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까지 나선 교육정책 혼선'.. '현장반발 기존 정책도 재고해야'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불통’ 논란으로 논란을 겪고 있는 교육부가 ‘정책 숙려제’를 도입한다. 정책 추진 이전에 숙려기간을 운영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책 대상도 정해지지 않은 데다 취합된 여론을 어떤 식으로 정책에 반영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이미 답을 정해놓고 밀어붙인 정책들로 신뢰를 잃은 교육부가 불통 지적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교육부가 29일 발표한 ‘2018 교육부 업무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국민참여 정책숙려제’가 도입돼 정책별 국민의견을 수렴한다. 일정 숙려기간을 운영한 후 정책 결정을 내리게 된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국민의 의견을 접수해 30~60일 이상 기간 동안 충분히 논의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대상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박 차관은 “올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대상으로 숙려제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점검해 대상을 선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숙려제가 도입될 경우, 이미 교육부가 방향을 정해두고 추진 중인 정책 역시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외고/자사고 폐지가 대표적이다. 고교유형 자체가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우선선발권을 폐지하고 고입 동시실시를 도입하면서 사실상 폐지의 포석을 깔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교육부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는 사안 역시 포함할 것인지 여부가 주목된다”며 “어떤 정책을 숙려제 대상으로 놓을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여론이 반대한다고 해서 실제로 정책 철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교육 전문가는 “이해 당사자들의 문제가 얽혀있는 사안이거나 찬반 양론이 팽팽한 경우 어느 주장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단순히 다수결의 논리로 정책이 결정될 수는 없는 만큼 숙려제가 실제 정책 실행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두고 봐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정책숙려제 카드를 뽑아 든 이유는 최근 발표된 정책들이 잇달아 현장의 반발을 겪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후 수업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업무보고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교육 정책 혼선을 지적했다. 이 총리는 “일부 교육 시책이 혼선을 빚거나 찬반 논란을 부른 경우가 있다”며 “정책 영향을 받는 국민 의견을 반드시 듣고 수렴한 뒤 정책으로 다듬는 절차를 확립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잇따른 불통 지적에 교육부가 '숙려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책 추진 이전에 숙려기간을 운영해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취지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베리타스알파DB

<교육부 ‘불통’ 지적에 ‘숙려제’ 카드>
교육부가 정책숙려제를 도입하는 것은 그간 교육부가 현장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책을 내놓고 본다는 지적을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수업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이 나온 직후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청와대 청원을 넣는 등 거세진 반대여론에 더해 여당까지 제동을 걸면서 불통 지적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를 두고 한 교육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을 공개하기 전에 의견 수렴이 기본이고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현장에서 어떤 반발이 있을지, 그 반발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이 정책 수립의 기본이다. 아마추어가 아이디어 나오는 대로 질러보는 듯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정책 수립 단계부터 국민 의견을 받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언론 브리핑에서 “그동안 정부가 정책 형성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정책을 이끌고 나가던 형태였다면, 앞으로는 국민의 의견을 접수해 30~60일 이상 기간 동안 충분히 논의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숙려대상은 추후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올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대상으로 숙려제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점검해 대상을 선정하게 될 것”이라며 “대입제도 개편안 등도 숙려제의 한 모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입제도 개편안 의견수렴 기간이 당초 예정보다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예고한 대로 8월까지 개편안을 내놓기 위해 기간 내에 의견 수렴을 완료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해 ‘온교육’ 홈페이지를 통해 주요 정책을 홍보하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현안/정책에 대해서는 정보제공부터 토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온교육에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제보, 수능시험 연기 고충처리센터 등 각종 제안/신고센터를 마련하고 주요사업에 대한 설문조사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숙려제 대상에 무슨 정책 포함되나>
정책 숙려제가 도입될 경우, 이미 정부가 방향을 정해두고 추진 중인 정책 역시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외고/자사고 폐지의 경우 ‘폐지’를 직접적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외고 국제고 자사고 일반고 입학전형을 동시에 실시하기로 하면서 드라이브를 건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초 외고/자사고 폐지 방침이 알려졌을 당시 격렬한 반대여론으로 국가교육회의 의제로 미루겠다고 했지만 고입 동시실시는 사실상 외고/자사고 폐지의 포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교육부는 선발시기 조정은 고교유형의 폐지나 존립과는 관련이 없다며 교육회의에서 다룰 의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고입 동시실시로 인해 2019학년 고입을 치르게 될 예비 중3 학생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고입 재수의 가능성 때문이다. 현행 체제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입시에 지원해 탈락하더라도 여타 학생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지만 입시시기가 일원화되면 기존 방식대로 지원할 수 없다. 다음 해 고입에 도전해야 하는 셈이다. 교육부는 고입재수를 완화하기 위해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불합격한 학생이 후기 모집에서 미달된 자사고 외고 국제고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일반고에도 추가 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각 시도교육청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고 추가선발/배정의 경우 본인이 원하지 않거나 집에서 먼 일반고에 배정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행 고교 입시는 선발시기를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다. 4월부터 11월까지 전기 모집에선 예고 체고를 비롯한 과고 외고 국제고 등 특목고와 특성화고 자사고 등이 선발을 진행한다. 수험생들은 전기 선발 고교로 분류된 학교 가운데 고교 유형에 관계없이 한 곳만 지원할 수 있다. 전기 모집에 탈락한 학생들을 포함해 전기 모집에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은 12월 중 일반고가 후기 신입생 선발을 진행한다. 시행령 개정으로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전기 모집 고교에서 제외하고 일반고와 동시에 진행하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이날 업무계획을 통해 발표된 논술/특기자 축소 폐지 사안 역시 정책숙려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교육부는 8월까지 대입제도를 단순화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논술/특기자를 축소 폐지하는 대신 수능/학생부 위주로 재편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특히 논술의 경우 학생부를 꾸준히 관리하지 못한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입전형이었다는 점에서 폐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사교육 유발 우려를 폐지의 근거로 들었지만 논술의 경우 그간 선행학습영향평가 등을 통해 사교육 유발 요소를 덜어냈다는 시각이 많다.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을 통해 각 대학이 논술가이드북을 발간하고 모의논술을 실시하면서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논술에 지원할 수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논술이 도입된 초기에는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소가 강했지만 그간 다양한 변화를 거쳐 사교육 유발 가능성을 줄여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교학점제 역시 마찬가지다. 고교 현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도입이 기정사실화 된 상태다. 교육부는 2022학년 도입을 목표로 정책연구학교 60개교를 3년간 운영하기로 했다. 전교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교육과정이나 교육정책들에 대한 평가, 다른 교육제도와의 전반적 연관성에 대한 검토 없이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해 학교현장에 일방적으로 내리매기는 방식이 반복돼왔다”며 “새로운 정책은 기존의 학교교육과 따로 놀면서 학교현장의 혼란과 부담만 가중시켜왔다”고 비판했다. 세부 문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면적 시행이 결정되는 것은 성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교원 확충 문제, 내신 절대평가 문제 등이 걸려있어 단순히 아이디어 수준에서 도입을 논의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정책 숙려제가 도입되더라도 이미 도입 방침을 밝힌 정책을 철회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금지 철회’ 사안의 경우 숙려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박 차관은 “(방과후 영어금지 철회의 경우) 이미 정책이 결정된 사안이라 초3부터 하도록 돼 있는 영어 정규과정 내실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효성 있을까>
정책 숙려제가 실제 정책 실행에 얼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반대 여론을 인지하고도 도입을 추진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수능 절대평가 도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수능 개편안을 내놓기 전까지 고교 진로진학교사와 대학 입학처장 의견을 조사한 결과 절대평가 도입은 전체 입시제도를 고려한 종합적 검토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감지되기도 했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 전 과목을 상대평가로 실시하거나, 현행대로 영어와 한국사만 절대평가를 적용하자는 답변이 34%로 나타났다. 절대평가를 전면 도입할 경우 수능전형의 비중이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71%로 가장 많았던 데 더해 수능전형을 현행 비중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4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입학처장을 비롯한 대학 관계자의 의견은 전면 절대평가를 적용할 경우 동점자가 대거 발생해 수능 전형 유지가 곤란하며, 학생부 본고사 심층면접 등 다른 전형요소의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고1 학부모 역시 수능 절대평가 도입 시 정시축소와 수시확대에 대한 거부감이 크며, 공정한 입시, 재도전 기회 등을 위해 절대평가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학부모단체는 기본적으로 절대평가 확대에 찬성하지 않지만 불가피하게 도입한다면 혼란방지 등을 위해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수능절대평가는 수능개선위원회 회의가 총 23차례 진행되는 동안 불과 마지막 7차례의 회의 끝에 개편안에 포함됐다. 절대평가 도입 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상황에서 일부 도입, 전면 도입의 선택지만을 두고 막판 논의를 거쳐 교육부는 개편 시안 1, 2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무늬만 여론 수렴’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수렴된 여론이 정책 결정에 미친 영향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중구난방식으로 쏟아지는 여론을 어떤 식으로 취합해 수렴할 것인지, 여론이 어떤 방향이었고 이를 정책적으로 어떻게 수렴했는지 등을 공개해야 정책수렴제 도입의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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