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일곱 번째 출제 오류.. 강태중 평가원장 사퇴

[베리타스알파=권수진 기자] 2022수능의 생명과학Ⅱ 20번 문제가 출제오류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생Ⅱ 응시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결정 취소 소송에서 15일 원고 승소 판결하며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평가원의 정답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역대 수능에서 출제오류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일곱 번째다. 가장 최근 발생했던 출제오류는 2017수능으로, 5년 만에 다시 출제오류가 발생하게 됐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평가원은 생Ⅱ 20번 문제를 모두 정답 처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의약계열을 포함한 자연계열 최상위권 입시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과목에 비해 1~2등급 점수 간격이 작아 등급 변동의 가능성도 그만큼 클 것으로 예상된다. 수능최저 충족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정시 역시 생Ⅱ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1점 정도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생Ⅱ 응시자 전반적으로 표점 하락을 겪어 다른 과목을 응시한 수험생보다 불리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부는 문제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제에서 제시한 조건을 사용해 동물집단의 개체 수를 계산할 경우 특정 유전자형의 개체 수가 음수로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생명과학의 원리상 동물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일 수는 없으므로, 이 사건 문제에는 주어진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집단Ⅰ, Ⅱ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봤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출제오류의 책임을 지고 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평가원 측은 항소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동영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장은 “대입 일정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이 소송으로 인해 예정된 일정에 지체가 일어나고 있어서 수능을 책임지고 있는 평가원의 입장에서 더 이상 학생들이나 수험생, 학부모에게 피해를 드리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항소는 고민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 차원에서의 사과 표명은 아직 없는 상태다. 평가원장의 사퇴만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2004수능에서는 국어 출제오류가 발생했을 당시 평가원장이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교육부총리가 사퇴한 사례도 있다. 교육당국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출제오류 사안을 차치하더라도 2022수능은 첫 통합형 수능의 구조적인 한계로 인한 문이과 유불리 문제의 대책이 없었던 점, 난이도 조절 실패로 역대급 불수능이었던 상황에서 출제오류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수험생들은 ‘사상 초유의 수능’을 경험한 세대로 남게 됐다.

2022수능 과탐 생명과학Ⅱ 20번 문제가 출제오류로 결론지어지면서 모두 정답 처리될 예정이다. /사진=광주교육청 제공
2022수능 과탐 생명과학Ⅱ 20번 문제가 출제오류로 결론지어지면서 모두 정답 처리될 예정이다. /사진=광주교육청 제공

<자연계열 수학 고득점자 급등.. 과탐 변별력 더 커져>
자연계열이 수학 상위권에 다수 포진하면서 올해는 자연계열 최상위권에서 수학보다는 상대적으로 과탐의 변별력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학에서는 고득점자가 급등하면서 그만큼 비슷한 점수대 인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수학에서 자연계열(이과) 수학 과목의 고득점자가 지난해보다 급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만점자는 지난해 수(가) 971명이었던 데서 올해 미적분/기하 2702명으로 늘었다. 종로학원의 분석에 의하면 수학에서 1등급 전체 1만8031명 중 미적분/기하 응시자가 88.8%(1만6012명)로 추정돼, 최상위권을 자연계열이 ‘싹쓸이’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지난해 수(가) 1등급 7066명과 비교해 8946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수학 2등급 역시 자연계열 학생이 83.2%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생Ⅱ 선택 학생들은 의대를 비롯, 자연계열 최상위권 지원자인 경우가 많다. 과탐Ⅰ+과탐Ⅱ 조합으로 반드시 응시해야 하는 대학인 서울대 KAIST UNIST, 필수 응시가 아니더라도 한양대, 단국대 의예/치의예/약학, 지스트, DGIST 등은 가산점을 부여한다. 과탐 중에서도 생Ⅱ를 특정해 가산점을 주는 곳으로는 가톨릭관동대 의예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Ⅱ 출제오류 논란이 미치는 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모두 정답 처리하면서 평균점수가 상승해 정답을 맞혔던 학생들은 표점이 하락하고, 등급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며 “반면 틀렸던 학생들은 표점이 상승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2점 배점인 20번을 모두 정답으로 처리했을 때, 기존 오답 처리됐던 75.4% 학생들이 정답 처리되면서 평균 1.5점의 상승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수능최저 충족여부부터 문제다. 표점 기준, 생Ⅱ의 1등급컷은 65점, 2등급컷은 63점으로 점수 차가 불과 2점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과목에서는 1~2등급 점수 차가 3~4점으로 간격이 더 넓은 편인 것과 비교해 등급 변동의 가능성이 더 큰 셈이다. 더군다나 생Ⅱ 응시생이 수능최저가 1등급에 가까운 의약학계열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등급변동이 미치게 될 영향은 크다. 임 대표는 “원점수 기준 45점(추정1등급컷) 42점(추정2등급컷) 39점(추정3등급컷) 언저리 학생 모두 정답처리 시 수능최저에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들어온다. 등급변화에 희비가 교차할 것”이라고 봤다. 1등급컷에 걸쳐 있는 수험생은 172명, 2등급컷에 걸쳐 있는 수험생은 400명이다.

정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생Ⅱ 표점이 1점 정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다른 과탐을 선택한 학생들에 비해 정시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고를 이틀 앞당겼지만 연기된 수시 일정은 변동이 없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정시 원서접수 시작 전날까지 수시이월인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시전략을 짜야 한다. 수시 미등록 충원 등록 마감일이 29일, 정시 원서접수 시작일이 30일이기 때문이다. 수시이월인원은 29일 등록이 마감된 이후 저녁에야 나올 수 있다. 임 대표는 “통합형 수능의 변수, 자연계열에서 인문계열로의 교차지원, 수시 이월인원 파악 지연 등으로 치열한 눈치작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역대 9건 출제오류 중 ‘5건 과탐’>
역대 수능에서 출제오류로 판정된 것은 수능 횟수로 일곱 번째, 건수로는 총 9건이다. 2015수능과 2017수능에서는 각 2개영역에서 출제오류가 발생했다. 9건 가운데 과탐에서 발생한 경우는 올해 사례를 포함하면 총 5건이다. 2008수능 물리Ⅱ 11번(복수 정답), 2010수능 지구과학Ⅰ 19번(복수 정답), 2015수능 생명과학Ⅱ 8번(복수 정답), 2017수능 물리Ⅱ 9번(모두 정답)이다.

과탐에서 유독 수능 출제오류 문제가 집중된 양상이다. 임 대표는 “문제 검수 및 문제 오류 제기 시 작동하는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과탐 영역이 전문적인 분야로서 문제 제기 시 적극적인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고, 해결 시스템이 폐쇄적인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며 “전문가/전문집단으로부터의 공론화와, 적극적 의견 개진 과정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탐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는 국어(언어) 세계지리 영어(외국어) 한국사 등에서 발생했다. 2004수능 언어 17번(복수 정답), 2014수능 세계지리 8번(모두 정답), 2015수능 외국어 25번(복수 정답), 2017수능 한국사 14번(복수 정답)이다.

출제오류는 평가원의 공신력에 타격을 주는 중대한 사안이다. 2022수능의 경우 해당 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을 검토했을 당시 문제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까지는 인정했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출제오류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은 탓에 비난을 더 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랴부랴 대책 마련한 평가원.. 대학에 부담 전가, 이의신청 검토 공정성 논란까지>
평가원은 출제오류를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소송전까지 이어지게 해 대입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생Ⅱ 20번이 논란이 된 것은 수능이 치러진 직후부터다. 이의신청 동안 160건이 접수됐지만 평가원은 ‘출제오류 없음’으로 결론내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결국 생Ⅱ 응시자 92명은 평가원을 상대로 생Ⅱ 20번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과 정답결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하며 소송전으로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평가원은 소송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도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마련해두지 않아 비난을 더 키웠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기 이전에 진행된 채점결과 브리핑에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생Ⅱ 성적처리는 어떻게 되는지, 타 과목 성적표 배부와 대입 일정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강태중 평가원장은 “예단하지 않고 있고, 시뮬레이션을 하지도 않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결국 9일 가처분 신청이 인용됨에 따라 생Ⅱ를 응시한 6515명의 성적표에서 생Ⅱ 점수는 공란인 채 배부하기로 10일 결정됐다.

별다른 대책이 없었던 교육부는 17일 본안 소송 결론이 나면 다음날인 18일 곧바로 수시 최초합격자를 발표하는 일정으로 대학에 일방적으로 통보해 혼란의 뒷수습을 대학에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대학 입학 관계자는 “수시 합격자 발표일이 적어도 20일~21일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 18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날짜가 정해졌기 때문에 최대한 일정에 맞춰 쥐어짜야 하는 형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들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난색을 표하자 교육부는 기존 정답으로 처리된 성적표와 전원 정답 처리한 성적표, 두 가지 버전을 대학에 먼저 제공하기로 했다. 두 가지 성적표를 기반으로 합격자 명단을 두 가지 마련해두고, 최종 정답 결정이 나오면 한 가지 안으로 결정해 발표하라는 것이다.

이후 법원의 선고가 15일로 당겨져 평가원의 최종 성적 발표 역시 15일 오후6시로 당겨서 이뤄지면서 대학은 추가적인 시간을 벌게 됐다. 수시 최초 합격자 발표 마감일은 앞서 변동된 날짜인 18일 그대로다. 합격자 등록, 미등록 충원, 충원 등록 마감일 역시 하루 연기한 일정을 유지한다.

생Ⅱ 20번 문제의 이의신청 검토 과정에서 평가원이 평가원 간부가 소속된 학회에 자문을 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평가원은 결론을 내놓으면서 “관련 분야 학회들과 다수의 외부 전문가들에게 자문 의견을 구했다”고 말하면서도 해당 학회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뒤늦게 해당 학회가 한국과학교육학회 한국생물교육학회 한국유전학회의 세 곳인 것으로 밝혀졌다.

자문을 구한 세 곳의 학회 중 ‘이상 없음’ 판단을 내린 두 곳의 교육학회에 공교롭게 평가원 간부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교육학회에는 평가원 수능본부장 A씨가, 한국생물교육학회에는 평가원 수능출제연구실 소속 B씨가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곳의 학회는 문제에 이상이 없고 기존 정답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국유전학회는 출제에 오류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기존 정답 유지 처리와 전원 정답 처리 중 하나를 제시하지 않고,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의견 없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평가원은 전문가 수가 적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겹친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공정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한 상황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향후 이의신청 검토 과정에서 어떤 학회에 어떤 내용을 자문을 받았는지 보다 명확히 밝히도록 하는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평가원 측은 “(이의신청 검토) 제도 전반적인 부분을 재점검해서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없앨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대해 종합적으로 점검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최악의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 통합형 수능 문이과 유불리>
이번 출제오류 논란이 없었더라도, 2022수능은 첫 통합형 수능의 구조적인 문이과 유불리 문제의 대책이 없었던 데다, 난이도 조절 실패로 역대급 불수능이었던 상황이다. 출제오류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평가다.

- 역대급 불수능.. 만점자/표점 만점 모두 역대급
뚜껑을 열어본 결과 2022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 맞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위수민 출제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쉽게 출제했는데 수험생들이 어렵다는 반응이라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수능이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두 차례의 모평을 치르고도 수험생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명백한 난이도 조정 실패였던 셈이다.

‘코로나 2년’을 보내며 오랜 기간 정상적인 학교 수업이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수능 출제에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해 달라지는 수험생의 특성을 미리 파악하고 추후 치를 수능 난이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지닌 6월/9월모평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수능 당일 브리핑에서도 평가원은 “앞선 두 차례의 모평을 통해 수험생 특성을 파악한 결과, 학력 양극화와 관련된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아 모평 출제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출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 와서 학력저하 문제를 알게 된 양 핑계로 삼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올해 수능이 역대급으로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표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것은 만점자 수다. 올해 수능 만점자는 단 한 명. 2012수능 이후 10년간 최저치다. 2012수능은 평가원이 ‘전년에 비해 쉽게 출제하겠다’고 공언하며 30명의 만점자를 배출한 ‘쉬운 수능’으로 평가된다. 이후 만점자는 2013수능 6명, 2014수능 33명, 2015수능 29명, 2016수능 16명, 2017수능 3명, 2018수능 15명, 2019수능 9명, 2020수능 15명, 2021수능 6명이다.

첫 수능이 시행된 1994수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94~1998수능에선 만점자가 한 명도 없었다. 1999~2000수능에서 2년 연속 1명의 만점자가 배출됐다. 그러다 역대급 ‘물수능’으로 불리는 2001수능에서는 66명의 만점자가 배출됐다.

이후 2002~2007수능은 또다시 만점자가 한 명도 배출되지 않는 기간이었다. 등급제가 시행되면서 성적표를 통해 만점자 확인이 불가능했던 2008수능을 제외하고 2009수능에서 만점자가 1명 나왔고 2010~2011수능에서는 만점자가 없었다.

국어 수학 표점 최고점으로 비교해도 어려웠던 시험이긴 마찬가지다. 올해 수능에서 표점 최고점은 국어 149점, 수학 147점이다. 국어에서 기록한 149점은 현 수능체제가 도입된 2005수능 이후 두 번째로 높은 표점 최고점이다. 표점이 가장 높았던 2019수능의 150점과 단 1점 차이다. 수학의 147점은 수(가)형을 기준으로 봤을 때 2005수능 이후 세 번째로 높다. 2009수능 154점, 2011수능 153점 다음이다.

평가원은 선택과목별로 표점 최고점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성적표 배부가 끝난 상황에서 영역별 만점자의 표점을 조사한 결과 수학에서는 미적분/기하 만점자가 147점, 확률과통계 만점자가 144점으로 3점 차이가 났다. 국어에서는 언어와매체 만점자가 149점, 화법과작문 만점자가 147점으로 2점 차다.

심지어 절대평가인 영어조차 어려웠다. 1등급 비율은 6.25%로 지난해 12.66%과 비교해 ‘반토막’ 난 수준이다. 올해부터 영어의 EBS 연계가 100% 간접연계로 바뀌면서 6월/9월모평에서부터 수험생들이 전년보다 어려웠다고 평가해왔다. 실제로 모평에서의 1등급 비율도 6월 5.51%, 9월 4.87%였다. 간접연계의 위력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얘기다. 간접연계는 EBS 연계 교재의 지문과 주제/소재/요지가 유사한 지문을 다른 책에서 발췌해 출제하는 것을 말한다. 간접연계 문항 수가 늘어날수록 실제 수험생들의 연계 체감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올해 수능에서 간접연계로 인한 난이도 급상승을 경험한 수험생들은 학원이나 고액과외 등 사교육을 찾게 될 가능성도 커졌다.

- 알면서 무시한 ‘통합형 수능’ 구조적 문제
이미 통합형 수능의 구조적인 문제가 예견된 상황에서 맞이한 ‘인재’라는 지적도 더해진다. 통합형 수능의 구조적 문제는 수능 개편안이 발표된 2018년부터 지적됐다. 앞서 먼저 선택과목제로 운영하고 있던 사탐/과탐 역시 유불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바뀐 수능 체제로 실시한 올해 3월학평에서부터 우려는 현실화됐다. 수학 선택과목의 유불리 문제로 인해 올해 인문계열에서 수시 수능최저를 충족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우려는 수능 전까지 이어진 나머지 다섯 차례의 모평/학평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다. 단순히 통합형 수능 첫 모의고사의 ‘시행착오’가 아니라, 통합형 수능이 가진 구조적 문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원은 점수조정 방식을 통해 선택과목별 유불리를 완화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조정 방식에 의하면 두 수험생의 공통과목 원점수와 선택과목 원점수를 합한 원점수 총점이 동일한 경우이더라도, 두 수험생의 선택과목이 다르다면 각 선택과목에 응시한 수험생 집단의 공통과목 원점수 평균과 표준편차가 다르거나, 선택과목 원점수 평균과 표준편차가 다를 경우 최종 표점이 다르게 산출될 수 있다.

이 같은 조정 시스템 자체는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지만, 문제는 선택과목에 따른 문이과 분리에 있다. 올해 수능이 2015개정교육과정의 취지에 따라 문이과 통합형 체제로 치르게 됐음에도, 사실상 문이과 구분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주요 대학 자연계열에 지원하려면 수학에서 미적분 또는 기하를 응시해야 해서다.

결국 수학에서 자연계열 학생들은 미적분/기하를, 인문계열 학생들은 확률과통계를 응시하는 것으로 양분된다. 자연계 모집단위를 응시하기 위해 자연계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미적분을 선택하고 이들의 공통과목 점수가 높게 나오면서 미적분 조정 점수가 올라가고, 결국 미적분 선택자들의 표준점수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반대로 확률과통계를 선택한 학생들의 공통과목 점수는 낮게 나오기 때문에 확률과통계 점수가 미적분 학생과 동일하더라도 조정 점수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수(가)와 (나)로 성적을 따로 산출하던 지난해 수능 체제에서는 수학에 자신 있는 자연계열 수(가) 학생들이 수(나)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등급을 잘 받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끼리 경쟁할 뿐만 아니라, 응시자 수도 수(나)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2021수능에서 수학 응시자 40만6912명 중 수(가) 응시자는 13만9429명으로 34.3%, 수(나) 응시자는 26만7483명으로 65.7%를 차지했다. 수(나) 응시자가 두 배 가까이 많았던 셈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수(나) 응시자들은 상위등급을 받기가 수(가) 학생들에 비해서는 쉬운 구조였다. 상위대학 수능최저에서 인문의 등급합 기준을 자연보다 높게 설정한 경우가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통합형 수능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반대가 됐다. 인문계열 학생들이 상위 등급을 받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수(나)에서는 소위 ‘깔아주는’ 하위권 학생들이 많이 있었고, 수(나)끼리만 경쟁하기 때문에 1,2등급을 받는 것이 수(가)에 비해서는 쉬운 구조였다. 하지만 올해는 인문계열 학생들이 자연계열 학생과 같이 경쟁하기 때문에 1,2등급을 받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대학이 수능최저를 조정하기만을 기대하며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의 평가원장은 유불리 이슈에 대해 각 대학이 올해 수시요강을 확정하기 직전인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들이 수시모집에서 작년까지 하던 대로 수능최저를 설정할 경우 그렇게 된다”는 것이라며 “대학이 수능최저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교협은 통합형 수능에 따른 수능최저 완화는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코로나19 영향에 의한 변동사항만을 인정했다. 결국 지난해 수능을 잣대로 만든 수능최저가 올해 입시에서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평가원은 수능에서 공통과목의 난이도를 올리고 선택과목을 평이하게 출제하는 것으로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소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수능에서도 세부통계 미공개 방침.. ‘깜깜이 입시’ 강요
문이과 유불리 문제가 계속해서 지적되는 상황에서도 평가원은 선택과목별 세부통계를 공개하지 않는 고집을 수능에서까지 유지했다. 앞서 모평에서도 관련 통계를 공개하지 않아 수험생들은 실제 수능에서의 자신의 점수를 예측하고 지원 전략 수립에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인문계열은 수능최저 충족에 대한 우려에 더해 정시에서 자연계열 학생의 인문계 모집단위 교차지원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될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시에선 모집단위별로 나뉘어 경쟁하기 때문에 각 계열로 지원할 경우 문이과 유불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자연계열이 인문계열로 지원하게 될 경우 유리한 표점으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약대 학부전환, 4차산업 관련 학과 신설 등의 이슈가 겹치면서 자연계열 역시 혼돈의 입시를 치르게 된 것은 마찬가지다. 한 교육전문가는 “의대는 단계적 전환이 이뤄지면서 수요자들은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상합격선 형성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약대는 사정이 다르다. 올해 37개교 모두 일괄전환이 이뤄지면서 참고할 만한 입결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기존 의학계열인 ‘의치한수’에 약대가 어디에 위치할지도 가늠할 수 없다”며 “이공계열을 중심으로 신설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 관련 모집단위 역시 마찬가지다. 예상합격선을 바탕으로 수립하는 지원전략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법원 “평가원 정답 결정 취소해야”>
재판부는 15일 평가원의 정답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을 통해 “소송을 낸 수험생들은 평가원이 의도한 풀이방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논리성/합리성을 가진 풀이방법을 수립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 자체의 오류로 인해 정답을 선택할 수 없게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험생들에게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 사건 문제에 명시된 조건의 일부를 무시하거나, 생명과학 원리를 무시한 채 답항을 고르라는 것과 다름없어 부당하다”고 말했다.

향후 수험생들의 문제 풀이에 미칠 영향도 우려했다. “정답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수험생들이 앞으로 과학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출제자의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수능을 준비하며 사고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출제자가 의도한 특정 풀이방법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계에서는 예상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생Ⅱ 20번 문제를 두고 다수의 교육 전문가들은 제시문에 나온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문제에서 개체 수가 음수로 나오는 오류가 있었다고 설명해왔다. 유전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조너선 프리차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까지 오류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고, 이보다 앞서 김종일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 겸 의대 교수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문항이 100% 오류가 맞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육계 전반에서 해당 문항을 오류라고 본 이유는 주어진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로학원 김연섭 과학팀장은 “제시문 내용에서 집단 Ⅰ이 멘델 집단이라고 가정하면, 마지막 조건 ‘Ⅰ과 Ⅱ 각각에서 B의 빈도는 B의 빈도보다 크다’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은 기각된다. 따라서 집단 Ⅱ가 멘델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집단 Ⅰ의 개체 수를 구해보면 유전자형이 B*B*인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모순이 된다. 결국 문제의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책임을 지고 평가원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두고 교육당국인 교육부가 별다른 사과 표명 없이 평가원에만 떠넘긴 듯한 모양새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4수능에서는 국어 출제오류가 발생했을 당시 평가원장이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사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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