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 오페라 ‘아이다(Aida)

‘아레나’... 소수의 젊은이들이 유흥을 즐기는 강남의 고급 클럽 이름이라는 사실을 최근 뉴스를 보고 알았다. ‘버닝썬 사건’으로 몇몇 연예인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의 불법적인 행동들이 밝혀지면서 유명 클럽들을 둘러싼 불편한 뉴스들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아레나(arena)’는 라틴어로 ‘모래’라는 뜻이다. 검투사들의 잔인한 결투가 행해졌던 로마시대의 거대한 원형경기장(amphitheater)의 바닥을 모래로 깔았기 때문에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고대 원형경기장 또는 원형극장을 일반적으로 ‘아레나’라고 지칭하게 된 듯하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크로아티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도 잘 보존된 ‘아레나’들이 남아있다. ‘콜로세움(Colosseum)’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로마 시내 중심의 원형경기장은 무너진 바닥 밑으로 검투사나 맹수들이 대기하던 지하실이 미로처럼 드러난 채 보존되고 있어서 현재는 공연장이나 경기장으로 활용할 수는 없다. 밀라노와 베니스 중간에 위치한 베로나(Verona) 시내 중심에도 로마시대의 아레나가 남아있다. 로마의 콜로세움 보다 규모는 작지만 비교적 잘 보존되고 유지되어 현재에도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10여 년 전 여름 베로나에서 이틀을 보냈다. 파리에서 10여 시간 차를 몰아 밀라노를 지나쳐 베로나로 직행한 이유는 섹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으로 유명한 도시라는 점에 이끌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야외 오페라 축제에 참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베로나의 고대 원형극장인 ‘아레나’에서는 매년 여름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이탈리아 북부 출신 작곡가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13년에 최초로 오페라 ‘아이다(Aida)를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베로나의 ’아레나‘에서는 한여름 밤 야외 오페라 축제가 10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6월말부터 8월 초까지 약 80일간 5~6개의 오페라들이 공연되지만 가장 인기 있는 베르디의 ‘아이다’만큼은 거의 매년 고정 레퍼토리로 선정된다.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다. 당대 가장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였던 베르디는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여 이집트의 카이로에 세워질 오페라극장 개관 공연을 위한 작품을 위촉받았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등 걸작을 발표한 지 20년 가까이 지나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베르디는 이집트 국왕의 요청을 몇 차례 거절했으나 오페라 대본을 받아본 후 의욕이 생겨 결국 작곡에 착수했다. 이렇게 탄생한 ‘아이다’는 1872년 12월 카이로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두 달 후에는 밀라노에서 베르디 자신의 지휘로 유럽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뉴욕, 베를린, 런던, 파리 등 대도시에서도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젊은 시절 작품들에 비해 한층 노련미가 더해졌고,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장치가 곁들여 져 베르디의 최고 걸작이자 오페라 사상 가장 인기 있는 명작으로 꼽힌다.

‘아이다’의 줄거리는 이집트의 젊은 장군 ‘라다메스’와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그리고 이집트의 적국인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 사이의 삼각관계 사랑이야기다. ‘아이다’는 이집트에 끌려와 노예 신분으로 ‘암네리스’의 몸종이 되었지만 ‘라다메스’와 은밀한 연인 관계로 지낸다. 역시 ‘라다메스’를 사랑하는 이집트의 공주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들통나지만 두 여인은 모두 젊은 장군을 포기하지 못한다. 에티오피아 군대가 이집트로 쳐들어오자 ‘라다메스’는 이집트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고 전쟁에서 승리한다. 이집트 국왕이 개선장군에게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하자 “에티오피아의 포로들을 석방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집트 국왕은 개선장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물론 ‘라다메스’를 사위로 삼아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다고 발표한다. 한편 포로들 속에서 신분을 속이고 있었던 에티오피아 왕은 딸 ‘아이다’에게 ‘라다메스’로부터 군사기밀을 알아내라고 강요한다. 애국심과 사랑 사이에 갈등하던 ‘아이다’는 결국 ‘라다메스’로부터 기밀을 알아냈지만 둘 사이를 의심하던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에게 발각되고 만다. 에티오피아 왕과 ‘아이다’를 피신시키고 체포당한 ‘라다메스’에게 ‘암네리스’는 “아이다를 단념하고 나를 택한다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라다메스’는 거절하고 죽음을 택한다. 신전 밑에 생매장당하는 처형을 받은 ‘라다메스’는 의연하게 돌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도망간 줄 알았던 ‘아이다’를 만난다. ‘아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기 위해 미리 무덤 속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산소가 희박해지는 돌무덤 속에서 최후의 2중창 ‘죽음은 아름다운 것’을 부르고, 지상의 ‘암네리스’는 제단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오페라 ‘아이다’는 무대장치가 화려하고 개선 행진, 발레 등 볼거리가 많은 오페라다. 그렇지만 ‘아이다’의 참맛은 아리아와 합창곡, 그리고 세 주인공들 간의 갈등과 사랑을 노래하는 이중창 등 뛰어난 명곡들에 있다.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아이다’ 공연은 평생 한 번쯤 관람해 볼 만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탈리아 여행 중 틈을 내서 가 볼 수는 있겠지만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혹 비라도 내리는 날이라면 공연이 취소되기도 한다. 실제 공연보다는 감동이 덜할지는 몰라도 DVD나 유튜브를 통해 오페라 전곡을 감상해 보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총 공연시간이 2시간 반가량 걸리는 대작이라 한두 번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아이다’의 음악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다’를 포함한 대부분의 오페라들을 제대로 감상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줄거리와 분위기를 학습한 후 CD나 LP로 듣는 것이다. 몇 곡의 유명한 아리아나 합창곡에 친숙해진 후 대본과 함께 ‘아이다’의 음악들을 감상하다 보면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치 등 시각적인 유혹에 빼앗기는 청각의 감동을 몇 배 더 느낄 수 있다. 녹음되어 남아있는 많은 음반들 중에서 1959년 카라얀이 비엔나 필하모니와 함께 한 전곡 녹음 음반을 가장 좋아한다. 레나타 테발디 등 초일류 가수들과 함께한 젊은 시절 카라얀의 극적이고 화려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연주는 60년이 지난 지금 들어봐도 언제나 진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유재후 편집위원 yoojaehoo56@naver.com

베르디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 지휘 정명훈

https://www.youtube.com/watch?v=EkktfPo0Gqg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중 ‘청아한 아이다 (Celeste Aida)',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https://www.youtube.com/watch?v=XP1vp_G9mLc&list=RDXP1vp_G9mLc&start_radio=1

‘이기고 돌아오라 (Ritorna vincitor), 소프라노 임세경

https://www.youtube.com/watch?v=xkq2t-b-F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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