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어린이었던’ 어른이 다시 읽는 ‘어린 왕자’

■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갈리마르출판사, 문예출판사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2020년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문예출판사는 프랑스 갈리마르출판사가 2013년 출간한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을 번역, 문예출판사의 창립 53주년을 기념하며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문예출판사는 1973년 불문학자 김현이 번역한 ‘어린 왕자’를 한국에서 단행본으로 최초 출간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국내 400여 개의 출판사에서도 ‘어린 왕자’를 번역해 출간했다.

이번에 작가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책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에는 ‘어린 왕자’ 동화 전문뿐 아니라 개인소장품과 도서관소장품을 모은 100여 개 도판과 작가의 수많은 편지와 작가를 기억하는 지인들의 회고록이 담겨 있다. 특히 ‘어린 왕자’ 동화에서 삭제되었던 미공개 원고를 수록하였으며, 1943년 미국판과 1946년 프랑스판 초판본 발간 시 번역 오류가 생겼던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불문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정장진이 새롭게 ‘어린 왕자’와 수록 글을 번역하고 풍부한 주를 달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했으며, 두 가지 버전의 표지 커버를 제작하여 독자들이 취향에 따라 오래도록 책을 소장할 수 있도록 했다.

<생텍쥐페리 고독을 함께 견뎌준 어린 왕자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
‘어린 왕자’는 1943년 4월6일, 미국 뉴욕의 레이널&히치콕출판사에서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으로 출간되었다. 3년이 지난 1946년 4월, 가스통 갈리마르에 의해 작가의 고국 프랑스에서 ‘어린 왕자’가 출간되었고, 이후 ‘어린 왕자’는 200여 개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 독자가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에 열광하게 된다.

‘어린 왕자’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 원고를 집필하던 시절 타향살이로 인한 깊은 고독에 빠져 있었다. 1941년 독일의 침공으로 프랑스가 나치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나서도 생텍쥐페리는 오랫동안 번민했고, 결국 뉴욕행을 택했다. 그곳에서도 생텍쥐페리가 비시 정부를 지지한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돌았고 생텍쥐페리는 줄곧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내 콘수엘로와의 계속된 갈등까지 겹쳐 고통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러나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자 “인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사막 한가운데”였다고 말하며, 고독한 자신의 내면에서 어린 왕자의 존재를 키워가고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
‘어린 왕자’의 집필 계획이 누구에게서 처음 나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실비아 해밀턴과 히치콕, 레이널 부부들은 자신이 집필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화가인 헤다 스턴은 생텍쥐페리에게 글과 함께 직접 그림을 그려 넣기를 제안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 외에도 작가의 삶 곳곳에서는 이미 작가가 ‘어린 왕자’라는 작품을 마음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증거가 포착된다. 생텍쥐페리는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을 다들 알고 있다”며 늘 동화라는 형식에 애착을 보여왔고, 지인들에게 보낸 여러 편지에서도 어린 왕자의 스케치와 데생이 발견되었다. 생텍쥐페리는 원고 집필 당시에도 글 못지않게 그림에도 많은 신경을 썼고, 출간 당시 미국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생텍쥐페리는 “난 내가 거기에 어떤 그림을 넣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하며 책의 편집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미국에서 출간된 초판(영어판 및 프랑스어판) 785권에 모두 친필 서명을 하고 직접 일련번호를 적기도 했는데, 이는 생텍쥐페리가 작품에 쏟은 애정이 매우 각별했음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1943년 4월 책이 출간된 후, 동원령을 받고 뉴욕을 떠난 생텍쥐페리는 지중해 상공에서 실종되었고, 동화 속 어린 왕자와 운명을 같이하고 만다.

<마음 속 어린아이를 품고 있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의 첫 장에는 “레옹 베르트에게”라는 헌사가 쓰여 있다. 레옹 베르트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유대인이자 좌파 지식인으로 반식민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였고, 생텍쥐페리의 오랜 친구였다. 아내에게 책을 바치려던 생텍쥐페리는 결국 출간 작업 도중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어린 왕자’를 바치기로 결심하며 글을 썼다. “나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중략) 이 모든 이유가 다 부족하다면 이 어른이 아니라 옛날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 책을 바치기로 하겠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면 이제 이 헌사를 다음과 같이 고쳐 써야겠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이로 인해 ‘어린 왕자’는 아름다운 동화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포함한 고전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책의 전체적 분위기도 전혀 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갈리마르출판사는 출간 70주년을 기념하며 출간한 이 책을, 작가 생텍쥐페리를 대신하여 레옹 베르트의 아들인 클로드 베르트에게 헌사했다.

우리는 어릴 적 ‘어린 왕자’를 접한 후, 동화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해설과 구절을 읽고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어릴 적 지나쳐버린 생텍쥐페리의 헌사를 읽고 나니, 정작 ‘어린 왕자’를 읽어야 할 시기는 어른이 되어버린 바로 지금인 듯하다. 오래 전 독서로 어렴풋하게나마 어린 왕자를 기억하고 있다면, 오늘 다시 ‘어린 왕자’를 읽으며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는 어린아이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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