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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J.J. School of Art, Applied Art 2 김해민] 남이 가지 않는 길에서 내 안의 나를 발견하다
[대한민국 0.1% / 대입]
인도미술 배우려 중3 때 홀로 유학… 최초 한국인 입학 “국제학교보다 로컬스쿨 택하라”
김해민 씨는 유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하라. 그 후에는 현지의 문화를 익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라.” /사진=정수원 기자 blog.veritas-a.com/jsoowon27
김해민(22) 씨는 현재 인도 뭄바이 J.J. School of Art에서 상업디자인(Applied Art)을 전공하고 있다.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던 김씨는 미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혈혈단신 인도로 떠나 인도 명문미대 입학이라는 성공을 일궈냈다. 1857년 설립된 J.J. School of Art는 바로다 미대, 델리 미대 등 유명 인도 미술대학 가운데 첫 번째로 손꼽히는 학교다.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C.K.Bose, Julis Makwan, Jitish Kallat 등을 배출한 명문이다. 김씨는 학교 역사상 두 번째 외국인 입학생, 한국인 최초 입학생이다.
 
내성적인 소녀 미술에 반하다

김해민 씨는 초등학생 시절 그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특별히 말썽을 부린 적도 없는데다 성격도 조용한 편이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어요.” 하지만 미술시간만큼은 김씨가 주인공이었다. 미술 실기시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미술에 소질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온통 만화에 정신을 쏟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부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죠.” 일찍부터 미술에 대한 꿈을 키웠던 김씨와는 달리 김씨의 부모는 미술을 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맏딸이 교사 같은 안정된 길을 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계속된 부모의 설득도 김씨의 미술에 대한 꿈을 꺾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열 과목이 넘는 과목을 한꺼번에 공부해야 하는 학교교육에 염증을 느끼던 김씨에게 조기유학 붐을 타고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떠나는 친구들은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제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현실적으로 학생 개개인의 특성화된 교육이 어려운 우리나라보다는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김씨는 특히 여러 나라 중 ‘인도’에 흥미를 느꼈다. 미국이나 프랑스로의 유학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김씨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은 인도로의 유학을 부추겼다. “그때까지 인도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어요. 다른 선진국들에서 교육받는 것보다 미술가로서 저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도 유학을 생각하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빠께서 인도를 참 사랑하세요. 인도철학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하신데다 여행 경험이 많으시기 때문에 인도에 대해 잘 알고 계시죠. 유학을 생각하면서 여러 나라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아빠께서 인도라면 유학 가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하셨어요.”

인도 유학을 결정한 후 주위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왜 하필이면 인도냐는 것. “당시에 인도는 어느 책을 봐도 후진국으로 나와 있었어요. 저도 ‘인도인들은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왼손으로 용변 본 뒤처리를 한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화적 차이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했고요.” 부족한 정보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김씨는 결국 인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씨가 중3이 되던 해 6월이었다.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며 목표 잃어

우리나라로 치면 2학기인 6, 7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인도의 교육과정으로 인도에 간 직후 바로 Indus International School(인더스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인더스 국제학교는 넓고 깨끗한 캠퍼스를 갖춘데다 한국 학생들도 20여 명이 있어서 타지에 왔다는 낯선 느낌을 한층 덜 수 있었다. 자유로운 생활을 꿈꾸던 김씨에게 그곳에서의 생활은 천국과 다름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적응을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저는 마냥 즐거웠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했는데 인도에서도 체육대회 때는 항상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학교 여자 대표로 성화를 들기도 해 자신감을 가질 기회가 많았거든요.”

학교생활의 즐거움은 김씨에게 부작용을 가져왔다. 상대적으로 학업에 소홀해지면서 목표의식을 잃었던 것. “제가 인도에 간 지 2~3년 정도 지난 후에는 한국학생 수가 60여 명 정도로 늘어났어요. 자연스레 우리나라 학생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러다 보니 영어도 늘지 않고 학생들끼리 사소한 문제가 많이 생겼어요.” 부모의 보호를 떠나 유학 온 학생들 중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빈번했다. 김씨 또한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며 영어실력은 물론 공부에도 소홀하게 되면서 자괴감에 시달렸다. “유학을 준비할 때부터 단어를 조금씩 외우기는 했지만 당시 제 영어실력은 간단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는 정도였어요. 친구들이 ‘Where are you from?’하고 묻는 간단한 물음에도 ‘What?’을 반복해야 했죠.” 한국 학생들 중에서도 어릴 때부터 영어권 나라에서 살면서 영어를 능숙하게 익힌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친구들이 해주는 통역에 익숙해지면서 영어실력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더스 국제학교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을 김씨는 부끄러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유학을 간 제 목적을 생각해 볼 때 국제학교에서의 3년은 실패였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당시 너무 힘들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낙오자’ ‘실패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어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이를 악 물고 버텼죠.”

늘지 않는 영어실력에 반해 미술은 항상 1등이었다. 모든 과목을 필수로 배우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국제학교에서는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영어 수학은 필수과목이었는데 특히 영어는 낙제를 받으면 다른 과목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었다. 선택과목 중 하나인 미술은 늘 1등을 했지만 1등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미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다 보니 아이들에 비해 제가 미술을 잘했어요. 처음에는 1등을 해서 좋았는데 경쟁을 안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만하게 되더라고요.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먼 길을 왔는데 자만에 빠진 제 자신을 돌이켜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인도에서는 10학년과 12학년(우리나라의 고3)에 치르는 시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10학년 시험은 최종적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을 뽑아 11학년에 올려보내기 위해서, 12학년은 대학입학을 결정짓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10학년 시험에서 김씨는 미술을 제외한 과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충격에 빠졌다. “미술에서는 받기 어렵다는 A+를 받았어요. 미술에 소질을 보이는 저를 보고 선생님들께서 인도에서 미술교육으로 제일 유명한 대학이 J.J.대학이라며 입학을 권유하셨어요. 물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저의 실력을 쌓는 것이 우선이었죠.” 인도 미술교육의 명문으로 꼽히던 J.J.대학에 대한 동경과 늘지 않는 영어실력은 김씨가 11학년이 되던 해 150년 전통의 사립학교인 Bishop Cotten Girl’s School로의 전학을 결심한 이유가 되었다.
 
PG 생활 통해 진정한 인도 만나다

Bishop Cotten Girl’s School에 입학하면서 기숙사를 떠나 독립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집을 구하는 문제부터 가구를 고르고 장을 보고 식사를 해결하는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은 당시 11학년이었던 김씨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학교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제대로 인도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한 제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영어도 서툴렀기 때문에 ‘친구를 한 명도 못 사귀면 어떡하지’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으로 눈물로 지새운 게 한두 밤이 아니었죠.”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외국인을 처음 접하는 인도 학생들은 김씨를 따뜻하게 대해주며 서툰 영어를 바로 잡아주기도 했다. 1년 정도 지내는 동안 영어실력은 한층 향상됐다.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며 열심히 공부하던 김씨에게 학교의 선생은 미대에 가기 위해서는 뭄바이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유리하다는 조언을 했다.

선생의 조언에 따라 12학년 때 정든 학교를 떠나 뭄바이에 있는 Nanavati Women’s College로 전학한 김씨는 숙소가 정해지지 않아 PG(Paying Guest house, 내국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1년 정도를 생활했다. PG는 1,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나이 구분 없이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같이 생활했다. 김씨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직장 여성들이었다. “뭄바이에서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방법이었어요. 한 달에 3000루피(우리나라 돈으로 8만원 정도) 밖에 안 하다 보니 숙소 상황이 정말 열악했어요.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건물이 허물어질 듯 낡은 상태였죠. 쥐들이 찍찍 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벌레도 많았어요. 자동차 핸들만한 선풍기 하나만이 돌아가는 숙소에서는 항상 무더위에 시달렸고 심한 물 부족으로 샤워는 물론 화장실도 제대로 쓰지 못했죠. 가까운 맥도날드에 들러 음료를 사는 척 하며 화장실로 가 용변을 해결하기도 했어요. 하루하루 버티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인도 생활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1년 정도를 PG에서 생활했어요.” 생활여건은 좋지 않았지만 덕분에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고. “친구라고는 해도 나이로는 제가 제일 어려서 다들 적어도 5살 이상 차이가 났어요. 친구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인도에 대해서도 깊이 알 수 있었고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의지를 좀더 확고히 할 수 있었어요.” 물론 친구들과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서로 어울리며 더 친해질 수 있었다고. 배낭여행 차 인도를 찾은 아버지와 함께 친구 집에 방문해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인도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비용

로컬학교와 국제학교 모두 영국식 교육과정을 따른다. 정해진 과목을 일괄적으로 듣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인도에서는 6~7과목 많으면 8~9과목 정도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험도 한국과는 다르게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 에세이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만점을 받기는 힘들다고. 또한 시험 시 글씨를 깨끗하고 예쁘게 쓰면 내용에 관계없이 추가점수가 주어지기도 한다.

교육비는 국제학교의 경우 김씨가 입학할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한 해 7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데 현재는 많이 오른 상태다. “인도에서는 수입이 좋다 싶으면 특별한 제약 없이 올리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제가 유학 갈 때보다 외국 유학생들이 늘면서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김씨 가정의 사 남매는 어릴 때부터 1, 2만원씩 매달 저금을 했다. 유학을 떠날 때까지 김씨가 모은 700만원 정도의 돈은 학비에 유용하게 사용됐다. 학비 외에는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많은 돈이 들지는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기숙사 학생들이 놀러 가는 날이 있었는데 그 때 말고는 돈을 쓸 일이 별로 없었어요. 수업이 없는 날에는 많은 유학생들이 밖에 나가는 것과 달리 저는 기숙사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돈을 쓸 일이 거의 없었죠.”
로컬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한 해 등록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20만원도 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시설은 국제학교에 비해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육 수준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적극적인 태도가 한국인 최초 입학생 만들어

J.J.대학을 목표로 하기는 했지만 과정 역시 순조롭지 않았다. 홈페이지도 없는 대학 여건 상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을 하려면 J.J.대학을 나오는 것이 좋다는 선생님들 말씀에 목표로 정하기는 했지만 물어볼 곳도 정보를 얻을 곳도 없어 막막했어요.” 막막함 속에 있던 김씨에게 ‘공부란 교과서에 코를 박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뛰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가르친 아버지의 말은 커다란 힘으로 작용했다. “친구와 함께 J.J.대학을 구경하러 갔어요. 구경하던 중 우연히 조각과 Shintre 교수님을 만났는데 제가 입학하고 싶다며 이것저것을 여쭤봤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제 태도가 마음에 드셨는지 전화번호를 주시면서 언제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시더군요.” 교수는 다른 교수들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외국인선발전형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며 김씨가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J.J. School of Art는 상업디자인, 건축, 순수미술 총 세 개의 건물로 나눠져 있다. 순수미술보다는 선이 딱 떨어지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김씨는 상업디자인학과로 목표를 정했다. 외국인전형은 김씨가 입학하기 2년 전부터 시행되었는데 각 학과 100명의 정원 중 상업디자인 1명 순수미술 1명 단 2명만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입학시험은 외국인과 인도인 전형으로 나눠지는데 외국인전형의 경우 12학년 성적 중 낙제점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고 평균 50점을 넘겨야 1차를 통과할 수 있다. 2차에서는 사물 그리기(Object Drawing) 스튜디오(studio) 2-D디자인 미술기초지식필기시험을 봤다. 시험 당 제한시간은 1시간 30분이고 필기시험의 경우에는 객관식 40문제가 출제되었다. “저는 사물 그리기와 모델을 두고 그리는 스튜디오에 비해 직접 창작해야 하는 2-D 디자인 시험을 볼 때 고생을 했어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져 시험 보는 내내 손에는 식은땀이 가득했죠.”

시험을 본 후에 김씨는 합격을 확신했다. 오히려 한국에 있던 어머니의 걱정이 더 했다고. “엄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외국인은 한 명밖에 선발하지 않는데다 외국에 영주권만 있지 실제로는 인도인인 사람들이 있어 제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저보고 떨어졌을 경우 대안을 생각해보라고 하셨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믿었죠. 제 꿈을 위해 달려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씨의 믿음은 J.J. School of Art 역사상 두 번째 외국인 입학생, 한국인 최초 입학생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과외활동 없지만 전공과목 위주의 수업 받아

김씨는 대학생활에 대해 ‘매우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한다. 캠퍼스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작은 편이라 쉬는 시간이면 다른 학과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오전 수업을 제외하고 오후에는 거의 강의가 없지만 미술을 전공하다 보니 항상 많은 과제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래도 제가 하고 싶어 하던 공부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답니다.”

김씨가 속한 상업디자인학과에서는 1학년 때는 상업디자인에 대한 기초를 배우고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칼리그래피(calligraphy), 스튜디오(studio), 그래픽디자인, 2-D 디자인, 사물 그리기, 광고미술과 아이디어(Advertising art & idea), 비쥬얼커뮤니케이션(visual communicat ion) 등의 과목을 수강한다. 1, 2학년에는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는데 비해 3, 4학년 때는 전공과목 위주로 공부할 수 있다고. “우리나라는 전공과목 외에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과목이 많지만 인도는 좀더 특성화된 수업을 받을 수 있어 좋아요. 저는 특히 그래픽디자인에 특히 흥미가 있어요. 전공과목 중 그래픽디자인의 경쟁이 심한 편이라 3학년 때 전공을 정할 것을 대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학과에서 혼자 외국인인 것에 대해 김씨는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다 보니 경쟁이 심한 것은 사실이에요. 서로의 작품을 잘 보여주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학생들도 있죠. 하지만 저 혼자 외국인이다 보니 제가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알려주려는 친구들이 많아요.” 하지만 외국인인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선을 끌다 보니 다른 학생들과 같은 실수를 했을 경우 인도인들에 비해 유독 김씨의 실수가 부각되는 일이 많다. “같은 실수를 해도 유독 저만 교수님들께 꾸지람을 듣는 일이 많았어요. 한번은 참다못해 교수님께 예의를 갖춰 말씀 드렸더니 어른 말씀에 말대꾸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외국인은 특히 교수님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중요한데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저와 가까운 1학년 주임선생님께서 중재를 잘 해주셔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힘든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동아리나 OT MT 등의 과외 활동이 없는 것도 인도대학의 특징이다. “한국에 오면 친구들이 인도대학의 OT MT에 대해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없다고 하면 다들 놀라죠. 저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부러워서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현재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생활하고 있어요.”

 

이루고자 하는 목표 없인 유학은 무용지물

김씨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도신화 <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를 만화로 그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지금은 대중화된 그리스 로마신화의 경우도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만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잖아요. 저는 사람들에게 인도의 전통과 문화, 역사를 쉽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인도라는 나라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답니다.”

유학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김씨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학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계획을 세우라고 말한다. “유학은 절실하게 본인이 가고 싶어서 갈 때만 얻는 것이 있어요. 특히 인도의 경우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많은 학생들이 인도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죠.”

인도 유학생 중 인도에서 대학까지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도에서 공부하다가 한국에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가벼운 생각으로 유학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알려진 나라들에 비해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인도에 대해 잘 파악한 후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 필요해요. 유학을 통해 성공하는 비율이 아무리 적더라도 열정이 있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있다면 인도 유학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어요. 인도는 영어권 국가인 데다가 오래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의 의지만 있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 나라예요. 열정과 끈기를 가진 학생이라면 유학을 통해서 좀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백수현 기자 blog.veritas-a.com/red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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