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신동원 휘문고 진학교감

고교 현장에서 보면 지금처럼 대입이 급변한 경우는 최근 20여 년 동안 거의 없었다. 재작년부터 시작된 극심한 물수능, 한국사와 영어 절대평가,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학생 수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진학지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수능 성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석차를 부여하고 석차 순으로 진학지도를 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서울대에 이어 고려대, 서강대가 수시 비중을 크게 늘리고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이미 상위권 대학은 수능시험을 버린 셈이다.

상위권 대학에서 수능성적을 무시하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 일반전형이다. 수능에서 한 문제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며 수능최저학력기준마저 없앴다. 여전히 연세대와 고려대는 수능최저학력기준으로 수시모집에서 수능 성적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수준은 높지 않다. 한양대와 서울시립대, 건국대, 서울과학기술대 역시 일반전형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아예 철폐했다.

▲ 휘문고 신동원 진학교감

대학입시가 진화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 적응을 못하는 학교가 많다. 대표적으로 서울 자사고 및 서울 강남권의 학교들이다. 이들 학교는 수시모집보다 정시모집에서 합격하는 인원이 훨씬 많다. 전형결과를 발표하는 서울대를 보면 강남권 고교의 수시/정시 합격자수는 A고 27(6/21), B고 24(4/20), C여고 21(6/15), D고 20(5/15), E고 19(5/14)명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포항제철고 29(20/9), 안산동산고 26(16/10), 경기외고 23(15/8), 한성과고 21(21/0)명 등과 비교해보면 강남권 학교가 어떤 상황인지 한눈에 보인다.

서울대를 20명 이상 합격시키는 고교라면 상위 5개 대학에 합격시킬 자원이 100명 이상 된다고 봐야 한다. 그들 실력은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특목고에 뒤지지 않는다. 그들은 대입 수험장에서 전국 6개의 과학 영재고, 20여 개의 과학고, 100여 개의 과학중점고, 50여 개의 자사고, 40여 개의 외국어고와 국제고 학생들과 싸워야 한다. 학교생활기록부 평가든, 자기소개서나 추천서 평가든, 아니면 논술시험이나 심층면접이든 강남 학생들이 그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물론 평준화 지역에서 추첨으로 입학한 학생들이므로 내신 성적(교과성적)에서 다소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수시전형에서 합격률이 40% 이상 되는 평균 2.0등급 안에 드는 학생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아직 수시전형에 적응하지 못한 학교의 특징은 교육과정이 경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정이란 3년 동안 어떤 과목을 어떤 교과서로 몇 시간 배울 것인가에 관한 계획이다. 고교는 대략 204단위 내외를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1단위란 대학의 학점처럼 주당 한 시간씩 한 학기 동안 수업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동아리활동 등 창의적 체험활동이 24단위 포함되어 있으므로 교과수업은 180단위 내외이다. 과목당 기본 단위는 보통 5단위이므로 대략 36개 과목이 되며, 학기당 6~8과목씩 3년간 수업을 받게 된다. 이중에서 수능시험에 출제되는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그리고 사회 혹은 과학 2과목뿐이다. 그렇다 보니 고교 3년 동안 수업 중에서 절반 정도만 수능과 관련이 있다. 나머지 예체능과 선택하지 않은 과목의 수업은 수능과 무관한 셈이다.

수능관련 과목만 집중적으로 편성한 학교 학생들은 3년 동안 수능 공부만 하다가 결국 쉬운 수능에 직면한다. 한두 문제만 실수해도 2, 3등급으로 밀리는 수능에서 수능 문제 풀이로 단련된, 그리고 경험 있는 재수생들과 경쟁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 결국 학습 역량은 뛰어나지만 잘못된 대입전략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다. 강남권 고교의 재수생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2~3배나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안이 부유해서 재수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기 때문에 재수를 선택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고교 3년 전체를 평가한다. 수능과 무관한 과목 역시 평가대상이다. 수능에서 소외 받는 물리II나 화학II, 법과정치, 경제 과목을 이수하였는지, 세부능력 특기사항에서는 그 과목에 대한 열정과 학습 과정 등을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창의적 체험활동, 독서활동, 방과후 수업, 교내 수상실적, 학교생활도 평가 대상이 된다. 또한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의 서류에서 학생의 학습역량과 전공적합성,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수능 성적으로 볼 수 없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평가해 합격자를 고를 수 있다. 이 과정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대학 진학 후 충성도가 높아 중도 탈락률이 낮다. 대학이 수시전형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수학생이 많이 모여 있는 강남권 우수고교는 환골탈태의 정신으로 교육과정을 바꿔야 한다. 화려한 학생부도 이제 수명을 다했다. 우수학생들에게 특목고와 버금가는 강한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의 학습역량이나 전공적합성을 살려줘야 한다. 학부모나 학생이 쉬운 길을 원해도 학교가 앞장서서 변화하는 대입환경을 적응해야 한다. 수능에서 사회와 과학 탐구과목을 2개 과목으로 줄였다는 이유로 대학공부에서 꼭 필요한 과목을 편성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의 수요가 있다면 전문교과까지 정규수업시간에 가르쳐야 한다. 방과후학교나 동아리 활동, 경시대회 등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부여해 대학에서 탐내는 학생들로 키워내야 한다. 학부모 입김에 놀아나는 학교와 교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는, 개혁을 하지 않고는 절대 강자가 될 수 없다. 교육특구의 중심 강남 역시 한계 수명에 다다른 수능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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