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절대평가, 내년 고1 진로선택과목 제한적용.. 고교개편, 헌재에 달려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 중 하나인 고교학점제가 전면도입을 3년 유예한다. 교육현장의 요구가 높았던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는 2022대입에서 일부 과목에서만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수능절대평가와 함께 그동안 교육부가 추진해온 교육공약들은 대부분 차기정부로 넘겨진 채 공중분해된 셈이다.  

교육단체들 사이에선 정부가 공약을 자체 폐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초 2022년 전면도입하기로 했던 고교학점제와 내신 성취평가제가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5년으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좋은교사운동 관계자는 “2025년에 실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냐. 현 정부에서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차기 정부가 이전 정부의 교육공약을 계승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공약을 폐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한 교육전문가는 “결국 현 정부의 주요 공약이 모두 2025년 이후로 밀린 셈”이라며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을 차기 정부로 넘긴다는 것은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 중 하나인 고교학점제가 전면도입을 3년 유예한다. 교육현장의 요구가 높았던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는 2022대입에서 일부 과목에서만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 2025년 연기.. ‘차기정부로 넘겨’>
2022년 전면도입하기로 했던 고교학점제는 2025년으로 연기한다. 현재 운영 중인 연구학교와 선도학교를 거쳐 2022년 부분도입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15교육과정 총론 일부 개정 이후 약 10년에 걸쳐 고교학점제가 완성되도록 하겠다”며 “안정적인 제도 도입과 안착을 위해서는 교육과정 다양화 등 중점 적용이 가능한 요소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학점제 도입기반 마련(2018~2021년) △학점제 부분도입(2022~2024년) △2025년 학점제 본격시행 등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선결과제로 요구된 성취평가제 도입도 추진한다. 내년 고1부터 ‘진로선택과목’에 한해 성취평가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성취도를 대입전형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석차등급은 제공하지 않는 대신 과목별 성취도와 함께 원점수와 과목평균, 성취수준별 학생비율을 제공한다.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하고 평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학점제 부분도입을 위해 현행 교육과정 총론 일부를 수정한다. 예를 들어 1단위 50분을 기준으로 17회이수하는 수업량을 고교학점제에 맞춰 이수기간과 질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선택형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적정 이수 학점량과 인정기준도 정한다. 연구소 대학 지역사회 등 학교 밖 이수과목의 인정기준 마련도 필요하다. 

다만 교육과정 개정시기가 2022년 상반기로 예정돼 실행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교육과정 개정도 대입개편 못지않게 의견이 분분한 사안인 데다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2년 상반기는 차기대선이 치러지는 시기인 탓에서 교육계에서는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2025년 선택과목 재구조화 등 교육과정 전면 개정을 거쳐 본격 시행하겠다는 구상이다. 고1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부터 모든 과목의 성취도를 대입 전형자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대입 내신 절대평가 도입도 2025년으로 미뤄지는 셈이다. 

<고교학점제 도입한다더니 정시확대?.. ‘정책엇박자’>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다는 교육부가 정시확대와 수능 상대평가 유지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정책엇박자라는 지적이 앞선다. 수능 영향력이 커질수록 고교학점제 도입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날 교육부는 2022대입개편안을 통해 수능위주전형 비율을 30%로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한 교육전문가는 “정시확대로 수능 영향력이 커질 경우 학생들이 주요과목에 몰려 수업선택권 의미가 퇴색되거나 공약실현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고교학점제 성공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수업 선택권이 필수다. 하지만 수능 영향력이 클수록 수능과 관련 있는 과목이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수능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적성이나 진로에 맞는 과목이 아닌 대규모 수험생이 몰리는 과목을 선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내신 성취평가도 마찬가지다. 현행 내신 상대평가제를 유지하면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경우 학생들은 수강인원 수에 따른 내신 유불리를 먼저 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인수 과목은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운 탓에 진로 흥미와 연관된 과목이라도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작년 12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이 공개한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교육과정 및 학생평가 재구조화 방안’ 보고서에도 드러난다. 서울 전체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서는 학생평가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봤다. 응답자의 54.3%가 평가방식 개선을 1순위로 꼽았다. 학생 과목선택권 확대가 44.1%, 졸업요건 강화가 36.3%로 뒤를 이었다. 

고교학점제 도입을 연기한 것을 두고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학점제 정착을 위해선 교원이나 인프라 구축 등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가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총 김재철 대변인은 “고교학점제 전면도입 연기는 현실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교총은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한 미래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사전에 준비하고 챙겨야할 것이 너무도 많다는 점에서 도입 시기에 연연하지 말 것을 주문해왔다”며 “학점제 근본 취지와 고교 현실을 냉철히 고려할 때 아직도 갈 길이 먼만큼 2025년이라는 도입 시기와 상관없이 꼼꼼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역시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성급히 전면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고교학점제는 중등교육 전체의 틀을 바꾼다는 점에서 섣불리 시행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출발해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학습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덧붙였다. 수능중심 고교교육이 유지되는 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더라도 여전히 국영수 중심 학습방향에 진로관련 과목을 집중 선택하는 편식교육이 심화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고교체제 ‘성과평과로 단계적 전환’.. ‘교육부 아닌 헌재 손에’>
자사고 외고 국제고는 일괄전환이 아닌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전환한다. 운영성과평가를 거쳐 평가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행/재정적 지원으로 자발적 일반고 전환도 유도한다. 당초 자사고 등의 초중등교육법상 설립근거 삭제를 통해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에선 한발 물러선 셈이다. 

교육부는 과거 봐주기식 평가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성과평가의 취지를 살리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공정하고 엄정한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말했지만 교육계 시선은 곱지 않다. 공약파기 논란까지도 나오는 상황이다. 성과평가만 통과하면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평가 대상 학교는 내년 24개교, 2020년 54개교, 2022년 2개교 등 80개교다. 종합적인 고교체제 개편방안은 2020년 하반기에 마련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입 동시실시와 단계적 전환 과정에 대한 정책연구와 의견수렴을 종합해 방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교체제 개편의 경우 사실상 교육부가 아닌 헌법재판소의 손에 달려있다는 시각이다. 앞서 교육부는 일반고보다 두세 달 앞서 신입생을 선발한 자사고 등이 일반고와 동일하게 후기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교육부는 입시시기를 일원화했을 뿐 아니라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지원자의 경우 일반고 이중지원도 금지했다.  

하지만 고교체제 첫 단추인 고입 동시실시에 헌재가 제동을 걸었다. 6월 헌재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중복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정부의 자사고 국제고 외고 폐지 정책에 걸림돌이 생긴 셈이다. 헌재가 본안소송에서도 자사고의 손을 들어준다면 고교체제 개편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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