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거울] 첫 남성학자로 가부장적 분위기 대물림 않겠다 다짐
"아빠도 실수 많은 인간일 뿐" 자녀와 거리 좁히기 효과

“남자애가 무슨…” “넌 여자애가 왜 그래?” 등 무심코 내뱉는 말로 자녀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끌어내릴 수 있음을 정교수는 경고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일도 이 시대 아빠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정수원 기자 blog.veritas-a.com/jsoowon27
자신을 닮은 갓난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물질적 재산보다는 정신적으로 물려줄 유산을 고민한 정채기(45ㆍ한국남성학연구회장) 강원관광대 교수는 아들이 7살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육아일기를 썼다. 아빠의 사랑과 지지가 자녀의 일생에 든든한 정서적 버팀목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꾸준히 실천했다. 가정살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두 아들에게 남녀차별 없는 생활을 몸으로 보여주며 진정한 성역할과 인간관계를 깨우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첫 남성학 학자이기도 한 정교수는 남성을 가부장제의 수혜자라기보다는 피해자로 본다. 양성평등을 이뤄 우리의 아들 딸이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교수를 만나 봤다.

장손이란 이름에 억눌렸던 유년 시절

정교수는 장손이다. 어릴 때부터 책임과 기대에 따른 정서적 부담을 많이 느꼈다. 가부장적이었던 부친은 마음 속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 학교 입학ㆍ졸업식에 한 번도 참석치 않았고 함께 찍은 사진도 없다. 유년시절 아버지 사랑의 부재를 절감하면서 자신은 절대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되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교수는 “영유아 시절의 아버지 사랑은 얼마나 친밀감 있게 시간을 보냈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관심 배려 희생 같은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교수가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 아들들과 따뜻한 스킨십을 나누려는 이유다.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괴로웠던 정교수는 두 아들이 성을 떠나 자유롭기를 원한다. 딱 한 번 큰 아들에게 “남자애가 질질 짜냐”는 말을 하고 크게 후회한 이후로는 절대 남성성을 강요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진로 취미 등에 전혀 개의치 않고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줄 생각이다. 강단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생활 속 깊이 박힌 남존여비 남성우월 마초이즘의 잔해를 씻어낼 요량이다. 가정의 아들교육서부터 실천돼야 여성과 제대로 된 파트너십을 발휘해 조화로운 사회를 이룬다는 게 정교수의 지론이다. 아들만 둘이면서 ‘딸사랑아버지모임’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아빠됨의 준비

“전쟁터에 나갈 때 기도 1번, 결혼할 때 3번, 부모될 때는 기도를 4번 이상 하라는 유태인 속담이 있습니다.” 그만큼 심사숙고 하며 노력해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정교수는 말한다. 부모는 가족의 지도자로서 바다의 등대와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좌표를 제시하며 정체성을 심어주고 역할모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 그러나 역할이 끝나는 순간까지 ‘미완의 진행형’일 뿐이라고 부모 노릇이 어렵다고 말한다.

정교수는 첫 아이를 얻었을 때 자신이 태어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존재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아들에 대한 넘치는 사랑은 7년 동안 육아일기를 쓰는 동력이 됐다. 출장이나 휴가를 가서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자신의 유년시절 사진이 없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해 파노라마를 찍듯이 엄청나게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많이 업어주고 놀아주며 아빠의 사랑을 표현했다. 이런 밑바탕이 있기에 한창 사춘기의 정점에서 질풍노도의 감정곡선을 그리는 큰아들(16)과도 큰 트러블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정교수는 요즘 청소년기 아들의 성숙된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늦게 얻은 둘째 아들(4)에겐 물리적 시간에 부딪혀 육아일기를 1년 밖에 쓰지 못했음을 못내 미안해 한다. 앞으로 인생 선배로서 친구로서 아들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리도록 계속 정진할 계획이다.

좋은 아빠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

좋은 아빠란 어떤 아빠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가정의 경제만 책임지면 되는 시대였다. 요즘은 아빠에게 바라는 요구사항이나 눈높이가 상당히 높아졌다. 좀더 자상해야 하고 잘 놀아줘야 한다. 자녀들이 아빠를 통해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을 아는 아빠들은 기꺼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움직인다. 정교수는 자녀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친구는 가르치고 조언하기 보다는 항상 곁에서 동반자가 되는 소중한 존재다. 정교수도 자녀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진짜 친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사춘기 자녀에게는 “아빠도 실수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완벽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는 욕심으로는 자녀와의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자녀를 성숙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친구로 대하면 어렵지 않게 멀어졌던 관계도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 정교수는 “아빠가 변하면 가정이 행복해진다”고 말하며 어깨 위 무거운 권위는 내려놓고 편안하게 친구로 다가선다면 온 가족이 행복해 질 거라고 조언했다.

 

>>>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계명
1. 대화를 위한 소재를 많이 만들어라.
2. 자녀에게 결정권을 많이 주어라.
3,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4. 자녀와 경험과 체험을 많이 쌓도록 노력하라.
5. 자녀에게 노동의 중요성을 체험하여 스스로 느끼고 알게 하라.
6. 자녀 앞에서 정정 당당한 위엄을 보여라.
7. 때에 따라서는 회초리도 사용하라.
8. 성공 자체를 목표로 두지 않게 하라.
9. 소중한 물건을 관리하도록 맡겨 보라.
10. 최소한 10일에 1번만이라도 자녀와 특별한 스케줄을 가져라.
11. 책망하고 꾸짖기 보다는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어라.
12.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이나 심한 언쟁을 삼가라.
13.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지도하라.
14. 자녀는 항상 웃음으로 대하라.
15. 자녀에게 강요하거나 억지로 시키지 마라.

 

/윤진 기자 blog.veritas-a.com/jlife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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