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희생과 가난이겨낸 절박한 노력’.. 뜨거운 응원 쏟아져

[베리타스알파=손수람 기자] ‘가난’을 딛고 지난해 연세대 의대에 합격한 한 학생의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일 페이스북 익명 소통 게시판인 ‘연세대 대나무숲’에는 자신을 의대생으로 밝힌 A씨의 글이 올라왔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 아웃백에 갔다”며 시작된 A씨의 글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의대에 합격하기까지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A씨는 5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사고로 잃었다. 빠듯했던 집안 살림 때문에 시작한 어머니는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도중 교통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노가다꾼’으로 불리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A씨와 8살이었던 언니를 길러야 하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엄마가 죽고 난 후 아빠는 8살배기, 5살배기 딸 둘을 혼자 키웠다. 우리를 없게 키우지 않기 위해 아빠는 피눈물을 흘렀지만, 애석하게도 아빠의 피눈물의 대가는 크지 않았다. 그냥 나와 내 언니와 아빠, 세 식구가 죽지 않고 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가난’을 딛고 지난해 연세대 의대에 합격한 한 학생의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일 페이스북 익명 소통 게시판인 ‘연세대 대나무숲’에는 자신을 의대생으로 밝힌 A씨의 글이 올라왔다. /사진=연세대 대나무숲 페이지 캡쳐
‘가난’을 딛고 지난해 연세대 의대에 합격한 한 학생의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일 페이스북 익명 소통 게시판인 ‘연세대 대나무숲’에는 자신을 의대생으로 밝힌 A씨의 글이 올라왔다. /사진=연세대 대나무숲 페이지 캡쳐

가난은 A씨 가족의 현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너무나도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공주같은 구두를 신고, 누군가가 잔뜩 신경 써 준 머리를 하고 등교했던”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A씨는 자신의 처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A씨의 언니는 대학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해 상고를 다녔다. 꿈을 꿀 형편이 아니었던 만큼 A씨 역시 언니와 마찬가지로 취업을 먼저 생각했다.

그럼에도 A씨는 학교수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다니며 전교 1등의 성적도 거뒀다. A씨는 “내 재능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현실로 다가온 첫번째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에도 A씨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었다. 첫 시험에서도 전교 2등을 차지했다. 사교육의 도움 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낸 성과였던 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그렇지만 곧바로 고비가 찾아왔다. A씨의 아버지가 건설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A씨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A씨는 “나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나 하나 일을 안 한다면,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다 같이 모여 먹는 두 마리에 8000원짜리 바싹 마른 전기구이 통닭을 못 먹게 되는 정도의 가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엄청 울었다.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쉴때까지 울었다”고 말했다.

막막했던 A씨에게 상고로 진학했던 언니가 구원이 됐다. 언니가 A씨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A씨는 정부 지원금으로 문제집을 샀고, 언니가 보태준 돈으로 인터넷 강의 무제한 수강권을 구매했다. A씨는 “언니가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서 죽을 지경으로 공부했다”며 “힘들어하고 슬퍼할 겨를이 없는 고3을 보냈다. 나에겐 두 번의 기회는 절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죽어라 공부만 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싸준 기름범벅 김치볶음밥을 들고 A씨는 수능고사장으로 향했다. 수능이 끝난 후 스스로 채점해본 결과 틀린 문항은 국어와 지구과학 2점짜리 두 개뿐이었다. 정시에서 의대를 진학할 수 있었던 충분한 점수였다. A씨의 가족은 가채점표를 붙들고 목놓아 울었다. 아버지는 A씨와 언니가 그렇게 가자고 조르던 아웃백 한 번 못 데려다 준 것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연대 의대생이 된 이후 A씨는 과외를 시작했다. 세 달 만에 A씨 가족은 밀린 월세 300만원을 갚을 수 있었다. A씨는 남은 돈 400만원을 언니와 아빠에게 반반 나눠 줬다.

마침내 글을 작성했던 10일 A씨의 가족은 처음으로 아웃백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4인 랍스터 세트를 가족이 함께 먹으며 다시 울게 됐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언니와 내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와 랍스터까지 먹는 모습을 본 아빠는 또 울었다. 아빠가 울어서 나랑 언니도 또 울었다”며 “배가 찢어지게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배가 찢어질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아빠와 언니의 모습도 처음이다. 정말 좋아보였다.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먹고 싶으니까 아웃백에 가서 4인 랍스터 세트를 시켜 먹을 수 있는 인생을 선물해 주기로 다짐했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A씨의 게시글은 13일 오전 11시 기준 약 4만2000개의 좋아요를 받고, 4200여 회 공유된 상태다. 사연에 감동했다는 반응과 A씨의 응원을 담은 댓글도 1만10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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