확대되면서 새로운 환경이 도래한 만큼 교수자와 학습자의 역할 기준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영재는 “학생이 온라인 환경을 적극 활용하면 자신의 속도와 수준에 맞게 학습 플랜을 이행해 나가는 개별 맞춤식 교육이 가능하다”며 “이때 교사는 학생의 학습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모든 학생이 학습에 성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활동 중심’ 한국영재 교육과정.. KAIST와 연계 강화>
한국영재는 KAIST 부설 특성 상 교육과정이 KAIST와 연계된 것이 특징이다. HP(Honors’ Program) 제도를 이용해 3학년 1학기부터 KAIST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수강할 수 있고, 이후 KAIST 진학 시 해당 학점을 그대로 인정받게 된다. 교육과정이 연계된 만큼 KAIST로 진학하는 졸업생이 상당하다.  한 해 졸업생이 130명 가량인 가운데 2023학년 KAIST로 진학한 인원은 59명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한국영재는 ‘연구활동중심’ 교육의 시초인 만큼 미래 연구자로서 역량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이다. 1학년 창의기초연구를 통해 연구의 기초를 다지고, 2학년R&E(Research&Education)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소그룹으로 1년간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3학년에는 졸업연구를 통해 KSA 교원의 지도하에 관심 분야의 연구를 심도 있게 수행하면서,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중심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연구역량을 배양하게 된다. 연구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드림디자인센터가 대표적이다. 드림디자인센터는 학생들의 아이디어 구상부터 설계, 시제품 제작으로 이어지는 혁신적인 종합실험공간이다. 연구활동과 다양한 교육/탐구활동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첨단 장비를 활용해 구체적인 시제품 제작이 가능하다. 

교육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중점을 두는 부분은 학생 중심의 맞춤형 교육, 창의연구 활동, 전인적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 함양 등이다.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토의토론 중심 교육, 실험실습 위주의 자기 주도적 학습뿐 아니라 모든 교과에서 탐구와 토론 능력을 강화하는 학생 중심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5명 이상의 학생이 신청하면 희망하는 수업을 개설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유연성 또한 한국영재가 갖춘 장점이다. 개별화 교육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한국영재 교육의 기반이 된다. 

국외 우수 과학영재교육기관과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국제공동연구, 국외위탁교육, 교환학생 프로그램, 국제과학전람회 참가 등 국제적인 연구와 체험활동을 통해 국제적인 감각과 전문성/창의성을 다지면서, 세계와 경쟁하는 과학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외국인 학생을 선발해 내외국인이 공존/교류하는 글로벌 캠퍼스를 구축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크다. 영어로 소통하고 문화적 공감과 교류를 통해 세계시민 의식을 증진하고, 국내학생들의 국제화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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