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래 과학 산업 분야의 인재 양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학령인구 감소 등과 맞물려 대대적인 정원 감축 등 대학 구조조정을 감행해오던 교육부도 첨단 학과에 한해서는 증원을 허락하는 등 정부를 중심으로 첨단 분야 인재 양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추어 각 대학에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자율주행차 등 첨단 분야에 최적화된 학과를 개설하고 관련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모양새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아주대도 작년 AI모빌리티공학과, 지능형반도체공학과, 첨단신소재공학과 등 3개의 첨단학과를 개설했고 수년내 몇 개의 첨단학과를 더 만드는 방향으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에 대해 외국 학교 교류 지원, 파격적인 장학금 정책, 새로 지어진 건물에 학과 공간 우선 배정 등 과감한 투자도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입시 현장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올해 첫 신입생을 모집한 아주대 첨단학과의 경우 관심이 뜨거웠다. 입시설명회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역시 첨단학과에 대한 것이었다. 새로 개설한 학과인 만큼 입시정보에 대한 요청이 많이 있었고, 기존 학과 대비 진로 방향에 대한 질문 역시 많았다. 이런 관심의 결과로 첨단학과의 입시경쟁률이나 입시 결과 등이 모두 기존 학과에 비해 경쟁력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한 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첨단학과에 포함되지 않는 학문 분야의 입장이다. 특히 이런 기술의 융합이나 응용이 중심이 되는 분야로 정부정책이 몰리는 현상은 최근 한두 해의 일이 아니고, 각종 학과 평가에서도 취업률 등 기술 중심의 학과가 유리한 내용이 주요 지표가 되다 보니 같은 이공계 계열이라도 자연과학과 같은 이론 중심 분야의 학문은 점차 설 곳을 잃어 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자연과학대학이 있는 학교도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그나마 자연과학대학이 있는 학교라도 학과 이름이 물리학과, 수학과 등이 아닌 최신 트렌드에 맞는 이름으로 바뀐 곳이 많이 있다.

눈여겨 볼 만한 사실은 국내외의 전통 있고 권위 있는 대학의 경우에는 오히려 이론 중심의 학과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소위 탑스쿨이라고 평가받는 대학일수록 그 학교 내에서 수학과 등 전통적이고 오래된 학과의 위상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대학 본연의 역할이 단순히 당장 일할 수 있는 산업에 최적화된 일꾼을 키워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지식을 전수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미래의 지도자와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론중심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국가 전체의 잠재적 경쟁력을 깎아 먹는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것은 필자의 다소 독특한 학문적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 필자는 수학자로 자연과학대학의 수학과 소속인 동시에 첨단학과에 속하는 AI모빌리티공학과 소속 교수이자 창과 멤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첨단학과의 발전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이론 중심 분야가 상대적으로 정부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는 점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수학자이면서 첨단학과의 교수로 중복 배속된 것은 최근 수학 분야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산업수학의 영향이 크다. 문제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질수록 수학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논리적 사고방식은 더욱 필요해진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기존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수학적 방법 및 이론을 사용해 문제를 극복하고, 관련 기술을 고도화하고자 하는 것이 산업수학이다.

필자의 주전공은 위상수학이다. 위상수학은 공간이나 도형의 본질적인 모양을 다루는 학문으로 수학 분야 중에서도 특히 이론 중심의 학문으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다 산업수학의 발전에 따라 데이터과학분야에서 데이터의 모양을 위상수학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기법이 개발되면서 위상수학 역시 산업계에서 적극 쓰이기 시작하였다. 필자 역시 위상수학적 방법을 이용해 토목공학의 비파괴탐사 분야나 모빌리티공학의 사고예측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면서 자연스레 AI모빌리티공학과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론 중심 분야인 수학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첨단 분야에서 기술을 고도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수학자들이 공학자들과 함께 일할 때 흔히 겪는 애로사항은 해당 필드의 용어나 개념이 생소하고 각 분야가 가지는 특이성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런 점을 극복하고 나면 수학자가 가진 수학의 깊은 이해도와 응용은 각 분야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비단 수학뿐 아니라 여러 이론 분야도 그러할 것이다. 이론 분야는 그 자체로 학문적인 목적이 될 뿐 아니라 그 국가 및 사회의 학문적 기초 역량이 된다. 기초 체력이 있어야 올림픽 금메달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이론 분야를 더욱 강조하여야 한다.

최수영 아주대 입학처장(수학과/AI모빌리티공학과 교수)
최수영 아주대 입학처장(수학과/AI모빌리티공학과 교수)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이다. 특히 반도체를 포함한 경쟁력 있는 특정 분야에서 집중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반가운 일이다. 해당 분야를 양성하기 위해서 특정 학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학 등 기초 분야와 협력할 필요도 있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첨단학과와 이론 중심의 학과들이 물리적으로 합쳐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적절한 방향도 아니다. 하지만 기초분야의 학과를 함께 발전시키면서 교육과 연구적인 측면에서 화학적인 융합을 시도한다면 더욱 경쟁력 있는 첨단학과를 운영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참여한 AI모빌리티공학과에서는 학생들이 저학년때 선형수학, 확률및통계 등 수학 과목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이는 고학년이 되어 AI 등 최첨단 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울 때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구성은 필자와 같은 수학자가 첨단 학과에 멤버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주대는 올해 개교 50주년 맞아 노벨화학상,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초청해 특별 강연을 열었다. 첨단 분야의 발전을 강조하는 이때 기초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를 초청한다는 것은 첨단 분야와 기초 이론 분야가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첨단, 기초 분야가 함께 협력해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더욱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기초 과학의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첨단학문을 융합할 수 있는 통합인재 양성을 위해 사회적으로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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