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최근 국회에서 수시를 폐지하고 정시100%로 대입을 치르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습니다. 현행 법령의 입학사정관제 규정을 삭제하고 학생선발일정에서 수시모집을 제외하는 방안입니다. 학생부위주전형이 폐지되고 정시와 추가모집만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대표발의한 김재원(자유한국) 의원은 “외부 요인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 복잡한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고, 학생 개개인의 실력과 노력이 정정당당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학생끼리 경쟁’하는 수능이 주어진 환경에 따른 교육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시보다 정시가 공정하다는 주장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제에 이어 2013학년부터 학종을 필두로 수시가 확대된 배경엔 수능만으로는 공정한 평가가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교육계의 분위기는 정반대였습니다. 평준화로 인한 교육특구 쏠림을 견제하기 위해 설립됐던 특목고들이 거꾸로 정시중심의 대입제도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당시 전국모집을 실시했던 과고와 외고가 서울대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며 대입실적을 독식하는 체제였습니다. 정시는 물론 수시인 특기자전형에도 강점이 있던 특목고로 전국의 우수학생들이 몰리는 선발효과에 더해 사교육의 막강한 지원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실제 자사고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 시기인 2007학년의 서울대 합격자 배출 상위10개고교는 전부 특목고였습니다. 예능계열인 예고를 제외해도 서울과고 72명, 대원외고 64명, 한성과고 44명, 한국영재 37명, 명덕외고 35명, 경기과고 27명, 한영외고 22명 등의 실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입 진학을 위해 특목고 입시까지 과열되면서 사교육도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교육당국은 외고 과고의 입시를 규제하기 위해 영재학교를 지정하고 일반고 가운데 자사고들을 늘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전국단위 자사고는 모두 지방에 있었고 서울 유일의 전국자사고인 하나고 역시 강남3구쿼터를 두면서 오히려 교육특구를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광역자사고도 숫자에 집착한 부분은 무리수가 있었지만 대부분 교육특구가 아닌 지역에 설립해 정책기조를 유지했습니다. 반대로 과고와 외고는 광역단위 모집으로 축소시켜 선발효과를 약화시켰습니다. 동시에 학생부 자소서 면접을 등을 활용해 지원자의 교내활동을 중심으로 정성평가하는 학종을 확대해 사교육 억제도 꾀했습니다. 점차 학종이 수시의 대표전형으로 자리잡으면서 소외지역 합격생이 증가했고, 일부 학교의 독식 체제가 깨지는 결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여건을 맥락적으로 고려해 학교생활 중심으로 평가한 데다 농어촌전형 배려자전형 지역균형전형 등의 하위전형을 갖춰 사회적약자에 대한 배려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정시100%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지금까지 대입제도가 조금씩 개선해오고 있던 성과를 모두 무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결과 역시 자명합니다. 고교들의 선발효과가 과거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사교육과 교육특구의 과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수능의 EBS 연계율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문제의 유형도 정형화된 만큼 문제풀이 수업을 반복하며 대입실적을 내왔던 사교육업체들에 유리한 환경입니다. 물론 자신만의 노력으로 목표로 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교육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앞으로 정시의 문호가 더 넓어진다면 재수나 N수를 결심하는 학생도 늘어난다고 전망됩니다. ‘학생의 경쟁’이 아닌 사교육을 충분히 받게 할 수 있는 경제력에 좌우되는 ‘부모의 경쟁’인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정시가 공정하다는 믿음 자체부터 허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시를 공정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수능이 객관적인 형태의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편법’과 ‘비리’에 대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한국사회는 교육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의 제도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상태입니다. 결과적으로 객관적인 평가기준과 일괄적인 시험을 통해 나오는 점수만이 학생의 ‘진짜 실력’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정시중심의 대입제도는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전례가 있습니다. 사교육 쏠림 등으로 소득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까지 커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대입을 정시중심으로 급격하게 바꾸려는 시도 자체부터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은 것만 못한 ‘최악’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정함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사람에게 성과가 돌아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입장 역시 수능이 최선을 다한 학생이 최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시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학생들마다 주어진 상황이 다르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빠져 있습니다. 이는 수능뿐 아니라 정량평가를 실시하는 형태의 모든 시험이 가진 맹점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수능시험과 유사한 정량평가 방식의 SAT에 역경점수를 도입한 것도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정반대로 정량평가로만 입시를 치르자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사교육의 영향이 막강한 만큼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해도 대입에 실패한 학생들이 늘어난다면 절대 공정한 제도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정시100%대입이 불공정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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