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문제일 DGIST 입학처장

수시전형이 도입되고 자소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학생들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에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소서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직 인생의 1/4도 살지 않은 어린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미니 자서전일까요? 자신을 세일즈하는 홍보 기획서일까요? 자소서는 결국 “미래를 위해 비상하는 학생들의 꿈에 대한 도전 계획서”라는 생각입니다.

요즘 갑자기 유행하는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모든 이의 꿈이 다르듯 자소서 역시 절대로 남과 같을 수 없습니다. 내 꿈의 계획서를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작성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DGIST는 3000자 자유양식의 자소서를 요구합니다. 처음 DGIST 전형계획을 기획할 당시, 모든 사정관들은 자유양식의 자소서가 폭발적인 호응을 얻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지난 2년동안 입시전형을 치러본 결과는 놀랍습니다. 오히려 자유양식의 자소서가 더욱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기본양식을 훨씬 편안하게 느낀 학생들은 DGIST를 지원하면서 기본양식의 자소서를 편집작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갖고 있는 일단의 문제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혼자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 문제일 DGIST입학처장

바로 우리 교육이 문제를 잘 푸는 학생양성에는 성공했지만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내고 그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을 갖춘 학생의 양성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최근 모 방송국의 프로에 나온 옥스포드대학 출신 천재의 이야기가 이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낸 예라 생각됩니다. 영국 수학올림피아드 금상을 받을 만큼 수학의 재능으로 충만한 이 천재는 캠브리지대학 입시에서 처음 시련을 경험합니다. 한 문제만 풀어도 합격이 보장된다는 캠브리지대학 수학과 입시에서 네 문제 이상을 풀고도 불합격한 천재가 받아 든 불합격이유는 충격적입니다. “You are not the kind of genius we are looking for (당신은 우리가 찾는 유형의 인재가 아닙니다)." 이후 옥스포드대학 수학과에 입학한 이후 캠브리지대학 불합격이유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대여섯 시간 동안 한 문제를 스스로 골똘히 궁리해서 만들어서 다시 대여섯 시간을 그 문제를 풀어가는 옥스퍼드대학 수학과 학생들을 보고서야 자신이 수학을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을 든 것이지요.

사실 돌아보면 제가 대입을 준비하던 1970년대는, 많은 문제를 풀어보면서 입시를 준비했고 우수한 학생의 기준은 선생님이 낸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었습니다. 당시는 국가적으로 Fast Follower 정책을 제시하고 압축성장을 통해 단기간에 선진국 진입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늘 먼저 앞선 우수한 대상을 하나 선정해 그 대상을 열심히 모방하고 따라 하면서 추월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에겐 세계 1위인 ‘소니’라는 대상이 있었고 ‘현대차’에겐 세계를 장악한 ‘포드’란 대상이 있었습니다. 대학의 학생선발 잣대도 정책과 시대상에 부합하는 인재였겠지요. 제시된 문제를 가장 잘 푸는, 즉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본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당시 교육은 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꿈을 키우도록 교육하기 보다 선택한 추월대상의 꿈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모방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르면서 이제 더 이상 Fast Follower(추격형) 정책으로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에 부딪혔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면과 성실로 꾸준히 선진국들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하나 둘씩 세계 1등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1등에게는 모방하고 추격할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Fast Follower(추격형) 정책을 버리고 First Mover(선도형) 정책으로 전환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교육분야도 우수한 추격형 인재 대신 창의적인 선도형 인재를 양성할 필요를 통감하고 커다란 변화를 추구합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사회를 선도하는 ‘지식창조형 인재’ 양성을 향한 방향전환입니다. 다양한 꿈을 가진 미래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수능, 논술 같은 하나의 잣대 대신 다양한 잣대가 필요하게 됐고 결국 수시전형이 등장하고 자소서 도입이 이뤄진 셈이지요.

DGIST는 시대적 요구와 수시전형의 취지를 가장 잘 담아 내기 위해 자유양식의 자소서(“미래를 위해 비상하는 학생들의 꿈에 대한 도전 계획서”)를 계획했고, 아마 계속 고수할 것입니다. DGIST는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스스로 찾아보고 꿈을 결정하였으면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구성해 논리적으로 설명한 자소서를 기대합니다. 담길 내용은 자신이 그 꿈을 갖게 된 동기, 꿈에 다가서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 그리고 꿈을 이루면 우리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고민한 흔적이 되겠지요. DGIST 입학생들에게 자소서 준비과정을 들어보면, 힘들었지만 작성과정에서 어릴 적 꿈을 다시 찾게 되고 도전을 향한 열정을 되찾게 되었다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의 꿈을 묻고 답을 찾고 또 이를 달성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계획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답을 제시하는 자소서를 볼 때면 우리나라 미래를 이끌어갈 “백마 탄 초인”을 만난 듯 너무나 설레고 반갑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도 입학한 DGIST의 한 학생의 여정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학생은 자신의 ‘꿈’을 찾는 데 고교 3년을 보냈고 꿈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스스로 찾아냅니다. ‘이공계전문가로서의 틀을 유지하기’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하기’입니다. 조건에 부합한 자신의 꿈은 바로 ‘과학 대중화’의 선도자가 되는 것이었고, 고교 생활 중에 수행한 가장 인상적인 활동은 제한시간 3분 내 발표자료없이 독창적인 소품을 활용해 알려진 과학이론을 발표하는, 세계 최대의 과학커뮤니케이터 경연대회 ‘FameLab(이공계학생들을 위한 과학 버스킹대회)’에 참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생각하는 과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공감을 얻어내면서 ‘과학대중화’를 위한 첫 걸음을 떼었다는 내용을 보고 학생의 꿈이 담고 있는 진실성과 고민의 무게에 모든 사정관들이 공감했습니다. 지금도 이 학생은 꿈을 위해 미국과 일본을 다니면서 지식과 경험과 축적하고 있습니다.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도 ‘코스모스’란 프로로 과학대중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제2의 ‘칼 세이건’ 교수를 만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수시 원서마감을 앞두고 폭염 속에 힘들게 자소서를 준비할 수험생들이 살게 되는 미래의 세상은 다양한 가치와 직업이 존재하는 정말 신나는 세상일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여름을 견뎌내고, 이번 자소서를 준비하면서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전인미답의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달성하는 데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학에 모두가 합격의 기쁨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선배과학자로 여러분 모두가 세상과 사회에 기여하는 ‘글로벌 백마 탄 초인’으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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