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삶에 숨통 틔워주는 책
■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김영사

[베리타스알파=김경 기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쓴 책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는 삶에 지친 모두가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의 글쓰기보다 저자가 소개한 문장가들의 글쓰기에 새삼 관심이 돋는다. 동서고금을 막론, 사람살이의 간단명료한 표현들에 사로잡힌다.

책장을 넘기다 청소년기 국어교과서에서나 접한 박목월 윤오영 피천득의 수필집을 어른의 눈으로 더듬게 된다. 국문학도나 읽을법한 ‘수필문학입문’, 평소 엄두도 내지 못할 분량의 피천득의 문학전집 10주기 한정판, 윤오영의 수필선집에도 눈길이 간다. 시인으로 익숙한 박목월의 수필은 어떤지 궁금해 ‘달과 고무신’을 인터넷서점 카트에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책은 두꺼워도 낱낱이 들은 수필들은 침대 책상 화장실 한 켠, 비어 있는 자동차 옆자리에 두고 언제든 얼마든 읽어도 될 경쾌한 분량이니 부담없을 테다.

갖게 된 관심으로 지금 내 삶의 희로애락을 정직하게 글로 써볼 계기도 마련해볼만하다. 생활과 생각을 솔직하게 적다 보면, 적기 위해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누구든 수필가가 되고 철학자가 될 것이므로. 다만 글을 쓸 땐 ‘좋은 문장은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가 빳빳이 서 있고, 나쁜 글은 겉만 멀끔하지 읽으면 비실비실 쓰러진다’는 한 스승의 말씀을 저자가 전한 대목과 ‘‘글은 곧 그 사람이다’란 말이 있다. 글에는 그 사람의 성정과 사람됨이 묻어난다. 목월의 수필은 그의 시를 읽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시에서 시인은 언어의 함축 속에 스며서 수면 아래 그림자로 숨는 데 반해, 수필은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사물을 이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 자신의 내면에 고인 내밀한 통찰 같은 것들이 물 위로 솟은 바위처럼 불쑥불쑥 본모습을 드러낸다’는 저자의 생각도 가슴에 얹어보자.

글만 쓸 게 아니라 말을 어떻게 할지에도 생각이 미친다. ‘30년 전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지 못한 채 ‘해 질 무렵을 사랑하는 몽상가’였던 어떤 스승이 몸소 보여준 ‘질문은 언제나 기본 개념과 용어를 벗어나지 않는다. 질문이나 대답을 녹음해서 그대로 옮기면 손댈 것 없는 문장이 된다. 도대체 군더더기가 없고 멈칫대는 법이 없다’는 대목에서다.

언젠가는 마무리될 삶을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정리된다. 특히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유품 정리 때 사모님의 분부로 선생님이 쓰시던 옥편과 한적을 내가 물려받았다’는 스승과 관련된 저자의 일화와 피천득의 ‘꿈’에서 따온 ‘그 집 울타리에는 이름 모를 찬란한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엄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얼른 그 꽃을 꺾어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꽃을 엄마 얼굴에 갖다 놓고 ‘뼈야 살아라!’ 하고, 빨간 꽃을 가슴에 갖다 놓고 ‘피야 살아라!’ 그랬더니 엄마는 자다가 깨듯이 눈을 떴다. 나는 엄마를 얼싸안았다. 엄마는 금시에 학이 되어 날아갔다’에 ‘울지 않았다’라 붙인 저자의 감상에 공감할만하다. 지금이 고통스러운 사람이라면, ‘절망을 감내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그릇을 본다. 천연두로 자식 여럿을 죽인 정약용이 ‘마과회통’을 지어 치료법을 책으로 정리했듯이, 그들은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자기의 꽃을 피워낸다. 뽑아도 돋아나는 야생초같이’에서 힘을 얻을 것이다.

책은 10여 년 전 책 ‘미쳐야 미친다’로 서점가 톱스타 반열에 오른 정민 교수가 올 봄 내놓은 책이다. 30여 년간 학문의 길을 걷는 동안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엮었다. 만 서른의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이후부터 이순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까지 마주한 잊고 싶지 않은, 잊어서는 안 될 순간들을 기록했다. 옛사람과 나눈 대화도 있고, 지금은 곁을 떠난 스승이나 선학도 있다. 가깝게 지내는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도 있고, 삶의 방향을 바꿔준 책, 통쾌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야기도 있다.

책을 펴낸 출판사 김영사 관계자는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사람이라는 텍스트를 읽고 분석했다는 의미와 책과의 만남이 준 감동을 간직하려는 뜻”이라며 “저자는 ‘표정 있는 사람’ ‘향기 나는 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표정이 아름답다는 것은 살아온 삶이 아름답다는 말이고, 책이 향기롭다는 것은 세심하게 음미해야 하는 차와 같다는 의미다. 때론 학자이자 스승으로서, 때론 제자이자 아버지로서의 따뜻한 시선과, 정민 교수 특유의 필치가 녹아든 산문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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