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쏠림 사교육 확대의 현실적 대안’

 

[베리타스알파=조혜연 기자] 문재인 정부가 특목자사 폐지와 함께 남겨둔 ‘농어촌 자율학교 전국단위 모집 특례 폐지’ 정책이 유지되면서 일반고 롤 모델로 성장해온 지방 고교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문 정부의 ‘대못’이었던 자사고 외고 등에 대해서는 현 정부가 나서 “존치” 입장을 밝히며 분위기가 전환됐지만, 막상 농어촌 자율학교는 언급조차 없는 상태. 지난해 8월 농어촌 자율학교 교장들이 모여 타 지역 학생을 계속해서 뽑을 수 있도록 지침을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으나, 아직까지도 교육부의 입장은 유보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최근 통합수능의 문이과 유불리가 심화되는 데다 정부가 정시 확대 기조도 꺾지 않으면서 사교육 열풍이 거세진 상황이다. 여기에 공교육의 롤 모델로 꼽히는 농어촌 자율학교의 선발권마저 축소시킨다면 수요자에게 대입을 위해선 강남 8학군이나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강력한 사인을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교육비를 절감시킬 실효성 있는 대책을 고안하고자 한다면 농어촌 자율학교의 선발권은 원상복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자율학교 전국단위 선발 특례 폐지’에 대한 이슈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농어촌 자율학교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강원외고가 당초 예상했던 전국단위가 아닌 광역단위로 선발범위가 좁혀지면서부터다. 강원외고 관계자는 “현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2025학년부터 자율학교의 전국단위 모집 특례를 폐지한다고 명시돼 있어서 교육부가 전국단위 선발 체제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며 강원도 내 광역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교육 현장에서는 농어촌 자율학교의 모집범위를 제한하는 건 ‘시대착오적’ 방침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현재 지방을 중심으로 학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자율학교의 모집범위를 전국단위로 적극적으로 확대해 수도권에 쏠린 인재를 지방으로 유입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자율학교의 전국단위 선발권은 2000년대 초반 학생 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 고교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 아래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부여했던 특례다. 이전에 비해 학생 충원은 더욱 힘들어졌는데 학생의 선발권은 오히려 축소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다.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애초 농어촌 학교 살리기 차원에서 특례를 적용했는데 이를 특권이라며 폐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대도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된 상황에서 일반고의 모집범위까지 무조건적으로 제한한다면 농어촌이나 소도시 학교들은 폐교를 피할 수 없다”며 자율학교의 전국단위 모집권한 유지의 당위를 강조했다.

더군다나 농어촌 자율학교로의 유입은 사상 최대 사교육비를 기록하며 뜨거워진 수도권의 사교육 열기를 공교육으로 이전시킬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농어촌 자율학교의 최대 강점은 전교생 기숙사 체제를 바탕으로 한 완벽한 공교육 시스템이다. 자율학교는 외부 활동에 제한을 받는 만큼 정규수업 시간은 물론, 방과 후 시간까지 학생의 하루 24시간을 관리하면서 물 샐 틈 없는 탄탄한 공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대입실적도 뛰어나다. 가장 최근인 2023대입에서 서울대 등록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전국 고교 톱50 중 서울 경기를 제외한 비수도권 일반고는 농어촌 자율학교인 공주사대부고와 한일고 두 곳밖에 없다. 일반고의 저렴한 학비로 우수한 진학 성과를 냈다는 점은 수월성 교육을 위해 값비싼 사교육을 고려했던 교육 수요자의 눈을 돌릴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농어촌 자율학교의 선발범위를 광역단위로 제한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최근 ‘자율학교 전국단위 선발 특례 폐지’에 대한 이슈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진=남해해성고 제공
농어촌 자율학교의 선발범위를 광역단위로 제한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최근 ‘자율학교 전국단위 선발 특례 폐지’에 대한 이슈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진=남해해성고 제공

<‘폐교 위기 극복한 공교육 롤 모델’ 농어촌 자율학교.. ‘지역 교육 살리는 씨앗’>
전국단위 선발권을 지닌 농어촌 자율학교는 농어촌 학교의 교육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정된 고교유형으로 설립취지가 뚜렷하다. 농어촌 자율학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2003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촌 고교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2년부터 읍면에 있는 고교를 자율학교로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존폐 위기에 놓인 농어촌 고교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 아래 자율학교를 지정하고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권과 선발권을 부여했다. 지역 내 학생 수가 적어 폐교 위기인 학교들을 대상으로 지역민들의 ‘내 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의 일환이자 외부 우수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측면도 적지 않다. “전국 명성을 가진 농어촌 자율학교인 한일고 공주사대부고 남해해성고 등도 전국단위 선발권이 없다면 학생 충원이 어려운 학교들”이라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평준화 체제에선 교통 여건이 좋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져 비선호 학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농어촌 학교의 열악한 교육여건을 개선해 교육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취지로 설립된 셈이다.

실제로 매년 우수한 대입실적으로 주목받는 남해해성고는 전국단위 자율학교로 지정되면서 폐교 위기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 초반 전교생 수가 150명을 밑돌면서 줄어만 가는 남해 지역 학생들로는 정원을 채우기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장 학교 운영을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던 상황이었지만 자율학교 지정은 지역적 불리함에 허덕여야 했던 남해해성고가 현재의 ‘명문고’가 될 기틀을 마련하게 된 계기였다. 외부에서 학생들을 끌어들이며 폐교 위기에서 벗어난 남해해성고는 현재 전교생 기숙, 교과/비교과 정규(자율) 동아리 활성화,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과 야간 수월성 수업 등 특화된 교육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가장 최근인 2023학년 대입에서는 한 해 졸업생 90명가량의 10%에 달하는 9명이 서울대에 등록하며 지역 명문고로 자리했다는 평가다.  

농어촌 자율학교는 초중고 과정 모두에서 지정될 수 있고 자사고처럼 교장임용 교육과정운영 교과서사용 학생선발 등에 있어 자율성을 갖는다. 다만 자사고와 달리 일반고 학비가 적용돼 저렴한 비용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다. 대부분 기숙사 체제로 운영한다. 자율학교 지정으로 기숙사를 운영하며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흡수하고 뛰어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험하는 교사들의 노력은 공교육에서도 뛰어난 교육이 가능하다는 ‘롤 모델’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2025년 전국모집 자율학교 광역 전환?.. 자율학교‘만’ 빠진 고교개편 방향>
농어촌 자율학교의 위기는 문재인 정부가 2025년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발표 당시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자사고와 일반고의 모집범위도 모두 축소한다고 밝히면서 찾아왔다. 자사고와 함께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일반고 49개교의 학생모집 범위를 일반고와 동일한 광역단위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학생 선발권도 박탈된다. 이들 학교는 전국단위 자사고와 마찬가지로 전국의 학생들이 지원 가능한 구조이지만, 2025년 3월부터는 지역에 따라 일반고의 배정 및 선발방식을 따르게 된다. 올해 지원 대상인 2024신입생의 경우 정책 기조가 계속해서 이어지더라도 전국단위 선발 대상에 해당된다. 당시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와 특목고를 폐지해도 농어촌 자율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유지하면 또다른 형태의 고교서열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모집 특례를 폐지하려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는 ‘공교육 롤 모델’로 평가받는 농어촌 자율학교도 해당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져 당시 교육계에서는 거센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언제는 공교육 롤 모델이라고 치켜세워주더니, 마치 고교서열화를 유발하는 주체로 지목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현장에선 대부분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에 자리해 학생모집이 어려운 일반고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비판했다.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일반고들은 대부분 지방의 외진 곳에 자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광역모집으로 일괄 변경된다면 학생모집 자체가 불가능해져 학교의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광역단위 자사고도 잇따른 미달로 학생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인데, 농어촌 자율학교 선발권을 광역으로 축소한다면 농어촌 학교 고사로 이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예측했다.

실제 전국모집 자율학교들이 지역전형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전국모집을 실시하는 것만으로 고교서열화를 유발한다는 교육부의 주장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해 모집요강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자율학교 대표주자’ 한일고는 신입생 125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인 63명을 충남 출신 학생들로 선발한다. 나머지 절반 62명만을 전국단위로 모집하는 상황이다. 공주사대부고의 경우에도 전국모집인원과 지역선발인원을 각 75명으로 동일하게 두고 있다. 전국단위 모집을 시행하더라도 각 지역학생을 이미 충실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억울한 점은 현재 농어촌 자율학교의 경우‘만’ 불안한 입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2025 일반고 전환이 결정된 자사고와 외고 등 특목자사에 대해서는 현 정부가 나서 “존치하겠다”고 밝히며 분위기가 전환됐지만, 농어촌 자율학교의 경우 언급조차 없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자사고의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소외지역에 있어 일명 돈 없는 자율학교나 농어촌 학교에 대한 대책은 나오지 않아 여전히 좌불안석인 상황”이라며 “대도시 지역에 인구가 집중된 상황에서 일반고의 모집범위까지 무조건적으로 제한한다면 우수성을 입증한 지방의 자율학교들의 교육의 질 하락이 우려된다. 지난 문 정부처럼 정책적으로 회생 자체를 막아 소멸이 뻔한 결과로 몰아가는 과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수요자 학교선택권 제한.. ‘사교육 확대’ 기폭제 되나>
선발권이 광역단위로 좁혀지면 거주지에 없는 학교는 원서조차 접수하지 못하게 된다. 우수한 학생들이 지역 곳곳의 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면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좋은 서울 학생들과 지역 학생들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자사고 폐지 논란 당시 강남 8학군 부활을 우려한 배경이다. 선발권을 가진 학교들이 공교육에 미친 영향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자칫 선발권을 건드릴 경우 공교육 롤 모델을 말살시키고 위축되는 사교육을 키우자는 논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방의 우수 자율학교가 수도권 인구 집중현상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양질의 교육환경을 농산어촌에서 제공하면서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인근 지역의 고교로 우수 교육 시스템과 진학 노하우를 공유하며 ‘지역 교육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농어촌 자율학교 대부분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에 위치해 기숙사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기숙사 체제에 교사들의 열의가 더해지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학교가 관리, 사실상 사교육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공교육 모델을 만들어왔다. 서울대나 의약계열 진학실적으로 입증된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은 굳이 사교육을 찾을 이유를 사라지게 만든다. 사교육보다 뛰어난 교사진과 다양한 특별/체험 활동 등으로 다방면의 학생 잠재력을 키우는 학종시대를 맞아 공교육에 다양한 역할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서열화라는 논리의 접근은 공교육에 다양한 역할모델을 제시해온 학교들을 없앰으로써 공교육을 위축시키고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사교육을 살리는 결과를 빚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 공교육의 힘을 앗아가는 정책은 결국 8학군으로 우수학생을 모으고 사교육을 살리자는 주장을 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본 기사는 교육신문 베리타스알파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일부 게재 시 출처를 밝히거나 링크를 달아주시고 사진 도표 기사전문 게재 시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저작권자 © 베리타스알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