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개 도시에서 100% 온라인 수업.. ‘능동적 학습’기치

[베리타스알파=윤은지 기자] -하버드보다 좁은 문.. 국내출신 4명
-SAT성적 자소서 대신 에세이 면접 인지능력테스트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을 이기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회가 요구하는 대학교육의 모습은 무엇일까. 미네르바스쿨은 2014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도 가장 어울리는 인재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문을 열었다. 미네르바스쿨에서는 특정 전공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15분 내외의 짧은 강의를 수업 전에 미리 듣고 수업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의문점을 던지는 데 중점을 둔다. 모든 수업에서 개별 학생의 참여도가 전체 수업의 최소 75%에서 80% 이상을 채울 수 있도록 만든다. 지식 자체보다 지식을 다양한 전공과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기르기 위해서다.

‘캠퍼스 없는 대학’ ‘스타트업대학’ ‘온라인대학’ ‘미래대학’ 미네르바스쿨을 수식하는 말들은 모두 의문을 자아낸다. 연구실도 강의실도 도서관도 없는 미네르바스쿨의 유일한 오프라인 건물은 기숙사다. 학생들은 전 세계 7개 도시에 퍼져 있는 기숙사를 3~6개월마다 옮겨 다니며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다면 학생이 있는 곳이 곧 강의실이다. 하지만 미네르바스쿨의 핵심은 강의실 없는 대학도, 전원 온라인 강의도 아니다. 기존 대학교육 체제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한 미네르바스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학생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내 실제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이다.

‘제3물결’의 저자이자 저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학교는 아직도 과거에 얽매여 인적 재능의 낭비가 막대하다”고 말했다. 구글이 선정한 세계 최고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진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기존 대학교육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개교 4년만에 존재감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있는 미네르바스쿨은 대학들이 모색중인 대학의 도전적 미래상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미네르바스쿨의 수업은 학생참여를 강조한다. 온라인수업이지만 일방적인 강의나 녹화된 영상 강의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수업 전 15분가량의 짧은 강의영상을 보고 수업에서는 실시간 토론식 세미나 형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교수가 토론 주제를 던지면 학생들은 버튼 하나로 본인의 의견을 표시하고, 온라인 협업 도구를 이용해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사진은 미네르바스쿨의 온라인수업 장면. /사진=미네르바스쿨 제공

<벤처자본 투자로 설립한 ‘스타트업 대학’>
미네르바스쿨은 미국의 대학 컨소시엄인 KGI에 인가된 공식대학으로 스타트업처럼 벤처자본의 투자를 받아 설립됐다. 인터넷기업을 운영하던 벤처창업가 벤 넬슨이 제안하고, 하버드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지낸 스티븐 코슬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과학정책자문위원을 맡았던 비키 챈들러가 참여했다. 2011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업체인 벤치마크가 2500만 달러(약 290억원)를 투입해 4년제 학/석사 학위과정인 ‘미네르바스쿨’이 탄생했다. 벤치마크는 이베이와 트위터에 투자했던 회사다. 미국언론이 이 학교를 ‘스타트업대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미네르바’라는 이름은 그리스신화 속 ‘지혜의 여신’에서 따왔다. 개교 준비과정을 거쳐 2014년 첫 입학생 28명을 받았다.

설립자인 벤 넬슨은 온라인 사진 인쇄 업체인 스냅피시에서 10년 동안 몸담으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벤처기업가이기도 하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며 쌓은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20여 년 전 대학시절부터 구상해온 혁신 교육을 미네르바스쿨에 쏟았다. 당시 그가 “기존 대학의 모델을 바꾸겠다”며 미네르바스쿨을 설립할 때만 해도 성공가능성을 점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개교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졸업생도 아직 배출하지 못한 미네르바스쿨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학이 됐다.

<전 세계 돌며 ‘글로벌마인드’ 갖춰.. 7개 도시가 ‘캠퍼스’>
미네르바스쿨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일반적인 ‘사이버대학’을 떠올리면 안 된다. 미네르바스쿨의 활동반경은 웬만한 대학보다 훨씬 넓다. 대학의 유일한 오프라인 건물인 기숙사가 전 세계 7개 도시에 퍼져 있다. ‘캠퍼스가 없는 대학’보다는 ‘전 세계가 캠퍼스인 대학’이라고 보는 게 맞다. 학생들은 기숙사 위치를 3~6개월마다 바꿔야 한다. 1학년은 샌프란시스코(미국), 2학년은 서울(한국)과 하이데라바드(인도), 3학년은 베를린(독일)과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4학년은 런던(영국)과 타이베이(대만) 등 7개의 세계 주요도시에서 생활한다. 서울의 기숙사는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글로벌도시로 적합한 곳을 찾다가 서울을 택했다. 물가와 치안 등을 고려하고 학생들이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역동적인 도시를 기숙사로 고르다 보니 서울이 물망에 올랐다.

관광하듯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온라인수업을 듣는 것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수업과 과제, 금요일과 주말은 ‘경험 학습’을 한다. ‘경험 학습’은 도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말한다. 학생들이 직접 지역사회의 일원이 돼 사람과 사회의 다양성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캠퍼스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풍부한 환경에서 다층적인 교육을 받게 되는 셈이다. 구글, 아마존,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기업에서부터 비영리단체나 사회기관에 종사하며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했다.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수업시간에 접한 개념을 응용해 풀어가는 방식이다. 미네르바스쿨은 이 같은 응용력과 융합적 사고를 학생 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다.

<핵심은 ‘온라인 수업’ 아닌 ‘능동적 학습’>
“강의(lecture)는 가르치기(teaching)에는 훌륭한 방법이지만, 배우기(learning)에는 최악의 방법이죠.” 미네르바스쿨 설립 학장인 스티븐 코슬린(Stephen Kosslyn) 박사가 지난해 한양대를 방문해 한 말이다. 미네르바의 교수법은 ‘완전한 능동적 학습(Fully Active Learning)’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된다.

능동적 학습은 기존 대학에서 수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강의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미네르바스쿨은 여기에 ‘fully’라는 표현을 덧붙여 온전한 능동적 학습을 구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았다. 모든 강의는 전부 인원을 20명 이하로 제한해 소규모 토론식 세미나 형태로 진행된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 모두의 참여도가 전체 수업시간의 75%에서 80% 이상을 채우도록 했다. 기존의 강의중심 수업과 비교하면 수업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교수가 5분 이상 말을 할 경우 경고 알람이 울리기도 한다. 학생들이 실제로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활동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한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이다. 최근에는 국내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도 새로운 수업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교수법이다. 전통적인 수업 방식과는 정반대라는 의미에서 ‘거꾸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업에 앞서 학생들이 교수가 제공한 강연 영상을 미리 학습하고, 강의실에서는 토론이나 과제 풀이를 진행하는 형태의 수업방식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서울대 KAIST UNIST 등 대학에서 이 방식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미네르바의 학생들 역시 수업 전 미리 15분가량의 짧은 강의를 들어야 한다. 실제 수업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토론하는 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수업은 미네르바스쿨에서 자체 개발한 온라인 ‘액티브 러닝 포럼(Active Learning Forum)’이라는 플랫폼에서 이뤄진다. 온라인으로 모든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업을 듣는 장소는 커피숍, 기숙사, 거실, 식당 등 각양각색이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다면 학생이 있는 곳이 곧 강의실이 된다.

온라인 강의지만 일방적인 강의나 녹화된 강의를 트는 방식은 아니다. 강의는 실시간 토론식 세미나 형태로 진행된다. 온라인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교수 화면에는 수업 시간 동안 어떤 학생의 참여도가 높은지 낮은지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불빛으로 즉각 표시된다. 교수는 참여도가 낮은 학생에게 질문을 던져 참여를 유도한다. 교수가 토론 주제를 알려주면 학생들은 버튼 하나로 본인의 의견을 표시하고, 팀이 된 학생들은 온라인 협업 도구를 이용해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능동적 학습은 학생들이 단순히 지식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보다 고차원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자극한다. 궁극적으로는 배운 개념을 새로운 상황이 주어질 때마다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공은 예술인문학 계산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경영 등 5가지. 일반적인 대학의 전공보다는 단과대학 분류에 가깝다. 복잡한 미래사회에서는 한 가지 학문분야의 지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착안해 융합전공 형태를 갖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보다 개별적이고 세분화된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서울에서도 네이버 SAP코리아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의 기업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합격률 1.9%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
5년차 신생대학이지만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힘든 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학생들이 몰린다. 2016년에는 306명을 뽑는데 1만6000여 명이 지원해 합격률 1.9%를 기록했다. 당시 미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네르바스쿨은 하버드(5.2%) 예일(6.3%) 스탠포드(4.7%)보다 합격률이 낮다. 전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라고 평했다. 최종적으로 미네르바스쿨을 선택한 학생은 150명으로 등록율은 절반 수준이다. 미국의 일반 사립대 등록율이 35%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다. 지난해 봄에는 신입생 210명을 뽑았는데 2만427명이 지원해 97.3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내기도 했다.

미네르바스쿨은 어떤 학생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전체 학생의 80%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다. 북아메리카가 32%로 가장 많고, 유럽과 중동 출신이 29%, 아시아 24%, 아프리카 8%, 라틴아메리카 학생이 7% 수준이다. 한국인 학생도 4명이 있다. 민사고 출신의 한 한국인 학생은 입학 당시 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SAT)에서 2400점 만점에 2370점을 받고, 토플도 120점 만점에 118점을 받아 영국 케임브릿지대와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미국의 UC버클리 등 세계적인 대학에 합격했지만 미네르바스쿨을 택했다. 선발은 에세이와 면접 그리고 간단한 인지능력테스트를 통한다.

입학전형도 독특하다. 지원서에 중고등학교 성적증명서 외에는 어떤 시험 점수도 기재하거나 첨부할 수 없다. SAT 성적도, 자기소개서도 요구하지 않는다. 자체 입학시험은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구성했다. 자기 생각을 글로 쓰게 하거나, 말로 풀어내는 걸 카메라로 녹화해 평가한다. ‘당신이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그냥 그렇게 살도록 놔두라’는 일본 속담을 제시하고 3분 동안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라는 문제도 있었다.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는 정보는 철저히 배제된다. 설립자 넬슨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AT 점수는 그 학생 집안의 재력과 직결돼 있다. 부유한 학생일수록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고, 값비싼 과외활동 경력으로 가산점을 받는다. 대학은 사실상 재력을 보고 학생을 뽑아왔다. 우린 그런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뽑았기 때문에 4년간 입학생의 75%가 미국 이외의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었다. 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미네르바스쿨에 모여들었다.

미네르바스쿨의 국내 컨설턴트 역할을특별히 영어성적이나 인증점수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성적증명 외에 별도로 준비할 것은 없다. 미네르바스쿨 홈페이지의 입학(Admissions)코너에 들어가면 단계별로 정보를 입력해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학을 위해 준비할 것들에 대해선 “학생이 지금까지 성취한 것을 중점적으로 본다. 입학을 준비한다면 어떤 활동이든 활동을 통해 본인이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 잘 정리해봐야 한다. 특정한 활동을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은 활동이라도 의미 있는 성취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미국대학 수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어수업을 소화할 수 있는 영어능력도 물론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학비는 수업료, 기숙사비, 각종 수수료 등을 포함해 연간 2만8000달러(약 3000만원) 정도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연간 학비가 6만4000달러(약 684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다. 미국의 웬만한 사립대의 3분의 2정도 수준이다. 다른 대학처럼 넓은 캠퍼스를 갖추느라 부동산을 매입해 건물을 짓지 않아 저렴한 학비로 대학을 운영하는 게 가능했다. 장학제도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일단 입학생이 들어오면 개별 학생에게 여러 명의 컨설턴트가 붙어 경제적 여건 등 학습 이외의 요소에 방해 받지 않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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