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 피아노 소나타 전집 (32 Piano Sonatas)

‘sonata’... 현재 생산되는 국산 세단(sedan)차 중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이자 가장 많이 판매된 차종이다. 1985년에 처음 출시된 이후 성능이나 외관은 많이 변했지만 ‘sonata'라는 브랜드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한글로는 ‘쏘나타’라는 명칭으로 출시되고 있다. 1985년 처음 모습을 보였을 때는 ‘소나타’라고 불렀으나 ‘소나 타는 차’라는 경쟁사의 비아냥거림에 밀려 한글 명칭을 ‘쏘나타’로 바꿨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sonata'는 음악용어다. 대부분의 음악용어들이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듯 ‘sonata’도 이탈리아어 동사인 ‘sonare(소리나다)’에서 파생된 명사다. 처음에는 악기로 연주하는 모든 음악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로 쓰이다가 18세기 중엽 고전파 음악가들에 의해 ‘소나타 형식(sonata form)’이 만들어지면서 기악곡 중의 한 장르(genre)로 자리 잡았다. ‘소나타 형식’은 클래식음악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기악 형식이지만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겐 다소 어려운 음악용어다. ‘소나타 형식’은 ‘제시부 - 발전부 - 재현부’ 등 3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제시부’에서는 두 개의 상반된 분위기의 주제 선율을 제시하는데 일반적으로 먼저 제시되는 선율, 즉 제 1주제가 곡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고 이어 대조적인 분위기의 제 2주제도 함께 제시된다. 이 두 주제 선율은 ‘발전부’에서 서로 얽히고 변형되면서 자유롭게 발전하며 전개되고, ‘재현부’에 이르러 두개의 주제 선율이 같은 조성으로 재현되면서 두 주제 간의 대립성이 해소되며 완결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소나타(sonata)’와 ‘소나타 형식(sonata form)’은 다른 개념이다. ‘피아노 소나타’라는 기악곡은 1악장을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한 피아노 독주를 위한 작품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피아노 소나타’는 다양한 장르의 피아노 독주곡들 중에서 가장 표현력이 풍부하고 진지하며, 절대음악(음의 순수한 예술성만을 목표로 작곡된 음악)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18세기 초엽 발명된 피아노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빈 고전파 음악가들이 활동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러 가장 대중적인 악기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소나타 형식’의 체계를 확립한 하이든과 천재 작곡가이자 명 피아니스트였던 모차르트는 모두 피아노 소나타 명곡들을 많이 남겼다. 그렇지만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소나타’들은 베토벤의 몫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작곡한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들은 베토벤 예술성의 집약이자 피아노로 연주되는 모든 음악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금자탑(金字塔)이다.

베토벤의 작품들은 작곡시기에 따라 초기(初期), 중기(中期), 후기(後期)작품으로 구분한다. 1792년(22세) 고향 본(Bonn)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후 1802년(32세)까지 10년 동안 작곡한 곡들이 초기작품에 속한다. 교향곡 2곡, 피아노 협주곡 1곡, 현악사중주 등도 작곡했으나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피아노 소나타들이다. 빈 정착 초기에는 작곡가로서 보다는 명 피아니스트로 알려졌기 때문에 귀족 자제들 피아노 교습을 위해 비교적 많은 피아노 소나타들을 작곡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작품 군에 속하는 20개의 소나타 중 8번 ‘비창’(1798년, 28세), 14번 ‘월광’(1801년, 31세), 17번 ‘템페스트’(1802년, 32세) 등이 특히 유명하지만 다른 작품들도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곡들이다. 이 시기의 교향곡이나 현악사중주 등에서는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많이 보이지만 피아노 소나타 분야에서는 이미 베토벤의 독창적인 작풍이 드러나고 있다.

“ … 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청력이 아주 심하게 손상되었다네. … 나의 청력 소실에 대하여는 모두에게 비밀로 해 주기를 바라네.” (1801일 6월1일, 목사 아멘다에게 보낸 서신 중)

베토벤은 1801년(31세)부터 청각 장애로 고통 받기 시작했다. 이듬 해 그는 요양 차 빈 근교의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물던 중 죽기로 결심하고 유서를 작성했다. 그렇지만 유서를 쓰는 중에도 음악가로서의 사명, 예술 혼이 그를 붙잡은 듯 결국 그는 삶을 택했다. 그리고 이 ‘하이리겐슈타트 유서(1802년, 32세)’ 이후의 베토벤은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 그의 음악은 더 이상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애절한 감정들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다. 인간의 고뇌와 투쟁 그리고 삶의 환희가 뒤엉켜 나타나 그 이전 어느 작곡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음악세계가 열렸다. 이 ‘유서 사건’ 이후 약 15년 동안 작곡한 곡들을 ‘중기(中期)작품’으로 구분한다. ‘영웅’ ‘운명’ ‘전원’ 등 걸작 교향곡이 작곡된 시기며, 그의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격정적이며 고뇌와 환희가 함께 느껴지는 명작, 21번 ‘발트슈타인’(1804년, 34세), 23번 ‘열정’(1805년, 35세) 그리고 26번 ‘고별’(1810년, 40세)소나타가 이 시기에 작곡됐다.

1817년(47세) 이후 베토벤의 작품들은 그 이전과는 현격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전 음악들이 자신을 비롯한 인간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온갖 감정들을 표출해 낸 작품들이었다면 이 시기, 즉 후기(後期)작품들에게서는 내면의 성찰과 체념 그리고 마음의 평화와 환희로 점철되는 내향화 시기(Period of Internalization)가 시작된다. 9번 교향곡 ‘합창’은 인류애와 환희를 노래하고, 마지막 4개의 피아노 소나타들(29번~32번)은 노대가(老大家)만이 빠져들 수 있는 명상,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삶의 위로와 평화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그려낸다.

베토벤은 23세에 첫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한 후 52세에 마지막 32번 소나타를 작곡했다. 그의 작품 활동 시기 전반에 걸쳐 작곡할 만큼 애착이 많았던 듯하다. 32개 전곡을 듣다보면 베토벤의 삶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도 들 것 같다. LP전집은 몇 질 가지고 있지만 아직 전곡을 순서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2년 전 8일 동안 열린 백건우 전곡 연주회 중 이틀 밖에는 시간을 내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 문득 전곡을 순서대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과 정열이 넘치는 빌헬름 박하우스나 에밀 길렐스의 연주를 좋아하고 자주 들었지만 이번 기회엔 자유롭고 분방한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로 베토벤의 삶을 추적해보고 싶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SGNSZ-b2E7w (베토벤 ‘월광소나타, 프리드리히 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JyPJPCTLO8 (베토벤 ‘열정소나타’, 프리드리히 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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