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베리타스알파는 올해 특집호에서 각 대학 총장님들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초반에 실시한 과기원 총장님들이신 국양 DGIST 총장님, 김기선 지스트 총장님, 신성철 KAIST 총장님을 뵈었을 때 하나같이 같은 말씀을 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 세대가 행복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화두였는데요, 이때 저는 저희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2년이 조금 넘었는데요. 유품을 정리할 때 차마 정리하지 못한 게 ‘비닐봉지’입니다. 2015년에 새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여기저기서 사은품으로 보낸 비닐봉지가 몇 백 장 있습니다. 비닐장갑도 수백 장입니다. 그걸 쓰지 못하셨더군요. 당연합니다. 평소 비닐봉지가 썩지 않는데, 그걸 왜 그렇게 낭비하느냐며 심지어 쓰레기봉투도 아끼느라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걸 들고 수거장으로 향해 남이 버린 헐거운 쓰레기봉투에 끼워넣던 분이었습니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썩지 않을 비닐봉지를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심정입니다. “환경이 더러워지면 우리 후손이 어떻게 사냐”는 게 말씀이었습니다.

덕분에 어머니 손에 큰 우리 세 명의 조카들은 매우 어릴 때부터 환경을 생각하고 빈곤국가의 배고픔을 생각하며 컸습니다. 할머니께서 TV에 나오는 빈곤국가 돕기 프로그램의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을 가리켜 “저것 봐라, 저 아기는 나라가 가난해서 없어서 못 먹는다. 먹어라”하며 칭얼대는 아이의 입에 밥 한 술 떠먹이셨고, 놀이터에서 돌아와 욕실에서 손을 씻을 때도 비누칠을 할 때는 수전을 잠근다는 걸 매우 어린 손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저희 조카들은 이 플렉스의 시대에, 물 아끼고 음식 아끼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2년 조금 넘은, 아니 6년이 다 되어가는 비닐봉지 수백 장을 아직도 다 쓰지 못한 채 차곡차곡 개어 두고 삽니다.

얼마나 배웠는지 얼마나 사회적 위치가 있는지는 모두 나이에 달려 있다는 걸 저는 이제서야 압니다. 모든 사람이 나잇값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삶의 과정을 거쳐오며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아는 게 사람이지 않을까 합니다. 제 어머니의 후대를 위한 평범한 가정주부의 소박한 삶은 과기원 총장님들께서 말씀하신 후대가 행복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맥이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게 우리 것이 아니라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무엇 하나, 비닐봉지 하나 허투루 낭비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합니다.

우리교육은 어떤가요. 특히 교육은 예로부터 백년지대계로, 그야말로 후대를 향한 유산이어야 한다는데 현실은 다른 것 같습니다. 몇 년 예고제를 한다고 해결된다거나 여론을 수렴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그 몇 년이 고작 몇 년, 당장의 수험생과 학부모의 여론,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법이라는 근시안적 시각에 기대 표를 먹고 사는 정치로 점철되어서는 안 되는 게 교육이 아닐까요.

특히 이번 정권 들어 교육신문에 몸 담고 있는 저로서는 교육정책에 크게 실망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전정권의 특목자사를 없앤다 의혹이 있지만, 특목자사가 같은 정권에서 나온 것이고 그저 확대를 전정권이 한 건데, 어쩌면 뭘 모르고 아니면 다른 목표지향에서 현실을 모르고 폭압적으로 특목자사 폐지가 시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특히 민사고가 이끈 우리나라 고교교육의 발전상이 그야말로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방법인데, 올해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실현되면, 산 속에 자리한 민사고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외대부고 역시 고교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린 손꼽히는 명문고입니다. 역시 전국의 많은 고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왔으나 산 옆에 자리한 외대부고도 일반고로 전환되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전국의 외고 가운데 특히 변화하는 대학입시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서울대가 길을 연 학종의 취지를 살려 최고의 외고로 우뚝 선 대원외고는 강북에 자리하면서 강남북간 교육격차를 줄이는 데 효과를 낸 고교입니다. 하나금융그룹이라는 사기업이 야심차게 문을 연 하나고 역시 고입에서 강남쿼터를 제한하면서까지 말 그대로 자율적으로 교육을 실시해 출발부터 확고히 상위고교로 자리한 대표적인 자사고입니다. 이 4개고교는 전국 고교들의 롤모델로 우뚝합니다. 민사고 외대부고가 문을 닫고, 대원외고 하나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국내고교의 교육경쟁력을 높이고 해외조기유학의 길을 막고 수요를 국내로 돌리겠다던 취지, 강남북간 교육격차를 줄여 강남집값을 잡겠다는 취지가 깡그리 사라지겠지요. 고입을 앞둔 수요자들은 혼란스러운 건 당연합니다.

대입에서도 문제는 많았지만, 특히 최근의 대교협의 고3대책 승인과정에서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출발은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재학생이 불리하다 하니 재학생을 ‘구제’하는 대책을 발표하는데 그게 중앙정부가 아니라 각 대학에 떠넘긴 행태에서 시작합니다.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사안이 뭐가 될지부터 ‘그때그때 달라요’인 것도 문제이지만, 그래서 각 대학이 그나마 내놓은 대책을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편협된 시각에서 잘라내는 것으로 보이는 대교협의 ‘그때그때 달라요’ 식의 업무처리는, 결코 후대를 내다본 안목이라 볼 수 없습니다.

불과 6월에,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각 대학이 알아서 코로나대책을 내놓으라 한 이후, 가장 발빠른 대학은 연대였고 연대 이후 서울대 고대 서강대 성대 이대 등 상위대학들의 고3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파격적인 건 서울대 사례였습니다. 지균 수능최저를 기존 3개2등급에서 3개3등급으로 파격완화했습니다. 수능은 많이 풀어본 재수생이 유리하므로, 고교에서 추천하는 지균 재학생들의 가능성을 수능으로 발목잡지 않겠다는 의도겠지요. 수긍합니다. 문제는 서울대는 되는데 한국외대는 안 되는 상황입니다. 외대는 학종면접을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아직 대교협 승인은 못 받은 상태에서, 각 언론 기자들이 냄새맡고 기사를 쓰는 통에 이미 언론에 외대는 학종에서 면접 안 본다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외대는 대교협 승인을 올리지 않은 상태로, 베리타스알파에도 그 사안은 다루지 말아달라 부탁해올 정도로 조심스러웠던 때에 열린 ‘전국대학교 입학관리자협의회 정기총회 및 관리자 연수’에서 대교협으로부터 망신을 당했습니다. ‘한국외대의 면접폐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아직 승인신청도 안 올린 상태에서 미리 안 된다고 차단한 거였는데요, ‘서울대는 되고 외대는 안 된다’는 걸로 현장 관계자들은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합니다. 승인요청해오는 문건을 보지도 않고, 일단 안 되는 걸로 절차 없이 차단시킨 건데요, 사실 서울대의 수능최저완화가 더 파격적 방안입니다. 수시에서 수능최저의 위력은 누구나 다 알지요. 반면 면접은 학생당 몇 분 안 되는 시간에 보는 거에서 당락을 결정지을 수 없다면 아예 면접 없는 학종을 실시하는 대학들도 있고, 정부가 ‘전형간소화’를 외치며 면접을 시행하지 않는 학종에 더 환영하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외대의 면접폐지는 ‘코로나19’로 인한 정말 코로나대책입니다. 외대 학종 면접을 위해 외대에 방문하는 수험생이 3000여 명이고, 면접일 수능을 치르는 12월3일과는 불과 열흘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 11월21~22일입니다. 만에 하나 외대의 학종 면접실을 통해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한다면 그 사태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외대가 우려하는 이 현실이 직접적인 코로나대책인 셈인데, 무슨 의도로 승인신청을 하기도 전에 ‘불가하다’고 차단하는 건지 생각이 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학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자는 의도로 설립된 게 대교협이라는 데서, 대교협은 누구를 위한 협의체인지도 이 지점에선 의문이 듭니다. 대교협 회장이 외대 총장인데, 앞으로 사안이 어찌 결정될지 어떤 사람들은 재미있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쪽도 있을 거라 교육과 입시의 그 중요성이 훼손되는 상황이 더욱 기가 막힙니다.

물론 부디 그 결론들이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그저 몰랐기 때문이라면 와중에 다행이겠습니다. 하지만 교육과 입시라는 게 어떻게 그리 모른 채로 결정지을 수 있는 걸까요. 모르면 모르겠다고 손 들고 도움을 구합시다. 그래서 정권초월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이 중요한 겁니다.

서울대가 10년 전쯤 발제해 지금껏 교육계에 회자되고 있는 정권초월 국가교육위는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에서 벗어난 교육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들이 10년 단위 중장기 국가교육 기본계획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어떤 자를 전문가로 앉힐지가 큰 과제이지만, 사안별로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그때그때 달라요’ 정책보다는 훨씬 후대를 바라보는 길일 겁니다. 현재 정권초월 국가교육위는 설치 법안부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난해 3월 초안이 공개됐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법률’은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기 때문입니다. 2월 출범한 3기 국가교육회의가 국가교육위 설치 법률안의 신속한 입법화 추진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실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이 많지만, 이를 정리할 수 있는 건 정권초월 국가교육위 설립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권이든 표밭인 교육판은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정권초월 국가교육위 설립을 통해 어른들의 어른 된 도리로 후대를 내다본 안정적인 교육정책을 잘 펼 수 있게 되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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