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특 징검다리 반수 확대 움직임'..'제재 피하기 위한 꼼수'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올해 전국 8개 영재학교에서 이공계가 아닌 의학계열(의대 약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로 진학한 인원이 5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학년 재학인원의 7.1%에 해당하는 규모다. 강득구(더불어민주)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특히 서울과고의 경우 3학년의 19%에 해당하는 24명이 의학계열로 진학한 것으로 드러났다. 5명 중 1명은 의학계열에 진학하고 있는 셈이다. 이어 경기과고 15명(12.2%) 대구과고 8명(9.2%), 세종영재 4명(4.7%), 대전과고 4명(4.5%), 인천영재 2명(2.5%), 광주과고 1명(1%) 순으로 많았다. 

재학생의 의대 진학은 전년 보다 줄었지만 실질적으로 영재학교 출신의 의대 진학자가 줄었을지는 미지수다. 장학금 환수 등 학교 측의 제재를 피해 우선 이공계열로 진학, 이후 반수로 의대에 진학하는 사례 많기 때문이다. 즉 졸업생까지 범위를 넓히면 의학계열 진학 실태가 더욱 심각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교육계 전문가는 “영재학교 과고 재학생 사이에서는 의대 진학을 위해선 학교와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수시보다 졸업 후 학교 통제를 벗어나 N수에 도전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미 수학과 과학에 최상위권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정시로 의대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대입에서 정시 비율이 확대된데다 통합형 수능 이후에는 자연계 학생들이 최상위권 대입에서 더욱 유리해지면서 영재학교 학생들의 반수 도전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영재학교의 주요 진로인 이공계특성화대학이나 서울대 자연계에서는 신입생의 중도이탈이나 반수를 위한 휴학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공특과 서울대가 영재학교와 과고 졸업생들에게 ‘의대로 가는 징검다리’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2024학년 서울대에 입학한 신입생 가운데 개강 첫 주에 휴학계를 신청한 신입생은 119명(5.8%)에 달했다. 이 중 자연계가 91명(76.5%)으로 압도적이다. 농생대에서만 29명이 휴학했고, 공대에서 26명, 첨단융합학부에서 17명이 휴학했다. 수업을 들어보지도 않고 휴학을 택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애초부터 반수를 염두에 두고 등록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정부의 이공계 인재 양성에 빨간 불이 켜진 만큼 영재학교 과고의 의대 진학 문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의학계열에 진학 또는 지원한 영재학교 학생 66명을 대상으로 교육비와 장학금을 모두 환수하긴 했지만, 비용 외에 과학 분야 진로를 희망하는 다른 학생의 교육 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영재학교 측에서 의학계열에 다양한 제제 방안을 가하고 있지만 반수를 통한 의대 진학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도 미미한 형국이다. 강득구 의원은 “데이터를 통해 영재학교의 의학계열 진학 현상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하고, 우리 사회가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과고의 경우 3학년의 19%에 해당하는 24명이 2024학년 의학계열로 진학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서울과고 제공

<2021~2024 영재학교 의학계열 진학 276명.. 서울과고 107명 ‘최다’>
올해도 영재학교에서 의학계열로 진학한 학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24년 2월 졸업생 영재학교별 의약학계열 지원자 및 지원자 현황’에 따르면, 전국 8개 영재학교에서 올해 의학계열로 진학한 학생은 58명에 달했다. 수시로 50명, 정시로 8명이 진학했다. 올해 대입자원인 2023년 고3 재학인원 818명의 7.1%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최근 4년간으로 범위를 넓히면 총 276명이 의학계열에 진학했다. 전국 영재학교 8개교 가운데 한국영재를 제외한 7개교에서 모두 의약계열 진학자가 나왔다. 2021학년 62명, 2022학년 73명, 2023학년 83명으로 계속해서 규모가 증가하다가, 2024학년에는 58명으로 감소했다. 다만 이는 당해연도 이외의 졸업생을 모두 제외한 규모로 N수생을 포함하면 더 늘어날 수 있다. 

학교별로 보면 서울과고의 의학계열 진학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2021학년부터 2024학년까지 4년간 107명이 의학계열에 진학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과고는 매년 영재학교 중 가장 많은 의약 진학자를 배출하는 고교로 꼽힌다. 2021학년 30명(24.4%)에서 2022학년 24명(19.4%)으로 다소 감소하는 분위기였으나, 2023학년 29명(23.8%)로 다시 증가했다. 2024학년에는 24명(19%)으로 감소했으나, 정시를 통한 진학자의 경우 5명에서 6명으로 늘었다. 

경기과고는 4년간 55명의 의학계열 진학자를 배출했다. 2021학년 13명(10.2%), 2022학년 14명(11.1%)으로 서울과고와 함께 매년 의약계열 진학자를 많이 배출하는 수도권 영재학교로 꼽혔지만, 2023학년에는 13명(10.4%)으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다. 다만 2024학년에는 다시 15명(12.2%)로 증가했다. 15명 중 수시 합격자가 14명, 정시 합격자가 1명이다. 

대구과고는 4년간 40명의 진학자를 배출했다. 2021학년 7명(7.5%), 2022학년 10명(10.8%), 2023학년 15명(16.1%)으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2024학년에는 8명(9.2%)로 줄었다. 올해 의학계열 진학자 8명은 모두 수시 합격생이다.

세종영재 대전과고는 각 4명의 진학자를 배출했다. 각 고3 재학생의 4.7%, 4.5%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최근 4년간 총 의학계열 진학인원을 살펴보면 대전과고가 36명으로 대구과고에 이어 많다. 2021학년 6명(6.3%)에서 2022학년 10명(10.8%), 2023학년 16명(18.4%)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올해는 다소 줄었다. 세종영재는 4년간 23명의 진학자를 배출했다. 2021학년 4명(4.4%)에서 2022학년 8명(8.5%)으로 두 배 증가하더니, 2023학년 7명(7.6%) 2024학년 4명(4.7%)으로 다시 감소했다.

인천영재 2021학년엔 단 한 명도 배출하지 않으며 눈길을 끌었으나, 2022학년부터 2024학년까지는 매년 2명의 의학계열 진학자가 나왔다. 4년간 총 6명이 의학계열로 진학한 셈이다. 모두 수시로 진학했다. 광주과고는 전년에 이어 2024학년에도 1명의 진학자가 나왔다. 2021학년 2명, 2022학년 5명까지 4년간 총 9명이 의학계열로 진학했다. 한국영재의 경우 유일하게 최근 4년간 의약계열 진학자가 전무하다.

<2021~2024 의학계열 지원 ‘516명’.. 서울과고 176명 ‘최다’>
의학계열에 지원한 인원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강 위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4학년에는 전국 영재학교 8개교에서 총 110명이 의학계열에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3 재학인원의 13.4%에 해당한다. 2021학년 106명(12.8%), 2022학년 136명(16.4%), 2023학년 164명(20.3%)의 추이로 최근 4년간 총 516명이 의약계열에 지원했다. 

지원자 역시 올해 기준 서울과고가 35명으로 가장 많다. 수시 28명, 정시 7명이 지원했다. 2021학년 45명, 2022학년 42명, 2023학년 54명까지 4년간 총 176명이 의학계열에 지원한 셈이다. 이어 대구과고가 28명으로 많다. 2021학년 18명, 2022학년 30명, 2023학년 43명까지 4년간 지원인원이 총 119명에 달한다. 이어 경기과고가 18명(4년간 94명), 대전과고가 11명(48명), 인천영재가 11명(33명), 세종영재가 5명(31명), 광주과고가 2명(14명)이다. 

<반수 꼼수 확대?.. 이공특 서울대 ‘신입생 자퇴 비상’>
전문가들은 재학생의 의대 진학은 줄었지만 실질적으로 영재학교 출신의 의대 진학자가 줄었을지는 미지수라고 본다. 학교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우선 이공계열로 진학하지만, 곧바로 의대 진학을 겨냥한 반수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의대 제재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의대 진학 실태를 살펴보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서울대 자연계는 신입생의 중도이탈로 현재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경희(국민의힘)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3월8일 기준 신입생 2051명의 5.8%인 119명이 휴학을 신청했고, 이 중 76.5%인 91명이 자연계 신입생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을 다니다가 상황 탓에 휴학을 하는 것이 아닌 수업을 들어보지도 않고 휴학을 택한 것이다. 가장 많은 학생이 휴학한 단과대학은 농생대로 29명이 휴학을 택했다. 이어 공대가 26명으로 20명 이상이다. 이어 첨단융합학부 사대 각 17명, 생활대 자연대 각 7명, 약대 자전 각 4명, 인문대 사과대 경영대 각 2명, 수의대 음대 각 1명 순이다. 

이공특 역시 신입생의 자퇴로 비상이 걸렸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KAIST 포스텍 UNIST GIST 등 이공특 4개교에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중도이탈한 학생 수가 1181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별로 KAIST에서 500명, UNIST에서 310명, 포스텍에서 198명, GIST에서 173명이 중도포기했다. 재적학생 대비 비율로 보면 10%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 중 신입생의 중도이탈이 많았다. 전체 중도포기인원 1181명 가운데 신입생이 405명으로 30%를 넘겼다. KAIST의 신입생 중도포기인원은 200명, UNIST는 130명, 포스텍은 67명, GIST는 8명이었다. 올해는 신입생의 이탈 속도가 더 빠르다. 3월11일 기준 GIST 재학생 중 28명이 자퇴했고, 포스텍에서도 신입생 2명이 학교를 그만두는 등 학생 4명이 중도포기한 것으로 보도됐다.

<영재학교 측 제재로는 한계.. ‘대입 개편으로 해결해야’>
결국 영재학교의 진학 제재로는 의대 진학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현재 영재학교에서는 의학계열 진학자 또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교육비와 장학금을 전액 환수하고 있긴 하지만, 졸업 후 재수를 통해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별도 제재를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꼼수를 이용해 대학에 진학 후 반수하는 사례가 많아지면 결국 영재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피해가 확대되는 셈이다. 

영재학교 8개교는 매년 모집요강을 통해 의약계열 진학 제재 방안을 명시하고 있다. 영재학교 입학 전형 응시를 희망하는 지원자 및 보호자는 입학 원서에 명시된 제재 방안에 서약해야 원서접수가 가능하다. 이공계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과학영재학교 특성상 의약계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에겐 불이익을 부여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공개된 제재 방안으로는 진로 및 진학지도 미실시, 교육비 및 장학금 환수, 정규 수업 시간 외 기숙사 및 독서실 이용 제한 등이다. 한국영재는 의약계열에 지원할 시 징계와 졸업유예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추가로 영재학교에서 운영되는 연구활동 등의 교육과정이 표기되지 않는 학생부Ⅱ를 제공한다. 교과학습발달상황에서도 학점으로 표기되지 않고, 석차등급 등으로 표기된다. 

다만 이미 선행되고 있던 제재 방안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기숙사 및 독서실 사용 금지, 일반고 전출 등의 방안은 재학생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고등 교육과정과 상이한 영재학교 교육 특성상 영재학교 출신 학생들은 대부분 재수를 통해 의대 진학을 꾀하기 때문이다. 학생부 역시 영재학교의 경우 교과편제가 독특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블라인드의 효과도 미미하다. 

결국 고교의 해결 방안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선발 주체인 의약 대학이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실효성 높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한 영재학교 관계자 역시 “선발 주체인 의대의 해결 의지와 학부모, 수험생의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며 의대 진학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경우 처음부터 영재학교로 진학하지 않았어야 한다. 의대 준비는 국비 지원이 따로 없는 자사고 외고 일반고 등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굳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공계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교육하는 영재학교에서 의대 준비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상황”이라며 “수험생과 학부모 또한 영재학교의 의대 진학자들이 과학에 확고한 뜻이 있는 인재들의 교육 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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