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서 따라잡기] 삶의 격: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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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서 따라잡기] 삶의 격: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 김경 기자
  • 승인 2015.07.17 14:51
  • 호수 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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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은 곧 삶의 방식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은 인간답게 사는 것,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것일까?

독일의 철학자이자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도 널리 알려진 페터 비에리가 2014년 발표한 <삶의 격: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EINE ART ZU LEBEN: Über die Vielfalt menschlicher Würde)>은 인간의 가장 큰 정신적 자산인 동시에 삶 속에서 가장 위협받기 쉬운 가치이기도 한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며 품격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관찰과 문제 제기를 거듭하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철학적으로 풀이하고 일상과 소설, 영화 등 다양한 문화적 장르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는 대중적인 접근 덕분에 삶의 품격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인간의 존엄성은 고대 그리스 이래로 많은 학자들이 매달려온 주제였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존엄성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평등의 문제로 이야기했고 이후 중세 시대에는 신이 주신 가장 큰 가치로 존엄성이 이해되었다. 근대 들어서는 국가나 사회와 개인의 관계 혹은 인권의 차원에서 존엄성을 바라보았고 최근 들어서는 동물로까지 존엄성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은 언뜻 추상적이고 난해해 보이지만, 많은 이들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다양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되는 현대에서는 가장 절실한 철학적 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삶 속에서 존엄성을 이야기하다>
페터 비에리는 존엄성을 이야기하면서 대개의 학자들이 취하는 이론이나 역사에 기대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삶 그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저자는 존엄성에 대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이자 “사고와 경험, 행위의 틀”이라고 정의한다. 구체적으로는 주체로서의 자립성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아를 가지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에서 출발해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바라본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러한 세 가지 관점은 특히 개인 대 개인의 존엄성이 서로 충돌하거나 개인과 집단의 존엄성이 충돌할 때 무엇에 우위를 두어야 할지 같은 애매하지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유용한 길라잡이가 된다. 페터 비에리가 문학과 영화, 실생활의 풍부한 예를 들어 보여주는 상황에 각자의 삶을 대입해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각각의 경우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지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의 8가지 존엄성>
페터 비에리에 따르면 삶의 모든 측면 또는 단계가 존엄성, 즉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관계된다.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8가지로 분류한다.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이다. 인간은 모든 신체적, 감각적, 감정적 경험의 주체라는 점에서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이 존재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되었을 때를 저자는 ‘굴욕’으로 정의한다. 일례로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사고하고 행위를 하는 간섭도 존엄성의 훼손 즉 굴욕에 해당한다. 굴욕은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미군 병사들이 수감자들의 옷을 벗기고 겹겹이 서로 엎드리게 한 후 웃고 즐거워하는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가해자가 피해자의 무능력을 즐기고 그것을 피해자가 느끼게 할 때 가장 극대화된다.

문학 속에서는 이러한 존엄성과 굴욕이 가장 보편적인 주제로 다뤄져 왔다. 영화로도 유명한 아서 밀러의 1947년 희곡 <샐러리맨의 죽음>에서는 주인공 윌리 로먼이 부탁에서 구걸로 넘어가는 종속과 굴욕의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반대로 19세기 노르웨이에서 발표되어 여성해방 움직임을 촉발했던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여주인공 노라가 아버지와 남편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종속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참된 욕구와 정체성을 찾아간다.

둘째는 타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존엄성이다. 저자는 상대방을 폄하하는 것뿐 아니라 마땅히 상대를 인정해주어야 할 때 인정하지 않는 것도 존엄성의 훼손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들여다보는 핍 쇼(peep show)를 비롯해 오직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타인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소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프카의 장편 소설 <소송>에서처럼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나 무시, 비웃음, 조종, 속임수, 유혹, 제압, 동정 등 그 형태는 다양하다.

셋째로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을 꼽은 저자는 프랑스 작가 필립 클로델의 교도소 방문기 <열쇠 소리>를 예로 들어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사적 영역은 그 누구도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 될 권리임을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 스타들의 사생활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황색 미디어와 파파라치는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이 가장 노골적이고 저급한 방식으로 훼손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네 번째 존엄성은 진정성과 관련된다. 진정성의 상실은 자아의 왜곡을 낳고 결국은 존엄성의 상실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오직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자행하는 거짓말과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어리석은 수다, 상대방의 입장이나 감정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불필요한 말 등도 존엄성이라는 삶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행위들이다.

다섯째는 자아존중으로서의 존엄성이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보여지듯,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사람은 바로 그로 인해 자신의 존엄성마저 훼손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지만 반대로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에서처럼 다른 사람이나 대의명분을 위해 자아존중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경우에는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자아존중은 도덕적 진실성과도 연결된다. 페터 비에리는 존 버넘 슈워츠의 <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로만 프리스터의 <납작 모자 혹은 목숨의 대가> 등을 예로 들어 도덕적 진실성으로서의 존엄성이라는 여섯 번째 소제를 다룬다. 사형제도가 과연 인간 존엄성과 공존할 수 있는지, 제도적 형벌이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지,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테러리스트가 조종하는 비행기가 빌딩을 향해 돌진할 경우 최소한의 희생을 위해 비행기를 격추시켜야 하는지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다양한 사례를 다룸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도덕적 위기에 근거한 존엄성 침해의 한계는 최대한 좁게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살면서 사물의 경중을 구분하는 능력, 즉 균형을 잡는 능력을 키워가게 되는데, 저자는 이것이 일곱 번째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소한 다툼을 불필요하게 확대시켜 서로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큰 그림에서 전체를 바라보고 경중을 판단한 뒤 전체와 부분 간의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타인은 물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리 그 존재만으로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소멸의 과정이다. 자연적인 노화 외에 질병과 장애 등으로 인간은 언젠가 삶을 마감해야만 한다. 사회적, 경제적 능력뿐 아니라 지력과 정신력도 약해져 간다. 만일 젊은 시절 나를 이루었던 정체성이 해체되어 더 이상 나라고 불릴 만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치매 환자의 경우, 그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것인가, 또 타인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는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삶의 격을 변화시키려면>
그렇다면 이러한 8가지 존엄성을 토대로 삶의 격은 어떻게 세우고 지킬 것인가? 페터 비에리는 이 모든 존엄성을 아울러 자립성, 진실성,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기준이 삶의 격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존엄성에 대해 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조언들을 제시한다.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해서는 자기 삶의 주체로 바로 서기 위한 독립적 사고, 감정 조절, 건강한 자아상의 확립 등이 필요하다.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라는 것. 뿐만 아니라 각각의 삶의 단계에 따라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자아존중과 관련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계 짓기’라는 유용한 방법을 제안한다. 이는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다급한 마음에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소신과 철칙을 내버리기지 말고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미리 명확히 하라는 얘기다.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고 어느 것만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등 미리 자신의 한계를 지어 놓으면 한계를 넘나드는 극한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계 짓기를 할 때는 각자가 가진 문화적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문화에서는 허용되는 것이 다른 문화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면 타인에게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거나 그로 인해 서로의 존엄성을 해치는 우를 면할 수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러한 방법은 연인이나 배우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 직장 생활 등 공적인 삶과 상처받기 쉬운 자아의 내적인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영위하는 총체적인 삶 전체를 돌아보고 이를 존엄성의 관점으로 새롭게 이해할 때 가능하다. 그럴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나와 타인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 놓을 수 있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세파와 시류에 동요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의 안정을 이룰 수 있다.

스스로의 자아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타인과 사회의 차이를 존중할 줄 알고 나아가 인간의 존엄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바람대로, 책의 말미에 이르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사고뿐 아니라 사색도 가능해진다.

/김지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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